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백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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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0~30년대 일제강점기에 존재한 사이비 종교 집단이다. 교주의 지시에 따라 300여건이 넘는 살인사건이 자행되었다. 옴진리교의 조상

2 전말

2.1 백백교의 탄생

그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면 동학에서 파생된 종교이며, 전신은 백도교이다. 정확히 말하면 백도교의 교주인 전정운[1]이 죽고 나서 교주 자리를 놓고 세 아들 간의 다툼이 일어났다. 그리고 세 아들은 각각 인천교, 백백교, 도화교를 만들어 독립한다. 그러다가 1930년, 죽은 전정운이 자신의 첩 4명을 살인하고 암매장한 것을 비롯한 여러 범죄행각이 드러나면서, 이들 사이비 종교들은 한 차례 철저하게 박살난다.

그러던 것을 무사히 도망쳤던 차남 전용해가 비밀리에 백백교를 재건한다.

백백교에서는 성별에 따라 외우는 주문이 달랐는데, 남자가 외우는 주문은 아래와 같다.

백백백의의의적적적감응감감응하시옵숭성(白白白衣衣衣赤赤赤感應感感應하시옵崇誠)

이런 정신병자나 할만한 충격과 공포백괴스러운주문만 외우면 무병장수한다고 한다. [2]데스 나이트? 글글씨씨가가 두두개개써써져져요요 여자가 외우는 주문은 그래도 평범한(?) 것이라 세간에는 덜 알려졌다.


종말의 날에 서양은 불, 동양은 물의 심판을 받아 인류가 멸망한다는 종말론을 내세웠다. 그리고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백백교가 마련한 본소에서 생활하다가 물의 심판 날에 금강산의 피수궁(避水宮)으로 옮겨가면, 대원님(백백교 교주)이 불로장생하고자 하는 자는 동해 천리 밖의 신대륙(…) 영주로 보내주고, 부귀영화를 원하는 자는 계룡산으로 인도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교리를 설파했다. 그러나 시대가 혼란한 탓인지 그 교세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백백교는 홍보를 위해 폐광이 된 금광에 금을 숨긴 다음에 전용해의 힘으로 금광이 다시 터졌다는 식으로 사람을 모았다. 금광 드립은 홍경래의 난 당시에도 나왔던 고전적 수법. 이는 조선시대 후기 각종 예언서들이 횡행할 때 유행한 주장 중 하나인 해도진인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백백교의 중심 교리는 '한 사람(교주)의 흰 것으로 천하를 희게하자(一之白將欲白之於 天下地)'는 것으로, 이는 유불선 3교가 모두 성쇠를 거듭하며 3천년을 흐르는 동안 그 본질이 쇠퇴하고 거죽만 남았다며, 이제 '백백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가까운 장래에 조선이 독립하여 백백교의 통치를 받게 된다는 흠좀무한 주장까지 했다.

2.2 범죄행각

교주 전용해는 학식이 없는 무지한 인간이었지만,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마음을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 자칭하며, 말 그대로 혹세무민했다. 불로장생과 부귀영화를 미끼로 신도들에게 과도한 헌금을 요구하는 등 사기행각을 벌였다. 또한 총참모격인 이경득과 문봉조 등 간부들을 각지로 보내 예쁜 딸을 가진 부모들을 골라서 백백교에 입교시킨 뒤 그 딸을 전용해의 시녀로 바치게 하여 성폭행했다. 전용해는 이렇게 끌어들인 젊은 여성들을 항상 첩으로 거느리다가 살해하는 것을 능사로 삼았다.

더군다나 교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도 함께 살해했다. 나중에는 너무 많이 몰려서 먹여 살리기 힘들다고 죽이기도 하였고, 경찰에게 들킬까봐 죽이기도 했다.

한 사람을 제외하곤 모든 신도가 학교의 문턱을 밟아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들 교주인 전용해의 속임수에 넘어가, 그를 '신의 아들'로 믿고 그의 말에 철저하게 복종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따라 살인을 저질렀다. 또한 가족 신도들을 지역별 지부에 흩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에, 자신이 도망치면 다른 가족들이 죽임을 당할까봐 복종하는 경우도 있었다.

2.3 결말

백백교의 범죄사건은 '사소한' 일로 희대의 사교 교주의 죄상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조부와 부친이 백백교에 빠져 여동생을 교주에게 첩으로 바치고 전재산을 빼앗긴 유곤룡이란 청년이 교주 면담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흑막이 폭로되었다. 이에 대해 자세히 적힌 신동아 기사.

경찰은 8개월에 걸쳐 전용해의 아지트와 전국 각처의 백백교 비밀장소에서 346구의 시체를 발굴했다. 전용해는 몇달 후 솔밭에서 동쪽을 향해 누운 채 칼로 목을 찌른 사체로 발견되었으나, 얼굴쪽을 산짐승이 먹어치운 탓에 그게 정말 전용해인가 논란이 있었다.

세간에는 신출귀몰한 전용해가 자신과 체격이 비슷한 사람을 잡아다가 자기의 옷을 입히고 자살한 것처럼 위장하고 도망쳤을 것이란 추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전용해의 자식이 직접 보고 아버지라고 울부짖었다는 기록이 있어 자살한 것으로 판정.

1937년에 사건이 드러나면서 일본은 당황했는데, 사람을 하나둘 죽인게 아닌 게 차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영어권 기사로도 보도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다. 당시 잡힌 사람만 해도 100여 명이 넘은데다가 확인된 살인만 해도 300여건이 넘는 지라, 수사와 예심을 준비하는데만 3년이 걸려 1940년에 첫 공판이 열렸다. [3]

재개된 공판에는 무수히 많은 방청객들이 몰려들었고, 연일 언론에서 백백교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당시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살인 행각보다는 교주 전용해의 무수히 많았던 첩들과 음란한 행위와 관련된 가십기사가 대부분이었다. 하긴 첩이 60여 명이었으니...) 1941년 1월에 마무리된 백백교사건의 선고 공판은 혼자서 170명을 죽인 김서진, 167명을 죽인 이경득, 127명을 죽인 문봉조 등 간부급 살인마들에게 사형이 선고되고 나머지 십수명에게는 징역형이 선고되면서 희대의 살인마 사교 사건은 막을 내렸다.

그 이후 한국 사이비 종교사에서 가장 손꼽히는 사건이 되었다. 사이비 종교 관련 사건이 나오면 매우 자주 백백교가 언급되며 다시 조명받는다.

2.4 전용해의 두개골 보관 관련 이슈

2004년 SBS TV 프로그램인 백만불 미스터리의 42회 '국과수 X파일-일제시대 사이비종교 백백교의 비밀'을 통하여 처음으로 알려졌다.[4] 일제가 범죄형 두개골에 대한 연구 목적으로[5] 교주인 전용해의 두개골이 범죄형 두개골 표본으로 만들었으며, 아직까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2010년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인 혜문스님이 인체표본 보관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한 차례 이슈가 되었다.[6]

이와 관련해서 국과수에서는 이 두상이 전용해의 것이 맞는지, 왜 이 두상이 보관되고 있는지 자세한 이유를 모르며 단지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조만간 적법한 절차를 거쳐 처리하겠다고 공언하였다. 2011년 10월, 폐기 예정임을 발표.# 2011년 10월 25일, 두개골 표본은 화장되었고, 이틀 후 봉선사에서 위령제도 지내줌으로 마무리되었다.#

전용해가 희대의 용안이었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당시 사람들에 의하면 그저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신용이 생기고 '이 사람을 따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할 정도였다고. DIO? 저 얼굴이 왕의 상이란 말인가 [7]

2.5 백백교의 잔존세력?

백백교 관련해서 당시 처형되지 않은 간부가 일제가 패망하고 6.25전쟁을 거치면서 유야무야 물려나게 되고, 백백교를 재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사람들에게 살인종교로 몰려 별다른 성장을 하지 못했고 이 자가 1978년에 죽으면서 흐지부지되었지만, 잔존세력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백만불 미스터리 에서 백백교 관련 내용을 방송한 후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시신을 돌려달라는 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워낙에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사건이었고, 교주가 죽은 데다가 관련 간부들 대부분이 사형당한 터라, 재건되었을리 만무하다. 설사 재건되었더라도 동일한 이름을 내세울리 없다.[8]

한편 2010년의 전용해 두개골 보관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과 관련하여 '백백교의 신도들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교주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사실 무근이다.

하지만 백백교가 망한 뒤에도 백백교 같은 짓거리를 하는 사이비종교는 성행했다. 6.25전쟁 이후 혼란한 상황에서 불길처럼 번져나갔고, 여러 사회문제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2년의 용화교 [9][10]와 1974년 동방교 [11] 등등... 지금도 이런 종교가 존재한다. 사이비 종교의 관련 항목 참고.

3 기타

2006년에 출간된 전봉관 교수의 『경성기담』 중 '살인마교 백백교 사건' 파트를 보면 당시 살인용의자의 재판내용 등이 나와 있다. 밤에 혼자 읽으면 희생자들과 같이 읽는 듯한 느낌이 드니 주의하길 바란다.

2008년 유선채널 코미디TV에서 방영한 고스트 스팟 시즌2 19화에 백백교 관련 내용을 방영했다. 살해당한 신도들의 영혼이 아직까지도 전용해에게 잡혀있는데, 살해당했는데도 원혼이 아닌 깨끗한 영혼이며 그 상태에서 교주를 여전히 따르고 있다고 (한마디로, 자신들이 죽은지도 모르는 순수한 영혼인 상태) 해서 접신도, 천도도 함부로 못 한다고 나온다고. 전용해의 혼 자체도 힘이 굉장히 강한 편이라서, 없애려면 국내 안의 용하다는 큰 무당이 여럿 모여야 한다고 한다. 거기서 처녀보살이 전용해와 접신을 하였는데, 제작진들을 무섭게 노려보며 모두를 죽일거라고 말했다. 이후 접신을 풀자 처녀보살이 벌벌 떨며 성격이 완전 사이코라며 무서운 귀신이라 말했다. 다만 고스트 스팟은 여러 무서운 장소나 폐가, 흉가 등등 무속인들과 탐사하여 이 장소의 사연을 알려주는 일종의 공포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일뿐..비슷한 종류의 프로에서는 국내 유명한 퇴마사인 김세환 법사가 찾아와 전용해와 접신을 하였는데, 놀랍게도 순간 김세환 법사의 얼굴에 살기가 띄며 백백교의 주문인 백백백의의의적적적.....으로 시작하는 주문을 말하고 PD가 놀라 백백교가 부활할것이라고 믿느냐라고 묻자, 백백교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실제로 전용해가 말하던 주문과 말이었다. 이후 접신을 풀자 김세환 법사는 전용해는 '사람이 아니라 마귀'라고 말하고 마귀가 사람을 가장한것이라 말한다. 전용해는 자살한게 아니라 이승에서 자신의 할 일을 다 하자 스스로 물러난것이라고도 말한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의 석룡산 부근에 백백교터가 있다. 전용해가 이곳에서 처음 백백교를 세웠으며, 접근하기도 어려운 곳이라 지금은 딱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백백교 잔당이 머문 奧地 겨울의 끝자락도 좋은 산 [12]

한편 백백교 사건은 사실 일제의 소행이다부터 일제가 방조했다는 이야기가 블로그에 나오는데 이거야 말로 "일본을 공격한다" 수준. 아무리 일제가 밉고, 그 역사를 잊고 싶다 하더라도, 백백교는 명백한 살인 사이비종교이며, 그 증거들이 너무나 명백한데다, 민족, 문화, 종교를 초월해서 이런 혹세무민하며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사이비 종교를 용인하는 통치 세력은 없다. [13] 한편 백백교 간부들이 지역 일본 경찰에게 뇌물 좀 먹였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미 백백교는 한 차례 전례가 있었기에 소멸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고, 이것 때문에 한 지역에 신도가 늘어나자 경찰에게 안 들킬려고 늘어난 신도를 살해한 전례도 있어서 그렇게 신빙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유병언의 시신이 발견된 후, 백백교 교주 전용해가 잠깐 이슈가 된 적 있었다. 시신 발견 경위의 유사성 때문에 닮은 꼴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3.1 미디어화

당시에는 물론이고, 오늘날 기준에도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기에 영화와 소설화되기도 했다.

이 사건을 처음으로 다룬 작품은 구보 박태원의 장편소설 『금은탑』이다. 1938~39년 조선일보에 이라는 『우맹』으로 연재되었으며, 단행본은 1949년,『금은탑』으로 출간되었다.[14] 백백교의 재산갈취, 여신도 농락, 살인 행각과 한 청년에 의해서 무너지는 과정을 세세히 그렸다.

1980년대말 소설 『백백교』라는 불쏘시개 소설이 출간되었으나 극단의 19금 묘사로 서사성이 부족하다. 행여라도 헌책방에서 찾으면 멀리 피하자

2014년 도진기의 추리소설 『유다의 별』도 백백교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은 교주 전용해의 죽음에 대한 의혹과 관련하여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있다.

백백교 사건의 영화화는 두 차례 이루어졌다. 1960년작은 그냥 계몽성 극화 수준이고 허준호 아버지 허장강이 전용해로 나온다. 1992년작은 이대근 주연[15]이고 나름 제대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신흥종교문제 연구소장이었던 고 탁명환의 자료 제공 및 자문을 통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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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한혜연의 미스터리 오컬트 만화 『애총』 속 배경 도시인 Y시가 백백교 사건이 벌어졌던 곳으로 설정되어 있다. 또한 프롤로그에서 백백교 사건이 나온다.
  1. 녹두장군 전봉준의 친척이다. 동학의 이름으로 혹세무민을 하다가 전봉준에게 쫒겨난 전력이 있다.
  2. 이런 종류의 '주문 수행'은 동학 등 구한 말~일제시대의 신흥 종교들 사이에선 흔했다.대개 무속이나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3. 이와 관련해서 일제가 의도적으로 수사를 중지하고 조금 잠잠해진 뒤인 1940년 말에 수사를 재개했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다. 하지만 백백교 교리 중에 조선이 장래 독립해서 백백교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치안유지법이 적용된 사안이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확실한 수사가 진행될 수 있었다. (...)
  4. 구글링을 하면 해당 캡쳐본을 볼수있지만 혐짤이므로 심약자, 노약자, 임산부, 어린이는 검색을 자제하길 바란다.
  5. 골상학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유사과학이 되었다.
  6. 일제 잔재청산과 관련해서 벌인 소송으로, 교주 두개골 뿐만 아니라, 기생 명월이 생식기 표본 등을 모두 폐기할 것을 주장했다. 연구용으로 보관되는 것도 아니기에 반문명적이고 반인륜적이라는 것. 결코 이들은 백백교 사건이 일제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고 언급하진 않았다.
  7. 하지만 현존하는 사진은 없다. 워낙 철저하게 행동해서 자신의 사진 따윈 남기지도 않았고, 십여 개가 넘는 가명을 사용했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의 시체 역시도 얼굴이 심하게 훼손당한 터라...
  8. 무슨 사이비종교 관련 사건만 터지면 무조건 '백백교'가 언급되는 판국이니...
  9. 전술에는 용백교라고 적었는데, 이 용화교의 오기로 보인다. 교주인 서백일의 성범죄와 경제적 착취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고, 1966년 과거 신도였던 이에게 교주가 살해당하면서 교는 몰락한다. 지금은 불교종단이 되었다.
  10. 교주인 서백일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된 전적이 있었는데, 본인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간 것이라고 밝혔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과거 백백교 간부였던 게 아닌가-라는 의혹이 제기된 적 있었다.
  11. 유흥가에 청소년들을 보내 껌팔이를 시키는 등 착취로 물의를 일으켰다. 살인지령에 재산갈취 등등... 60년대에도 문제가 되어서 수사를 받았었지만 70년대에 와서 해결되었다.
  12. 백백교의 지부는 비밀리에 만든 비밀지부인지라, 사람들이 잘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있었다. 거기다가 대부분 현재 북한 지역이다. 또한 전용해의 집은 현재 인현동1가 지역에 있긴 하지만, 그냥 주택가다. 전술처럼 교회같은 게 들어선 적 없다.
  13. 당시 일본은 국내에서조차 천율교 등 국수주의적 종교도 사이비라면 철저하게 단속했다
  14. 박태원은 이 시기 남한에 있었으며, 6.25전쟁 중 월북한다.
  15. 은근히 중견탤런트들도 많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