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보

朴泰輔
1654 ~ 1689

조선왕조 숙종 재위 당시의 문신. 본관은 반남이며 호는 정재.

숙종 1년 사마시를 거쳐서 관직에 등용되었으며 예조좌랑을 지냈고 한때 과거시험 출제위원으로 있을 때 시제를 잘못냈다는 남인들의 탄핵으로 쫓겨나 평안도 선천으로 귀양하였다가 풀려났고 이후 교리, 이조좌랑, 전라지방 암행어사를 지냈다.

1689년 인현왕후가 폐서인 되었을 때 이에 부당함을 반대하여 숙종으로부터 추국을 받게 되었고 전라도 진도로 귀양을 가던 중 한강 이남 노량진 사육신묘 앞을 지날 때 고문으로 인한 장독으로 그 곳에서 죽었다.

후에 숙종이 희빈 장씨를 폐서인화한 후 지난 과오를 깨닫게 되어서 문열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그가 죽었던 노량진(지금의 노들역 근처 래미안트윈파크 자리)에 그를 배향하는 서원인 노강서원이 세워졌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소실되었다가 1960년대 그의 아버지 서가 박세당 고택이 있는 경기도 의정부시 수락산 아래로 옮겨져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