Etruria
1 개요
고대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 존재하던 민족.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에 거쳐서 이탈리아 북부에서 많은 도시국가를 건설하였다.
그리스어로는 티레니아(Τυρρηνία Tyrrhenia)라고 부른다. 에트루리아인은 스스로를 라스나(Rasna)라고 불렀다. 로마인은 에트루리아 인을 투스키(Tusci)라 부르고, 에트루리아 지방은 투스키라고 불렀다. 이것이 나중에 토스카나라는 이름으로 남게 된다.
2 기원
하도 오래된 종족이라 기록이 확실하지 않다. 여러 모로 논쟁이 많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소아시아의 리디아에서 유래한 종족이라고 한다. 디오니시오스는 에트루리아 인은 이탈리아의 토착민족이라고 언급했다. 2007년의 유전자 조사 결과 에트루리아인들은 소아시아 반도에서 기근을 피해 이주해 왔음이 확인되었다. 헤로도토스의 자료수집능력ㄷㄷ
3 정치
에트루리아 족의 도시국가들은 통합적인 국가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12도시 연맹이라는 느슨한 연맹체를 형성하였고 제사, 군사 등에서 협력하였다. 타르퀴니아, 키우시, 베이오, 체르베테리(카에레), 아레초 등이 유력한 도시이다.
4 언어
에트루리아 어와 페니키아 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어휘는 많이 알려져 있으며 비문도 남아 있고 현대에도 어느 정도 해독이 되고 있으나 완벽하게 해독되는 것은 아니다. 에트루리아 인의 기원 논쟁과 마찬가지로 에트루리아 언어도 기원이 확실하지 않다.현대 학자들이 묘비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해봤을 때,당시 인근 지역의 어떤 언어와도 닮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이주해온 민족의 언어일 가능성이 높지만 어찌되었건 자료가 너무 부족해서 단정할 수 없다.한편 역시 페니키아계 국가인 카르타고와는 대단히 가까운 사이로 거의 한 민족처럼 살았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문자로는 그리스 문자를 차용하여 변형한 에트루리아 문자를 사용했다. 에트루리아 문자는 이탈리아 각지로 퍼졌고, 로마로 퍼져서 '로마자'. 즉, 라틴 문자의 기원이 된다.
5 문화
이탈리아 토착 문화로 에트루리아 이전에 발생한 테라마레 문화, 빌라노바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페니키아, 키프로스 등 서아시아의 영향이 있었고, 그리스 인이 남부 이탈리아에 정착하면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분묘 건설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에트루리아 문화는 주로 분묘를 통해서 발견되고 있다.
에트루리아 문화에서는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의 예술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전성기에는 조각, 회화 등에서 생동감 있는 표현이 강하다는 점이 현대에 높이 평가받는다. 조각으로는 아레초에서 발견된 키마이라 상이 유명하다.
당시 주변국가와 달리 여성의 독립적인 인격을 인정했다. 여성은 자신이 원하는 남성과 성행위를 할수 있었고, 연회나 운동경기에서도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참가할 수 있었다. 남녀 불평등의 문화를 가진 그리스인들에겐 성행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여성들이 집에서 건 밖에서 건 완전히 다 벌거벗고 생활하며 돌아다니는 에트루리아의 상황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이 때문에 로마인들과 그리스인들은 에트루리아 문화를 타락했던 것으로 보았다. 에트루리아인들에게 성적인 행위는 생명, 죽음, 내세와 관련있다고 추정할뿐이다. 하지만 헤로도토스는 이런 에트루리아 여성들의 자신감있는 모습을 찬양하기도 했다.
로마에 비해서는 가정내에서 어머니의 권위도 상당히 존중된 것으로 생각된다.에트루리아 전통양식의 비석에서는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이름도 함께 기록되었는데 로마에서는 이런 경우가 상당히 드물었기 때문.
6 신화
에트루리아인은 로마와 마찬가지로 다신교 였다. 로마인들은 에트루리아 인들이 자신들보다 신을 더 중시한다고 평가했다.
크게 에트루리아 토착신과, 로마 신화와 유사한 신, 그리스에서 유입된 신으로 나누어진다.
에트루리아에서는 사자 숭배가 번성했고, 죽은 자의 무덤을 생전의 집과 똑같이 만들며 관은 사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이 때문에 많은 분묘가 에트루리아의 문화를 알려주는 유적으로 남게 되었다.
7 고대 로마와의 관계
에트루리아는 주로 고대 로마와 관련하여 언급된다. 로마 7왕 가운데 3명이 에트루리아 계이며, 실제로는 더 많았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심하게 보면 로마는 그냥 라틴 족 도시 가운데 에트루리아 앞잡이 노릇하던 도시(...) 정도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로마가 성장하고 세력이 강해지면서 에트루리아의 도시들은 차례차례 로마에 복속되어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으며 이후 시간의 경과에 따라 로마 문화에 흡수,소멸된 것을 보인다.그러나 로마인들은 에트루리아 문화를 상당히 존중한 편이고 특히 점술등에 관해서는 상당한 후대에 이르기까지 로마인들이 에트루리아로 유학하기도 했으며 그들의 철학체계와 로마와의 차이를 명확하게 인식했다.여러 출토물과 기록을 감안했을 때 에트루리아에 대해서 로마는 다른 동맹체보다도 좀 더 특별하게 인식한 것같기도 하다.이 때문에 로마의 문화는 에트루리아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로마에서 자주 사용하던 아치 형 건축이나, 검투사 같은 문화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