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악

潘岳
(247 ~ 300)

서진의 인물. 자는 안인(安仁). 양조의 사위.

이름인 반악보다 자의 앞글자를 따서 반안(潘安)으로 훨씬 더 잘 알려져있으며[1] 전국시대의 초나라의 송옥(宋玉)과 함께 미남의 대명사로 자주 함께 불린다. 주인공이 송옥, 반안과 같은 미남이라고 불리는 장면은 무협의 클리세다.

형양 사람으로 일찍부터 재능이 뛰어나 이름이 알려졌고 문장을 짓는 것에 뛰어나 맑고 고운 풍격은 채옹도 뛰어넘을 수 없는 정도라고 했으며, 조카 반니와 함께 문장으로 뛰어나 양반(兩潘)이라 불렸다.

반악은 낭야태수의 아들이었는데, 손수가 하급 관리로 일했고 반악은 손수를 여러 번 발로 차면서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아 손수의 원한을 샀다. 처음에는 가충의 서기관을 지냈고 278년에 태위연을 지냈는데, 호분중랑장을 겸임해 산기성에서 지내면서 추흥부를 지었고 291년에 가밀과 곽창의 권세가 대단할 때 가밀의 친구인 24우 중의 한 사람이었다.

벼슬이 황문시랑까지 이르렀지만 300년에 팔왕의 난에서 손수의 모함을 받아 체포되어 살해당했으며, 이전에 어머니로부터 분수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경계시켰고 이를 듣지 않다가 체포당하자 어머니에게 가르침을 저버렸다고 했다.

그의 문장은 언어를 잘 선택하고 구절이 간결해 문장의 맑고 고움을 따를 자가 없을 정도였다고 하며, 동진 때 손작은 반악의 문장에 대해 얕지만 깨끗하다고 평가했다.

그의 용모가 매우 수려하고 풍채가 단아하면서 온화했다고 하며, 기록에 따라서는 젊을 때 탄궁을 옆에 끼고 낙양 거리로 나가면 그를 만난 여자들이 모두 손을 맞잡고 함께 그를 에워쌌다거나 외출할 때마다 할머니들까지 과일을 그에게 던져 수레에 가득찼다고 한다. 여기서 생겨난 성어가 척과영거(擲果盈車).[2] 수려한 용모로 인해 하후담과 함께 딸린 옥이라 불렸다.
  1. 반안이라고 부르는 건 틀렸고 반악이 맞다고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중국에서도 반안으로 훨씬 더 알려져있다. 중국의 옛 글을 봐도 반안이라고 나오는 경우가 훨씬 많으며 항우, 오자서처럼 이름대신 자로 더 알려지는 경우는 제법 된다. 반안처럼 자의 앞글자만 따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천 년 넘게 이명으로 더 알려진 이름을 틀렸다고 주장하는 건 좀 문제가 있다. 실제로 반악이라고 하면 반안을 말하는 것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2. 여성들이 마음에 드는 젊은 남성에게 과일을 던지는 풍습이 당대에 있었던 것 같은데 시경에 보면 마음에 드는 남성에게 과일을 준다는 구절이 있어 그 문화의 잔재일지도 모른다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