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Mark David Chapman |
출생 | 1955년 5월 10일 |
직업 | 경비원 |
1 개요
1955년 미국 텍사스 주 포트워스에서 태어나 조지아 주 애틀랜타 근교의 조용한 지역에서 생활했다. 9살 때 처음으로 비틀즈를 보고 비틀즈의 팬이 되었다. 1975년 선교사로 레바논에 파견되었고 베트남 난민을 돕기도 했다.
1976년에 커버넌트 대학을 중퇴하고 애틀랜타에서 경비원으로 취직했다가 1977년에 하와이로 이주, 이후 정신병 증세로 2차례 자살을 시도하나 미수로 끝났다. 1979년 6월에 하와이 호놀룰루 경비원으로 지내면서 일본계 미국 여성 글로리아 아베와 결혼했다.
그냥 단순한 정신병자 항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파일:GN8ZCPs.png
존 레논이 마크 체프먼에게 싸인을 해주고 있다. 이 사진이 찍히고 5시간 후 존은 살해당한다.
1980년 12월 8일 월요일, 존 레논은 'Double Fantasy'를 제작하고 활동을 시작하려던 찰나, 마크 채프먼은 존 레논의 자택 앞에서 존 레논을 총살했다. 녹음 스튜디오에서 오노 요코마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는데, 38구경 리볼버에 벌집이 되었다고 한다. 후에 마크 채프먼은 가석방심의위원회에서 살해 동기를 "관심을 끌려고 그랬습니다." 존 레논의 명성을 조금 훔쳐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그랬습니다."라고 진술했다. 그리고 그는 성공했다. 그게 비록 악명이지만, 영원히 남겨질 것은 틀림없게 되었다.
그는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 심취해 있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존 레논을 죽여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존 레논을 살해하고 나서 경찰들이 체포하러 올때까지도 현장에서 담담히 책을 읽고 있었다고..
그가 존 레논의 광적인 팬이었고, 급기야는 자신이 존 레논이라고 생각해서 "이 세상에 존 레논이 두명일수는 없다." 라고 판단하여 살해했다는 말도 있으나 사실무근이다. 참고로 채프먼의 자택에서 발견된 비틀즈의 앨범은 그의 아내가 구입한 것으로, 채프먼이 비틀즈, 특히 레논의 광적인 팬이었다는 주장의 근거로는 적당하지 않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뮤지션은 토드 런그렌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마크 채프먼은 현재 종신형을 선고받고 30년 넘게 미국 아티카 교도소에 갇혀있다. 2년마다 가석방 신청을 내고 있는데, 2014년 8월 22일 그의 8번째 가석방 신청이 거부되었다. 이유는 유가족과 고인을 사랑하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이유. 사실 석방돼도 채프먼 입장에선 불안한 것이, 여전히 존 레논의 몇몇 팬들이 그의 출소일만을 기다리며 이를 갈고 있다는 카더라가 있어서…
2015년 그의 아내 글로리아 아베는 영국 데일리 메일리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아주 사랑스러운 사람이고 언제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폴 매카트니도 그와 만나게 된다면 그를 좋아하게 될것이다."[1] 라는 망언을 하여 비틀즈 팬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여담으로 마크 채프먼은 존 레논에게 총을 쏘기 직전, 유명한 호러 소설가 스티븐 킹에게도 끈질기게 사인을 요구했다고 한다. 사인을 거의 해주지 않는 스티븐 킹도 그 끈질김에 질려 결국 사인을 해줬다는데, 만일 킹이 사인을 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2 인터뷰 영상
래리 킹과의 인터뷰
바바라 월터스와의 인터뷰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존 레논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 폴은 2015년 영국 토크쇼와의 인터뷰에서 채프먼을 "머저리 중에 머저리"(the jerk of all jerks)라며 직설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