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프리랜서 아나운서이자 앵커, MC, 소설가, 연기자.
1964년생으로 올해 53세이다(...)
풍문여중-명지여고-연세대 심리학과
1987년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재학 중 문화방송 아나운서 공채에 합격하여 입사하였고, 1988년 5월 9일을 기점으로 사상 첫 뉴스데스크 여자 앵커가 된다. 재학 중 입사했는데 입사하자마자 뉴스데스크 앵커가 된 것이니 최연소 뉴스데스크 여자 앵커인 셈. 이후 파업이나 1년 간의 유학을 제외하고 1996년 8월 9일까지 뉴스데스크를 진행함으로써 지금까지도 최장수 뉴스데스크 여자 앵커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정리하면 그녀는 최초, 최연소, 최장수 뉴스데스크 여자 앵커이다.
아나운서 시절 사진
원래 아나운서로 입사했으나 뉴스 앵커로서의 활동이 두드러져 회사 차원에서 그녀를 기자 신분으로 전환하길 원했고, 그래서 직종 변경 시험을 통해 MBC 국제부 기자가 되어 뉴스 앵커로서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1992년 10월 2일 MBC 노조의 파업에 동참하며 뉴스데스크에서 하차됐고, 1993년 4월 12일 다시 복귀했다. 1994년 9월 16일 영국 유학으로 하차했고, 1995년 10월 2일 뉴스데스크로 복귀했다. 이후 아들을 임신하였고 1996년 8월 9일 뉴스데스크에서 만삭의 몸으로 하차했다. 입덧이 없었기에 마지막까지 진행이 가능했다는 후문. 1994년 9월 16일이었는지 1996년 8월 9일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승승장구에서 마지막 방송 후 느낌에 대해 털어놓았다. 끝까지 밝게 인사하자 "안 울어?"라는 주변 스태프의 질문이 있었고, 이후 송별회까지 울지 않았으나 집에 와서 펑펑 울었다고. 20대의 거의 모든 것을 뉴스데스크에 바친 것이나 다름 없는데 그래서 울었다고 한다.
출산 후 복직하여 주로 아침 시간대 뉴스를 진행하다가 1999년 3월 MBC를 퇴사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한 명예퇴직 광풍 속에서도 MBC 측에서 극구 만류했는데 훗날 이에 대해 그녀는 "자신의 생활을 살아보고 싶었다"며 짧게나마 퇴사 이유를 밝혔다. 이후 각종 CF를 촬영하였고, 제일 유명한 것은 지리산 노고단(...) 토크쇼 '백야', 시사교양 '우리시대' 등 몇몇 프로그램을 맡았고 한양대학교, 연세대학교 등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였다.
2004년 YTN에서 프리랜서 앵커 자격으로 '백지연의 뉴스Q'를 진행하였다. (지금은 YTN 소속 앵커가 '뉴스Q'를 진행하고 있다.) 이후 2007년 SBS 라디오 '백지연의 SBS 전망대'를 진행했고, (이 역시 지금은 SBS 소속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있다.) 2008년부터 tvN 끝장토론, 2009년부터 tvN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등을 진행하다 2013년 모두 종료했다. 그녀의 시사교양 관련 이력은 여기까지다.
한편 저술 활동도 병행했는데, 주로 자기 경험을 소재로 한 자기계발서를 집필하였다. 'MBC 뉴스 백지연입니다', '앵커는 닻을 내리지 않는다', '나는 나를 경영한다', '자기설득파워', '나이스 포스', '뜨거운 침묵', '크리티컬 매스',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등이 있다. 트위터에 많이 남겨 호응을 받았던 인생 관련 구절들도 한데 모아 사진과 함께 '나, 너'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였다. 문학 활동도 시도했는데, 소설 '물구나무'를 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커뮤니케이션 교육가로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기업체가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관리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 나가는지에 대해 전문적으로 봐 주는 일을 한다고. 자기만의 기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CJ E&M에서 활동하였으며 그때 나온 것이 끝장토론과 피플인사이드다.
2015년에는 MBC 입사 동기인 안판석 감독의 제안으로 SBS 풍문으로 들었소(드라마)에서 지영라 역을 연기하였다. 약올리는 재벌 사모님 역할이었는데, 어울린다는 평(...)이 많았다. 또 MBC에서 파일럿 예능으로 '빅 프렌드'를 진행하였다.
2000년쯤에 백지얀 자식의 친아버지가 누군지에 대한 악성루머가 떠돌자 유전자 검사를 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어쨌든 그래서 남편과 이혼... 자세한 사항은 추가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