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서승화(徐承和 / Seung-hwa Seo) |
생년월일 | 1979년 7월 13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대전광역시 |
출신학교 | 대전유천초[1] - 한밭중 - 대전고 - 동국대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98년 LG 트윈스 2차 3순위 지명 |
소속팀 | LG 트윈스 (2002~2011) |
종교 | 불교 |
입단 당시 구단의 큰 기대, 끊임없는 설화, 더딘 성장, 막장스러운 인성, 부진한 성적 등등, LG 트윈스의 암흑기를 상징하는 선수였다.
1 소개
지옥에 가서라도 구해 오라는 좌완 강속구 투수. 그래서 진짜 지옥에 가서 구해온 좌완 강속구 투수 대전고등학교 시절부터 빠른 공을 던져 많은 야구 관계자들의 주목을 끌었으며, 메이저리그 구단과 입단 협상을 벌였을 정도로 좋은 재목으로 여겨졌다. 1998년 LG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서승화는 동국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대학 졸업 후 LG는 5억 원의 계약금과 함께 그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2] 그러나 이것은 서승화 입장에서 봤을 때나 5억 원이지, 구단의 입장에선 실질적으로 10억(메이저리그 계약 파기금 +5억 원)을 들여 데리고 온 것이었다. 이는 동국대학교 시절 이중계약 파동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LG는 비공식적으로 KIA 타이거즈의 한기주의 10억 계약금 신화를 자신들이 먼저 시전한 것이다.
LG 트윈스의 전설적인 좌완투수였던 이상훈의 백넘버 47번을 물려받은 것을 보면 LG가 이 선수에게 얼마나 기대했는지 알 수 있다. 다만, 프로 생활 내내 22번을 달다가 은퇴하기 전인 2010~2011 시즌에 달았다는 게 함정.[3]
구속에 비해 제구력이 좋지 않은 것이 흠이라, 당시 좌완투수 덕후 김성근 감독이 집중 조련한 끝에 어느 정도 쓸 만한 단계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정작 김성근 감독은 거의 다 키워 놓으니까 2002 시즌 후 팀에서 쫓아냈지만.
문제점은 이뿐만 아니라 체력도 약해 50구만 던지면 그 이후의 공은 비실비실 들어와서 동네북이 된다는 점이었다. 즉, 구위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
큰 기대를 받고 입단한 서승화가 성장하지 못했던 것이 LG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뼈아팠으며, LG가 2000년대 들어서 부진한 큰 원인 중 하나였다.
그리고 2003년 국민타자 이승엽과 벤치클리어 도중 난투극을 벌이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나쁜쪽으로 당시 평균자책점 5점대 패전조로 거의 등판하던 서승화를 많은사람들이 알게됬다. 그리고 꼬리표처럼 빈볼러라는 이름이 따라다니게됬다.그리고 후배정찬헌이 물려받았다.
팬들 입장에서는 10억씩 주고 데려온 유망주가 성장하지 못하고 등판할 때마다 불을 지르는 데다가 사건사고를 터뜨리니 답답할 지경.
결국 2007~2008 시즌은 공익 복무를 위해 자리를 비우고 2009년에 복귀했다. 그러나 방화로 인한 2패+이병규를 폭행한 사실이 드러나 징계를 먹고 시즌을 마감했다. 서승화는 물론이고 이승우, 노진용, 이형종, 이범준으로 보았을 때 LG 2군 투수들의 멘탈은 문제가 많아 보인다.
2010년 들어 LG는 터지지 않는 유망주인 서승화를 선발로 육성하려고 많은 기회를 주었다. 2010년 4월 1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전에서 5이닝 1실점 무자책점 2피안타로 호투하며 가능성을 높였다. 영점이 덜 잡혔다고 판단한 박종훈 감독에 의해 다시 2군으로 내려갔지만, 이미 심수창의 빈 자리를 메울 4선발감으로 확정된 김광삼을 제외한 5선발군 가운데 이범준과 함께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였다. 사고만 안 치면
2010년 5월 16일 데뷔 후 첫 선발승을 거두었다. 8년 만에 첫 선발승이라니...
그리고 2010년 9월 16일 서승화는 김태군과 같이 1군에 콜업됐고 9월 21일 삼성전에서 선발로 등판하였다. 그런데 무려 143구를 던지고 6실점(6자책)으로 완투패를 당했다. 그런데 서승화가 6실점하는 동안 불펜에서 단 한 명의 투수도 몸을 풀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박종훈 감독이 이날 서승화에게 벌투를 시킨 것으로 보였고, 실제로 박종훈 감독은 인터뷰에서 투구 밸런스를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완투시켰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2011 시즌 박종훈 감독의 투수진 구성 계획을 보면 선발 투수 후보 명단에 서승화는 없었다.
2011년 4월 28일을 기준으로 좌완 중간계투가 이상열뿐이라 좌완 중간계투가 필요할 텐데도 서승화는 여전히 콜업이 안 되었다.
2011년 8월에서야 2군 경기에 등판하였다. 부상은 아니었고 언급하기 힘든 사정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1년 8월 이후로 박종훈 감독의 연이은 삽질과 무능, 그리고 안 좋은 얘기들 때문에 서승화, 이형종, 이범준, 이승우의 반발과 항명이 이해가 간다는 동정론도 늘었다. 이들의 반발 원인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기에[4] 재평가받는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서승화가 이제까지 저질러 온 잘못된 처신을 변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해 결국 서승화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2011년 11월 구단에서 방출이 확정되었다. 이 때 자신의 싸이 미니홈피에다가 자살 암시글을 써 올렸다고 물의를 빚었다. 그리고 이미 자신이 구단에 스스로 방출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렇게 죽을 만큼 아파서 무엇을 얻었냐고 수없이 물었다"라는 글이 써진 사진과 함께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모든 일과 삶은 그만 내려놓겠습니다. 이제서야 떠나게 되었네요. 모든분들께 죄송합니다"
10시즌 간 거둔 통산 성적은 2승 23패 1세이브 17홀드 평균자책점 6.25. LG는 1승당 5억 원을 쓴 셈이다.
현역 생활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지 않았고 미국 진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지만, 2012년 2월 27일 사기 혐의로 피소됐다고 하였다.
2 은퇴 후
2014년 1월에 신윤호의 야구왕국에서 사회인 야구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3 사건사고
- KBO 제일의 빈볼러로 '빈볼승화'라는 이름을 얻었다. 큰 키(195cm)에 좌완 파이어볼러로서 '랜디승화'라는 별명도 있지만 빈볼러로서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야갤에서 한때를 풍미한 꾸준글로 '대세는 랜디서', '랜디가면'이 있다. 랜디 존슨의 사진에 얼굴만 합성한 사진이 첨부. 영화 '반달가면' 포스터에 덧붙인 확장형 짤도 있었다.
- 2003년 이승엽과 난투극을 벌여 징계를 받은 일이 있는데, 이 사건으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당시 양 팀간의 분위기가 험악한 상황에서 삼성 투수 라형진이 LG 타자 장재중에게 빈볼을 던지자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졌고, 이미 그 전 타석에서 서승화가 던진 빈볼로 감정이 좋지 않았던 이승엽이 서승화와 맞닥뜨리자 서로 주먹다짐을 해서 두 명 다 동시 퇴장당했던 사건. 이후 두고두고 빈볼러로 불리며 까이는 계기가 되었다.
후일담도 있는데, 그 해 9월 55홈런을 기록하며 아시아 신기록을 눈앞에 둔 이승엽과 대결하던 중,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어필을 하고 110km/h짜리 아리랑볼을 던지는 황당한 투구를 했다는 것. 당연히 이승엽은 그런 공 따위는 치지 않겠다고 3개를 전부 다 흘려 보냈다. 그리고 경기 후 서승화는 모든 언론의 주목을 받는 트러블 메이커로 등극했다. 물론 단순한 스트라이크 존과 당시 분위기에 대한 항의인지, 상대 타자가 이승엽이라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 2004 시즌 빈볼로 인한 퇴장이 4차례, 결정적으로 2004년 6월 2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LG 원정/두산 홈)에서 1~2루 사이에서 런다운에 걸린 윤재국에게 다리를 걸어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입혀 윤재국을 시즌 아웃시켜 버릴 정도로 중상을 입혔다. 이후 윤재국은 2004년 가을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프로야구 병역비리 파문까지 연루되어 군대에 끌려갔다가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한화, SK를 거쳐 2009년에 선수 생활을 접게 되었다. 이 정도만 해도 만년 패륜급.
- 2009 시즌 사회복무요원 소집해제 이후 복귀하면서 꽤나 희망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2009년 8월 23일, 2군에서 후배 타자인 작뱅의 이마를 배트로 밀어 상처를 낸 사실이 드러나 징계를 받은 후 1군 2패만 기록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이 사건으로 선발로 예고된 서승화 대신 박지철이 급히 콜업되어 선발 투수로 등판하는 해프닝이 빚어졌다.(그것도 박지철의 친정인 롯데를 상대로.....) 물론 박지철은 털렸고, 얼마 못 가 2군으로 내려가서 시즌 끝나자마자 방출되었다.
- 그리고 얼마 뒤 관련 기사가 나왔다. 본인은 홧김에 저지른 것이라고 했다.
4 기타
- 이광환의 특유의 쇼맨십 때문에 2003년에는 타자로도 몇 번 나온 적이 있다. 시절이 시절이었던 데다 그렇잖아도 눈매가 강하고 데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여서 더 위험해 보였다.
- 아래로 남동생, 여동생 1명씩 있다. 여동생인 서승오도 야구를 하고 있다. 원래 농구선수 출신이었으나 2010년경 여자 야구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월한 기럭지 유전자 그리고 박노준과 박찬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트라이아웃'에 출연하였다. 2015년 여자야구 국가대표로 뛰었다.
- ↑ 대전 서구 도마동에 있는 초등학교로, 초등학교 내 야구부가 꽤 유명하며, 운동장 전체가 야구부를 위해 존재한다 할 정도로 펜스가 넓다.
- ↑ 당시는 지명 후 선수가 대학교에 진학해도 졸업 이후까지 구단의 지명권은 유효하였다. 2004년 드래프트부터는 지명받고 2년 후 소멸한다.
- ↑ 2015년 12월 이상훈이 코치로 LG에 복귀했을 때 우스갯소리로 "팀에서 47번을 주셨다. 은퇴를 하고 LG 선수들이 47번을 다는 것을 보고 '왜 저 번호를 선택하지' 하고 의아했다. 저주받은 번호가 아닌가. 서승화와 조윤준 모두 안 좋지 않았나. 봉중근 역시 욕을 많이 먹었다. 내가 달면 저주가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 선발 한 번 던지면 하염없이 2군에 쳐박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