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의 시, 군 | ||||||||
시 | 함흥시 | 단천시 | 신포시 | |||||
군 | 고원군 | 금야군 | 덕성군 | 락원군 | ||||
리원군 | 부전군 | 북청군 | 신흥군 | |||||
영광군 | 요덕군 | 장진군 | 정평군 | |||||
함주군 | 허천군 | 홍원군 | ||||||
구 | 금호지구 | 수동구 |
함흥시의 행정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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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시 동흥산구역의 모습.
함흥은 성천강하구에 자리잡은 공업도시이다.
咸興市 / Hamhŭng City
함흥시 咸興市 / Hamhŭng City | |
국가 | 북한 |
면적 | 330㎢ |
광역시도 | 함경남도 |
행정구역 | 7구역 |
시간대 | UTC+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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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함흥의 선화당(宣化堂: 조선시대 관찰사가 사무를 보던 곳)
함흥에 관광 갔던 한 외국인이 몰래 찍은 영상으로 보인다.
랭면의 고장
북한 함경남도의 인민위원회 소재지. 광복 당시에는 함주군, 흥남시와 경계를 접했다. 함흥평야 위에 뻗어나간 도시로, 함흥냉면이 유명하며, 한편 함흥차사의 속담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도시의 서쪽을 성천강(城川江)이 흘러 동해로 빠져나간다.
2008년 기준으로 인구 약 77만 명. 북한에서 평양에 이어 2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이 정도면 남한 기준으로도 어지간한 지방 대도시급이다. 참고로 충청북도 청주시의 인구가 약 83만명, 전라북도 전주시의 인구가 약 65만명이다.
서울에서 동북쪽으로 직선 260km[1], 철도로는 약 350km 거리에 있다.
2 역사
원삼국시대에는 대략 옥저 땅이었다가[2]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역이었다.[3] 이후 발해의 오경 중 하나인 남경남해부로, 고려가 윤관의 여진정벌으로 확보한 동북9성 가운데 하나인 함주(咸州)였다. 그러나 몽골(원나라)에게 정복되어 쌍성총관부에 의해 98년간 통치되었고, 이성계도 이 시기에 태어났다.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의 본거지[4]로 유명하여 '풍패지향(豊沛之鄕)'이란 별명[5]이 있었다. 경흥동에 정화릉(定和陵)[6]·덕안릉(德安陵)[7] 등 왕릉이 있고, 귀루동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태어난 준원전(濬源殿), 경흥동에는 그가 왕이 되기 전에 살던 집 가운데 하나인 경흥전(慶興殿)이 있다. 별궁 격인 함흥본궁(구 사포구역 → 흥남시 소재) 역시 존재했으며, 흑백사진으로만 남은 이성계의 젊은 어진은 함흥본궁에서 촬영된 것이다.
원래 함흥군이었다가, 1914년 동북부 지역을 신흥군으로 분리하였다. 1930년 함흥면이 함흥부로 승격되고, 함흥군의 잔여지역은 함주군으로 개칭되었다. 해방 이후 소련군정 치하에서 함흥부가 함흥시로 개칭되었다.
북한 치하에서는 다른 도시들처럼 파란만장한 변천을 겪었다. 6.25 전쟁 때 크게 파괴되었으나, 소련과 동독의 지원을 얻어 재건되었다. 한때 함흥에는 동독의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빌헬름 피크 거리'가 있었을 정도. 1952년 12월 함주군을 일부 흡수했다가, 다시 1954년 함주와 오로군(현 영광군)에 일부지역을 편입시켰다.
1960년 함흥직할시로 승격되었고, 이 과정에서 흥남시, 퇴조군(현 락원군), 함주군, 오로군을 함흥직할시로 편입하였다가, 1970년 8월 다시 함경남도 도청소재지인 일반시로 격하되었다. 이때 덕산구역, 퇴조구역을 덕산군, 퇴조군으로 독립시켰으나, 덕산군은 1974년 1월 다시 함흥시 회상구역에 편입되었으며, 이때 본궁구역이 사포구역에 통합되었다. 그해 8월에는 반룡구역이 동흥산구역으로 개칭되었다.
2001년 8월에 인구 약 36만의 흥남구역, 해안구역, 흥덕구역, 사포구역의 일부를 독립시인 흥남시로 만들었으나, 4년만인 2005년에 다시 폐지하고 흥남시는 함흥시로 돌아왔다. 2001년 당시 함흥시는 흥남시를 만들면서 동흥산구역, 성천강구역, 회상구역 등 각 행정구역들을 폐지하였고,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961년부터 흥남에 2·8비날론연합기업소가 있으나 알다시피 비날론("주체섬유")이란 것이 참 안습한 녀석이다. 비날론 항목 참조.
3 교통
철도 시설로는 함흥역, 서함흥역, 함흥조차장역 등이 있다. 북한 철도망의 가운데에 함흥이 있고 북한 서부와 동부는 함흥을 거쳐야만 지나다닐 수 있는 형태로 교통의 요충지이다.
4 명승지
- 함흥본궁
- 만세교 : 성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원래는 목교였다. 1928년 홍수로 유실되자 2년 뒤 콘크리트로 재건되었다. 정월 대보름에 다리밟기를 하는 풍속이 있었다.
- 함흥향교 : 현존하고 있는 것은 누각인 제월루(霽月樓)뿐이다.
- 함흥 선화당
- 구천각(九千閣) : 반룡산(북한명 : 동흥산) 기슭에 있는 함흥읍성의 북장대였다.
- 치마대(馳馬臺) : 구천각 부근에 있으며, 태조 이성계가 말을 달리며 무예를 익히던 곳이라고 한다.
- 경흥전
- 덕안릉, 정화릉
- 귀주사(歸州寺) : 설봉산 아래 있는 절로 고려 문종 때 창건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31본산의 하나였으며, 이 부근에는 김일성의 지시로 동물원이 건립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반룡산의 경치, 성천강의 은반(겨울철 얼어붙은 강), 만세교의 낙조, 치마대의 가을달, 귀주사의 단풍, 함흥본궁의 밤비(夜雨), 서호진의 돛단배를 함흥팔경이라고 한다.#
4.1 기타
5 기타
훗날 남한 주도의 통일이 이뤄지면 함경남도의 주요 거점도시로서 평양, 청진과 함께 광역시 승격의 가능성이 있는 도시다. 옛 함흥, 함주, 흥남 지역을 다 엮으면[8] 대충 100만 정도의 인구가 되고, 또 함경도에 대한 배려 차원도 고려한다면… 오오 그곳은 함흥광역시
그러나 문제는, 통일 이후에는 인구 유동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지나친 낙관론(?)이다. 북한이야 인구 통제를 하지만, 통일 이후 대한민국의 경우 적어도 이북 5도간의 인구 유동을 막을 필요성도 명분도 없는지라, 이미 껍데기만 남은 함흥의 인구가 그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적다. 물론 공업 인프라 및 자원을 활용하기 좋은 천혜의 지리조건을 내세워 밀어줄 공산은 있지만 글쎄...?
거기다가 상술한 대로 통합이 되면 함경남도가 두 토막 나 버린다..... 그리고 일제가 나눠놓기 이전의 함흥 지역을 다 합친다면[9] 4,121.89km2라는 지나치게 크고 아름다운 행정구역이 탄생한다(...) It's over 4,000![10] 참고로 서울이 605.18 km2, 그 넓은 평양이 1,260 km2, 남한 최대 면적 행정구역인 홍천이 1,819.6 km2이다..... 심지어 이 셋을 합친 것보다 더 넓다!(3,684.78 km2)[11] 물론 통합이 안 될 수도 있고, 수원-화성-오산 통합 같은 일종의 시나리오로 봐야 할 것이다. 그래도 수원통합은 경기도가 반토막이 나진 않잖아 따라서 행정구역 통합을 한다면 어디까지를 통합 함흥시의 범주로 삼아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듯 하다. 그래도 월경지가 생긴다. 뭐, 통일이 된 후에 고민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12]
북한에서는 이 도시 사람들의 성격을 가리켜 함흥얄개라고 한다. 사막에 떨어뜨려 놔도 살아남는 기질이라고.
6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아래 행정동과 법정동은 《이북5도 명예읍·면·동장 위촉에 관한 규정》 제8조 별표2에 규정되어 있다. 광복 당시 행정구역이니만큼 일본식 지명도 많이 보인다.
함경남도의 하위행정구역 (이북5도위원회) | |||||
시 | 함흥시 | 원산시 | 흥남시 | ||
군 | 함주군 | 정평군 | 영흥군 | 고원군 | |
문천군 | 안변군 | 홍원군 | 북청군 | ||
이원군 | 단천군 | 신흥군 | 장진군 | ||
풍산군 | 삼수군 | 갑산군 | 혜산군 |
행정동 | 법정동·리 |
경흥동 | 경흥리(慶興里)·부평리(富坪里)·상수리(上水里)·심동리(深洞里)·하수리(下水里) |
반용동 | 금일리(錦一里)·반룡리(盤龍里)·산수리(山手里)·서일리(曙一里)·운흥리(雲興里)·지락리(知樂里)·출운리(出雲里) |
보고동 | 보고리(保古里)·상보리(上保里)·신보리(新保里)·자흥리(自興里)·중보리(中保里) |
사포동 | 사포리(沙浦里)·신흥리(新興里)·용호리(龍湖里) |
서상동 | 서상리(西祥里)·신흥리(新興里)·풍호리(豊湖里)·흥도리(興島里) |
성천동 | 만세리(萬歲里)·성천리(城川里)·황금리(黃金里) |
중앙동 | 남문리(南門里)·대화리(大和里)·복부리(福富里)소화리(昭和里)·연지리(蓮池里)·조일리(朝日里)·중앙리(中央里) |
치마동 | 일출리(日出里)·춘일리(春日里)·치마리(馳馬里) |
- ↑ 서울에서 광주광역시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 ↑ 교과서의 지도에는 항상 함흥 일대에 옥저를 집어넣는다.
- ↑ 진흥왕 대에 잠깐 신라 땅이 되었다가 다시 고구려에 빼앗겼는데, 이후 신라는 삼국통일 이후에도 함흥평야를 다시 차지하지 못했다. 통일 이전엔 신라가 먹었다가 통일 이후엔 오히려 발을 못 붙인 특이한 케이스.
- ↑ 고향은 정확히는 화령(영흥군. 오늘날 금야군)이다.
- ↑ 한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읍 패현과 동급으로 간주해 이런 별명이 붙었다.
- ↑ 이성계의 친누나인 정화공주의 묘. 5살 연상으로 알려진다.
- ↑ 목조 이안사와 그의 아내 효공왕후 이씨의 묘.
- ↑ 사실 1914년 이전에는 역시 함흥군 땅이었던 신흥군도 역사성을 따져 추가 편입할 수도 있긴 하다.
- ↑ 현 북한 체제 내의 함흥시+함주군+영광군+신흥군+락원군. 이북 5도청의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함흥+흥남+함주+신흥이다. 계산은 후자 기준.
- ↑ 신흥군을 제외하면 2,900 km2 정도로 많이 작아진다.
그래도 서울 평양 합친 것보다 넓다 - ↑ 애초에 일본이 저래 쪼개 놓은 이유가 함흥이 너무 넓어서(...)라고 한다.
이런건 잘 아네. - ↑ 어쩌면 본토와 이격된 함경남도 지역을 강원도로 편입시킬 수도 있다. 뭐, 사실 그쪽은 강원도 방언을 사용한다는 점도 있긴 하다. 다만 이것의 대표적인 예인 원산시와는 그래도 넘사벽의 차이를 보일듯... 여하튼 지금 결정난 거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