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개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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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개조론 전문

1 개요

1922년 5월호 월간잡지 <개벽>에 이광수가 기고한 글이다. 분량은 잡지 기고글이니만큼 컴퓨터로 인쇄해서 읽어도 A4 35장 내외로 짧다. 잡지 기고글치고는 길긴 하지만. 문체도 쉬운 편이라 읽을 만 하다.

일제강점기 식민통치 제2기 '문화통치'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것 가운데 하나다. 자치론자들에게는 좋은 변명거리가 된 글이었으나, 아마도 일제강점기 당시 이만큼 가루가 되도록 까인 글 또한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국사 수준의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아무런 생각 없이 한번 쭉 읽었다간 그럴싸한데? 하고 낚이게 되는 글. 이광수의 글빨이 워낙 좋고 어물쩡 넘어가는 재주도 뛰어나서... 그러나 정신차리고 한 번 더 읽어 보면 궤변 혹은 자기변명/합리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내용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는 민족간의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며, 조선은 독립국가로 자치를 할 만큼 교육받고 계몽된 국민들이 많지 않고, 결론적으로 '이기적이고 나약한 겁쟁이'인 조선 민중은 엘리트 집단에 복종하고 봉사하면서 일본으로부터 자치권을 받아내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이 주장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안재홍, 이상재 등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홍명희, 허헌등 사회주의 계열 민족주의자들이 격노했으며, 이후 설립되는 신간회에서 기회주의자를 일체 배격한다는 강령이 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나 이광수는 1930년대 이후 변절의 길을 걷게 된다.

3 반응

이광수: 조선 민족을 개조하자!
조선 민족: "이광수"를 개조하자!!!

일부에서는 이게 안창호가 주창한 '민족개조론'과 유사하다는 논리를 펼치는데 전혀 다르다. 실제로 둘다 사용한 용어는 같지만, 두 사람이 말하는 내용은 완전히 상반된다.

안창호는 '총체적 구국 개혁 사상의 방략으로 여러가지 개조론'으로 주장해왔는데, 특히 '민족독립국가 수립'이라는 명백한 목표 하에, 근대적인 한국인 양성을 목표한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이광수가 주창한 '민족개조론'은 독립울 포기한 자치론자 입장에서 순수 인격 수양을 말한 것이었다. 이는 독립운동을 포기하고 일제 통치에 따르는 제국 신민 양성을 지향한 주장이다.

그리고, 안창호는 각성과 분발을 통해 자기 향상을 촉구함으로써 민족의 독립과 번영이라는 목표와 신념이 있었으나, 이광수는 불변적 요소와 가변적 요소로 나누어 민족을 해석함으로써 자기비하와 패배주의적인 주장을 하였다.

이부분에 대한 자세한 건여기#여기# 참조.

전문은 이곳링크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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