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역대 국왕 | ||||||
필리프 2세 | ← | 루이 8세 | → | 루이 9세 |
이름 | 루이 8세 사자왕(Louis VIII le Lion) |
생몰년도 | 1187년 9월 5일 ~ 1226년 11월 8일 (39세) |
재위기간 | 1223년 7월 14일 ~ 1226년 11월 8일 |
출생지 | 프랑스 파리 |
사망지 | 프랑스 상파뉴 |
필리프 2세의 아들로 1200년 카스티야 왕 블랑슈와 결혼해서 그의 숙부인 존 왕과의 교섭을 끌어냈다.
잉글랜드의 존 왕과 대립하는 제후들의 요청을 받고 1216년 잉글랜드로 원정을 떠나 성 바울 성당과 윈체스터 사원과 왕궁의 절반을 빼앗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해전에서 패하고 어린 헨리 3세가 즉위하자 잉글랜드 제후들이 태도를 돌변하여 그에게 철군을 요구해왔다. 어쩔 수 없이 1217년 램버스 조약을 맺고 잉글랜드 왕위를 포기했다.
프랑스 국왕에 즉위 후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던 알비즈와 십자군을 통해 남부 프랑스의 광대한 왕령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파리로 돌아오던 도중에 이질에 걸려 병사하였다. 비록 요절했지만, 왕자 시절부터 사망하기 직전까지 무수한 전공을 세웠다. 아버지 필리프 2세를 대신해 군대를 지휘하는 경우가 잦았고, 부빈 전투 직전에는 존 왕을 성공적으로 격파해, 부빈 전투의 승리에 일조했다. 잉글랜드 원정을 떠나 잉글랜드를 정복하기도 했으며, 비록 프랑스파 귀족들이 링컨 전투에서 격파되면서 철수했지만 그의 본대는 패배한 바 없다. "사자왕"이라는 칭호는 그 군공에서 비롯된 것.
앙주 왕가가 루이 8세의 대에서 갈려나왔다. 유복자 샤를이 앙주와 멘의 영주가 되었고 이후 시칠리아 왕위까지 손에 넣으면서 그의 자손은 유럽의 유력한 왕가가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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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 4 일러스트 |
징기스칸 4에서는 나왔지만. 아들보다 능력치는 안습하다.대체 왜 정치 57, 전투 57, 지모 45. 다른 건 몰라도 전투는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