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적.
2013년경
1 개요
Todd Rundgren
1948.06.22~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뮤지션이자 프로듀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스웨덴계 미국인이다. 정확히는 오스트리아 혈통이랑 하프. 증조대가 미국으로 넘어와 정착했다고 한다. 돌프 룬드그렌의 성씨하고는 한 글자 차이. 다만 스웨덴인인 돌프 룬드그렌과 달리 이 사람은 미국인으로, 미국 발음은 런그렌에 가깝기에 토드 런그렌으로 개설했다. 참고로 토드 룬드그렌으로도 넘어올수 있다.
필라델피아로 상경해 활동했던 'Paul Butterfield Blues Band'의 카피 밴드인 'Woody's Truck Stop'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했지만 룬드그렌과 베이시스트 'Carson Van Osten'은 음악적인 방향을 거라지 록 스타일로 바꾸기 위해서 1967년 밴드를 탈퇴한 후 'Nazz'를 새롭게 결성한다. 활동 당시 그렇게 주목받는 밴드는 아니였지만 비틀즈와 더 후, 무브 같은 브리티시 인베이전 시절 밴드들과 비치 보이스의 하모니를 결합한 런그렌 특유의 센스 때문에 컬트적인 호평을 들었지만 아무래도 한계를 느꼈는지 세 장의 앨범을 내놓고 1969년 탈퇴한다. 다만 이때 만들어 내즈 이름으로 발표한 'Hello It's Me'는 소폭 히트를 기록했고 이는 훗날의 영광과 연결된다.
로라 니로 같은 소울 뮤지션들을 팬질하며 음향/프로듀서 공부를 하던 그는 Albert Grossman Management랑 계약하게 되면서 프로듀서 개업을 한다. 여러 뮤지션들을 프로듀싱해왔지만 하지만 솔로 작업에도 욕심이 있었던 런그렌은 1970년 첫번째 앨범인 Runt를 내놓게 된다. 블루스부터 파워 팝, 소울까지 자신이 다루는 스타일이 광범위하다는걸 선언한 이 앨범은 당시 평은 엇갈렸지만 지금은 괜찮은 데뷔 앨범으로 평가받고, 그 가능성을 알아본 베어즈빌 레코드랑 계약하게 된다. 그리고 1971년 두번쨰 앨범인 피아노 위주의 발라드 앨범 Runt. The Ballad of Todd Rundgren를 내놓으면서 최초의 걸작을 만들어낸다.
Runt. The Ballad of Todd Rundgren의 성공과 그동안 프로듀싱한 노하우를 통해 그는 1972년 그렇게 바라마지 않았던 더블 앨범을 기획하게 되는데, 지금도 토드 런그렌의 대표작으로 꼽힌 Something/Anything?이였다. 그야말로 런그렌의 굇수같은 능력을 보여주는 앨범으로, 직접 프로듀싱하고 모든 악기를 연주하고, 25곡 가운데 19곡의 보컬을 맡았으며, 메들리로 연주한 두 곡과 ‘Dust In The Wind’를 제외한 모든 곡을 작곡했다. 신시사이저와 혼 섹션, 현악 섹션을 동원한 풍성한 악기와 독특하면서도 뛰어난 편곡이 Runt에서 꿈꿔왔던 백화점 구성의 팝/록 더블 앨범과 만나 본격적으로 포텐을 터트렸다는 격찬을 받으며 'Hello It's Me' 같은 곡이 싱글로 발매되면서 그동안 누리지 못해왔던 성공도 맛보게 된다. 이떄부터 친구 소개로 마약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973년 A Wizard, a True Star라는 우주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또다른 걸작을 내놓은 런그렌은 두번째 더블 앨범 Todd 발매 후 유토피아라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 시절부터 프랭크 자파와 마하비슈뉴 오케스트라에 영향을 받으며 프로그레시브 록에 가까워지는 성향을 보이면서 차트 성적은 계속 Something/Anything?만큼 미치지 못하게 된다. 라이브에 쿼드라포닉 시스템을 도입하다던가, 조지 클린턴과 휭카델릭에 관심을 기울이는 혁신을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Faithful와 Hermit of Mink Hollow로 다시 팝에 관심을 두게 되며 1980년대엔 뉴웨이브를 탐사하다던가 필리 소울를 다시 탐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기술적인 혁신에도 민감한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1981년 'Time Heals'는 MTV에서 8번째로 방영된 그의 비디오가 되었으며 1991년 'Change Myself'는 Amiga 컴퓨터에서 재생할 수 있게 제작되어 팔려나갔다. 1993년에는 포맷 자체가 흑역이라 묻혔지만 CD-i용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제작 하기도 했다.
2000년대부턴 카스 멤버들과 뉴 카스라는 프로젝트성 밴드를 만들기도 했고, 솔로 앨범도 꾸준히 내고 있으며 프랭크 오션과 스크릴렉스 같은 젊은 뮤지션들에게서 영감을 받는등 정정한 모습을 보이면서 활동중이다.
앞서 말했듯이 프로듀서로도 활발히 활동했는데, 프로듀서로써 대표작은 Badfinger의 Straight Up, 더 밴드의 Stage Fright.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의 We're an American Band, 미트 로프의 Bat Out of Hell, 뉴욕 돌스 데뷔앨범, 홀 앤 오츠의 War Babies, XTC의 Skylarking가 있다. 다들 음악사에 한 끝발 날리는 뮤지션이라는 점에서 그의 위상이 어땠는지 알수 있는 부분. 다만 2000년대 이후로는 뜸한 편이다.
작업 현장에서는 지독한 완벽주의자로 독종이라 평가받는다. 음악적으로 만족 못해 내즈를 탈퇴했다는 일화라던가 Badfinger 프로듀서로 일했다가 밴드 멤버들과 싸워서 밴드 멤버들이 셀프 프로듀싱해달라고 사정을 하게 되고 XTC의 Skylarking 만들땐 그야말로 독설과 육탄전 직전의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졌다는 일화를 보면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뭐든지 할 수 있는 인물인듯 하다. 하지만 그런 완벽주의가 재능과 결합되어 일정 퀄리티 이상의 음반을 만들어내서 현지에서는 레전드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아 리브 타일러의 대부로만 유명하다. 안습. 사실 현지에서도 Something/Anything? 이후론 컬트 뮤지션 이미지가 강한 편이긴 하다.
리브 타일러와 관계가 다소 복잡한 편인데, 당시 여친 베베 뷰엘이 에어로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와 짧은 불장난을 했다가 [1]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얻은 리브를 토드 런그렌을 리브의 친부라고 거짓말하고 런그렌 호적에 입적시켰다. 그래서 한땐 리브 타일러의 본명은 리브 런그렌이였던 적도 있었다. 워낙 그 시절 스티븐 타일러가 마약 중독으로 엉망이였기 때문에 베베 쪽도 어쩔수 없이 한 선택이었지만, 본인은 언짢게 생각했는지 리브가 태어난 직후 헤어졌다. 하지만 리브 타일러에겐 거짓말을 지켜 여전히 친부처럼 대했고 리브가 런그렌이 친부가 아니라는걸 안 뒤에도 사립 학교 학비도 지원해주고 1년에도 몇 번이나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 리브 타일러하고는 사이가 매우 좋다고 한다. 리브 본인도 존경하는 대부라고 공공연히 밝힐 정도.
이후 다른 여친과 아들 셋을 얻었고 [2] 튜브스 멤버였던 미셸 그레이와 1998년 결혼했다.
뮤지션으로서의 내한공연은 없었지만 2016년 링고 스타의 내한공연에 백밴드 Ringo Starr & His All Starr Band의 일원으로 참가한다. 사실 토드 런그렌 & 스티브 루카서 feat. 링고 스타라 카더라
2 음반 목록
- Runt (1970)
- Runt. The Ballad of Todd Rundgren (1971)
- Something/Anything? (1972)
- A Wizard, a True Star (1973)
- Todd (1974)
- Initiation (1975)
- Faithful (1976)
- Hermit of Mink Hollow (1978)
- Healing (1981)
- The Ever Popular Tortured Artist Effect (1982)
- A Cappella (1985)
- Up Against It! Recorded 1988; released 1997 (Japan only)
- Nearly Human (1989)
- 2nd Wind (1991)
- No World Order (1993)
- The Individualist (1995)
- With a Twist... (1997)
- One Long Year (2000)
- Liars (2004)
- Arena (2008)
- Todd Rundgren's Johnson (2011)
- (re)Production (2011)
- State (2013)
- Global (2015)
- Runddans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