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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Budd Dwyer (1939년 11월 21일 – 1987년 1월 22일)
흔히 맨 앞의 로버트는 생략하고 버드 드와이어라 부른다.
1 생애
미국 공화당에 속했던 정치가이며, 1971년부터 1981년까지 펜실베이니아 주의 상원의원(한국의 광역자치단체의원과 같은 개념.)을 역임하고1981년부터 1987년까지 펜실베이니아 주의 재무장관을 역임한, 아내와 두 아이를 둔 평범한 가장이기도 했다.
물론 여기까지만 썼다면 그냥 그런 미국의 평범한 정치인이라고 생각되겠으나...
2 죽음
그럼에도 버드 드와이어를 소개하는 이유는 그의 엽기적인 최후 때문이다.
1986년, 드와이어는 계약 관련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1] 혐의까지 입증된 상황이었다. 만약 판결을 받았다면 징역 55년(버드 드와이어가 당시 만 나이로 47세이고, 한국식 나이로 49세였다. 사실상 무기징역)에 추징금 30만 달러(2015년 기준으로 약 3억 3천만원 당시 기준으로라면 10억원에 가까운 금액)가 부과될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그의 정치적 인생이, 아니 그의 인생 자체가 아예 끝날 지경.
사족으로 이 혐의라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당시 펜실베이니아 주의 연방 공무원들은 연방보험료법(Federal Insurance Contributions Act 약칭 FICA)에 의해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수백만 달러의 세금을 더 낸 사실이 밝혀져서 결국 그 세금을 모두 환급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주관할 회계 법인을 입찰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 법인이 버드 드와이어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넸다는 것이 혐의의 주 내용.
당연히 본인은 혐의를 줄기차게 부인했으며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에게 서한으로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결국 법원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고(형량은 위에 기술된 징역 55년에 추징금 30만 달러) 최종심 판결 확정 전날인 1987년 1월 22일 아침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곳에는 TV촬영과 사진촬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드와이어는 준비된 글을 읽다가 갑자기 중단하고 측근들에게 편지를 나눠주었다. 그 편지는 세 가지였는데 하나는 자신의 아내에게 보내는 유서였고, 하나는 장기기증 관련 및[2] 기타 자료, 나머지 하나는 당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자살 직전의 기자회견 영상. 자살 장면은 나오지 않으니 걱정은 안해도 된다.대신 영어의 압박 다만 영상 종료 후 뜨는 관련 동영상에 자살 장면을 보여주는 영상이 있으니 필히 해당 동영상만 보는 걸 추천한다.
그 편지를 준 다음 드와이어는, 노란색 계통의 마닐라지 봉투를 들고 거기에 든 것을 꺼냈다. 그것은 다름아닌 권총이었다.[3] 그 때까지만 해도 평온하던 회견장은 당연하게도 아수라장이 되었고, 주위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드와이어는 "불쾌하시다면 방을 나가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진정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정작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며 설득하자 드와이어는 손을 내저으며 자신을 말리지 말라고 했고, 바로 총구를 구개(입천장)에 조준하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다. 버드 드와이어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여 쓰러졌고, 주위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채 패닉 상태에 빠져 버리면서 현장은 말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4]
자살 직전의 모습. 이 모습 이후 5초도 채 지나지 않아 드와이어는 자살하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자회견이 생중계되어 전국에 방송을 탔다는 것이다!![5] 당연히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6] 너무 충격적인 탓에 한국에도 다음날 신문에 보도되었다.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자신의 고향에 묻혔다고 한다.
3 논란, 그리고 진실
드와이어가 아직 파직당하기 전이라 가족들에게 128만 달러(2015년 기준으로 약 14억. 저 당시 물가에 적용하면 30억은 넘는 돈이다.)의 보상금이 돌아갔다고 한다. 사실 이는 드와이어의 자살 사유와 연관이 깊어 보이는데, 드와이어는 재판 비용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고 있었으며 형이 확정되어 파직당하면 가족들이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되고 더더욱 곤궁해지기 때문에 자살이라는 선택을 했다는게 현재의 중론이다.
비록 드와이어가 뇌물 수수라는 중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가족을 위해 자살했다는 점은 다소 측은해보이기도 한다. 물론 미국은 공직자의 비리에 대해 엄격하기 때문에 천하의 개쌍놈이자 흑역사 취급을 받고 있었다. 죄에 대한 책임을 져도 모자랄 판에 결과적으로 100만 달러가 넘는 거금을 그것도 세금으로 유가족에게 바친 꼴이었으니.[7]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드와이어의 삶과 그의 뇌물 수수 여부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 Honest Man.
2010년에 방영된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Honest Man'에서는, 드와이어의 뇌물 수수 관련 증언을 했던 윌리엄 스미스가 고백하길 "사실 내 증언은 거짓말이었다. 나의 형량 조절(plea bargain)을 위해, 나는 드와이어가 비리를 저질렀다는 거짓 증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때문에 평생에 걸쳐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며 드와이어에게 죽을 때까지 미안할 것 같다는 고백을 했다.
또한 그와 같이 지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버드는 절대로 돈에 양심을 파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주 적은 돈이라도 낼 돈은 다 내야 직성이 풀렸다.'고 하며, 오히려 그런 강직함 때문에 같은 공화당 내에서도 그를 미워하고 따돌리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때문에 저 뇌물 수수 건은 그를 미워했던 다른 정치인들의 모함이라는 주장도 많다. 이 다큐의 영향으로 현재는 그에 대한 동정론도 많이 생겼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가 결백했다는 증거는 그의 사후 그와 관계된 사람들의 증언들 뿐, 이를 확인해줄 물질적인 증거는 오늘날까지 나오고 있지 않다. 당시 재판 과정에서는 그가 부패했다는 증거만 빼곡히 나올뿐 무죄라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많은 이들은 그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주장은 그냥 선동일 뿐 그는 유죄가 맞다고 주장한다. 수사가 아예 종결되었기 때문에 그가 무죄라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고 반론할 수도 있겠지만...
그와 동갑내기였던 부인 '조안'은 재혼하지 않고 살다가 2009년 70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의 아들과 딸은 2015년 현재도 생존해 있으며 위에 언급된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부인과의 인터뷰 역시 실려있다.
4 영향
록가수 커트 코베인은 자살하기 직전 드와이어의 자살 비디오를 몇 번이나 되돌려가며 감상했다고 한다.
가끔 유튜브 등지에서 버드의 자살 영상을 보고 반응하는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사람이 종종 발견되는데 보는 사람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줄 수 있고 그 전에 명백한 고인드립이니 생각이 있다면 보여주지도 보지도 말자.[8][9] 언사이클로피디아에서도 그의 자살도중의 사진을 합성한 짤이 걸려있는데 한국의 별세한 일부 정치인들처럼 서구권에서 굉장히 민감한 요소이므로 멋대로 다루었다간 욕먹을 수 있으니 삼가하자. [10]
5 대중매체에서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였던 만큼 대중매체에서도 소재로 다루어졌다.
1995년 인더스트리얼 락 밴드 필터가 이 사건을 주제로한 "Hey Man, Nice Shot"(어이 친구, 잘 쐈어)라는 곡을 냈다.
2010년에는 드와이어를 소재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왔다. 고리- ↑ 당시 주지사에게 익명의 메모로 제보가 들어왔다고 한다. 후술된 논란 부분을 본다면 어쩌면 정말 억울한 모함이었을지도..
- ↑ 그러나 안타깝게도 병원에 너무 늦게 도착해 각막 이외에는 모두 기증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 ↑ 스미스 & 웨슨 사의 모델 27로 357 매그넘 탄을 사용하는 모델이었다.
- ↑ 당시의 영상을 보면, 그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부터, 예기치 못한 상황에 패닉에 빠져 욕설을 내뱉는 사람도 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하라고 소리치는 목소리도 들린다.
- ↑ 게다가 이 날은 미국의 일부 지역에 폭설이 내려서 휴교한 학교가 많았다. 학교 안 가고 집에서 뭐 볼거 없나 하고 티비 채널을 돌리던 아해들은 이 장면을 보고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 ↑ 참고로, 1974년에도 크리스틴 처벅이라는 아나운서가 이런 생방송 자살을 일으켜 미국 전역을 뒤집어지게 한 적이 있었다. 자살 영상이 남아있었으나 유가족이 삭제를 요청했기 때문에 남아있지 않다. 구글링을 해보면 마지막 방송의 부분적 영상이 나오긴 한다.
- ↑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의 이름으로 구글링을 하면 고인드립성이 다분한 글이나 합성,그림등이 종종 보인다.
- ↑ 덧붙여 이걸로 담력을 테스트하거나 키운다는 핑계로 보려는 사람도 있을까봐 적어두는데 PTSD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런거 본다고 당신의 담력에는 하나도 영향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당신의 정신건강만 해칠 수 있다.
- ↑ 실제로 이 반응 영상들의 댓글들을 보면 하나같이 찍은 놈은 소시오패스니 저런 놈은 씨를 뿌리지 말아야 한다느니 하는 비난 일색이며 비추천이 추천의 10배를 넘어간다.
- ↑ 다른 일부 정치인들은 백번 천번 양보해서 고인드립이 나름대로의 비판점에서 유래되었다지만 이사람은 오히려 무고함에도 '위증으로 인해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 자살로까지 몰린 사람이다. 최소한의 고인드립의 정당성마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