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뉴스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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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진행을 맡고 있는 이상현 기자와 배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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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진행을 맡고 있는 박상권 기자와 이정민 아나운서.

홈페이지

우리말로 '소식 책상' 혹은 '새로운 것들 책상'이라 카더라[1]

과거 우리나라 최고의 뉴스 프로그램으로 KBS 뉴스 9, SBS 8 뉴스보다 시청자를 더 생각하는 프로그램이자 기득권에게 가장 날카롭던 보도 프로그램, 그리고 수많 들과 기자들을 탄생시켰던 문화방송의 간판 프로그램이었으나 수없는 병크, 자존심 따위 내팽겨 쳐버린 몇 안되는 정치인, 언론인들 때문에 MBC와 같이 끝없이 몰락한 프로그램.
사장 한 명이 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방송국을 말아먹었다.

1 개요

MBC의 메인뉴스 프로그램. 매일 저녁 7시 55분에 방송, 평일에는 1시간, 주말에는 50분 진행한다. 로고의 숫자는 8. 종합뉴스로서는 MBC에서 유일하게 매일 방송되는 뉴스 프로그램이다. MBC 라디오의 뉴스의 광장과 더불어 현존하는 국내 뉴스 프로그램 중 가장 오래되었다.[2] 2010년 10월 5일40주년, 2015년 10월 5일45주년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5년 사이에...

MBC TV 외에도 MY MBC(DMB)에서도 수중계된다.[3] '뉴스데스크'를 대부분 고유명사로 알고 있지만 사실 보도국이라는 뜻이다. 스포츠 중계방송을 하는 날에 더 늦게 방송될 경우 일부 프로그램은 방송을 연기하는 대신 "화면 하단 자막에 나오면 본 중계방송이 끝나는 대로 MBC 뉴스데스크를 보내드립니다."라며 이후 그 시간대에 전해주기도 한다.

본사 뉴스데스크의 예고 자막은 평일에는 일일연속극 다시 시작해, 토요일에는 무한도전, 일요일에는 일밤방송 중에 내보낸다. 지역별 MBC TV는 평일에는 저녁 7시 40분, 주말과 휴일에는 저녁 7시 35분에 수중계 한다. 오늘의 뉴스데스크는 일일연속극 다시 시작해, 토요일에는 무한도전, 일요일에는 일밤 복면가왕 시작전 방송된다. 평일에는 수도권 한정으로 MBC 이브닝 뉴스 에서도 매일 코너로 나온다.

2 연혁

1970년 10월 5일MBC에서 처음으로 메인뉴스를 방송하기 시작, 평일 밤 10시 30분에 신설, 25분 진행했다. 1971년 3월 1일부터 밤 10시로 변경, 방송 분량이 20분으로 단축되었다가 10월 4일부터 방송 분량이 25분으로 환원, 연장되었다. 1972년 2월 7일부터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연장되었고 9월 2일부터 토요일까지 편성이 확대되었다. 1972년 11월 5일부터 일요일 밤 9시 40분에 MBC 뉴스라는 타이틀로 신설, 10분 진행했다. 1973년 4월 1일부터 일요일 MBC 뉴스(21:40)가 밤 9시 50분으로 변경되었고 4월 7일부터 토요일 MBC 뉴스데스크가 밤 9시 50분으로 변경, 방송 분량이 10분으로 단축, MBC 뉴스로 타이틀을 변경, 일반뉴스로 전환, 격하되었다.

10월 13일부터 토요일 MBC 뉴스(21:50)가 밤 10시 10분으로 변경되었다가 1974년 7월 6일부터 밤 10시 20분으로 변경되었다. 10월 27일부터 일요일 MBC 뉴스(21:50)가 밤 9시 40분으로 환원되었다가 11월 10일부터 방송 분량이 15분으로 연장, MBC 종합뉴스로 타이틀을 변경, 종합뉴스로 전환되었다. 1975년 1월 5일부터 일요일 MBC 종합뉴스(21:40)가 밤 9시 35분으로 변경, 방송 분량이 20분으로 연장, MBC 뉴스데스크로 개편, 메인뉴스로 격상되었다. 4월 12일부터 토요일 MBC 뉴스(22:20)가 밤 10시 5분으로 변경, 방송 분량이 20분으로 연장, MBC 뉴스데스크로 타이틀을 환원하여 확대 개편, 종합뉴스로 환원, 메인뉴스로 격상되었다.

10월 18일부터 밤 10시로 변경되었다. 1976년 4월 12일부터 평일 뉴스가 밤 9시로 변경, 방송 분량이 25분으로 단축되었다. 4월 17일부터 토요일 뉴스도 밤 9시로 변경, 방송 분량이 25분으로 연장되었고 4월 18일부터 일요일 뉴스가 밤 9시 25분으로 변경되었다. 4월 23일부터 MBC 뉴스의 현장으로 타이틀을 변경했다. 10월 23일부터 주말 뉴스가 밤 9시 30분으로 변경되었고 1977년 4월 18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연장되었다. 1978년 10월 21일부터 주말 뉴스가 평일과 같이 밤 9시로 변경되었다. 1980년 3월 3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35분으로 연장되었다가 9월 2일부터 방송 분량이 40분으로 연장되었다.

12월 15일부터 MBC 뉴스데스크로 타이틀을 환원,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35분으로 단축되었다. 1981년 3월 15일부터 편성이 월요일 ~ 토요일로 축소되었고 3월 21일부터 시사 프로그램인 MBC 뉴스센터로 대체되었다. 3월 28일부터 토요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35분으로 연장되었다. 10월 5일부터 방송 분량이 40분으로 연장되었다. 1982년 10월 23일부터 토요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단축되었다. 1983년 4월 25일부터 저녁 8시 55분으로 변경되었다가 10월 31일부터 밤 9시로 변경되었다. 1984년 10월 28일부터 일요일 뉴스가 다시 방송을 재개,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단축되었다.

1985년 3월 4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45분으로 연장되었다가 1987년 5월 4일부터 방송 분량이 50분으로 연장되었다. 1988년 5월 14일부터 주말 뉴스의 방송 분량이 25분으로 단축되었다. 1989년 4월 23일부터 일요일 뉴스가 MBC 뉴스센터[4]로 타이틀을 변경, 독립 편성, 방송 분량이 50분으로 연장되었고 4월 24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45분으로 환원, 단축되었다가 10월 30일부터 방송 분량이 40분으로 연장되었다. 11월 5일부터 MBC 뉴스센터MBC 뉴스데스크로 타이틀을 환원, 방송 분량이 25분으로 환원, 단축되었다.

1990년 4월 30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50분으로 연장되었다. 1991년 4월 28일부터 일요일 뉴스가 MBC 뉴스센터로 타이틀을 환원, 독립 편성, 방송 분량이 50분으로 연장되었다. 10월 7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45분으로 단축되었고 10월 19일부터 토요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연장되었다. 1993년 5월 2일부터 MBC 뉴스센터의 방송 분량이 40분으로 단축되었다. 10월 23일부터 토요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40분으로 연장되었고 10월 24일부터 MBC 뉴스센터MBC 뉴스데스크로 타이틀을 환원했다. 1994년 2월 26일부터 주말 뉴스의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단축되었다.

1996년 1월 20일부터 주말 뉴스의 방송 분량이 35분으로 연장되었다가 3월 9일부터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단축되었다. 1997년 1월 6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50분으로 연장되었고 1998년 7월 25일부터 주말 뉴스의 방송 분량이 35분으로 연장되었다. 1999년 5월 22일부터 주말 뉴스의 방송 분량이 40분으로 연장되었고 2000년 5월 15일부터 저녁 8시 55분으로 변경되었다. 2001년 2월 5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55분으로 연장되었고 2005년부터 주말 뉴스의 방송 분량이 35분으로 단축되었다가 2008년 5월 31일부터 방송 분량이 40분으로 환원, 연장되었다.

2010년 11월 6일에 가을 개편으로 주말 뉴스가 저녁 7시 55분으로 변경, MBC 스포츠뉴스와 통합, 방송 분량이 45분으로 연장되었고 12월 27일부터 평일 뉴스도 MBC 스포츠뉴스와 통합되었다. 2012년 2월 20일에 MBC 파업으로 인해 방송 분량이 35분으로 단축되었다가 5월 14일부터 방송 분량이 45분으로 연장되었다. 6월 24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50분으로 연장되었다가 11월 5일에 가을 개편으로 평일 뉴스가 저녁 7시 55분으로 변경, 방송 분량이 1시간으로 연장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3 상세

3.1 2010년대 이전

1970년 10월 5일부터 밤 10시 30분[5]에 첫 방송 당시에는 MBC 뉴우스데스크[6]로 표기되었다. 1976년부터 MBC 뉴스의 현장으로 타이틀로 매일 밤 9시에 방송[7]되어 한국의 방송국 메인뉴스의 대명사가 되었다. 타이틀을 바꾼 이유가 있는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외래어가 너무 많다는 지적을 하자, 즉각 방송정화위원회가 발족되었다.(한국 대중매체사 522페이지 참조.)

이에 MBC가 앞장서서 이미 1974년 2월 7일 방송프로그램과 연예인 이름에서 외래어를 추방한다고 발표하고, 그날 부터 'MBC 페스티벌'은 'MBC 대향연'으로, '가요스테이지'는 '가요선물', 'MBC 그랜드 쇼'는 '토요일 토요일밤에'로, '일요 모닝쇼'는 '이주일의 화제'로, '뉴스라인'을 '2시의 취재현장'[8]으로, '해외토픽'은 '해외소식'으로, '밤의 디스크 쇼'는 '박원웅과 함께'로, '스포츠 자키'는 '스포츠 애기'로 타이틀을 바꿨다. 이후로 1976년 4월 23일부터는 뉴스데스크도 '뉴스의 현장'으로 바꿨다. 하지만 정작 뉴스는 순화안됐다.[9] 연예인 특히 보컬그룹의 이름도 국산화(...)되었는데 어니언즈는 양파들, 블루벨즈는 청종, 바니걸즈는 토끼소녀로 갈아엎었다.[10] 눈치만 보던 KBSTBC도 MBC의 조치가 여론의 지지를 받자 뒤따라서 프로그램 명칭과 연예인 이름도 갈아엎었는데, 그 덕분에 방송사에 따라서 연예인 이름이 달라지는 웃지못할 일도 생겼다.[11]

1980년에 MBC 뉴스데스크로 타이틀을 되돌린 뒤[12] 현재까지 MBC하면 떠오르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당시 타 방송사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을 함으로써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았는데, 1976년 지금의 고발 뉴스의 효시가 된 '카메라출동'이나, 2007년 파격적인 여성 앵커[13] 단독 진행 등 여러가지 부분에서 획기적인 시도를 많이 도입[14]한 뉴스 프로그램이다. 여담으로 1998-99년도에 일요일 뉴스데스크에서 "박재동의 TV만평"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코너로 방영하기도 했다.[15] 2012년 들어 이를 계승(?)한 시사만평(흥해라흥 픽처스 제작)이라는 코너를 방영하기도 했는데, 저퀼러티라 얼마 가지 못하고 종영되었다.[16]

규모가 큰 사건·사고가 일어나거나 커다란 행사가 개최되었을 때 하는 특집 방송 급 뉴스 같은 경우엔 현장 근처에서 특별 스튜디오를 만들어 직접 진행도 상당히 많이 했는데, 대표적으로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일어났을 당시엔 엄기영 앵커가 직접 성수대교 근처에서 진행을 했고, 1995년 광복 50주년 당시 특집 뉴스데스크 또한 광화문 앞[17]에서 직접 임시 스튜디오를 만들어 촬영했다. 또한 2002년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 특별 스튜디오를 개설해 진행했고 2006 독일 월드컵 기간인 2006년 6월 13일에는 스튜디오에 있던 앵커들은 상암 월드컵 경기장으로 특별 스튜디오를 개설해 진행했고, 동시에 독일 현지에 나가있는 앵커들과 다원 진행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 야외에서 진행한다는 전통도 있는 것 같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동양방송(TBC)이 메인뉴스 시청률에서 워낙 앞서갔던터라 1위는 못했지만 그래도 신뢰성과 보도형식 측면에서 KBS보다 좋은 평가를 들었었고,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시청률 면에서 KBS의 메인뉴스를 압도하며 뉴스 프로그램의 본좌로 자리를 굳혔었다.[18] 그러나 1995년부터는 보도분야를 쇄신하며 관제방송 이미지를 씻어낸 KBS 뉴스 9에게 밀리기 시작한다. 물론 KBS 뉴스 9 직전에 하는 일일 연속극의 영향도 있다. 장년층의 확고한 지지를 받는 KBS 뉴스 9 이전에 하는 일일 연속극은 웬만하면 동시간대에서 시청률 20~30%는 먹고 들어가기에 그 정도의 핸디캡은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한다.

그래도 2000년대엔 KBS 뉴스 9에게는 밀리긴 했어도 당시 보수적인 논조와 더불어 병크를 많이 터트렸던 한 시간 빠른 뉴스 SBS 8 뉴스는 이기는 상황이라 최소 2위는 찍는 상황이였다. 그리고 보도 논조 역시 지상파 3사 중에선 진보적이라 차별화가 되어있었고, 평가 또한 지금처럼 나쁘지는 않은 편이였다.

3.2 2010년대 이후

문화방송과 같이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0년대, 특히 김재철 사장 재임기 이후부터 SBS 8 뉴스에게 마저도 영향력, 신뢰도, 시청률이 뒤지게 된다. 옛날의 영광은 그야말로 진짜 호랑이 담배피던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형국. 2010년대 들어서 MBC의 보도인력 수준이 떨어지게 되는데다가, 뉴스의 연성화에 치중한 것이 독이 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물론 이렇게 된 원인에는 김재철 사장 취임기 때 논조가 급격히 우경화가 됐던게 가장 컸다. 그리고 그러한 성향은 메인뉴스에서도 여과없이 드러났다. 2011년에는 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과 더불어 병크를 많이 터뜨리게 되고, 뉴스데스크는 예능데스크화 되면서 본격적으로 과거 뉴스데스크의 영광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고 만다. 근데 이 병크들은 우경화랑 상관없는 게 대부분 2012년 후반 들어 시청률이 5% 아래로 떨어져 3사 최하위를 기록했고 시청률은 초반에 잠깐 상승세를 기록한 걸 제외하고 그냥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013년 3월~5월에 SBS 8 뉴스를 잠시 추월했지만, 냉정히 따지자면 뉴스에 앞서 방영된 오자룡이 간다의 인기로 인해 오른 것이지, 절대로 뉴스의 질이 좋아서가 아니다. 결국 이러한 신뢰성의 급격한 하락은 2014년 들어서 거의 회복 불능 수준으로 떨어는데, 특히 JTBC 뉴스 9손석희 보도사장의 영입으로 뉴스에 심도를 기울이는 중에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때 다각적인 보도로 호평을 얻고 뉴스데스크의 거의 턱밑까지 따라온 상황이니 말 다 했다. 2014년 4월 29일에 뉴스데스크와 JTBC 뉴스 9이 5.4%의 시청률로 거의 동률을 이뤘지만, JTBC 뉴스 9의 경우 통계 외의 인터넷 실시간 방송 시청이 배제됐으므로 뉴스데스크는 사실상 종편 1위 뉴스만도 못한 뉴스로 격하되버렸다. 기존의 보도 능력을 회복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거나 좋은 의미로 파격적인 진행을 하지 않는 한 이러한 현상은 MBC의 사장이나 보도국장이 바뀔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8월 4일[19]에 뉴스데스크는 물론이고 MBC의 모든 뉴스 프로그램을 상암동 신사옥으로 옮겼는데, 세트#영국 BBC 것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그도그럴것이 다음 내용을 진행한 여행사 직원에따르면 신사옥 건축당시 영국까지 탐방은 갔다고 한다.)#.[20] 기분 탓이겠지 미국 거 베껴쓰더니 이번엔 유럽이냐?[21]. 거기에 오프닝은 벨기에 VTM Nieuws의 그것을 표절한 수준10초부터).

2016년 현재는 논조가 이전에 비해 비교적 우경화 된 SBS 8 뉴스 덕에 상대적으로 중도에 가까운 논조처럼 보이게 되어 시청률 역시 SBS를 부쩍 따라 잡았지만, 어디까지나 SBS가 우경화된 것에 대한 착시 효과일 뿐 MBC도 우경화 및 친정부 논란에서 아직까지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JTBC 뉴스룸이 JTBC 뉴스룸 성우 교체 보도 논란으로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는 하나 지상파 메인뉴스와 종편 메인뉴스를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고, 당장 현실적으로 방송 매체 중 진보세력에 호의적인 언론이 JTBC 하나 뿐이라 뉴스데스크의 앞날은 그리 밝다고 할 수 없다. 더군다나 2016년 10월 24일 JTBC 뉴스룸이 최순실 게이트 특종 보도를 터뜨린 이후, JTBC 뉴스룸에 시청률 또한 두배 가까이 밀리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였다.

4 출연자

  • 앵커
  • 날씨
    • 평일 : 임성은 기상캐스터.
    • 주말 : 이창민 기상캐스터.

4.1 역대 앵커

누락되어 있는 앵커가 있을 수 있다. 보면 알겠지만 대선후보였던사람도 있고 들도 있고 여럿 몇분 계시고 완전 짱짱한 라인업들이다 위키백과 MBC 뉴스데스크 문서의 앵커목록을 살펴보면 자세한 날짜까지 기록되어있다.[22] 세밀한 날짜는 안 나와 있지만 앵커들은 뉴스데스크 40주년 영상에 정리되어 있다. 이 링크 역시 참고하면 좋다.[23]

  • 평일 남성
    • 이득렬 기자.[24] (1974년 ~ 1987년 4월 30일)
    • 정병수 기자.[25] (1981년)
    • 강성구 기자. (1987년 5월 1일 ~ 1988년 11월 4일)
    • 추성춘 기자.[26] (1988년 11월 7일 ~ 1989년 9월 15일)
    • 엄기영 기자.[27] (1989년 10월 9일 ~ 1996년 11월 8일/2002년 1월 1일 ~ 2008년 2월 1일)
    • 이인용 기자. (1996년 11월 11일 ~ 2000년 10월 27일/2003년 8월 4일 ~ 8월 8일 )
    • 권재홍 기자.[28] (2000년 10월 30일 ~ 2001년 12월 31일/2010년 4월 5일 ~ 2013년 11월 15일)
    • 김성수 기자. (2008년 2월 4일 ~ 3월 21일)
    • 신경민 기자. (2008년 3월 28일 ~ 2009년 4월 14일)
    • 권순표 기자. (2009년 4월 27일 ~ 2010년 4월 2일)
    • 박상권 기자. (2013년 11월 18일 ~ 2014년 5월 9일/2015년 8월 3일 ~ 8월 7일/2016년 7월 25일 ~ 7월 29일)
    • 박용찬 기자. (2014년 5월 12일 ~ 2015년 11월 6일)
    • 이상현 기자. (2015년 11월 9일 ~ 현재)
  • 평일 여성
    • 백지연 아나운서. (1988년 5월 9일 ~ 1992년 9월 4일/1993년 4월 12일 ~ 1994년 9월 16일/1995년 10월 2일 ~ 1996년 8월 9일)
    • 김지은 아나운서. (1992년 9월 7일 ~ 1993년 4월 9일/1996년 11월 11일 ~ 1997년 8월 22일)
    • 김은주 아나운서. (1996년 8월 12일 ~ 11월 8일)
    • 최율미 아나운서. (1997년 8월 25일 ~ 1998년 3월 20일)
    • 정혜정 아나운서. (1998년 3월 23일 ~ 1999년 4월 23일/2002년 7월 13일 ~ 2003년 10월 5일)
    • 김주하 기자. (2000년 10월 30일 ~2006년 3월 3일)
    • 박혜진 아나운서. (2006년 3월 6일 ~ 2009년 4월 17일)
    • 이정민 아나운서.[29] (2009년 4월 20일 ~ 2011년 4월 7일)
    • 김소영 아나운서. (2013년 4월 8일 ~ 5월 17일/2013년 11월 18일 ~ 2014년 5월 9일)
    • 배현진 기자.[30] (2011년 4월 8일 ~ 2013년 11월 15일(아나운서시절)/2014년 5월 12일 ~ 현재)
  • 주말 남성
    • 이득렬 기자. (1981년 3월 22일 ~ 5월 30일)
    • 손석희 아나운서. (1987년 2월 28일 ~ 1989년 4월 16일)
    • 이상열 기자. (1990년 3월 31일 ~ 1992년 5월 17일)
    • 정길용 기자. (1992년 5월 23일 ~ 1993년 4월 11일)
    • 신경민 기자. (1993년 4월 1일 ~1994년 10월 16일)
    • 정동영 기자.[31] (1994년 10월 22일 ~ 1996년 1월 7일)
    • 조정민 기자. (1996년 1월 13일 ~ 11월 10일)
    • 권재홍 기자. (1996년 11월 16일 ~ 2000년 4월 30일)
    • 박광온 기자. (2000년 5월 6일 ~ 2002년 1월 20일)
    • 김세용 기자. (2002년 1월 26일 ~ 2003년 4월 27일/2008년 3월 29일 ~ 2012년 2월 12일)
    • 김상수 기자 . (2003년 5월 3일 ~ 8월 10일 2003년 10월 5일)
    • 최일구 기자. (2003년 10월 5일 ~ 2005년 3월 13일/2010년 11월 6일 ~ 2012년 1월 15일)
    • 연보흠 기자.[32] (2005년 3월 19일 ~ 2007년 3월 11일)
    • 왕종명 기자.[33] . (2009년 5월 2일 ~ 2010년 10월 31일)
    • 정연국 기자. (2012년 5월 12일 ~ 6월 10일)
    • 최대현 아나운서. (2012년 6월 16일 ~ 10월 7일)
    • 신동호 아나운서. (2012년 10월 13일 ~ 2013년 6월 23일)
    • 박용찬 기자. (2013년 6월 29일 ~ 11월 17일)
    • 도인태 기자. (2013년 11월 23일 ~ 2014년 5월 11일)
    • 박상권 기자.[34] (2014년 5월 17일 ~ 현재)
  • 주말 여성
    • 최율미 아나운서. (1992년 9월 12일 ~ 1993년 4월 11일/1996년 11월 16일 ~1997년 8월 24일/2000년 1월 8일 ~ 2002년 7월 7일)
    • 정혜정 아나운서. (1993년 4월 17일 ~ 1994년 9월 18일)
    • 이주연 아나운서. (1996년 8월 10일 ~ 11월 10일)
    • 김지은 아나운서. (1997년 8월 30일 ~ 10월 5일)
    • 박나림 아나운서. (1997년 10월 11일 ~ 1998년 4월 19일)
    • 김은주 아나운서. (1991년 5월 12일 ~ 1992년 9월 6일/1994년 9월 24일 ~ 1996년 8월 4일/1998년 4월 25일 ~ 9월 20일)
    • 박영선 기자. (1998년 9월 26일 ~ 1999년 12월 26일)
    • 박혜진 아나운서. (2004년 10월 9일 ~ 2006년 2월 26일)
    • 서현진 아나운서.[35] (2006년 3월 4일 ~ 2007년 3월 11일)
    • 김주하 기자.[36] (2007년 3월 17일 ~ 2008년 3월 23일)
    • 손정은 아나운서. (2008년 3월 8일 ~ 2010년 5월 23일)
    • 배현진 기자. (2010년 6월 12일 ~ 2011년 4월 3일)
    • 문지애 아나운서. (2011년 4월 9일 ~ 2012년 1월 22일)
    • 양승은 아나운서. (2012년 5월 12일 ~ 2013년 3월 17일)
    • 김소영 아나운서. (2013년 3월 23일 ~ 11월 17일)
    • 강다솜 아나운서. (2013년 11월 23일 ~ 2014년 5월 11일)
    • 이정민 아나운서.[37] (2014년 5월 17일 ~ 현재)

5 코너

5.1 헤드라인

오늘의 주요뉴스를 보여주는 코너. 정확히 7시 55분에 오프닝, 광고, 헤드라인 순으로 나가고, 8시 시보와 함께 뉴스가 시작된다.[38]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안지환, 2001년부터 2005년까지는 성우라고 부르기 아까운 박지훈[39]이 맡았다가 2010년대 이후로 현재는 앵커가 헤드라인을 전달해준다.[40] 2016년 8월 15일자로 헤드라인이 개편되었다. 2014~2015년의 헤드라인처럼 스튜디오 뒤쪽 DLP에서 읽는 식이다. 아래의 영상은 역대 헤드라인이다.

1987~2015년의 주요뉴스[41]

(평일판)

(주말판)

5.2 경제동향

평일 날에만 제공하는 경제동향[42]은 말 그대로 코스피, 코스닥, 환율 등 경제 관련 소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SBS 8 뉴스는 간략하게 주요뉴스가 끝나고 앵커들을 배경으로 하단에 제공되고, KBS 뉴스 9에서는 아예 나오지 않지만(…) 뉴스데스크는 코너 규모로 알려주고 있다. 경제동향은 1999년부터 시작되었으며 80년대 - 90년대 초에는 자체적으로 시황 브리핑을 한 적도 있었다.

경제동향 음악은 딱 한번 바뀌었다. 1차 음악은 처음 제공 때부터 2006년 3월 5일까지 쓰이고 주요뉴스의 넘어가는 소리가 바뀐 6일부터는 2차 음악이 새로 나와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상암동으로 사옥을 이전한 나머지 뉴스데스크를 완전히 갈아엎은 이후에도 배경만 바뀌였을 뿐 음악은 쓰이고 있다. 2004년 11월 10일엔 코스닥 지수를 알려주는 상자의 크기가 커졌고, 2006년 9월 20일엔 주가가 코스피로 바뀌였다. '경제동향'이라고 쓰인 상자가 내려오는 경제동향 오프닝은 대략 2000~2001년 사이에서 2011년 4월까지 쓰였다. 그 이후에 나온 건 상자가 내려오는 오프닝이 쓰이기 전에 쓰던 그것과 비슷하다(…).

자료제공 회사도 현대증권, 교보증권, 이트레이드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다양한데 정작 시황 브리핑을 제공하는 증권사는 삼성증권이다 2011년부터는 자료제공이 사라진 걸 보아 자체적으로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서 그 시기에 MBC 뉴스투데이의 경제동향도 자료제공 부분이 사라졌다.

2015년 3월 2일부터는 2014년 8월부터 쓰인 경제동향이 헤드라인이 끝나고 바로 경제동향을 트는 것이 아니라 레일카메라가 앵커를 비춘 뒤 측면에 있는 스크린으로 경제동향을 틀어주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2016년 2월 18일부터는 헤드라인이 개편되면서 경제동향도 변화가 있었는데, 스튜디오에 3D 그래픽을 사용하여 데스크에 설치된 미니 스크린 앞에서 경제동향 소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음악은 3월 6일부로 사용 10년이 됐는데, 결국 2월 26일부터는 쓰이지 않는다. 이 이후로 그냥 주요뉴스 BGM에서 이어지면서 경제동향이 나온다. 그리고 이것을 끝으로 여의도에서 사용해 왔던 뉴스데스크의 BGM은 모두 없어지거나 교체되었다.[43]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 스포츠 뉴스 BGM와 뉴스플러스 BGM은 그대로 쓰고 있으니, 틀린 셈이다.

5.3 집중취재

특정 기사를 집중적으로 짚어보는 코너. 2016년 현재 제일 오랫동안 방송되었던 코너.

5.4 뉴스플러스

2010년 11월 6일부터 신설된 코너. 집중이나 심층취재와는 달리 보통 두 기자가 연속으로 보도하는 게 특징이다.

5.5 심층취재

시작 날짜는 미상. 아무래도 집중취재와 겹치다 보니 보기 드물다(...).

5.6 현장M출동

1973년부터 2005년까지 고발성 뉴스데스크를 이끌었던 카메라출동의 후속이라고 볼 수 있는 코너.[44] 2011년 6월 1일부터 시작했다. 첫방송 시 "사회의 비리와 부조리를 고발한다"고 하지만, 학원가의 모습과 2015년 대한민국 메르스 유행 당시의 일상 모습 등을 보도하기도 한다.

5.7 이슈클릭

2015년 경에 시작한 코너. 온라인에서 이슈가 되는 소식을 보도한다.

5.8 앵커의 눈

2015년 11월 9일부터 시작하는 코너. 특정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그에 관한 깊이있는 보도를 하는 코너이다. 기자의 리포트도 있지만, 앵커가 스튜디오를 활용하여 직접 주제를 설명하는 것이 특징. 평일에 한 편씩 하나, 특집인 경우에는 결방된다.

5.9 MBC 스포츠뉴스

스포츠뉴스 코너. 다른 방송사와는 달리 스포츠 리포트는 평일이든 주말이든 달랑 2개만 내보낸다(...). 상황에 따라 늦게 방송되는 경우 일반 뉴스 진행자가 스포츠뉴스 자막을 달고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5.10 MBC 날씨

일기예보 코너. 평일 한정으로 경쟁사 뉴스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계절마다 오프닝이 다르다.

6 지역 뉴스

주중은 저녁 8시 25분, 주말은 저녁 8시 20분에 방송된다. 각 지역별 뉴스데스크 예고 자막은 평일에는 MBC 일일연속극 다시 시작해 방송 중 내보낸다. (만약 서울MBC의 평일엔 축구와 야구 중계방송이 늦게 방송 될 경우 하단 자막에 나오면 ("본 중계방송이 끝나는대로 MBC 뉴스데스크와 지역MBC 뉴스데스크를 보내드립니다.") 서울 뉴스가 끝나고 그 시간대 지역 뉴스를 짧게 내보내고, 이후에는 본사의 뉴스데스크 클로징을 마친다.)

  • 춘천MBC (춘천) 뉴스데스크 - 평일: 이승현 앵커, 박수현 앵커. 주말: 강원영동 (삼척) 수중계.
  • 원주MBC (원주) 뉴스데스크 - 평일: 박지현 아나운서. 주말: 강원영동 (삼척) 수중계,
  • MBC강원영동 (강릉) 뉴스데스크 - 평일: 성스리 아나운서. 주말: 강원영동 (삼척) 수중계
  • MBC강원영동 (삼척) 뉴스데스크 - 평일: 김상호 아나운서. 주말: 차해리 아나운서
  • MBC충북 (청주) 뉴스데스크 - 평일 : 이영락 앵커, 이은지 앵커. 주말: 청주, 충주 수중계.
  • MBC충북 (충주) 뉴스데스크 - 평일 : 구본상 아나운서. 주말 : 청주, 충주 수중계.
  • 대전MBC (대전) 뉴스데스크 - 평일: 최혁재 앵커, 박윤희 앵커. 주말: 이교선 기자.
  • 전주MBC (전주) 뉴스데스크 - 평일: 김한광 앵커, 목서윤 앵커. 주말: 무작위.
  • 광주MBC (광주) 뉴스데스크 - 평일: 김두식 앵커, 백수진 앵커. 주말: 연빛나 아나운서 광주, 목포, 여수 수중계.
  • 목포MBC (목포) 뉴스데스크 - 평일: 임사랑 앵커, 이지선 앵커. 주말: 목포, 광주, 여수 수중계.
  • 여수MBC (여수) 뉴스데스크 - 평일: 박성언 앵커, 구지은 앵커. 주말: 여수, 광주, 목포 수중계.
  • MBC경남 (창원) 뉴스데스크 - 평일: 김형신 앵커, 이은민 앵커. 주말: 경남 수중계.
  • MBC경남 (진주) 뉴스데스크 - 평일: 이다솔 아나운서. 주말: 경남 수중계.
  • 부산MBC (부산) 뉴스데스크 - 평일: 김동현 앵커, 안희성 앵커. 주말: 정경진 아나운서.
  • 울산MBC (울산) 뉴스데스크 - 평일: 이상욱 앵커, 정지희 앵커.[45] 주말: 무작위.
  • 대구MBC (대구) 뉴스데스크 - 평일: 조재한 앵커, 윤윤선 앵커. 주말: 무작위.
  • 포항MBC (포항) 뉴스데스크 - 평일: 전세용 앵커, 강지혜 앵커. 주말: 무작위.
  • 안동MBC (안동) 뉴스데스크 - 평일: 정동원 앵커, 김효주 앵커. 주말: 무작위.
  • 제주MBC (제주) 뉴스데스크 - 평일: 오승철 앵커, 서연미 앵커. 주말: 무작위.

7 타이틀, 그래픽

위 영상은 첫 방송 당시부터 지금까지의 오프닝 타이틀 모음. 후덜덜하다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땡전뉴스라던가 대우자동차빠이롯드, 삼풍백화점이라던가

80년대 초반~중반의 신디사이저 오프닝은 사실 흑역사에 가까운데, 초반부가 후지TV(FNN)의 '뉴스 리포트 630' 오프닝과 똑같다. 다만 표절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MBC는 산케이-후지TV네트워크의 협력사이기 때문에 브랜드 통합성을 위해 갖다 쓸 수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80년대에 쓰던 윤전기 소리는 확실히 후지TV의 것이 맞다. 더불어 80년대 중후반에서 그 오프닝 음과 함께 나오는 지구 영상은 'CBS 이브닝 뉴스'의 당시 오프닝 영상을 합성했고, 1999년 12월 31일부터 2006년까지는 아예 저작권법까지 위반하면서 이브닝 뉴스 스튜디오를 통째로 갖다썼다.

1976년 4월 23일부터 1980년 12월 14일, 타이틀이 뉴스의 현장이였을 시절에 쓰던 시그널 음악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곡 앞 부분이다. 더불어 흑백 시절이여서 그런지 당시 타이틀 영상을 보면 왠지 공포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사용된 타이틀 음악은 구스타브 홀스트의 관현악 모음곡 "행성" 중 "목성, 환희를 부르는 자 (Jupiter, the Bringer of Jollity)"의 도입부다. 정확히는 이 곡을 리메이크한 토미타 이사오의 편곡이다. 1980년 12월에서 1984년까지는 긴 버전을 사용했고,[52] 1985년에서 1987년에는 짧은 버전을 사용했다.[53] 이 오프닝이 역대 가장 유명하고, 관련 음반이 등장했을 정도였다. 1985년 2월 12일에는 총선 특집으로 평소와 전혀 다른 오프닝을 사용했다.

그 후 <파이널 카운트다운>의 음악을 1988년부터 1991년 4월까지 썼다가 우리가 아는 그 타이틀 음악은 1991년 4월에 등장했다. 작곡자는 방송 음악 작곡가로 유명한 故 임택수. 1993년 10월 21일까지는 타이틀 음악 후반부에 타자기 소리가 여전히 쓰였으나 그 이후에는 후반부 파트도 등장했다. 여하튼 1998년 4월 초까지 계속해서 쓰였지만 1998년 4월 20일부터 2000년 12월 31일까지 다른 오프닝이 쓰였다. 이 사이에도 시그널이 두차례 정도 바뀌었고 후반부 파트는 세차례 정도 변경되고 1998년 하반기부터 오늘의 주요뉴스 파트가 광고가 끝난 뒤가 아니라 아니라 오프닝 사이에 삽입되었다.[54]. 2001년에 다시 그 시그널 음악이 돌아왔는데 1월 1일부터 1월 7일까지는 리듬과 라임을 무시한 첫번째 어레인지 버전이 쓰였으나 반응이 영 좋지 않아서 1월 8일 - 2월 4일에 어레인지 되지 않은 시그널로 돌아왔다.

곧 2월 5일부터 쓰인 두번째 어레인지 시그널 음악이 고정화되어 이후 2012년까지 11년 간 쓰였다. 아마 이 버전이 뉴스데스크 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시그널 음악일 것이다. 그러다가 2012년 7월에 전자음이 강화된 버전으로 세번째 어레인지 되었다. 하지만 음의 일부분에 문제가 생겨 잠깐 롤백 후 변경시켜서 상암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사용한다. 그래도 엔딩은 여전히 두번째 리메이크된 버전을 사용했다.

'뉴스데스크' 끊임없는 변신…45년 간의 오프닝 변천사 (2014년 8월 3일 보도)

2014년 8월 3일자 뉴스데스크에서는 상암동 이전을 앞두고 뉴스데스크의 오프닝 등을 조명하는 자체 방송기사를 내보냈는데, 어째 위키백과나무위키 문서를 많이 참조한 것처럼 보인다.(...) 다만 역시 MBC 내부소스를 사용했는지 기존에 인터넷상에서 찾아볼 수 없던 클립들도 드문드문 지나간다.

2014년 8월 4일 상암동으로 이전하면서 오프닝이 완전히 바뀌였다. 기존의 오프닝을 바꾼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번엔 오프닝을 스크린과 증강현실 그래픽까지 곁들이는 오프닝을 새로 선보였다. 아마 지상파 3사 뉴스 중 가장 화려한 오프닝을 보여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본격 오프닝은 좋았다 그런데 오프닝이 VTM이랑 많이 비슷하다. 여기를 들어가서 3분 35초쯤부터 보도록 하자.

거기에다 1991년 이래로 22년간 사용해 온 시그널을 새롭게 교체했다. 새로 바뀐 시그널은 천공의 성 라퓨타 바오밥나무 부분이랑 은근 비슷하다는 평. 그러나 오랜 역사를 가진 시그널을 바꾼것에 대해선 많은 시청자들이 반감을 보이는 듯하다. MBC는 "상암동으로 옮겼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자" 라는 의미에서 시그널을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그 타이틀 음악(2001 - 2012년 버전)을 다른 뉴스 프로그램에서 엔딩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이 음악을 엔딩으로 사용하고 있는 뉴스 프로그램은 MBC 생활뉴스, MBC 정오뉴스, MBC 뉴스24, 그 외의 일반뉴스(정식 타이틀 : MBC 뉴스)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듯 한데 상암동 사옥 이전 전까지 뉴스데스크 예고방송 음악은 1991년도에 도입된 그 시그널이다.(다만 1993년도에 제공자막을 가로로 바꾼후에 쓰인 버전을 체택하기는 했다.) 들어보자. 시그널이 계속되서 루프되는지 은근히 헷갈리기 쉽다. 어찌됐든 상암동 이전 후에는 뉴스데스크에는 오랜 역사의 그 시그널이 사용된 구석이 단 하나도 없다. 물론 그렇다고 MBC 뉴스 전체에서 그 시그널을 아예 못보는 건 아니다. 위에도 적혀있듯이 타 뉴스 프로그램 엔딩엔 아직도 사용된다. 그리고 해당 예고방송 음악은 무려 1997년에도 사용되었다! 2001년 예고방송[55]

2015년 5월 11일부터는 오프닝, 엔딩할 때 백스크린에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사회 MBC가 함께합니다라는 멘트를 띄우고 있다. SBS 8 뉴스에서 2015 배려, 대한민국을 바꿉니다를 거의 대놓고 따라한 수준이다.

(주말판)

지상파 광고 총량제 시행에 따라 2015년 10월 한 달 동안 스포츠 뉴스 시간에 가상광고를 방송한 적이 있었다. 스포츠 뉴스답게 파워에이드가 간접광고로 나왔다 2016년 6월 17일부터 가상광고가 다시 부활했는데 이번에는 코웨이 듀얼아이스 정수기가 나온다.보기

논할 것도 없이 1991~1998/2001~2012년의 오프닝 시그널이 가장 유명하고, 이외에 호평을 받은 시그널은 1998~1999년 오프닝 시그널과 2000년 제공자막 시그널이 있다.[56] 또한 2000년 오프닝 시그널(제공자막 시그널 제외)은 동국대학교 프라임뉴스에서 사용한다. 반면 상암시대 오프닝 시그널(2014~)은 졸음이 온다

한편 오프닝과 별도로 주요뉴스 예고에서의 시그널은 파이널 카운트다운이나 인디아나 존스 등(1980년대)의 음악을 사용해서 이채를 띄우기도 했다.

8 시보

1982년[57]

과거에는 정겨운 시보음이 나면서 9시를 "삐~" 소리로 알리는 것이 1999년 12월 초까지 지속되어 왔다. 1993년 8월까진 단순히 블루스크린에 아날로그 시계가 그려져 있고, 하단에 광고가 덩그러니 붙어있는 형태로 쓰였으나, 그 해 9월부터 광고와 같이 바뀌었다. 1995년에 시계만 2번(5월 중, 11월 중쯤) 바뀌었고, 이러한 형태는 그 해 12월 초까지 쓰였으며, 그 뒤로는 다양한 형태의 광고를 보여오기도 했다. 다만, 1997년 3월부터 애니콜 광고 이전까지는 1995년에 쓰인 화면이 쓰였다. 1995년 8월 1일[58]부터 새로운 시보음[59]이 쓰이기 시작했고, 1997년 9월부터 애니콜 광고와 함께 1998년 10월 초까지 예전 시보음이 쓰였으나[60][61], 이것은 게임 소리이다. 그 뒤로 박세리를 모델로 한 광고와 함께 다시 새로운 게 쓰였다. 또한 명품플러스원 등의 TV 광고도 나왔다. 그리고 배경의 음악과 시보의 음악이 겹쳐서 정신없다. 1992년1996년 초에는 8시에도 했다.

위 영상에서는 1987년 것부터 나오는데 다시보기가 1987년 것부터 되기 때문이지 그 이전 것은 MBC C&I에서 뉴스 영상을 구입함으로써 알 수 있다. 저작권 문제상 영상을 올리기는 곤란하기에 말로 설명한다. 언제부터 시보가 도입되었는지는 불분명하나 컬러 방송이 시작된 이후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오프닝 이전에 시보를 했고,[62] 1985년부터 '오프닝-광고-시보-주요뉴스'의 순서가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63] 현재까지는 1986년부터 상업 광고가 들어간 시보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아니다. 그 이전에도 있었다. 1981년 하반기부터 1982년까지는 '오리엔트시계' 시보가 있었고, 1985년 하반기에는 '대우수퍼비전' 시보가 있었다. 상업 광고가 없는 뉴스데스크 자체 시보는 1983년부터 1985년 하반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64] 국가기록원이나 YouTube에 올라온 1987년 이전 뉴스데스크 영상에서 시보를 확인할 수 없는 건 그 당시에 시보가 없던 게 아니라, 오프닝 이전에 했기 때문에 짤려서 안 나온 것뿐이다.[65] 1987년 이전의 시보를 보고 싶다면 비싸지만 MBC C&I에서 구입해서 보길 바란다.(주소 추가 바람) 다만 날짜에 따라선 앞부분이 짤려서 안 나올 수도 있으니 주의.

핸드폰 변천사 깨알같은 옴래기2 뚜 뚜 삐가 끝날때마다 엄기영 앵커가 보이고 권순표, 권재홍 앵커도 보인다.

"디지털 익사이팅 애니콜이 9시를 알려드립니다." 목소리는 성우 김종성(2000년 초반), 최원형(2001년~2004년)으로 추정.

1999년말에 그러한 시보음은 나지 않고 광고가 나오다가 57초부터 "뚜, 뚜, 삐~" 소리가 나오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2010년 11월 갤럭시 탭 광고부터는 "뚜, 뚜, 삐~" 조차 사라진데 이어, 2014년 12월에 들어서는 "8시를 알려드립니다"도 사라진 듯 하다. 참고로 주말 뉴스데스크가 8시부터 시작한 날은 11월 6일인데, 위 영상 중 8시를 알리는 시보는 하나 밖에 없다. 전부 평일에 방영한 뉴스인가보다.[66]

여기 참고. 1985년 하반기-1988년초엔 대우전자(현 동부대우전자)의 광고가 나갔으나 1988년-1997년엔 삼성시계(현 SWC)의 광고가 나갔다. 1997년부턴 삼성전자애니콜이 광고로 나왔고, 1998년에 잠깐 삼성 TV 명품 플러스원 광고가 나왔다. 이후 갤럭시 A 광고부턴 삼성 갤럭시가 광고로 나오고 있다. 잠깐, 10:44초 쯤에 우주게이 히맨...?[67] 관련 기사

2015년 3월에는 무려 17년만에 자사의 휴대폰 광고가 아닌 삼성 공기청정기 블루스카이 광고를 내보냈으며[68], 2016년 8월쯤부터 갤럭시 노트7 광고가 나오다가...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로 9월 셋째주부터 갤럭시 S7의 시보가 다시 나온다. 그리고 갤노트7가 공식적으로 단종되면서 당분간 시보가 바뀌지는 않아보인다.

9 비판 : 예능데스크

kbs나 mbc나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이명박 정부 이전에는 방송위원회.)의 영향력하에 있으며 참여정부 이후로 지금까지 이쪽으로 정부측에 협조하는 낙하산 인사가 줄을잇게 되었다.[69] 그뒤 간판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정권어용방송이니 편파보도 채널이니 하는 비판이 잦았고 초장기 파업을 하게된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정말 나중에 가서는 이 무슨 개소리를 하는것인가 수준의 형편없는 보도까지 겹쳐지면서 예능데스크라는 타이틀을 얻게된다. 그러다 결국 2010년 11월 6일, 주말 뉴스데스크의 개편과 함께 드디어 최일구 앵커[70]가 직접 취재를 나서면서 예능 뉴스화되었다. 보통이면 NG 처리해야 할 장면이 그대로 나가는 것도 백미.

아래는 그 사례들. 그래도 이 분의 포스에 비할까

이 외에도 입이 얼어서 말이 끊긴다거나 바람에 두들겨 맞고 어버버거리는 등등. 이러한 사례로 붙은 별명이 예능데스크. 이에 대해서 '현장감을 살리는 좋은 방법이다', '딱딱한 뉴스를 부드럽게 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긍정적인 반응과 '뉴스 본연의 의미 전달보다 볼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뉴스가 아니라 예능처럼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링크 이렇게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와중에, 뉴스데스크는 예능데스크화 찬성론을 수그러드게 만드는 병크를 크게 한 건 터뜨린다.

2011년 4월 11일자 방송에는 대만으로부터 밀수된 불법 총기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해 비타500 드링크병으로 실험하면서 소녀시대유리를 표적지(?)로 삼아 헤드샷을 날리는 모습을 내보내 소덕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당시 뉴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소덕들이 다소 지나치게 반응했다는 반응도 일부 있는 듯. 아무리 봐도 위쪽 중앙 맞추고 병이 깨지면서 유리 얼굴 부분이 같이 깨지는 것 같은데 2011년 4월 19일자 방송에는 모델 김유리 자살에 대해 보도했는데 정작 사진은 미스코리아 김유리의 사진을 가지고 보도했다. 이젠 산사람까지 죽인다 예능의 끝장.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2011년 5월 15일 방송에는 각목 살인 사건을 여과없이 그대로 내보내 또다시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71] 그래도 이번에는 찔렸는지 클로징 멘트를 통해 공식 사과했다. 이는 결국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이 제기되어, 2011년 5월 19일에 방송법 위반 여부 심의에 들어간다고 한다. 관련기사. 결국 중징계가 내려졌다. 관련기사. 2011년 6월 11일 방송분에서 이용주 기자가 화생방훈련을 한 후 팬티만 입고 몸을 소독하는 장면이 여과없이 나와 화제가 되었다. 어째 한 달 간격으로 어그로를 끌어내려는 의지가 보이는 것 같다. 노이즈 마케팅?

2011년 7월 23일에는 최일구 앵커가 직접 징병신체검사를 체험했다. 30년 만에 다시 해보는 것이라는데 '현역입영판정'이 나오자 한군두 드립을 쳤다.(...) 2011년 7월 26일 방송에서는 권재홍 앵커가 방송도중에 진행을 중단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급작스럽게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라고 한다. 방송의 나머지 분량은 배현진 앵커가 홀로 진행했으며 방송 말미에 '권재홍 앵커가 갑자기 몸이 불편해져 후반부 뉴스를 혼자 진행했다. 양해 부탁드린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예능화 이후의 행보를 보면 뉴스가치와 중요도, 시의성 등에 따른 뉴스 질은 의문이 뒤따른다. 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에서 보여지듯 논조가 명확하지 못하거나 "이게 왜 힛갤?" "이게 왜 중요한데?" "이게 메인뉴스 기삿감인가?"싶은 내용이 보도되는 경우가 잦다. 비슷한 시간대에 방송되는 타 방송사 메인뉴스나, YTN같은 뉴스전문 채널의 뉴스 내용과 비교하면 사건의 본질, 시의성보다는 흥미성 위주로 뉴스를 선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러한 의문이 기자들 사이에서도 있었는지, 결국 2012년 1월 20일부터 기자들이 스스로 기사 제작을 거부, 사실상 파업을 시작했다.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뉴스데스크의 방송 분량은 10분까지 줄어든 상태. 이러한 파업사태는 결국 30일에 MBC 전반으로 확산되어 현재는 외주제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특별방송으로 땜질하고 있다. 한편, 파업에 돌입한 기자들은 2월 8일에 '제대로 뉴스데스크'라는 이름의 UCC 영상을 제작했는데, 기존 MBC 뉴스에선 볼 수 없었던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어, 높으신 분들의 일방적인 개입 때문에 뉴스가 흥미성 위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났다. 시청시 '불편한 진실' 주의

2012년 2월 5일에는 방송사고가 일어났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준비를 하는 정당들에 대한 기사를 보내는 과정에서 화면에 등장한 새누리당(한나라당)의 로고가 기존의 정상적인 로고가 아닌 패러디 로고였던 것.실수가 아닌듯 하다 그리고 2월 25일자 날씨 정보를 전하는데, 3.1절이 개천절로 잘못 나오는 방송사고가 벌어졌다.

MBC 파업이 시작된 이후 주 시청자들이 급격히 떨어져나가서 주말 뉴스데스크의 경우 1~2%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이건 뭐 종편도 아니고... 평일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시청률이 5~6%대로 파업전 KBS 뉴스9의 반 정도 수준에서 1/4수준까지 낮아졌다. 2012년 5월 17일 권재홍 앵커가 노조원들에 의해 신체적 충격을 받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앵커직에서 당분간 물러나겠다는 보도를 내보냈지만 바로 다음날 노조측이 동영상 원본을 공개하면서 허위로 드러나게 되자, 권재홍 앵커측이 신체적 충격은 받지 않았으나 정신적 충격으로 입원했다고 말을 바꾸면서 그렇게 심약해서 어떻게 앵커자리에 있었냐고 비웃음을 당하고 있었다.[72]

12일 뒤 뉴스데스크 복귀하고, 별무리 없이 잘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허리우드 액션"이라는 바아냥을 들었다. 이후 7월 MBC 노조가 파업을 끝내면서 다시 정상화(?)되던가 싶었지만, 27일자 방송에서 올림픽 응원현장을 생중계를 한다면서 "서울의 한 기업" 사무실 모습을 중계했든데 그 "기업의 사무실"이 MBC 뉴미디어 뉴스국이었다는게 MBC 노조의 폭로에 의해 들통나면서 판단착오에 의했다며 하라는 사과는 안하고 다시보기만 삭제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그리고 검증 안된 내용의 정치성 방송을 계속하여 2012년 10월 23일에 선거방송심의회의 경고 조치도 받았다. 링크

평일 시간대가 저녁 8시로 변경된 직후에는 자막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같은 방송사 모프로에서 팀킬 당했다. 그 이후에는 별 관심을 받고 있지 않았다가 알통 굵기가 정치 신념 좌우한다는 주장을 해서 비웃음을 샀다. 2013년 2월 11일, 양육권 소송에 대한 보도를 하면서 하프 라이프시리즈의 등장인물이자 게리 모드에서 많이 쓰이는 모델들인 주디스 모스맨G맨어머니와 아버지로 등장시켰다.진정한 예능데스크의 귀환[73]

2013년 10월 8일에는 비오는 날에는 소시지빵이 잘 팔린다는 생활뉴스 기사까지 나오면서 MBC 뉴스의 수준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2013년 12월 18일에는 김정은 눈썹 왜 밀었나?라는 보도를 주요 뉴스로 내보내 "MBC 뷰티데스크", "겟 잇 뷰티"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2014년 2월 6일에는 폭력게임, 혈압 오르고 비만 부른다.라는 보도를 내보내 폭력성 시험에 이어 게임을 또 비하했다.

헌데 자기들이 게임 산업을 비판하는 뉴스를 내보냈으면서 "게임 한류 이대로 무너지나"라는 기사를 내보내 마치 자아분열을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태도를 고친건지는 불명이지만 네티즌들에겐 "그렇게 게임 죽여놓고 이제와서 숟가락 얹으려고?" 같은 식으로 또 까이고 있다(…). 사실 너무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 카더라

2015년 5월 5일, 러시아의 승리의 날에 대해 소개하면서 Soviet March걸즈 & 판처 버전 카츄샤(...)를 BGM으로 하여 유튜브에 올라온 2014년 퍼레이드 영상을 짜깁기했다.[74] 당연히 밀덕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련 군가도 아닌 미제 자본주의의 돼지들이 만든 노래를...

10 데스크 영상

뉴스를 모두 전한 후 날씨 정보를 소개하기 이전에 잠깐 나오는 영상. BGM과 함께 주로 풍경 등이 나온다. 지역 방송에서 하는 로컬뉴스를 끝낸 뒤의 싱크를 맞추기 위해 틀었으나, 현재는 스포츠뉴스 오프닝으로 대체하고 있다. 보통 TV 프로그램들처럼 배경음악으로 각종 애니메이션·게임음악이 깔릴 때가 있다. 2009년 4월 23일에는 애니메이션 가정교사 히트맨 REBORN!에서 사와다 츠나요시하이퍼 츠나로 각성할 때 나오는 테마곡인 『츠나 각성』이 나왔다. 일명 옹기각성.

2010년 1월 26일에 잔혹한 천사의 테제의 피아노곡, 즉 TV판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전설적 엔딩(오메데또~)에 깔린 그 음악을 깔아줬다. OST에서의 곡명은 Good, or Don't Be. 참고로 이 영상의 한 장면에 나온 요술봉은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에 나오는 스파이럴 하트 문 로드다. 본격_영상에_나온_벽화관련_사람도_덕후.jpg 2010년 11월 4일, 2010년 11월 26일, 2010년 12월 28일에는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마을 중 리스항구 BGM이 나왔다. 각각 햇살에 물든 하루, 바람과의 대화, 눈온 뒤의 산책.

11 20년 뉴스 보기

인터넷 MBC 뉴스 사이트인 IMNEWS에서 2006년에 그 때 그 뉴스라고 해서 20년 전의 뉴스를 선별해서 보여주다가 워낙 반응이 좋았는지 2007년부터는 20년 뉴스라는 컨셉으로 1987년 2월 3일자부터 순차적으로 업데이트를 시작, 현재는 대부분의 자료가 업데이트되어 있다. 다만 1회 지방선거, 15대 총선, 15대 대선 자료 등 일부 자료들은 소실이라도 있었는지 빠져있는 상태.[75] 이는 국내 방송사상 엄청난 업적이라 할 수 있으며, 20여 년 전의 뉴스를 거의 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역사 자료이며 동시에 방송오덕에게 즐거움을 안겨주기도 하다. 게다가 소스 보기를 통해 직접 URL을 따내서 틀어보면 광고가 붙어있거나 로고송을 들을수 있는 경우도 있어서 1980년대 후반, 1990년대의 우리나라 방송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래저래 위대한 업적. 수신료 받아먹는 옆 방송국도 본받아으면 좋겠는데...

이 '20년 뉴스' 업데이트는 최일구 前 앵커가 MBC 인터넷 뉴스부(IMNEWS) 부장 시절에 만든 작품이다. 그런데 시청자 게시판에 달린 답변을 보면 그 이전 자료나 타 뉴스프로그램도 업데이트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듯한데 왜인지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 상황(...). 그래서 땡전뉴스 시절의 자료가 조금 부실하다. 해당 항목에 서술되어 있지만 1987년 이전 자료를 보고 싶다면 MBC C&I에서 한 편당 33,000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하고 사서 봐야 한다(...). 현재는 뉴스데스크 다시보기와 통합되었다.

1994년 이전 자료는 화질이 영 아닌 것으로 보인다. 타임머신 코리아라는 유튜브 계정이 올리는 MBC 뉴스 동영상의 화질은 본가인 IMNEWS에 올려진 동영상보다도 좋다.

12 기타

리그베다 위키[76]에서 작성되었던 뉴스 프로그램 중에서 제일 먼저 작성되었다.

보면 알겠지만 여태껏 꽤나 많은 필수요소를 만들어(?) 냈다.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다 죽게 생겼다 이놈들아의 원본 소스가 여기 출신이고, 내귀에 도청장치, 이 차는 이제 제 겁니다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 같은 유행어도 여기서 나왔다(…). 심지어 최일구 앵커 같이 존재 자체가 필수요소인 사람 도 여기 출신이다. 이쯤되면 왠만한 예능 프로그램 못지 않은 필수요소 제조 프로그램이다

2010년 10월 5일에 뉴스데스크 40주년을 맞아 뉴스데스크 40주년 기념 방송을 했다. 역대 뉴스데스크 앵커를 한자리에 모아 토크쇼 형식으로 방송했다. 이런 자리에 나오기 어려울 법한 앵커들도 다수 출연했다. 앵커 뉴스데스크의 역사를 알려면 참고하기 좋은 영상이다. 인터넷에서 찾기 어려운 70년대 뉴스 자료 등도 나오니 참고하자. 11월 주말 뉴스데스크 홍보를 위해 자체광고를 찍었다.

40여년의 방송기간 동안 크고 작은 방송사고도 많았는데, 대표적인게 바로 내귀에 도청장치 사건(1988년 8월 4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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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 11일 뉴스에서는 성폭행을 당한 여대생이 유서를 쓰고 투신자살을 한 사건을 보도하면서, 정조관념이 희미해지는 요즘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의견을 덧붙인 적이 있다. '97년 당시에도 논란이 일 만한 주장이겠으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상 병크에 가까운 발언. 해당 기사 1999년에는 장비고장으로 화면이 잘 안나오는 방송사고가 나기도 했고, 앵커가 소개한 기사와는 다른 기사가 나오는 방송사고도 났다.

역대 앵커들 중 유명했던 사람으로는 하순봉(前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득렬(1939-2001, 前 MBC 사장 및 한국관광공사 사장), 강성구(前 MBC 사장 및 한나라당 국회의원, 내귀에 도청장치 사건 당시 앵커), 엄기영(前 MBC 사장, 국내 최장수 앵커), 정동영(국민의당 국회의원), 김은혜(前 대통령실 제2대변인), 신경민(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박영선(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손석희(JTBC 사장 겸 앵커), 이인용(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 팀장(사장대우)), 백지연(前 연세대학교 교수 및 MC, 최연소&최장수 여성 앵커), 박광온(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이 있다. 후덜덜하다. 이처럼 정계에 진출했거나 한때나마 정계에 몸을 담은적 있는 인사들이 꽤 있다보니 작성금지된 인물도 있다.

2014년 마지막 날에 지상파 메인뉴스 중 앵커가 바뀌지 않은 프로이기도 하다. 물론 현 앵커가 2014년 5월부터 진행을 맡아서 1년 정도는 채울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런데 다들 이전에는 뉴스데스크를 진행하긴 했다. 그리고 12월 31일 클로징에서 박용찬 앵커는 새해 관련된 언급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수요일(...) 뉴스데스크 마치겠습니다"로 끝냈다. 상암동 이전 당시에는 다음주부터 상암동에서 진행한다는 소리는 했는데 왜 새해 첫날은 무시하니 10년 전인 2004년엔 엄기영 앵커가 "네, 지난 한 해 모두 힘들었던 만큼 이제 우리가 어느 길로 가야하는가 분명해졌습니다. (중략) 네, 2004년이 마저 가는 날 밤 MBC 뉴스데스크 여기서 모두 마칩니다." 라고 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도 2015년 새해엔 다행히도 전통에 맞게 야외에서 진행했다 하지만 클로징 멘트 형식은 변하지 않았다

주요뉴스 관련 변천사를 보러갈 사람은 리그베다 위키뉴스데스크 문서를 참조하길 바란다(...). 본래 포크하면서 이곳에도 존재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미지가 모두 소실되어 그냥 없어졌다. 참고로 리그베다의 해당 문서는 2015년 4월 13일, 다시 말해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 이후부터 수정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여담으로 MBC 뉴스데스크에는 애완동물, 반려동물과 관련된 뉴스기사가 지상파 뉴스에서는 종종 보도되기도 한다. 타 방송사 뉴스들도 마찬가지의 사정이 있다. (다만 종편, OBS, EBS 등 일부는 제외)

13 관련 문서병크

14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

15 같이 보기

  1. 사실은 news desk라는 단어가 영어사전에 따로 있다. 신문사 혹은 방송사의 뉴스 담당 부서라는 뜻인데 이를 참고해서 타이틀을 지은 듯 하다.
  2. TV 기준. 역사는 뉴스의 광장이 4년 더 앞섰다.(뉴스의 광장 : 1966년 신설, 뉴스데스크 : 1970년 신설)
  3. 2016년 9월 25일까지는 MBC 표준FM에서도 수중계되었다.(참고)
  4. 이 시기부터 MBC 뉴스센터뉴스 프로그램으로 전환되었다.
  5. 1970년대에는 늦어도 밤 11시에는 방송 송출이 끝났다. 이유는 야간통행금지 시간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6. 예전에는 장음 표기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동시기의 대한뉴스를 대한뉴우스나 대한늬우스로 불렀던 것을 생각하면 된다.
  7. 이는 시간대 별로 프로그램을 다르게 하라는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당연히 때가 때였으니 만큼(...) 이 지시에 따라 저녁 6시에 어린이 프로그램, 7시에 가족 프로그램, 8시에 드라마와 캠페인 9시에 보도 프로그램, 그 이후엔 오락 프로그램이 편성되었다. 하지만 방송사 별로 편성을 달리하라는 지시가 따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동일 시간대에 비슷한 성격의 프로그램이 편성되는 부작용이 심해졌다.
  8. 이 타이틀은 현재 MBC 표준FM 오후 2시 뉴스의 타이틀로 쓰이고 있다. 반면 '뉴스라인'은 동시간대에 방송되는 SBS 러브FM 오후 2시 뉴스의 타이틀로 쓰였다.
  9. 동양방송의 메인뉴스 프로그램인 'TBC 석간'이 뉴스라는 타이틀을 쓰지 않았다.
  10. 지금으로 친다면 원더걸스를 깜작소녀, 빅뱅을 우주대폭발, 크라잉 넛을 울보짓는 건과류(또는 우는 땅콩), 써니를 햇빛, 슈퍼주니어를 초우량아, 티아라를 왕관, 걸스데이를 소녀들의 날로 억지로 이름을 바꾼 것이라고 할 수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럴 땐 편하겠다
  11. 패티 김은 어느 방송사에선 패티 김으로 다른 방송사에선 본명인 김혜자로 활동해야만 했다.
  12. 29만원 이후 외래어에 대한 규제가 서서히 풀려가긴 했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영어로 된 문구가 나오면 반드시 조그맣게나마 한글 발음과 뜻을 병기해야 할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외래어에 대한 거부감은 매우 심한 편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미 80년대에 외국도 아닌 자국 광고에서 영어로 I feel Coke식의 문구를 남발하고 심지어 공영방송사 심야뉴스에서마저 외국인 목소리와 함께 Midnight Journal이라는 영어제목을 썼을 정도로 외국어, 외래어에 대해 관대한 일본과는 매우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13. 당시 앵커는 김주하 앵커. 주말 뉴스를 단독 진행했다. 김주하 앵커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꽤 오랫동안 평일 앵커를 맡은 경력이 있다.
  14. 여성 앵커 단독진행은 1988년 KBS 9 뉴스에서 먼저 시작한 바가 있다. 이 때 당시 앵커가 바로 신은경. 1989년 8월 25일 추성춘 앵커가 몸이 불편해 자리를 비워 백지연 앵커의 단독 진행이 성사될 뻔했으나 얼마 못가 추성춘 앵커가 복귀했다.여기 참고.
  15. 이후 KBS 미디어 포커스와 생방송 시사투나잇에서도 시사 애니메이션이 코너로 방영된 바 있다.
  16. 사실 이쪽은 MBC 파업으로 시청률이 떨어질 때로 떨어진 걸 최대한 살려내려고(...) 만든 코너 중 하나이다. 2012년 뉴스데스크를 잘 보면 상당히 많고 다양한 듣보잡 코너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중에는 고작 하루만 방송되고 폐지된 것도 있다. 파업이 끝난 후에는 '집중취재'나 '현장M출동'(2011년 6월 1일부로 신설된 '카메라출동'의 후속이라고 볼 수 있다)이 두 편씩 방송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17. 당시에는 구 조선총독부 청사였다.
  18. 물론 1980년대 당시엔 이른바 땡전뉴스를 한건 마찬가지였긴 했다(...).
  19. 내귀에 도청장치사건 26주년이 되는 날이다.
  20. 1분 44초 부터
  21. 심지어 뉴스 PR 광고도 베껴쓴 흔적이 보인다. 이건 BBC WN, 이건 MBC
  22. 여기도 나머지 다 아시는 분은 추가바람.
  23. 카페에 회원가입이 필요하다.
  24. 1981년 초에는 정병수 앵커와 하루씩 번갈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25. 1981년 초에 이득렬 앵커와 하루씩 번갈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26. 이후 MBC 보도국장으로 승진하기도 했다.(1995 ~ 1996년 뉴스데스크 CP 역임)
  27. 2008년 사장 승진과 동시에 하차했다.
  28. 권재홍 기자의 휴가, 해외 출장으로 인하여, 2011년 1월 3일 ~ 1월 7일, 2011년 5월 16일 ~ 5월 20일, 2012년 1월 2일 ~ 1월 6일 방송분은 최일구 기자, 2011년 8월 1일 ~ 8월 12일, 2011년 12월 1일 ~ 12월 2일, 2012년 1월 9일 ~ 1월 13일 방송분은 김세용 기자, 2012년 5월17일 ~ 5월 18일 방송분은 정연국 기자, 2012년 5월 21일 ~ 5월 25일 방송분은 황헌 기자, 2012년 7월 17일 방송분은 최대현 아나운서, 2012년 8월 8일 ~ 8월 17일, 2012년 10월 17일 ~ 10월 26일, 2013년 1월 30일 ~ 2월 1일, 2013년 6월 12일 ~ 6월 21일, 2013년 10월 24일 ~ 10월 25일 방송분은 박용찬 기자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2013년 부사장 승진과 동시에 하차했다.
  29. 이정민 아나운서의 휴가, 해외 출장으로 인하여, 2011년 1월 3일 ~ 1월 7일 방송분은 배현진 기자(前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30. 14년 8월부터 기자로 보직을 변경했으며, 배현진 기자(前 아나운서)의 휴가, 해외 출장으로 인하여, 2012년 9월 17일 ~ 9월 21일 방송분은 양승은 아나운서가 2013년 4월 8일 ~ 5월 17일 방송분은 김소영 아나운서가 2015년 10월 5일 ~ 10월 9일, 2016년 7월 4일 ~ 7월 8일 방송분은 이정민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31. 이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여 국회의원이 된다.
  32. 2005년 송년특집 및 2006년 신년특집 방송으로 인하여, 2005년 12월 31일 ~ 2006년 1월 1일 방송분은 평일 앵커인 엄기영 기자가 진행했으며, 2006 독일월드컵 특집 방송으로 인하여 2006년 6월 3일 ~ 6월 25일 방송분은 김연국 기자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33. 왕종명 기자의 휴가, 해외 출장으로 인하여, 2010년 3월 6일 ~ 3월 21일, 2010년 4월 3일 ~ 4월 4일 방송분은 박경추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으며, 2010년 3월 27일 ~ 2010년 3월 28일 방송분은 권순표 기자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34. 박상권 기자의 휴가, 해외 출장으로 인하여, 2015년 4월 25일 ~ 4월 26일 방송분은 박용찬 기자가 대신 임시 진행했으며, 2016년 6월 25일 ~ 6월 26일 방송분은 이상현 기자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35. 2006 독일월드컵 특집 방송으로 인하여 2006년 6월 3일 ~ 6월 25일 방송분은 차미연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으며, 서현진 아나운서의 휴가, 해외 출장으로 인하여 2006년 10월 7일 ~ 10월 8일 방송분은 박혜진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36. 여성 최초로 단독으로 진행했다. 현재 MBN 뉴스 8에서도 단독 진행 중이다.
  37. 이정민 아나운서의 휴가, 해외 출장으로 인하여, 2014년 10월 18일 ~ 10월 19일, 2015년 12월 5일 ~ 12월 6일 방송분은 배현진 기자(前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38. 이는 SBS 8 뉴스도 마찬가지인데 왜 편성표에는 시작 시간이 다른 이유는 불명.
  39. 후배 폭행 사건으로 인해 영구제명 되기 직전까지 맡았으며, 당시 본명인 박지훈으로 활동했다.
  40. 2000년부터 2001년까지도 앵커가 맡았다.
  41. 1988년 중~1996년 중에는 헤드라인을 보내지 않았다.
  42. 2000년 12월 29일까지는 '오늘의 경제동향'이라고 내보냈다.
  43. 단, 뉴스데스크 한정으로 뉴스투데이, 이브닝 뉴스에서는 기존 시그널을 사용 중이고, 역사와 전통의 뉴스데스크 시그널도 일반뉴스에 적용된다.
  44. 단, 직접적인 후속은 아니다. 이전에 2008년 전후로 '현장출동'이라는 코너 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45. 국어책 읽기식 전달 때문에 시청자게시판에 항의가 꽤 들어온 아나운서로 알려져 있다. 이에 게시판 운영자는 "애정어린 질책 감사합니다"로 일관하다가 2016년 가을부터는 그마저도 나오지 않는다.
  46. 이 영상의 제목이 'MBC Newsdesk 1977 Opening'인데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영상은 1977년도 것이 아니라 1980년의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첫 소식이 '개헌안 곧 확정'인 것을 볼 때 7차 개헌(유신개헌, 1972년), 8차 개헌(제5공화국 헌법, 1980년) 둘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1977년에 우리나라는 개헌하지 않았다.) 그런데 1972년에는 타이틀이 '뉴스의 현장'이 아닌 '뉴우스데스크'였고, 하순봉 앵커가 진행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1980년이라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47. 이 영상은 1981년 3월 31일자 뉴스데스크의 오프닝이다. 이 날짜의 뉴스 영상은 MBC C&I에서 구입해야만 볼 수 있는데, 원본 영상과 이 영상을 비교해보면, 이 영상은 원본의 앞부분이 짤려서 음성을 덧입혀 합성한 영상임을 알 수 있다. 애초에 1991년에 방송된 영상이니 뭐... 이 때부터 1988년 초까지 일본 후지TV(FNN)의 뉴스 시그널 앞부분을 차용해 썼다. MBC와 후지테레비는 현재도 뉴스 제작협력 관계에 있다.
  48. 오프닝에서부터 주요뉴스, 광고도 볼 수 있다.
  49. 원래는 1986년이라 되어 있었으나, 앵커가 이득렬이 아닌 강성구라는 점과 카메라 구도를 볼 때 1987년임을 알 수 있다. 1986년부터 1987년 4월까지 오프닝 카메라 구도는 앵커를 중심으로 천천히 돌아가는 것이었고, 강성구 앵커로 교체된 1987년 5월부터 이 영상에서처럼 앵커에서 멀어지는 카메라 구도가 사용되었다. 1987년 4월까지 사용된 카메라 구도는 주말 한정으로 그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50. 타이틀 음악 어레인지와 함께 타이틀 로고도 변경 되었다. 평일판 오프닝은 푸른 색 계열이 사용되었고 주말판은 노란색 계열이 사용되어 나온다. 이 시기부터가 8시 뉴스데스크가 강조되었으며 오프닝 중에서도 8 글자가 여러 번 나타나고, 뉴스 도중에 왼쪽 상단(2013년 8월 이후로는 우측 하단)에는 대놓고 8자가 나타나 있다.
  51. 2013년 2월부터 쓰던 오프닝을 수정했는데 타이틀 로고가 황금색으로 나오며 11월 부터 도입된 "8"마크(8시 시계바늘모양을 상징하는 원호 안에 8)이 강조되었다. 참고로 저 8마크는 11월 17일부터 도입됐는데 오프닝에서는 12월부터 사용한 것이다.
  52. 위의 오프닝 영상 링크 목록 중 1982년 것 참고. 상술했지만 위에 링크된 1981년 오프닝 영상 속 시그널이 짧은 버전인 이유는 합성이기 때문이다. 원본 영상에선 긴 버전이 나온다.
  53. 위의 오프닝 영상 링크 목록 중 1987년 것 참고. 이 시그널 음악은 여기는 MBC, MBC 생활뉴스, 'MBC 스포츠뉴스'에도 사용되었다.
  54. SBS의 경우에는 반대로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주말 8시 뉴스(당시에는 SBS 뉴스 2000 - SBS 뉴스 Q) 오프닝 중간 부분에 주요뉴스가 삽입되었지만 1998년 하반기부터 종전대로 주요뉴스가 광고 뒤에 삽입되게 되었다.
  55. 1997년 예고방송 유튜브 자료도 있었는데 현재는 모종의 사정으로 해당 게시자의 아이디가 막힌 상태. 아니, 지금 저 링크도 막혔다...
  56. 동영상에서 보듯 시그널과 함께 나오는 서울의 밤 배경은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낸다. 밤 배경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제공자막과 함께 보여주었다.
  57. 2초 시보이다. 이 형태의 시보는 1982년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당시 MBC 라디오에서도 이런 시보를 사용했다. 참고로 이 시보가 끝나고 MBC 뉴스센터가 방송되었다.
  58. 정확히 확인 바람.
  59. 이 시보음은 MBC 표준FM에서 20년 넘어서 아직도 쓰이고 있다. 시보음을 듣기 위해서는 라디오로 직접 들어야한다. 다만 MBC mini에서는 저 시보음이 짤린다(…). 또한 청주지역 표준FM에서 앞 부분이 약간 짤린다(...).
  60. 다만 그 때도 라디오에서는 새로운 시보음이 쓰이고 있었다.
  61. 이 시보음을 쓴 이유는 IMF 외환위기의 여파인 것 같다... 참고로 외환위기는 같은 해 12월에 일어났다. 이 시보음을 쓴 이유가 있으면 추가 바람 또는 수정 바람.
  62. 시보-오프닝-주요뉴스-앵커 멘트-제공 슬라이드-광고-본 방송 순서였다.
  63. 1985년 2월 12일에는 오프닝 이전에 8시 시보를 했다. 총선 개표 방송이라 그런 것으로 보인다.
  64. 이는 MBC 아카이브에서 공개한 뉴스데스크 영상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65. 뉴스데스크뿐 아니라 뉴스센터에도 시보는 있었다. 다만 인터넷에는 안 나올 뿐.
  66. 그도 그럴 것이 평일과 주말 뉴스데스크의 시작시간이 서로 다르던 시절에는 형식은 똑같고 다른 거라고는 시계와 9시 뉴스가 8시 뉴스로 표기되는 것만 바뀌었기 때문에 동영상 제작자 입장에서 이를 일일이 반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67. 4 Non Blondes의 What's up?이다.
  68. 2015년 8월 15일 광복 70주년 특집 뉴스데스크에는 삼성 UHD TV 시보가 나왔다.
  69. 참고로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명박 정권에서 정보통신부를 폐지하고 만든 것으로 이전에는 방송위원회가 따로 있었고 심의 위원회 이름도 방송심의위원회였다.
  70. 이전에도 2003년-2005년 주말 뉴스를 맡았던 적이 있었는데 도발적인 클로징 멘트로 인해 이미 '최일구어록'으로 이슈화 되었던 앵커다.
  71. 가해자가 피해자를 때리고 그 후 피해자가 경련을 일으키는 영상.
  72. 참고로 권재홍 앵커는 1981년도 MBC 기자로 입사하고, 1996년 11월에 처음으로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은 베테랑이다.
  73. 참고로 네이버 뉴스 댓글이 가관인데, 게리 모드만 접해보고 하프 라이프나 팀 포트리스 2 등은 접해보지 못한 초딩들이 스팀에 신고한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거기가 아닌데
  74. 26초부터 소비에트 마치가 작은 소리로 깔리며, 걸판 버전 카츄샤는 링크 영상의 3분 15초부터 나온다. 3분 46초부터는 현대의 전승기념일 행사 장면에 소비에트 마치가 대놓고 나온다. 제목만 보고 소련/러시아의 합창곡 정도로 착각한 모양이지만, 걸판 버전 카츄샤도 있는 것으로 보아 덕이 많으신 분이 삽입했을 가능성이 있다.
  75. 소실이라기 보다는 당일 뉴스데스크 편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당시 신문에 게재된 TV편성표 상에는 당일 뉴스데스크 편성이 안되어 있었음.
  76. 나무위키 데이터베이스는 모두 리그베다에서 따왔으니, 작성도 모두 동일하게 되었다
  77. 평일에는 저녁 8시 15분, 주말에는 저녁 8시에 편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