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심 고리키

gorky.jpg
Chekhov_Gorki.jpg
gorki1916.jpg
img2.jpg

1 개요

Макси́м Го́рький(1868~1936)

막심 고리키는 러시아 제국-소련의 대문호이다. 고리키는 필명이고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시코프(Алексей Максимович Пешков) 공산국가의 예술 이데올로기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조로 꼽히며 톨스토이-체호프 등이 활약했던 러시아 제국의 문학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장악한 소련 문학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빨갱이 작가로 낙인찍혔기 때문에 일제강점기부터 6월 항쟁까지 고리키의 서적은 금서였다. 특히 혁명운동을 묘사한 몇몇 작품들이 문제였는데, 정치에 아무것도 모르던 홀어머니가 혁명운동에 뛰어든 아들을 보고 혁명성을 각성한다는 내용의 '어머니'는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였다고 한다. 다만 검열의 눈을 어떻게 피했는지는 몰라도 일본어판을 중역한 듯 한 '유년시대'는 청소년 문고에 가끔 끼워지기도 했다. 이후 많은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2 생애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고 11세에 고아가 되었다. 원래 문제아였던지 12세부터 가출을 하기도 했고, 자살 소동도 일으켰으며, 5년간 떠돌이로 러시아 전역(...흠좀무)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은 자서전인 '유년시대'와 '세상속으로'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이렇게 별다른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여행으로 얻은 견문과 습작을 통해 필력을 얻은 고리키는 성인이 되자 신문 기자로 일하게 되었다. 신문 기자로서 그는 러시아 제국의 모순과 하류계급의 참혹한 생활상을 까발렸고, 틈틈히 소설도 쓰면서 명성을 얻어갔다.

이러면서 점점 당시 생존해 있던 대문호 안톤 체호프레프 톨스토이와도 안면을 트고, 혁명세력과 어울리게 되었고 특히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끌던 볼셰비키와도 밀접하게 교류하게 되었다.

1900년, 고리키와 톨스토이. 톨스토이도 거구였다던데, 고리키는 그를 훨씬 능가하고 있으니 얼마나 거구였는지를 알 수 있다. 러시아 아카데미 회원이지만 반체제 활동으로 인하여 영구제명당하기도 했다.그에 대하여 동조하던 선배작가 체호프는 제명을 반대하다가 그렇다면 나도 나간다며 스스로 아카데미를 탈퇴했다.

이런 가운데,고리키는 반체제-운동권작가로 찍혀 결국 여러번 체포되었고, 결국 이탈리아로 자의반 타의반 망명 생활을 하게 되었다. 망명지에서도 그는 계속 혁명 운동을 지원하였다. 1913년 로마노프 왕조 300주년 기념으로 사면령을 받자 러시아에 돌아왔다. 1917년 10월 혁명이 발생해 그의 동지들이 정권을 잡았으나, 곧 볼셰비키 정권의 언론탄압과 폭력성에 염증을 느끼고, 이들을 비판하는 논설을 썼다.[1] 1921년 자신의 친구인 시인 구밀레프가 체카(KGB, NKVD의 전신)에 반혁명죄로 처형당하자, 고리키는 이해 다시 폐결핵을 핑계로 다시 이탈리아로 망명을 떠났다.

이렇게 10여년간 이탈리아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파시스트인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자 이탈리아에 있는 것도 안전을 담보하기 힘들어졌다. 이때 이오시프 스탈린은 고리키에게 귀국해 줄 것을 요청했고, 생활의 어려움에 지친 고리키는 이를 수락하여 1931년 10년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다시 소련으로 귀국하였다.

소련에 귀국한 그는 스탈린 체제의 정당성으로 활용되어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1934년 세르게이 키로프 암살 사건으로 대숙청이 시작되면서 소련 사회에 암운이 드리우자, 고리키는 사실상의 가택연금상태에 접어들었다. 1936년 고리키는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에서 관은 스탈린과 몰로토프가 운구했다.


1931년, 스탈린과 고리키. 보통 체격인 강철의 대원수 동지조차 70대에 접어든 대문호에 비하면 왜소한 체구가 된다.

1938년 NKVD전 부장인 겐리흐 야고다가 고리키를 암살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되지만, 이것이 만들어진 죄목인지, 혹은 스탈린의 암살음모를 실행한 야고다가 죄를 뒤집어 썼는지는 불분명하다.

노동교화수용소를 순시한 뒤 그 장점만을 언급하고, 가혹한 강제 노동을 활용해 건설한 백해 운하를 찬미하는 등, 스탈린 체제에 협조하는 과오를 남기기도 하였다. 물론 고리키의 말년은 수틀리면 숙청당하는 시절이니 알아서 길 수밖에 없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어렵게 살던 고리키도 소련에 건너와 스탈린 체제에서 상당히 후대를 받은건 사실이다.

  1. 이 논설은 소련이 망할 때까지 러시아에선 묻히게 된다.

3 주요 작품

  • 유년시대
  • 세상속으로
  • 나의 대학
  • 어머니
  • 밑바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