ラバウル小唄
1 개요
일제의 군가/전시가요.
소화 19(1944)년에 발표 되었다.
원래는 닛타 하치로(新田八郎)가 부른 남양항로(南洋航路)라는 노래였다. 시마구치 코마오(島口駒夫)가 곡을 만들었으며, 와카스기 유자부로(若杉雄三郎)가 가사를 붙여, 소화 15(1940)년 9월에 빅타레코드(현 빅터 엔터테인먼트)에서 발매되었다.
일제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연맹에 의해 구 동맹국(주로 카이저 독일)의 식민지였던 태평양의 내남양 지역(미국령 괌을 제외한 마리아나, 트럭, 팔라우 제도)에 대한 신탁 통치를 실행하고 있었다. 내남양지역의 위임통치는 국책 사업으로 진행되었으며, 태정 9(1920)년에는 내남양 신탁통치령의 통치를 위해 남양청이 신설되었다. 전전 일제에게 있어 남양 진출은 중요한 사업이였으며, 일본우선[1]을 위시한 해운업체의 태평양 진출, 대일본항공의 적도항로 개척 등의 남양 진출 사업들이 일제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남양 붐(南洋ブ-ム)은 개전 직전까지 이어졌으며, 남양항로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만들어졌다.
당 항목에서 소개하는 라바울 속요는 대략 소화 19(1944)년~소화 20(1945)년 경에 처음 불려진 것으로 짐작된다. 남양항로의 음을 따서 개사되어 불러진 것이 시초였으며, 속요(小唄 Kouta)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정형화된 가사 없이 사람들의 사이에서 구전되어 전해져오는 노래였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음반으로 정식 취입되었다.
해당 곡의 개사 시기와 주체에 관해서는 대전 말기 파푸아뉴기니 전역 라바울에서 후퇴한 병사들로 짐작된다. 군가보다는 전시가요의 성격이 짙으며, 또한 전시가요임에도 전쟁과 관련된 가사는 없다. 주로 남양지에 주둔한 병사들이 느꼈던 이국적인 느낌과 추억을 노래하고 있다.
전후 발매된 음반에서는 본 곡의 제목인 라바울 속요(ラバウル小唄) 이외에도 ‘라바울 속요 (남양항로)’(ラバウル小唄 (南洋航路)) 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라바울 속요 (남양항로)로 소개된 경우 2~3절 이후의 노랫말로 남양항로의 노래가사가 들어가기도 하였으며, 일부 음반에서는 작사자가 若杉雄三郎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여담이지만, 북녘 왕국의 핵종 뽀그리우스 황제 가 즐겨 불렀다고 알려져있다.[2]그리고 1.4 후퇴때 흥남에서 피난하던 실향민들이 '함흥'으로 가사를 바꿔 부르면서 실향에 대한 아픔을 달랬다 한다.
2 노래의 가사
* 원곡 남양항로(南洋航路)의 가사.
赤い夕陽が 波間に沈む 붉은 석양이 파도속에 저물고 果は何処ぞ 水平線よ 물가는 어디인가 수평선이여 今日も遥々 南洋航路 오늘도 머나먼곳 남양항로 男船乗り かまめ鳥 남자는 배타는자 갈매기새 流石男と あの娘が言うた 역시나 남자라고 그 여자는 말했지 燃ゆる想を マストにまかせ 불타는 추억들을 마스트에 걸고서 揺れる心は 憧れ遥か 흔들리는 마음속에 그리움이 저 멀리 今日は赤道 椰子の下 오늘은 적도 야자수 아래 |
* 라바울 속요(ラバウル小唄)의 가사.
さらばラバウルよ又來るまでは 안녕히 라바울이여 다시 올 때 까지는 しばし別れの涙がにじむ 잠시간의 이별속에 눈물이 맺히네 戀しなつかしあの島見れば 사랑스런 그리운 저 섬 보고 있자면 椰子の葉かげに十字星 야자의 잎 그늘 속 남십자성 波のしぶきで眠れぬ夜は 파도의 물보라로 잠못드는 밤에는 語りあかそよデッキの上で 갑판 위에서 밝아질때까지 이야기해요 星がまたたくあの星見れば 별들이 반짝이네 저 별 보고있자니 くわえ煙草もほろにがい 입에 문 담배마저 씁쓸하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