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음모론

1 개요

로스차일드 가문이 미국 달러를 생산하는 것에 개입한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

1971년 닉슨 대통령 금환태 제도 폐지를 혜지하면서 기축통화는 달러가 되었는데 이 달러를 생성하는 것이 바로 FRB(Federal Reserve)인데 이 곳은 미국의 중앙은행[1]이지만 민간 은행이고 이 민간은행의 최대 주주들이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매우 우호적인 기업들이라는 것이다.

초기 FRB의 주주(총20만)

-록펠러와 쿤롭의 뉴욕내셔널시티은행 3만
-폴와버그의 뉴욕내셔널상업은행 2만1천
-JP의 퍼스트내셔널은행 1만5천
-로스차일드의 하노버은행(1만2천),체이스은행(6천),케미컬은행(6천) 총 2만4천

후에 이들 은행의 연준 지분은 조정되어 53%에 이르게 되고 현재는 약 70%대로 추정.

2 주주

뉴욕내셔널시티(록펠러&쿤롭)와 퍼스트내셔널(J.P 모건)이 합병해 씨티은행이 된다.
케미컬(로스차일드)과 하노버(로스차일드)가 합병해 케미컬뱅크가 세워진다.
또한 케미컬(로스차일드)은 체이스맨하탄(로스차일드)과 합병하고 체이스맨하탄(로스차일드)은 모건(J.P 모건)과 합병해 현재의 J.P.모건체이스가 된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현재 연준의 최대주주는 모건과 록펠러인셈

그러나

폴 와버그&쿤롭-시티은행의 동업자인 쿤롭과 두번째로 많은 FRB 지분을 갖고있던 폴 와버그는 로스차일드의 오래된 대리인들이다(폴 와버그는 후에 쿤롭가의 사위가 된다).

모건-많은 이들이 아시다시피 로스차일드의 후원에 의해 키워졌는데, 모건의 모태인 피바디상회는 로스차일드의 대리인자격으로 건너간 야콥 쉬프의 눈에 든 피바디가 로스차일드의 본격적인 후원을 등에 업고 커나가게 된다. 이때 피바디와 같이 동업한 사람이 J.P.모건의 아버지이다.
이후에 모건은 그대로 사업을 물려받아 로스차일드 가문과 직접 접촉해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히하고 대리인을 자처하게 된다. 주요회의에 로스차일드 대표자격으로 참석하기에 이르게 된다.

록펠러-로스차일드에게 운송비를 헐값에 지원을 받아 석유시장을 지배하게 된다.금융왕이라 불리었던 모건은 자신의 모든 사업체중 19%만을 소유했다고 밝혀졌는데, 나머지 지분은 로스차일드의 소유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한 부통령이 된 넬슨록펠러의 자산이 너무 적어 출처를 물어보니 당시 넬슨은 록펠러가의 자산은 로스차일드의 대리인이 관리하기때문에 자신은 모른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종합해보면 FRB의 주주 중 로스차일드와 엮이지 않은 주주가 아예 없다.

3 대통령

중앙은행 시스템을 거부하고 그린백을 발행. 1865년 4월 15일 암살.
"내가 은행을 죽였어"라는 유언을 남긴 대통령, 중앙은행 시스템을 거부. 암살시도가 있었으나 암살자의 권총 2발 모두 불발로 겨우 암살당하지 않는다.
FED를 배제하고 재무부에 화폐발행권을 넘겨줌. 1963년 11월 22일 암살.
  1. 한국의 한국은행과 같은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