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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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박지철(朴志喆 / Ji-chul Park)
생년월일1975년 4월 13일
출신지부산광역시
학력동삼초-토성중-동래고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4년 롯데 자이언츠 연습생 입단
소속팀롯데 자이언츠(1994~ 2007 )
LG 트윈스(2009)

롯데 자이언츠의 암흑기를 대표하던 투수 중 1명.

1 프로 선수 시절

주형광과 입단 동기로 1994년에 입단했는데, 실제 입단할 때는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무도 불러 주는 구단이 없어서 입단 테스트를 거친 다음에야 연봉 600만원의 연습생으로 입단했던 철저한 무명 투수였다. 1994년은 롯데 주축 선수들의 상당수가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하며 홈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해 선수층이 많이 얇은 관계로, 성적보다는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해로 방향성을 잡은 해였다. 그로 인해 개막전 선발을 프로 입단 후 투수로 전업한 신인 강상수가 맡았고, 그제껏 거의 원포인트나 패전처리로만 기용되던 가득염이 그 시즌 풀타임 선발 투수로 활약했을 정도였다. 박지철도 그런 팀 사정 덕택에 개막전부터 1군 엔트리에 들 수 있었고, 실제로 개막전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하며 데뷔전을 치렀다. 주로 계투나 패전처리로 14경기 32 2/3 이닝을 던져 2.2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같이 입단했던 600만원의 연습생 멤버들 중 유일하게 정식 계약으로 살아남은 케이스.

1995년에 롯데는 위에서 언급한 방위병들이 대거 제대하여 돌아와 전력이 급상승한 덕택에 1995년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준우승을 기록했는데, 박지철은 이해 계투 겸 땜빵 선발로 활약하며 팀에서 없으면 아쉬운 레귤러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당시만 해도 초반부터 치고 나가는 팀이 아닌 포스트시즌 진출을 놓고 다투는 팀들은 잡을 경기는 확실히 잡고 버리는 경기는 버려버리는 전략이 대세였는데, 롯데에서는 이 버리는 경기의 선발 투수를 박지철이 전담해서 5~6이닝을 꾸역꾸역 버텨준 덕택에 버리는 경기가 해 볼만한 경기로 바뀌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으며, 실제로도 심심찮게 승리를 따내곤 했다. 시즌 성적은 5승 4패 3.9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1996년부터는 에이스 윤학길의 부상과 염종석의 시즌 아웃으로 인해 풀 타임 선발로 활약했다. 이 해 1승 9패 평균자책점 4.70의 안습한 성적을 남기며 밑천이 드러난게 아닌가라는 의심도 들었지만 1997년 특유의 낙차 큰 커브를 앞세워 14승 5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2.45로 롯데의 에이스로 대활약했다. 올스타전에서 당시 최고타자 이종범을 풀 카운트 끝에 폭포수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잡았던 장면이 그야말로 백미. 이 때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시즌이 한창일 때 김현욱과 박지철은 다승왕을 비롯한 여러 타이틀 경쟁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박지철이 농담조로 '너무 열내지 말고 사이좋게 타이틀 나눠먹자'라고 했는데, 그 말이 있고나서 갑자기 김현욱이 포풍처럼 승을 쓸어담아 버렸다.(...)

1997년의 대활약을 밑바탕으로 자신감을 얻었지만, 그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은 오른쪽 어깨 부상. 이 심각한 오른쪽 어깨 부상 때문에 1998년 2승 11패 방어율 7.73의 극도의 부진을 보였고, 어깨 수술로 1999년 시즌을 통으로 날렸다. 때문에 전설의 1999년 플레이오프 때도 불참.[1]

2000년 복귀해서는 6승 9패 방어율 4.60을 기록했다. 2001년에는 다승왕 손민한을 받치면서 13승 7패 4.03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선전했으나, 야구 팬이면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롯데의 암흑기인 8888577이 시작된 때라 결국 가을 야구는 못 했다. 그리고 은퇴할 때까지 가을야구는 더 이상 못 했다.

박지철은 이 시기 손민한과 함께 롯데 선발진의 축으로 고군분투하지만 2004년 이후 어깨 부상이 재발하여 많은 이닝을 던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2006년 롱 릴리프로 꽤 좋은 모습을 보여줘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를 높였으나, 2007년 갑작스런 구위 저하로 거의 2군에만 머물다가 시즌 끝나고 롯데에서 방출되었다. 방출 당시 나이가 고작 32세밖에 안 된 것으로 미뤄 짐작컨대 더 이상 재기하기 힘들다고 구단 측에서 판단한 듯.

1년 휴식 후 2009시즌을 앞두고 LG 트윈스에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입단했는데, 노쇠화의 여파로 2군에만 머물렀다. 8월 23일 사직 롯데전에 시즌 첫 선발로 등판했는데, 원래 이 날 경기는 서승화가 예고되어 있었다. 그러나 서승화가 2군에서 작뱅을 폭행한 사건이 드러나 잔여 시즌 출장금지 처분이 내려지면서 서승화 대신 선발로 나서게 된 것이다. 2009년 단 3경기에만 등판하여 2패만 기록했으며, 시즌 종료 후 다시 방출되어 현역에서 은퇴했다.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의 기준으로도, 꽤나 준수한 외모를 가진 선수였다. 얼굴 보고 좋아하는 여성 롯빠도 많았다.

2 지도자 시절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2010년 새로 창단된 부산 신정중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하여 후진양성에 힘 쓰고 있다.

3 연도별 주요 성적

  • 투수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이닝평균자책세이브홀드피안타피홈런사사구탈삼진
1994롯데 자이언츠1432⅔2.2001102832118
19952877⅓3.9654007374636
19962699⅔4.7019209885753
199740157⅔
(7위)
2.45
(3위)
14
(3위)
57
(9위)
011886796
19983680⅓7.7321120114125463
200029109⅔4.6069019994487
200134156⅓4.0313
(7위)
7121631364104
2002224⅔5.11120010741020
200328129⅔3.898700128166678
200427139⅔3.87
(8위)
970013196694
200513496.0615005893239
20061848⅓2.9801004303223
200767⅓6.1401009065
연도소속팀경기이닝평균자책세이브홀드피안타피홈런사사구탈삼진
2009LG 트윈스35⅓13.50020011263
KBO 통산
(14시즌)
3071117⅔4.2261721331098100573719
  1. 그렇긴 한데, 2013년 6월 26일 사직 NC전에 있었던 1999년 레전드(펠릭스 호세, 박정태, 주형광, 마해영 등)들이 구단의 초청을 받은 행사에 초대되어 참석하기도 했다. 예우 차원에서 초청을 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