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뮤지컬)

1 개요

구한말 명성황후 민씨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한 국내 창작 뮤지컬. 한국의 뮤지컬 에이전시인 에이콤 프로덕션에 의하여 1995년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되었으며, 이문열의 희곡 '여우사냥'이 원작이다. 한국 음악계의 거장인 김희갑 & 양인자 부부가 작곡 & 작사를 맡았다.

또한 당시는 한국 '뮤지컬계'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당연히 전문 뮤지컬 음악감독도 없었다. 해서 대학에서 첼로를, 대학원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연극계에서 일하고 있던 젊은 음악감독이 합류하게 된다. 그 젊은 음악감독은 이후 오페라의 유령, 렌트 등의 작품을 맡으며 국내에서 거의 최초로 전문 뮤지컬 음악감독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는 바로 박칼린.

초연 당시 한국에서는 뮤지컬이 활성화된 장르가 아니었음에도 에이콤에서 12억원 가량의 돈을 부어가며 만들었고 윤석화, 홍경인 등의 출연으로 꽤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연이은 재공연으로 나름 한국 뮤지컬의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입지를 가지게 되었다...만 2011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그리 재미있게 볼만한 뮤지컬은 아니다.(…) 초연 시기를 감안하도록 하자. 오페라 스타일의 음악과 명성황후를 미화하는 듯한 내용에서 호오가 갈리곤 한다.

2 해외 진출

해외 공연도 세 차례 이루어졌고 특히 영어권 뮤지컬계에서 최고만 취급한다는 런던 웨스트엔드뉴욕 브로드웨이에서도 열흘정도 공연했으나 지속적인 존재감과 인지도를 확보하진 못한 듯.[1] 한 인터넷 기고가는 “죽은 황후가 부활해 귀신들과 함께 합창하는 장면은 뜻밖의 결말이었다. 전체적으로 기억에 남는 선율이 없어 곧 잊힐 작품인데도 마지막에 브라보를 외치는 관객들의 모습이 놀라웠다”라고 평했다(...) # 뉴욕 타임즈의 호평 후에는 매진에 전원 노개런티(;;)에도 불구하고 5.4억원의 수익, 3억원이 안되는 후원, 25억원의 비용(;;)으로 그야말로 회마다 1.7억원(약 20만불)씩의 빚이 생기는 공연이었다고. #

여담으로 성우 소연은 뮤지컬 배우 시절 이 뮤지컬의 브로드웨이 공연에 조연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2]

3 비판

명성황후 민씨가 조선의 재정을 파탄내는 등 실책이 많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적을 미화하는 바람에 역사 전공자들로부터 명성황후 미화물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명성황후가 조선을 망하게 하고 결국엔 일본이 조선을 삼키게 되었다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시각이 있지만, 그녀는 친일이 아니었고, 그녀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도 옹호론과 비판론이 공존한다. 만약 친일 노선을 걸었다면 을미사변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뮤지컬이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많은 대중들이 명성황후가 마치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희생되었다는 잘못된 역사 상식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뮤지컬이 초연할 당시에는 인터넷 없이 PC통신으로만 통신을 할 수 있었던 시기라 크게 논란이 불거지지 않았고, 지금도 명성황후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즉, 명성황후 미화의 최대 원흉인 셈.

  1. 해외 공연시 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작품의 특성상 강렬한 애국주의가 부각되어 다른 나라에서 장기 공연 및 라이센스를 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많다. 그렇다고 또 그걸 커버할 만큼 뛰어난 작품성은 아닌지라..
  2. 출처 : 성우 소연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