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묘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 위치한 묘역 및 그 일대에 조성된 시립공원을 가리킨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8호로 지정.

주변이 공원화되었기 때문에 '사육신공원' 이라고도 불리며 조선 단종 대의 관료이자 복위운동을 계획하다 사형된 충신인 성삼문, 유응부,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등 6인의 묘소 및 가묘(假墓)가 있으며 후에 추가로 김문기의 가묘가 추가되어 현재는 모두 7개 묘역이 있지만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어 사칠신묘가 된다든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왕좌에 올랐지만 숙부인 세조에게 강제로 양위한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김질의 밀고로 실패하여 1456년 6월, 용산구 새남터에서 거열형에 처해진 사육신의 시신(박팽년은 옥사 후 육시)을 매월당 김시습이 어두운 새벽을 이용해 한강을 건너서 지금의 노량진에 이들의 시신을 안장시킨 것이 시초였다[1][2]. 후에 1681년 숙종 임금 때 '민절서원' 이 세워졌고 정조 때에 와서 신도비를 세웠으며 1978년 서울특별시 당국이 묘역을 확장하였고 후에 사육신의 업적과 충성심 등을 전시해 놓은 사육신기념관이 설립될 예정이다.

사육신공원은 언덕 형태로 되어있는 꽤 큰 공원이다. 도로건너 맞은편 높은 건물에서 공원을 보면 운동기구, 벤치 등 다양한 시설들이 보이는데 이게 다가 아니다. 공원 정상(?)에는 기념관이 있는데 평일에는 자습실로 개방하기도 한다. 노량진에서 높은축에 속하다보니 정상에서는 한강의 내려다 보인다. 전망대 비스무리하게 설치해놨으니 이젠 관람하기도 좋다. 길이 여러 갈래니 잘 찾아가보자. 그냥 앞에 커플이 있으면 따라가면 된다

  • 사육신(死六臣)에 관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참고로 숙종때 문신인 박태보가 귀양을 가던중에 고문으로인해 사육신묘 앞에서 죽었다고한다
  1. 일설로는 김시습이라고도 하지만 승려 출신이라는 성삼문의 사위가 안장했다는 일설도 있다.
  2. 당시에는 시신 4구만 안장했다. 나머지는 1977년에 가묘로 처리했는데 이 때부터 원안상 6구가 아닌 7구로 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