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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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의 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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興南市 / Hŭngnam City

흥남시
興南市 / Heungnam City
국가대한민국
광복 당시 면적130㎢
광역시도함경남도
광복 당시 행정구역75동
시간대UTC+8:30

북한 함경남도에 있는 (혹은 있었던) 도시.

1 개요

함흥시의 외항이자 공업도시로 흥남시였으나, 2005년 이후 함흥시 아래의 흥남구역으로 되어 있다. 광복 당시 면적 면적 130㎢.
지리적으로는 서쪽에는 성천강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함흥만을 끼고 있다.

남북통일 후에는 함경남도-함흥시 / 함흥광역시 흥남구로 개편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2 역사

2.1 일제강점기 최대의 공업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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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은 원래 함흥부 운전사(雲田社)라는 어촌이었으나, 1927년에 거대한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 공장이 들어서면서 급격히 발전했다. 처음에는 함흥부 운전사였다가 1914년 함흥군 운전면이 되었고, 1930년 함주군[1] 흥남면으로 개칭되었으며 이듬해인 1931년 흥남읍으로 승격되었다. 흥남이란 이름은 '함쪽'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다가 광복 8개월 전인 1944년 12월 함주군에서 분리되어 흥남부(興南府)로 승격되었다. 일본어로는 교난이라고 읽었다.

이 흥남에 일본 노구치 그룹[2]이 600만평 대지에 거대한 공장을 차렸다. 해방 직전에는 흥남부 인구 20만명 중 무려 4만5천명이 노구치 그룹의 근로자였다고 한다. 초대 흥남읍장이 공장 사장인 노구치 시타가우였을 정도로 흥남에서 노구치 그룹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질소 비료 공장을 위한 장전강·부전강 수력발전소도 여기 있었다. 하지만 공업단지 개발과 수력발전소 개발 와중에 무려 7천 + 4천 = 1만명이 넘는 조선인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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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강 수력발전소

이 시절에 흥남은 부 승격 직전인 1944년에는 함주군에 소속된 읍임에도 14.3만의 인구로 흥남이 경성부, 부산부, 평양부, 인천부, 대구부, 청진부[3]에 이어 조선의 7대 도시에 들어갔다. 이는 본래 소속되었던 함흥부(11.2만)는 물론 원산, 신의주, 광주를 앞질렀을 정도.[4] 덕분에 흥남읍이 소속되있던 함주군의 인구는 앞서 시 승격된 함흥을 제외하고도 약30만에 달하여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군이 되었으며 그 규모는 경성, 평양, 부산의 조선 3대 중추 도시들 다음이였다.

흥남과 함흥을 아우르는 흥남 공업지대는 일본을 제외한 동북아시아 최대의 화학공업 단지가 조성되어 있었고, 아시아 최대의 질소비료공장과 수력/화력발전소 외에도 도쿄의 이화학연구소 분실(分室), , 야금제련소, 제철소, 조선소, 각종 군수 공장 등 중화학산업시설이 즐비했고 그만큼 노동자 층이 상당했다. 해방 이후 흥남시로 개칭되었고, 이 때에도 주변구역을 병합해 20만의 인구를 자랑했다.

2.2 전쟁 당시

이후 북한 쪽에 진주한 소련군의 메레츠코프도 흥남 때문에 함흥이 한반도 북부의 중심지인 줄 잘못 알고 함흥에 군정 사령부를 설치할 것을 명령했으나 치스챠코프의 설득으로 계획을 취소했을 정도. 당시의 평양은 서비스업과 상업이 발달한 소비도시였다.

그러나 1950년에 벌어진 6.25 전쟁으로 인해 미군은 7월부터 8월까지 흥남을 철저하게 공중 폭격했고, 흥남의 공업 시설은 완전하게 파괴가 된다. 1950년 12월에는 유엔군이 실시한 흥남 철수작전도 특기할 만한데, 이 작전을 통해 10만여 피난민이 남쪽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작전 중에 그나마 남아있던 흥남 부두 역시 다 폭파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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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당시 폐허가 된 흥남

3 현재

1960년부터 승격된 함흥직할시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합병은 됐지만 2차 리즈시절 하지만 1970년 다시 함흥시가 함경남도에 편입되었다.[5] 1988년 기준으로 인구는 약 8만 명이 거주하였다. 2001년 8월 잠시 산업도시로서 흥남구역, 해안구역, 흥덕구역 과 사포구역의 일부가 흥남시로 독립 되었지만 3차 리즈시절 2005년 도로 함흥에 합병.

2008년 북한 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흥남구역 기준 인구가 약 99,994명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흥남시 땅마저 재편입되면서 함흥시에 빼앗겼기 때문. 흥남시 시절(2001년~2005년)의 인구는 약 36만 명[6]이었다고 한다. 함흥시가 40만 정도.

2001년 북한 로동신문함흥역-마전역 사이에 해수욕 전용열차 바다열차?가 개통되었다며 "우리나라 계절에서 무더운 삼복기가 오면 해마다 공업도시 함흥시와 흥남시 안의 근로자들은 휴식일을 리용하여 마전해수욕장을 즐겨 찾"는다고 자랑하기도 하였지만 실제 즐길수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될듯 .[7]

지금도 대표적인 비료, 나일론 공업 지역으로 흥남비료연합기업소가 있다. 이 비료는 북한의 삼대 주체공업 물품(청진, 김책의 "주체철", 순천함흥의 "주체섬유(비날론)") 중 하나인 "주체비료"로 선전된다. 평남 안주시 남흥지구의 남흥청년화학기업소 역시 "주체비료" 공업 지역으로 언급되는 북한의 대표적인 석유화학공장.

궁서리에는 함흥차사의 배경이 되었던 함흥본궁이 있다. 진흥왕순수비마운령비(북한 국보 제48호)가 함흥본궁에 보존되어 있다. 황초령비는 함흥역사박물관에 있다.

4 교통

철도시설로 평라선 창흥역(舊 본궁역), 흥남역, 서호역, 마전역(평라선), 창흥선 련흥역, 서호선 비날론역, 운중역, 룡성역(서호선), 하덕역이 있다.

5 이북5도 기준 행정구역

함경남도의 하위행정구역 (이북5도위원회)
함흥시원산시흥남시
함주군정평군영흥군고원군
문천군안변군홍원군북청군
이원군단천군신흥군장진군
풍산군삼수군갑산군혜산군
  1. 같은 해에 함흥군 함흥면이 함흥부로 승격되면서, 함흥군의 잔여 지역은 함주군으로 개칭되었다.
  2. 종전후 미나마타병의 원흉이 된 기업중 '칫소'가 이 그룹에서 나왔다. 현재는 미니미타병 배상을 전담하는 '칫소'와 그 외 사업을 이관받은 'JNC'로 나뉜 상태
  3. 1940년에는 대구보다 인구가 많았으나 소폭 감소했었다.
  4.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인구 5만 명 이상의 시가지(읍)을 부로 승격시켰는데, 1940년 당시 전국 20개 부 가운데 6개 부만이 흥남보다 인구가 많았다. 그나마도 1940년대에 증가한 것이고 1940년대에는 흥남(12.8만)과 원산(8.6만) 함흥(7.7만)의 격차가 엄청났다.
  5. 이때 영구 분리된 동네가 퇴조군(현 락원군)이다.
  6. 이 정도면 원산은 물론 개성도 쌈싸먹는다.
  7. 원칙적으로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복지나 노동권은 법적으로는 잘 되어있는 편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직장 근처에 집단으로 지어진 주택단지에서 생활하며 주말에 국영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여가를 즐긴다고 한다. 수도권의 위성도시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따라서 마전 해수욕장도 여름 휴가철에 노동자들이 신청을 하면 이용은 할 수 있을것이다....만, 한정된 시설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모일지를 생각해보자. 이거 뭐 육군 휴양시설 신청하고 기다리는것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