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저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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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른쪽에 있는 견공

1 개요

Lazarus
1860년대 버머와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떠돌던 잡종견. 뛰어난 쥐잡이 실력으로 유명하다.

2 생애

1861년 그는 자신보다 더 큰 개와 싸우다가 당시 골목대장인 버머의 구원을 받아 살아나면서 버머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래저러스는 싸움에서 얻은 다리의 상처로 죽어가고 있었지만 버머의 극진한 간호로 살아남아 버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신세가 되는데 행인들은 래저러스의 뛰어난 회복능력을 보고 예수의 기적으로 다시 살아난 나사로와 같은 꼴이라며 그에게 래저러스란 이름을 붙여준다.[1]

하지만 뛰어난 쥐잡이 실력으로 세간의 관심을 끈 버머에 비해서도 래저러스는 더 뛰어난 쥐잡이 개였다는 것. 거기다가 팀이 되면 싱크로 효과로 능력이 더 높아져서 20분안에 85마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의 실력에 도시가 주목하기 시작. 마틴의 선술집은 곧 신문기자들에게 기사를 쓰기 위한 최고의 장소가 된다. 술도 마시고 기사도 쓰고 그리고 기자들은 자신들이 술집에서 놀지만 않았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서 이 기사를 열심히 퍼가요 퍼날라서 곧 유명한 스타가 된다. 당시 신문인 <Californian>, <Daily Alta California>, <Daily Morning Call>, <Daily Evening Bulletin> 등이 그들로 날로(…) 기사를 먹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이 신문기자들은 서로 경쟁이 붙어서 이 둘을 모험을 더욱 사실감이 넘치게 묘사하기 위해 이 둘을 의인화하는데 버머는 독실한 빈털털이 신사로 나오고 반대로 래저러스는 교활하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제멋대로인 친구로 나온다. 특히 버머가 다리에 총을 맞아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래저러스가 다른 개를 찾아가자 신문은 신나서 "목숨을 살려준 은혜도 모르는 똥개로부터 배반당하다"라는 헤드라인을 써낼 정도였다. 그리고 버머가 회복돼서 래저러스가 다시 돌아오자 신문은 또 다시 신나서 기사를 찍어내기 시작한다.

이 둘은 도로를 점거하다가 1862년 래저러스가 개잡이한테 붙잡히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분노한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그 둘의 석방과 자유로운 방황을 요구. 사람들 참 한가하구나 결국 시에선 래저러스를 풀어주며 그 둘은 떠돌이 개와 관련된 법률로부터 자유롭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뭐 이래... 그리고 둘은 일주일 후에는 도망가는 말을 붙잡는 전공을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래저러스는 도로의 개들과 매번 싸우는 버머를 거들거나 짖으면서 응원하거나(…) 주인이 잠궈둔 가게 안을 뒤지는 것도 예사였다는 문제견이었다고 한다.

3 황제폐하 노턴 1세와의 관계

하지만 이 둘이 무엇보다도 유명한 것은 미합중국의 유일한 황제폐하 노턴 1세와 함께 다녔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노턴 1세를 이 둘의 주인으로 알기도 하지만 일단 그것에 대한 정확한 증거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만화가 에드워드 점프가 이 셋을 한컷에 그렸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있다고 한다. 특히 노턴은 맨 위에도 있는 셋이 있는 그림을 보고 어떻게 저런 하층 개들과 나를 같이 그려 넣을 수 있냐며 분노했다고 한다. 하지만 1950년도까지만 해도 노턴은 이 두 견공의 주인으로 인식되었다. 대표적인 얘가 사무엘 디킨슨의 다음 문구.

Bummer and Lazarus went everywhere with him. No theatrical performance opened in San Francisco from 1855 to 1880 that three complimentary tickets for the first row of the balcony were not put aside for Bummer and Lazarus and Norton I, Emperor of the United States.
-San Francisco is My Home-

4 래저러스의 죽음

1863년 10월 샌프란시스코 만화경에서 사망한다. 사무엘 딕슨은 그가 소방차 바퀴에 충돌해 죽었다고 주장했지만 동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한 남자아이를 문뒤에 어떤 사람이 준 쥐약이 든 고기를 먹고 죽었다는 것이 정설. 샌프란시스코는 범인을 찾기 위해 50$를 걸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점프에서는 노턴 1세교황으로 분장하고 그의 장례식을 치루는 만화를 그렸고 사람들은 그를 유명한 인사의 무덤 옆에 묻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장례행렬에 참가했으며 그의 단짝 버머도 슬퍼했다고 한다. 하지만 래저러스는 묻히지 못하고 박제되어 마틴의 선술짐안에 전시된다. <Daily Evening Bulletin> "Lament for Lazarus"라는 이름을 가진 둘의 모험을 찬양하는 래저러스의 사망기사를 내기도 했다.

5 그후

1865년 버머가 죽자 그 또한 역시 래저러스처럼 박제되어 전시되는 운명이 된다. 1906년 버머와 래저러스는 Golden Gate Park 박물관[2]에 기증되어 창고에서 지내다가 1908년에 파괴된다.
  1. 알파벳으로 Lazarus가 된다.
  2. 지금은 M. H. de Young Memorial Museum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