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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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85년작 영화. 구로사와의 27번째 영화이자 그의 마지막 시대극 영화이다. 외국매체에서도 구로사와의 His Last Epic Masterpiece Movie라고 소개한다.

멕베드를 일본식으로 각색한 영화 "거미집의 성"에 이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리어왕을 일본식으로 각색한 영화인데 리어왕에서는 세 딸네미가 등장한다면 란은 그것을 이치몬지 히데토라와 그의 세 아들네미로 바꾸었다. 아들네미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저 유명한 모리 모토나리의 세개의 화살 드립도 이 영화에 영향을 준것 같다.물론 히데토라는 모토나리와는 달리 뻘짓을 한 셈이지만

나카다이 타츠야인터뷰에 의하면 주문이 굉장히 많은 영화였다고...

이 당시에 가장 많은 돈을 들인 영화로 꼽히는데 당시 거액인 1200만 달러나 들여 만들었다. 엄청난 스케일로 관객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한 카게무샤를 두고[1] 이 영화를 위한 예행연습격 영화 취급했으니 애초에 구로사와를 돈만 많이 드는 골치아픈 거장 취급하던 일본에서는 스폰서를 구할 수 없어서 프랑스에서 투자한 돈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웃기는 건 이래놓고 나중에 프랑스 국적 영화로 해외 영화제 출품되자 일본적인 영화를 왜 프랑스 영화로 하느냐 골때리는 불만을 보이던 일본 영화계 인사들이 있었다는 거다. 구로사와도 열터져서 그리도 애국타령하는 인사들이 제작당시 왜 외면했냐고 엄청 화냈기에 나중에 한국영화 월간지 로드쇼와 인터뷰에서 이걸 불쾌하게 이야기했다.

세간에 대작이라는 평과 달리 상복은 별로 없었는데, 칸 영화제 출품에 늦었고, 제 1회 도쿄 국제 영화제에서 초연하려고 했으나 감독이 거절했다. 그 때문에 일본 영화계의 반발 때문인지 아카데미 영화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에 출품되지 못했다.[2] 세르쥬 실베르만이 프랑스 작품으로 출품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시드니 루멧이 구로사와 아키라를 최우수 감독상 후보에 오르도록 캠페인을 벌이고 결국 후보에 올랐다.[3] 그리고 최우수 미술상, 최우수 촬영상, 최우수 의상상이 후보에 올라 최우수 의상상을 탔다.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작품상 후보에 올랐지만 <오피셜 스토리>가 수상하면서 수상은 실패했다.
특이하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등)에 노미네이트 되지 않고, 최우수 미술상과 최우수 음악상, 제작자 하라 마사토가 특별상을 수상, 최우수 촬영상, 최우수 조명상, 최우수 음향상, 최우수 남우조연상(우에키 히토시)이 후보에 그쳤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과 분장상을 수상했고, 최우수 촬영상, 최우수 의상상, 최우수 미술상, 최우수 각색상이 후보에 올랐다.

센고쿠 시대를 거쳐 3개의 성을 소유한 [4] '이치몬지 가문'의 당주 이치몬지 히데토라는 사냥을 나갔다가 뜬금없이 가족과 손님들 앞에서 모리 모토나리처럼 하나의 화살은 쉽게 부러지지만, 세개의 화살은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다. 너희들도 이 화살처럼 서로서로 도우면서 이치몬지 가문을 발전시켜 나가라라면서 가독을 첫째에게 상속하고 소유한 성과 영지를 3등분해서 아들 삼형제에게 줄 것을 깜짝 발표했다. 그러나 막내아들 사부로는 "아버님은 노망드신것 같다. 아들들이 서로 돕고 살리가 없다. 끔찍한 혈전만 벌어질뿐이다."라고 솔직한 충고를 했고 히데토라는 격노해서 사부로와 사부로와 같은 충고를 한 가신 히라야마 탄고를 내쫓는다. 사부로는 이웃 영주인 후지마키의 성으로 가게되고 사부로를 마음에 들어한 후지마키는 그를 사위로 삼을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후는 원작대로 상속을 받을 때는 온갖 입에 발린 말을 하던 첫째와 둘째가 아버지를 마구 내몰게 되는데 여기에는 첫째 타로의 부인 카에데도 가담한다. 카에데는 히데토라에게 아버지를 잃은 원한으로 남편을 충동질해 히데토라를 죽이려고 한 것.[5] 비록 가독을 물려주고 은퇴했다지만 여전히 영향력이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타로는 "내가 영주이니 아버지도 내 말대로 따라달라" 라고 하자 히데토라는 격노하고 둘째 지로의 성으로 간다. 그러나 지로도 "귀찮으니 하인들 떼놓고 아버지만 혼자 오삼"이라며 무정하게 성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세번째 성으로 가게 되지만 아버지를 내버려두면 사단이 난다라고 생각한 타로와 지로는 심지어는 군대를 이끌고 아버지가 머무는 성을 공격하게 되며[6] 아버지 히데토라는 미쳐서 방황하게 되는 처참한 스토리. 원작보다 더욱 잔혹하고 니힐리즘적인 태도에 입각해서 인간성의 어두운 부분과 허무주의를 표현하고 있다. 결말 역시 원작과 비슷하다.

와다 에미의 독특한 미술/의상 디자인으로 각종 상을 휩쓸었는데[7] 영화 중 히데토라의 문장인 해와 달 문양은 감독의 이름인 아키라의 明이라는 글자를 날 일자와 달 월자로 쪼개어 디자인한 것이라고. 전체적인 색채 배분 면에서도 매우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8]

이외에 대작인 만큼 여러 기괴한 에피소드가 많다. 스케일을 살리기 위해 국보인 히메지 성에서 촬영했는데, 히데토라가 망루에서 몸을 내밀어 한 가신을 사살하는 장면에서 국보니까 바닥에 피를 흘릴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당시의 원시적 그래픽으로 수백만엔을 들여 피를 광학 합성하는 뻘짓을 했다고 한다. 성에 피칠하는것도아니고 바닥인데? 관료주의...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공이 들어간 장면은 다른 장면이 아니고 첫째 타로가 창 밖을 내다보며 권력욕에 취하는 장면인데, 밖을 내다보는 단순한 테이크에 감독이 만족하지 않아서 그 한 장면 촬영에만 6개월이 걸렸다고. 게다가 실제 감독이 ok를 내린 테이크에서는 창밖의 산에 등산객이 찍히는 바람에 그래픽 담당은 고민 끝에 감독에게는 비밀로 다시 수백만엔을 들여 그 부분을 합성해 없앴다고. 또, 아들들이 히데토라의 성을 공격하는 장면에서 그 성채는 실제 성채를 지어서 찍으면서 불태운 것이다. 말 그대로 단 한번밖에 찍을 수 없는 장면이었고, 히데토라가 미쳐서 걸어나오는 장면은 실제 불타는 건물 안에서 걸어나오는 것.[9] 당시 한 유명 프랑스 영화 평론가는 이 장면에 감탄하여 일본으로 와서 이 촬영현장을 직접 둘러보기도 했다.

리어왕을 각색해서 만들었지만 원안 단계에서는 구로사와 감독이 실제 당한 통수 스토리를 영화적으로 표현한 것이어서 누가 누군지 해당 사건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알 정도로 사감이 가득하고 엉망진창의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후 대폭 수정을 거쳐서 걸작으로 돌변(...)

음악은 저명한 일본의 현대 음악가 타케미츠 토루가 맡았지만, 구로사와가 편집과정에서 타케미츠의 의사도 묻지 않고 맘대로 음악까지 뜯어고치려 들자 빡친 타케미츠가 이제 당신이랑 작업할 일은 없습니다라고 열을 내면서 편집실을 뛰쳐나왔다고 한다. 어찌어찌 강판은 안하고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결국 타케미츠가 공언한대로 이후로 구로사와 영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실 이 문제뿐만 아니라 구로사와는 음악을 연주할 오케스트라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원했는데 타케미츠는 런던 심포니는 너무 영화 음악을 많이 해서 점점 거칠어진다면서 다른 오케스트라로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결국 삿포로 오케스트라가 작업을 하게 되었다. 구로사와는 내 일생일대의 대작 영화인데 듣보잡 오케스트라가 한다니!라고 매우 불쾌해했으나 실제 삿포로 심포니가 연주하는 것을 들은 구로사와는 감동해서 작업을 마친후에 지휘대에 올라서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구로사와의 굴욕?

전투신등에서 스케일이 큰편인데 약 1000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했고 역동적인걸로 유명한 기마대의 전투신에 쓰인 말들은 50마리인데 보통 렌탈해서 쓰는것과는 달리 촬영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리니 그냥 사다가 길들여서 쓰자라고 해서 미국에서 50마리를 사다가 길들인 뒤에 촬영했다고 한다. 이 말들은 촬영이 끝난후 다시 매각했다고 한다.

흥행 수익은 16억엔인데 스케일 큰 거장의 대작이라서인지 그해 일본영화 흥행수익 3위를 기록했다. 제작비가 1200만 달러라 흥행 성공의 기준인 손익분기점은 극장과의 부율 정산 등을 고려해 일반적으로 제작비의 2배 이상이어야 흥행에 성공한 것이지만 일본의 경우 2000년대 이전까진 미리 위와 같은 과정을 다 계산한 이후의 수익인 배급수입을 처음부터 공개하는데 이 작품의 배급수익은 제작비보다 훨씬 여유 있게 벌어들인 16억엔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1. 제작비도 엄청났거니와 조지 루카스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라는 헐리우드 최고 명감독 둘을 프로듀서로 두고 만든 영화이기까지 하다.
  2. 대신 이토 슌야의 <꽃 한 닢>이 출품됐다.
  3. 수상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시드니 폴락.
  4. 영화상에서 이 3개의 성의 로케지는 국보인 히메지 성이 제1성, 구마모토 성이 제2성이고 이치몬지가 은퇴하여 은둔했다가 두 아들네미에게 공격당한 성은 가상의 세트로 폼나게 지어져서 불태우면서 찍었다. 그리고 나고야성이 막내인 사부로를 사위로 삼은 이웃 영주의 성이라는 설정이었다. ㅎㄷㄷ
  5. 여담으로 둘째 지로의 부인 스에 역시 히데토라에 의해 가족을 잃었다. 그러나 이쪽은 카에데와 달리 히데토라를 원망하지 않는다.
  6. 조금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다테 마사무네인질범과 인질로 잡힌 아버지까지 쏴죽인 일이 있긴 하지만...
  7. 198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영화로서는 드물게 의상상을 수상했다.
  8. 대충 이런 색채 활용 비주얼은 21세기에 나온 영화에 비유하자면 장이머우의 영웅정도가 있겠다.
  9. 게다가 불태우면서 화살도 슝슝 직접 날아오기까지 한다!거미집의 성에서 진짜 화살 날린 에피소드가 떠오르네 자칫 잘못하면 나카다이 타츠야가 다칠수도 있었을것 같은 지경. 그런 와중에 미쳐가는 이치몬지를 연기한 나카다이의 연기력이 후덜덜하다고 할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