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평안남도 영변군 근산면 화현동의 가난한 농사꾼으로 동학교도였던 전정운[1](1868~1919)이 세운 사교집단. 백백교의 전신. 백도어와는 상관없다
전정운은 농사를 짓다가 동학을 믿으면서 이걸 빌미로 사기를 저질렀다. 결국 동학농민운동 당시, 일부 모리배들의 동학사기를 사형으로 응징하던 전봉준도 알게되어 손수 베어버린다고 분노하자, 이를 피하여 금강산에 들어가 잠적했다. 금강산에서 3년동안 도를 닦아 천지신령의 도를 터득하였다고 주장하며 함경남도 문천군 마양동에 백도교를 창설했다.
전정운은 1904년 6월에 천재지변이 일어나 전 인류가 멸망하지만 백도교를 믿으면 동해바다에 새로 생길 신선의 땅으로 피난하여 불로장생하게 된다면서 허황하기 그지 없는 온갖 말들로 신도를 끌어 모았다.
전정운은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60명이 넘는 첩을 거느리고 호사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51세의 나이에 본거지를 새로 옮긴 가평군 화악산 기슭에서 병사하였다. 그동안 첩 4명을 생매장하고, 장인이자 수제자인 우광현 등과 함께 신도 최인상 최인혁 형제 가족 8명을 살해하는 등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전정운의 둘째 아들 전용해가 교단을 이어받아서 새로 이름을 정하니 바로 백백교. 백도교 자체도 매우 막장이지만 역시 그 정신을 이어받은 백백교가 참된 막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