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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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자살(自殺)은 생명체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는 행위를 말한다. 자진(自盡)이라고도 하며[1] 일본어에서는 자해라고도 한다. 현대로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법에 의해 국민의 자살을 금지하는 국가도 있다.처벌은 어떻게 할 껀데? 아마 가족들 정도에게 관리 소홀 정도로 벌금을 먹이지 않을까? 이란이슬람 율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나라들은 자살에 실패할 경우 사형 등으로 엄격히 처벌하는데 대략 십수층 높이의 구조물에서 떨어뜨려 죽이는 등의 형벌이 있다. 자살을 실패하니 대신 죽여준다 자살을 죄악시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에서도 발견되는 현상.

대한민국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가 됐고, 2012년 통계에서는 그마저도 OECD 평균에 비해 2.6배 높은 1등이다. 즉 OECD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자살률 1, 2위를 넘나들고 있으며 올해로 12년째 1위가 될 추세다. 이에따라 한국에서는 자살에 관한 인지도가 높고 자살과 연관성을 갖는 안락사, 존엄사 등 토픽들을 의무교육기간 동안 다루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네이버와 같은 유명 포털 사이트에선 얼마나 자살이라는 단어의 검색이 많은지, 자살 이라는 단어를 자살 방조, 자살 방법 소개와 같은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여 검열하기 때문에 검색하는 사람들은 이를 피해 자아살, ㅈㅅ 등으로 우회하여 검색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범위만을 따지자면 자살은 현대로 올수록(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거주하는 사회가 조밀해질수록,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더욱더 정신적인 영역에서 탐구된다. 과거로 갈수록, 사회가 단순하고 지엽적일수록, 국민소득이 적을수록 인간의 자살은 물리적인 요인, 즉 빈곤, 기아등의 영향이컸던 반면 현대의 자살 요인은 외부 요인에 의한 개인의 심리적 변화,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교리, 자신의 철학에 크게 좌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의 자살은 국가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세계적인 논란 대상이다.

1.1 자살의 정의

자살 동향에 대해 전 세계적인 조사와 연구를 하는 세계보건기구는 1968년 다음과 같이 자살의 정의를 내렸다.

"자살이라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의지를 지니고 자신의 생명을 해쳐서 죽음이라는 결과에 이르는 자멸행위이다."

- 세계보건기구 -

즉, 자신의 죽음을 목적으로 행하는 경우에 자살인 것이다. 타인을 구하기 위해, 죽음이 예견되더라도 하는 경우인 희생과는 구분해야 한다. 이 국제기구는 자살미수에 대해서는 위장자살, 실험자살, 자살실패의 3가지로 분류했다.

한편 관련 학자들이 자살에 대해 내린 정의는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

"희생자 자신이 결과를 알면서도 적극적, 소극적 행동에 의해 직접, 또는 타인을 통해 행하는 죽음을 자살이라고 부른다."

- 뒤르켐(1897) -

"희생자 자신이 희생이 아니라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혹은 죽음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한 행위의 결과 일어나게 된 죽음을 모두 자살이라고 부른다."

- 알버크(1930) -

"자살은 삶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회적 의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명석한 인간이 행한 행위를 말한다."

- 아킬 델마(1932)-

"자살은 죽음을 수단이나 결과로 간주하여 자기 스스로 죽는 행위다."

- 드에(1947) -

"자살은 실존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방법을 주체의 자발적인 죽음에서 구하고 발견하는 행동이다."

- 바에슐러(1975) -

1.2 자살에 대한 어록

"죽을 때에 죽지 않도록 죽기 전에 죽어두어라. 그렇지 않으면 정말 죽어버린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

"어떠한 이에게는 서있는 것보다 앉아있는 것이 낫고 앉아있는 것보다는 눕는 것이 낫다. 또한 어떠한 이에게는 서있는 것이 앉아있는 것보다 낫고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

- 아랍 속담 (자살자들의 묘비에 즐겨 쓰임)

"본성이 우리에게 준 가장 훌륭한 선물은 삶으로부터 도망치게 내버려둔다는 점이다"

- 몽테뉴 -

"왜 사람들은 내가 존재하는 것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는데도 그 사회를 위해 일을 하며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사회 규약들을 지키기를 바라는 것일까? 사회는 상호 이익에 근거를 두고 세워진 것이지만 이 사회가 나에게 너무 짐이 될 때는 과연 누가 나로 하여금 이 사회를 스스로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2]

- 몽테스키외 -

"사회는 숙명을 넘어 온갖 종류의 물질적, 도덕적 불행을 낳는다. 그리고 죽음으로써 사회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처벌할 권리를 사회에 부여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 렌즈버그[3] -

"자신의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은 엄격한 영혼을 가졌다기보다는 오히려 본성이 감퇴된 것이 아닐까?"

- 샤토 브리앙 -

자살에 이르게 되는 동기는 989가지, 자살 방법은 83가지에 이른다.

- 1969년, 세계보건기구의 연구보고

"사람은 능숙하게 탈 배를 선택하고 편안하게 살 집을 고른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떠날 방법을 선택할 권리도 있지 않을까? 특히 죽음에 관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마련이다."

- 세네카(기원전 1세기) -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방법을 완벽하게 연구할 수는 없다."

- 스칸디나비아 격언

"자살하는 모든 사람들은 유죄"

- 드니 디드로 -

"잠이 좋다. 더 나은 것은 죽음이다. 아예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가장 좋았으리라."

- 하인리히 하이네 -

"자살 그것은 신이 인생의 온갖 형벌 중에서 인간에게 부과한 으뜸 가는 은혜다."

- T.리비우스 -

"가장 좋은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일은 커다란 위안이 된다. 그 생각으로 불쾌한 밤을 잘 지내게 된다."
"더 이상 자신있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당당하게 죽음을 택하라."
- 프리드리히 니체 -

"죽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일어날 수 없다."

- 월트 휘트먼 -

"죽음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 전에 겪게 되는 죽음에 대한 공포, 그것이다."[4]

- 바키리데스 -

"죽음은 단지 한순간의 고통이지만 삶은 기나긴 고통이다."

- 버나드 조지프 소린 -

"참으로 위대한 철학의 문제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을 괴로워하며 살 값어치가 있나 없나 하는 판단을 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기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살인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다. 그러나 삶에는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자살은 위대한 예술작품처럼 마음의 고요함 속에서 준비된다. 삶의 이유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확실한 죽음의 이유도 갖고 있다."
"자기 자신을 죽일 수 없는 한 사람은 인생에 관하여 침묵을 지켜야 한다."
- 알베르 카뮈 -

"자살하는 힘을 가진 자는 행복하다."

- 앨프리드 테니슨 -

"자살을 위한 타당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 사람은 시원찮은 사람이다."

- 에피쿠로스 -

"천재가 아니면 죽는 것이 낫다."

오토 바이닝거, 사인은 자살.

어떤 당나귀가 죽으면 자신의 비참한 운명이 마감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운명의 여신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나귀가 죽자 사람들은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었고 그 북을 마구 때리며 축제를 벌였다. 그리고 울려퍼지는 북소리에 맞춰 처녀들은 풀밭에서 즐겁게 춤을 추었다.
- 호세 호아킨 페르난데스 & 호세 로사스 모레노, 똑똑한 바보 中 <불행한 당나귀>

"면도칼은 아프고 강물은 축축하다. 산은 흉터를 남기고 약은 경련을 일으킨다. 총기 사용은 불법이고 올가미는 풀리며 가스는 냄새가 지독하다. 차라리 사는 것이 낫다."

- 도러시 파커 -

"인간은 자살할 권리가 있을까? 그렇다. 그의 죽음이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고 타인이 그에게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질때는 자살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저항하지도 않고 슬픔에 자신을 내맡겨버리는 것, 즉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것은 이기기도 전에 전투를 내팽개쳐버리는 것과 같다. 절망의 행위로서의 자살은 나태함일 수 있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어떤 면에서 자살은 비열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안이한 해결 방식임에 틀림없다. 나는 내가 내 자신을 죽일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파괴하는 것으로부터 아주 풍요로운 원천을 발견한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내가 자살하지 않을 때에만 유효한 것이다."

- 이마누엘 칸트 -

"사람은 자신이 갇힌 감옥의 문을 열고 달아날 권리가 없는 죄수이다. 그는 신이 부를 때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 플라톤 -

"자살하는 것은 세상에 진지한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 모리스 바레 -

"자살행위는 한번도 자살시도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과 앞으로도 결코 자살을 시도하지 않을 사람들에게만 공포를 준다."

- 베르나노스 -

"완벽한 행복이 어떤 것이든 간에, 종종 그가 때마침 할 수만 있다면 자살은 현자들의 권리이다."

- 카토 -

"사람들은 인간의 권리 안에 있는 또다른 권리를 잊어버린다. 자기 모순에 빠지거나 없어질 권리."

- 보들레르 -

"자살은 애수어린 한 편의 시이다. 감정을 죽인 채 늙을 때까지 생명을 연장하든가 열정의 순교를 받아들여 젊어서 죽기, 이것이 우리 삶의 숙명이다."

- 발자크 -

"자살은 친근하고도 기나긴 운명으로 준비된다. 자살은 문학적으로 가장 잘 준비되고 정교하게 손질된 종합적인 죽음이다."

- 바슐라르 -

"자살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살해의 욕구, 살해당하려는 욕구, 살려는 욕구."

- 메닝거 -

"인생에서 완전히 길을 잃고 희망마저 없을 때, 삶은 치욕이고 죽음은 의무가 된다. 최고로 불행한 순간은 집을 뛰쳐나올 수도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을 때이다. 야만인들은 결코 생각해내지 못하는 자살을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들은 실천한다."

- 볼테르 -

"죽음은 나의 고상한 친구들에게는 모호한 감옥의 종말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병이다. 그와 함께 조용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에게 말하라, 네가 행복한 동안 죽이라. 왜냐하면 제시간에 닥쳐오는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 페트라르크 -

"삶은 타인들의 의지에 달려 있으나, 죽음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 몽테뉴 -

"심장은 권총을 열망하고 목구멍은 면도날을 꿈꾼다."

- 마야코프스키 -

"인간에게는 세 가지 사건이 있다. 태어남, 삶, 죽음. 인간은 태어남은 느끼지 못하지만, 죽음으로 고통받고 삶은 잊어버린다."

- 부뤼에르 -

"사람은 태양도 죽음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 로슈푸코 -

"나는 미래를 증오한다. 미래는 나의 죽음을 포함하고 있다."

- 앙리오 -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는 동안 베르테르가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썼던 것과 같은 순간을 한번쯤은 가져야 한다."

- 괴테 -

"원하는 순간에 자살할 수 있는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하게 된다."

"원할 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살고 있다. 자살이라는 '가능성'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자살했을 것이다."
- 에밀 시오랑 -

〈자살〉

 
세 상 에 서 나 를 지 우 는 일.
완벽하게 지워도 지우개똥은 남는다.
지우개똥보다 오타로 얼룩진 인생이 낫다.
 
〈오타로 얼룩진 인생1〉[5]
사랑이 떠낫다. 내 생명이 떠낫다. 내 전부가 떠낫다. 사랑이 어떡게 변하니,
라고 말했던 그 사람이 떠낫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그 사람에 데한 기억뿐.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 나를 지우는 건데 그거또 죄일까.
 
맞다. 죄다. 당신이 지워지면 누군가가 당신을 못잊고 그리워할 것이다.
지금 당신처럼 기억을 지우지 못해 힘들어할 사람, 그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보라.
지금 머릿속에 한두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들이 바로 당신이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다. 인생을 놓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다.
 
〈오타로 얼룩진 인생 2〉
나는 태어날 대부터 가난했다. 단 한 번도 세상은 내게 기회를 주지 안앗다.
나는 늘 뒤에 아레에 서야 했다. 사람드리 먹고 남는 것만 머거야 했다. 사람드리 입고 남는 것만 입어야 했다.
이러케 오타로 얼룩진 인생을 지우는 거또 죄일까.
 
맞다. 죄다. 당신이 지워야 할 것은 기회를 주지 않은 세상, 다 먹고 다 입고 남은 것만 주는 세상이다.
당신은 지워질 사람이 아니라, 지우개를 들고 세상을 지워야 할 사람이다. 당신보다 오타가 많은 사람도 버젓이 자서전을 내는 세상에 분노하라. 분노는 당신이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다. 인생을 놓지 말아야 할 뜨거운 이유다.
 
〈참고 : 공동명의〉
내 생명의 주인은 누굴까?
나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내 생명은 공동명의다.
나와 내 가족과 친구들의 공동명의다.
나와 내 가족과 친구들의
도장을 다 받기 전에는
함부로 팔아치워서는 안된다.
 
〈반대어 : 다시〉
다음 더하기 시작.
 
아무리 딱 죽게 생긴 상황일지라도
다음이라는 기회가 있고,
다음이라는 기회를 살리는 방법으로 시작이 있다.
'다시'가 실패하는 경우를 위해
'또 다시'라는 용어도 준비되어 있다.

- 정철(카피라이터), 《불법사전》 中 -

인생이란 소설은 끝까지 가 보지 않으면 희극인지 비극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이 소설의 주인공인지, 조연인지도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처음 몇 쪽 읽고 별로라며 덮어 버리기에는 인생이란 소설에 흥미로운 구석이 너무나도 많다.

- 하지현,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中 '무너진 영혼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 : 자살' -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그것이 삶이니까.

- 김현(1942~1990, 문학평론가) -

"나는 여러분에게 내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할 것입니다... (중략) ...내 손이 난간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혼자 생각합니다. 오 신이시여, 제가 방금 무슨 짓을 했나요? 이 다리에서 떨어진 거의 모든 사람들, 그들은 그 순간 정확히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습니다. 갑자기 그들은 죽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었습니다."

- 금문교에서 뛰어내렸던 한 생존자, 2008년 증언록. R.J.Comer 재인용, p.255 -

"당신이 이 페이지를 읽는 것을 끝내기 전에, 미국에 있는 어떤 사람들은 자살을 시도할 것이다. 적어도 60명의 미국인이 내일 이 시간까지 자살할 것이다. 그 중 많은 수가 다시 자살을 시도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자살에 성공할 것이다."

- 슈나이드만 & 만델코른 (1983) -

죽기 전에 산 사람의 집단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극단적인 악이다.

- 세네카

2 자살의 원인

한국인의 삶과 죽음 그리고 자살 보통 자살을 하는 원인은 생활고나 실연 등이라고 한다. 전자의 경우 동반자나 가족의 생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후자의 경우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서인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다음에 매년 자살하는 학생이 꼭 한 두 명씩 있다. 심지어 1교시 국어영역 끝나고 쉬는 시간에 국어영역 시험을 잘 못 봤다고 비관한 학생이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는 기사가 매년 한두 개씩 꼭 나온다. 한국의 경우 10대의 자살원인은 주로 성적 지향[6][7], 학업, 왕따 관련 문제, 20대는 취업난, 연애 문제 관련, 30대부터는 생활고가 많다. 그리고 노년층 일부는 혼자 있는 것에 대한 극도의 외로움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은 사회적 환경의 엄청난 변화를 불과 몇십 년 만에 이룩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진 자살율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IMF 사태 이후로 극단적인 계층의 양극화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국가적 복지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대한민국 복지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던 전통적인 형태의 가정 복지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는 특히 자생적인 생활이 힘든 데다 살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노인세대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왔고, 그 결과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가진 세대가 되었으며 대한민국이 실질적인 자살 공화국이 된 큰 원인이 되었다. 또한 2000년대에 이르러서 많은 가계부채를 가지고 있거나 노후준비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살률이 늘어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는 군대에서도 많이 한다. 주된 원인은 악질 고참의 심한 괴롭힘이나 구타, 연인으로부터의 이별 통보 등이 많다. 한 해에 수백 명씩 자살한다는 통계도 있으나 대부분의 자살 사건은 바깥의 언론을 타지 못하고 군대 내부에서 묻힌다. 요즘은 거의 사라졌으나 196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군사정권 시절에는 구타로 인해 사망한 병사들이 자살했다고 유족에게 허위 통보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현재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퍼지다보니 자살시 시체를 방치해두고[8] 유족들이 올때까지 기다린 다음 같이 부검을 한다. 물론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최대한 이런 식으로 다소 과하다 싶을정도로 투명하게 처리하는 편. 가족들이 외진 곳에있는 부대에 빠르게 오기는 힘들다보니 시체의 부패도나 처참함이 굉장히 강하다.

유명인이 자살로 목숨을 끊으면 연쇄적으로 청소년 자살률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것을 베르테르 효과라 하는데 독일의 문호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자살을 하자 그 당시 젊은이들이 베르테르처럼 권총 자살을 한 데서 나왔다.

자살로 위장된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도 있고[9] 군대경찰서, 교도소 등은 폐쇄된 환경이기 때문에 자살로 처리되었으나 의혹이 남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의문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진화적으로 보자면, 오히려 자살은 포유류 중 영장목에 속하는 종들에게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형질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살은 진화적으로 많은 유전인자를 공유하는 타 개체의 생존확률을 높임으로 개체의 죽음을 유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현대에서의 자살의 원인이 다양해진 것으로 본다면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인류가 진화해온 환경에서 본다면 인류의 조상중 사회적으로 생활이 힘들거나(유전적 결여) 집단에서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파악될 경우 자살을 하는 것이 유전인자를 공유하는 타 개체의 생존확률을 높여주므로 이러한 자살의 형질이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3 자살에 관한 이론

자살에 대한 이론이 처음 나오기 시작한 19세기 이후 많은 다양한 학술적 견해가 나오고 있다. 19세기 초 정신의학 분야의 권위자였던 도미니크 에스키로르와 모로 드 토르 두 의사의 이론은 자살자들을 심신상실자로 보는 것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뒤를 이은 모리스 하루와치의 이론은 자살을 사회 정세를 반영하는 정신적인 트러블과 연결시켜 생각한 것이다.

19세기 말에는 근대사회학의 아버지 뒤르켐의 영향으로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도 개인적인 이유로 자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또 자살을 사회적 측면과 관련된 현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뒤르켐은 자살을 사회적 연대력 및 규제의 정도라는 기준에서 분류하고자 시도했으며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숙명적 자살의 4가지로 분류한 바 있다. 상세한 내용은 이하를 참조.

근래에는 철학정신분석학 덕분에 자살은 사회심리학적 현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살을 여러가지 범주로 나누고 있다. 여러 학파의 이론을 종합해보면 자발적인 죽음은 심한 우울로 인한 자살, 병적 자살, 보복적 자살, 안정된 상태에서의 자살, 이기적 자살, 의무적인 이타적 자살, 편집광적 자살, 충동적 자살, 운명론적 자살, 영웅적 자살, 적극적 자살, 소극적 자살, 이론적 자살, 열광적 자살, 망상적 자살, 혼돈 상태에서의 자살, 살인 청부업자에 의한 자살, 희생적 자살, 유희로서의 자살, 전략적 자살, 경계반응적 자살 등으로 분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자살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정확히 판단하기가 어렵다. 다음에서 소개하는 자살에 대한 정의들은 모두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3.1 에밀 뒤르켐의 저서 《자살론》

프랑스의 범죄학자이자 사회학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그의 저서 《자살론》을 통해 자살의 원인 및 유형을 4가지로 나눈 바 있다. 혹시라도 범죄학이나 형사정책 등의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이나 사법시험 선택과목으로 형사정책을 선택한 고시생은 잘 알아두기 바란다. 시험에 나온다.


* 이기주의적 자살
사회적 연대력이 약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자살. 과도한 개인주의가 원인으로 꼽힌다. 이들이 자살하는 것은 외로움과 같은 타인과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 때문이다.
* 이타적 자살
사회적 연대력이 강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자살. 예를 들어 자폭 테러, 순장, 정절을 지키기 위한 과부의 자살(그 이후에 열녀문이 세워지기도 한다[10]), 카미카제[11] 등. 사이비 종교에서 강요하는 자살과, 종교적 논리로 미화된, 불교소신공양, 자이나교의 종교적인 의지의 단식으로 유발된 고의적 아사를 하는 것도 이것으로 볼 수 있다.
* 아노미적 자살
무규제(normlessness) 상태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자살. 사람은 규제와 억압이 적절한 상태로 존재할 때 비로소 편안함과 확실함을 느끼며, 그 반대의 경우 불안과 스트레스를 호소하게 된다고 본다. 즉 사회적으로 규제가 너무 약할 경우의 자살을 다룬다. 대표적인 예로는 실직한 가장의 자살이 있다.
뒤르켐의 의하면 경제호황기가 되어 자신이 성공할 것이라는 목표로 꿈을 키우게 되었으나 그 목표나 과정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것도 아노미적 자살에 속한다.
* 숙명론적 자살[12]
사회적 규제가 너무 강할 경우의 자살로 아노미적 자살에 대조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꿈도 희망도 없는 노예나 계층 이동 사다리가 완전히 막혀 극단적인 빈곤을 평생, 대물림으로 강요당하는 극단적인 양극화에 속한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 묘사하자면 "무슨 노력을 해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어, 이게 숙명이야" 정도. 최근 전세계적 경제난과 양극화로 인하여 한국은 물론 미국, 유럽 등지에서도 이러한 자살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 외로 폭력, 차별, 방관, 질병 등의 이유도 있다.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 처럼 흔한 질병을 오래 앓으며 합병증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이런 경우가 일반인들보다 많이 높다고한다. 앞에서부터 각자 쉬운 예를 들어보자면 군대, 성소수자 등 취향/국적의 차이, 사회적 무관심 등이 있다.

사회 통제가 지나치게 강하거나(숙명론) 약해도(아노미) 자살율이 올라가고, 사람 간 유대가 지나치게 강하거나(이타적) 약해도(이기적) 자살율이 올라간다는 말이며, 결론적으로는 '사회 통제와 사람 간 유대는 적당한 게 좋다' 는 것이다.

3.2 에드윈 슈나이트만의 이론

《심리부검 인터뷰》의 저자이자 자살에 대한 권위자로 알려진 에드윈 슈나이트만(E.S.Schneidman)은 자살하는 사람들을 총 4가지로 구분하였다. 각각의 구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 죽음의 추구자(death seeker) : 삶을 끝내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죽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에 의해 확실한 자살이 보장되는 방법을 택한다. 권총자살 같은 즉각적이고 확실한 방법을 선호한다. 이러한 파괴적인 욕망은 단지 짧은 시간 동안만 지속되며, 우발적인 충동은 바로 다음날 혹은 심지어 바로 다음 시간에 일시적으로 사그라들 수도 있다.
  • 죽음의 개시자(death initiator) : 삶을 끝내려는 분명한 의도를 가졌으나, 죽음이란 이미 시작되었으며 자살은 단지 그 과정을 좀 더 빠르게 앞당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인들이나 투병 중인 중환자들이 선택하는 자살이다. 즉 자신의 삶은 이미 끝나버렸으며 죽음의 과정이 진행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죽음의 무시자(death ignorer) : 삶을 끝내려는 의도라기보다는, 현재의 삶과 더 나은 사후세계 혹은 다른 실존을 바꾸는 것이라고 믿는 자살이다. 어린이들의 자살[13]이나 사이비 종교 집단의 집단적 자살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죽음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인식하지 못한다. 환생이나 이계가 존재한다면 나름 의미가 있는 자살이겠지만 현재로선 환생이나 이계의 존재 여부가 불분명하다.
  • 죽음의 도전자(death darer) : 삶을 끝내려는 의도 자체가 분명치 않으며 마지막 순간에조차도 죽으려는 의도에 있어서 양가감정을 경험하는 경우. 이들은 "확실히 죽음이 보장되는 방법" 보다는 "죽을 위험이 있는 방법" 을 택하며, 특히 수면제의 과용과 같은 약물복용 방법을 선호한다. 그 외에도 넓게 보면 러시안 룰렛을 하다가 사망한 사람 역시 고인에게 삶을 끝내려는 의도가 있었을지 분명치 않으므로 이 범위에 속한다. 이들은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여 자신의 행동을 알리며, 의료진의 개입을 통해 극적으로 살아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반의도성 자살이라는 특수한 주제도 연구했는데, 이런 경우는 개인이 자신이 죽을 의도가 명백히 있었는지 장담할 수 없지만 어쨌든 자신의 죽음에 있어서 간접적, 부분적, 무의식적으로 관여한 경우이다. 반의도성 자살의 한 예를 들면, 평소 자신의 약물을 부주의하게 관리하는 중환자가 실수로 엉뚱한 약병을 열고 치사량의 약을 오용해서 숨지는 경우가 있다.

슈나이드만이 보기에 자살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결과이며, 정신적 고통은 1) 무망감(hopelessness)과 2) 이분법적 사고(dichotomous thinking)에 의해 촉발된다. 무망감은 현재 주어진 환경과 여건, 자신의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신념이며, 이분법적 사고는 주어진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것 아니면 저것" 수준의 관점에서 "그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는 것뿐이야." 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4 인식

문화마다 자살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다르다.

일단 뜻을 이루기 위해서, 또는 치욕을 피하기 위해서 자살하는 것은 보통 '자결'이라고 하며 일반적인 자살과는 보는 시각이 다르다. 대개 정황상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기 마련인지, 남들에게 선택당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스스로 끝내는' 의미가 강하다. 물론 남에 의해 자결'당하는' 경우도 많다. 환경상의 문제라 현대의 자살과는 의미가 많이 다르다.[14]

4.1 고대 세계의 자살

춘추시대 은 전쟁터에서 적군 앞에서 죄수 등을 자살시켜 적을 경악에 빠지게 한 뒤 공격을 했지만 이는 적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방법 중 하나.

고대 그리스에서는 당시 유행했던 스토아 학파의 영향[15]으로 인해 자살자가 마구 늘어나자 국가적으로 '자살 허가제' 를 실시하여 민간에서 어설프게 자살 방법을 선택하기보다 극약을 처방하여 한 번에 죽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놓는다. 따라서 정부가 자살 사유를 심사하여 타당한 경우에는 햄록[16]을 처방하여 '인간다운 죽음' 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어떻게 보면 안락사의 원조인 셈.

고대 그리스의 문학에서는 자살이 주로 치욕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이루어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미쳐서 양들을 학살한 아이아스가 있다.

고대 로마제국에서는 나이가 들어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쇠약해지면 곡기를 끊고 스스로 굶어서 생을 마감하는 풍습이 있었다.

4.1.1 한국의 자살

고대 한국, 특히 고구려에서는 해명태자, 호동왕자 등이 부모와 갈등을 빚자 자살을 선택했다.

유교적 색채가 짙은 한국에서는 자식이 먼저 죽는 것이 최악의 불효라고 하여 매우 나쁘게 보았다. 하지만 그래도 부모는 부모니까 먼저 사망한 자식이라도 장례는 치러주었다. 다만 먼저 사망한 자체를 불미스럽게 여겨 조상들이 무덤이 있는 선산에 묻히지 못한다든가 하는 장례 절차상의 불이익이 있었다. 자살하거나 사형을 당하여 더욱 불미스럽게 사망한 자식은 화장을 하여 강에 그 재를 뿌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서 목숨을 끊는 행위는 크게 나쁘게 보지 않았고 오히려 의기가 높다고 칭송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여자가 절개를 지키고자 자결하거나 구한말 일제 병탄 때 이에 항의하여 자결한 사람들(예시 : 민영환, 매천 황현)이다. 절명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멜표류기에서는 병자호란때 적과 싸우다 전사한 사람보다 산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한 병사들의 수가 더 많았으나 사람들은 그들을 모두 동정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참고로 동양에서는 자살하는 것이 자신의 결백을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지만 서양에서는 자살하면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로 보며 이러한 가치관 차이 때문에 오해가 빚어지기도 한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 1987년 사회가 민주화되기 전까지 한국에는 거의 50년 동안 독재정권이 집권하였다. 때문에 정권의 불법성과 국민탄압에 항의하는 뜻에서 수많은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이 민주화, 인권보장을 요구하며 분신, 투신자살하였으며 대중성이 있는 인물로 전태일이 있다.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에는 아예 분신정국이란 단어까지 등장하였고, 실질적인 민주정권이라 평가받는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와 개혁 요구 수단으로 시민들이 자살을 택하는 경우가 끊이지 않았다.

기이하게도 자살 바위라는 지명이 전국 곳곳에서 발견된다. 명칭의 유래는 누가 추락사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부터 그냥 추락사하기 좋은 형태라는 김빠지는 이유까지 다양하다.

다만 자살을 저지른 자가 심각한 범죄자, 이를테면 강간, 살인 등을 저지른 흉악범인 경우 '인과응보'라면서 그의 자살을 환영하는 사례도 흔히 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범죄자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그 범죄자가 자살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찜찜하게 여기는 것도 기묘한 노릇. 단, 정말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 자살하는 경우라면, 법의 심판도 피한 채 저지른 죄에 비해 편히 죽는다며 역으로 분노를 살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자살폭탄테러로 무고한 인명을 대량살상하는 경우.

여담으로, SNS에서 난처한 상황이나 부끄러운 상황에 처했을때 농담반 진담반으로 '자살ㅂㅂ'나 '한강물 따뜻하냐' 등등 을 쓰기도 한다.

4.2 일본의 자살

무사도를 중시하는 일본에서는 할복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자신의 결백함이나 명예를 위해 배를 칼로 긋는 것이다. 주군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이거나 전쟁에서 진 장수가 살아남았을 때에 모든 일의 책임을 지기 위해 이루어졌던 이 행위를 고결한 행위라 하여 근대 일본에선 표절 시비에 휘말렸던 문학 작가마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할복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 할복 자살 덕분에 일본 내에서 자살이란 행동은 꽤나 숭고한 행위로 여겨졌으며 죄를 지은 인간이라 해도 자살을 했을 경우 명복을 빌어주는 행동을 해주었다. 또한 특공 또는 희생이라 하여 목숨을 걸고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하여 후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전쟁 중에 성이 함락되었을 때 또는 전쟁에 패했을 때 성주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의미에서 할복을 하도록 되어있었다. 시바타 카츠이에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패해서 할복했다. 이 당시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우키타 히데이에모리 데루모토를 살려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엄청난 대인배인 셈.

흔히 "적이지만 훌륭하다", "훌륭한 최후였다" 라는 식의 대사는 이같은 풍습의 잔재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에서는 위의 사고관이 남아있다보니 미화하는데 이로 인해 중2병 환자들은 "기회만 오면 특공하여 이름을 남기고 싶다" 라는 똑같이 병맛 나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기도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과 문화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서 행해진 카미카제 특공을 만든 기반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카미카제 특공대의 경우 숭고한 희생이 아니라 개죽음이었으며[17] 역사적으로도 병사들에게 자살 공격을 강요하는 지휘관치고 제대로 되어먹은 지휘관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지휘관은 후방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적 가치관의 차이겠지만 서양에서는 위와 같은 일본식의 '불명예를 씻기 위한 자살' 혹은 '자신의 죄를 목숨으로 갚기 위해 하는 자살' 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자신이 잘못했으면 끝까지 살아남아서 그 잘못을 바로잡을 생각을 해야지 덜컥 죽어버리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특공이야 일본보다 먼저 민주주의를 접했으니 말할 것도 없이 '멍청하고 비인간적인 행위' 로 매도될 뿐이고. 또한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이러한 상황에서의 자살을 미화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자살이 늘어난다고 해서 좋지 않게 보는 시각도 늘어났다고 한다.

한편 일본은 '불명예를 씻기 위한 자살' 혹은 '자신의 죄를 목숨으로 갚기 위해 하는 자살' 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에 따른 자살은 결코 좋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나라들보다 더욱더 나쁘게 본다. 그 이유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길 꺼려하는 화(和) 문화가 발달한 것이 크며 자살을 하면 자살을 수습하는 소방관과 경찰들을 비롯해서 가족과 애인과 친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불가피하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일본 특유의 '메이와쿠' 문화의 영향이라 하겠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자살자가 자살하기 전 유서에서도 자살한 이유보다는 사죄의 말을 주로 쓴다. 생명을 끊어서 미안한 게 아니고 자기가 죽은 후의 뒷수습 등으로 민폐를 끼쳐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다.

4.3 기독교 문화권의 자살

기독교에서는 5세기 초 성 아우구스티노가 자살을 죄악으로 규정한 이후로 그 영향력이 정통이 되어 기독교의 영향이 강한 서구과 미국에서는 자살을 결코 좋게 보지 않는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신국론〉에서는 당시 게르만족이 로마를 약탈할 때 겁탈을 당하고도 자결하지 않고 살아남은 기독교 여인들을 비난하거나 안 좋게 보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겁탈당하고도 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으며 오히려 자살은 스스로를 살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하게 되는데, 이 설이 기독교의 정통적인 입장이 되면서 자살이 나쁜 짓으로 규정된 것.

성 아우구스티노가 근거로 든 것은 모세의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라는 구절이었는데, 사실 이 구절은 말 그대로 남을 살해하지 말라는 뜻일 뿐 자살까지 커버하는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상 유대교 율법과 전통 상으로도 자살은 철저히 금지되었고, 이런 풍조가 기독교에까지 이어졌다. 현대 신학에서는 예외적인 경우 한정으로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하지만 어쨌든 중세까지는(그리고 지금도 보수적인 신자들은) 자살은 최악의 대죄라고 생각했고 자살자는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게 했다.

기독교에서는 자살=살인이기 때문에 자살자는 살인자와 마찬가지로 지옥에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8세기에 일종의 편법으로써 사형을 목적으로 중죄를 저지르는 간접자살이 유행했다는 보고도 있다. 또한 자살을 뜻하는 영어 표현 중에는 'committing suicide', 즉 '자살을 저지르다' 라는 문어적인 표현이 있는데 이는 자살을 죄악시하는 기독교 문화의 흔적이다. 현대에는 suicide, killing oneself 등의 중립적인 표현이 더 흔하다. 프랑스어에는 suicider(자살하다)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당시의 사회 인식의 대표적인 예가 단테 알리기에리신곡 지옥편에 있다. 여기서 자살한 자는 지옥의 8층 폭력의 층의 두 번째 고리에서[18]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되어 영원히 고통을 받는 것으로 묘사되며, 최후의 심판 날에도 스스로 육체를 버렸으니 육체를 돌려받지 않고 나무에 걸어놓는다고 한다. 아주 극한 상황에 몰려서 자살한 사람도 '그래도 자살하지 말 걸' 이라고 후회할 정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로마의 카토는 연옥의 뱃사공으로 나오며 림보에서도 자살로 생을 마친 위인들이 몇몇 나온다. 아마도 단테가 당시 상황과 현재 상황의 차이를 인정해서 그런 듯하다.

자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현대에도 마찬가지여서, 일본의 예와는 반대로 "책임을 통감하여 죽음으로 사죄..." 같은 행위는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한 것으로 간주한다.

가톨릭의 경우, 과거엔 자살은 장례 미사도 못 올릴 정도의 사죄(死罪)로 취급했지만 현대에는 모든 상황을 자살로 보지 않는다. "너 배교할래, 죽을래" 같은 상황에서 신앙을 지킨 상황은 자살로 보지 않고 따로 순교라고 칭한다. 그 외의 자살을 죄로 취급하지 않는 경우로는 스파이가 임무 수행 중 국가를 위해 자살하는 경우, 전쟁 중 특별한 상황이나 조난 같은 극한 상황에서 자기희생과 같은 국가나 공동체를 위해 '불가피하게' 자살하는 경우 등이 있다. 또한 구원의 여부는 하느님만이 판단하실 일임을 근거로 가급적이면 자살자에 대한 처우를 일반적인 사망자와 다르지 않게 하는 경우도 있다. 즉 자살자가 죽는 순간 회개할 가능성도 생각해서 그 영혼의 구원을 하느님께 간구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 경우는 흔치는 않다. 당연히 장례절차 등도 자연사/사고사[19]/병사한 사람들과 동등한 처우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부분 장례미사가 아닌 사도예절로 장례식이 치러지며 직계 유가족 외의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조용히 치러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누가 봐도 명백히 멀쩡한 정신 상태에서, 무신론적 허무주의에 의한 것처럼 100% 자유 의지로만 행한 자살은 당연히 해당사항이 없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을 해도 본질적으로 자살은 곧 죽을 죄이기 때문. 당장 배교를 요구받을 때 기독교 신자들은 자살을 택하지 않는 대신 배교를 거부하고 죽음을 조용히 받아들이는데 이것도 자살이 금기 사항이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경우 거의 모든 종파가 부정적이다. 안재환 사건에서 보여지듯이 자살이라고 아예 배척하지는 않는 종파도 있기야 하지만 특이한 것이다. 개신교의 구원에 대한 교리(이신득의)에 따르면 자살이라고 해서 딱히 용서받지 못할 죄는 아니라고 쳐도 사실상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실패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을 썼다면 혹시 모를까, 순살했으면 회개 기회 따위는 없다. 게다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으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건 마찬가지.

세계적으로는 점차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자살을 무조건 지옥행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단 개신교나 가톨릭이나 어디까지나 특정상황 하에서만. 다만 현대 개신교의 경우 우울증에 의한 자살은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이뤄진 게 아니라는 이유로 병사로 본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자살하다" 가 아닌 "자살당하다"(?!) 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보기도 하고, 이런 입장이 실제로 신학계에서 상당한 논란이 된 적도 있다.

4.4 이슬람교에서의 자살

간혹 잇따른 이슬람 극단주의 신봉자들의 자살폭탄테러 등으로 이슬람교는 자살을 그다지 터부시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사실 이슬람교에 있어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최악의 행위 중 하나가 바로 자살이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하지만 만약에 질병과 사고를 겪어서 아사할 것 같거나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는 뭔가를 섭취해도 된다. 즉, 위험 상황에서 라마단 지키겠다고 고집부리다가 아사하거나 먹어야 할 약을 제때 먹지 못해서 사망하는 것도 자살로 처리한다. 그러니 이러한 위급한 상황에서는 설령 꾸란이나 율법, 계율에서 부정한 것으로 규정된 하람 계열 음식을 입에 대더라도 그 죄는 묻지 않고, 착실히 회개만 하면 된다고 한다. 게다가 특히 라마단은 며칠 정도 살짝 뒤로 미뤄도 된다.

다만 알라를 위해 자살하는 경우는 인정하는듯. '알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그런 신념에서 나온 듯 하다. 그러나 주류 이슬람 계통 사람들이 말하듯,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한 테러는 이슬람교를 위한 것도, 알라를 위한 것도 아니며 이슬람교를 빌려온 사이비종교라고 싫어한다. 이들의 자살폭탄테러도 세계평화를 망치고 자살하는거나 마찬가지라 죄악으로 삼는다고...

4.5 자이나교에서의 자살

유일하게 자살을 인정하고 있는 종교가 자이나교인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 자살을 용인하는 사실 때문에 고대 때부터 불교의 비판을 많이 받아왔고 육사외도로 분류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자살을 용인하는 이유는 "태어난 이후부터 이 몸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며 이 신체의 자유를 박탈할 권리도 오롯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자이나교에서 말하는 핵심으로 보인다. 라즈니시의 저서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종교에서 "자살한 자는 지옥으로 간다" 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대부분 금기시되어 있다. 오죽 괴로웠으면 자살을 선택했겠는가 하며 불쌍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나약한 자라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살에 대한 금기 의식은 때로는 안락사 논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4.6 철학에서의 자살

안락사 같은 것과 관련해서 철학적인 논의는 또 다르게 진행된다. 말하면 유명한 윤리학적 틀에서 볼 때 이마누엘 칸트, 아리스토텔레스 등은 그르게 보고 공리주의는 케바케, 자유주의 혹은 자유지상주의 쪽에서는 그르지 않다. 칸트는 아예 대놓고 하지 말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독교와 비슷하게 자살이 존재를 발전시키는 선(善)을 없애는 것라고 주장했으며, 공리주의는 경우에 따라서 자살하는 것이 더 많은 선을 발생시킬 경우에 자살이 옳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로운 활동을 자살이라고 보며 존재의 적극적 허무주의 긍정이라는 측면에서도 호의적으로 평가한다.[20] 자살이 아닌 모든 행위는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있는 것 자체도 살고자 하는 본능에 의해 자유로운 행위를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보는데, 여기서 자유로워지는 선택을 하는 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자유로운 활동이라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을 없앨 수는 없으므로, 없애는 행동이야말로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극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자유지상주의의 경우는 위에 라즈니시랑 비슷하게 개인의 목숨은 개인의 것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하다.

4.7 형법상의 자살

경고.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불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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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서에 고의적으로 모방범죄를 부추기는 서술은 금하며 그럴경우 법률상의 형벌조항에 따라 범죄 교사범 또는 방조범 또는 예비,음모죄로 처벌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서술에 대해 법적인 모든 책임은 편집자에게 있으며 나무위키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또한 이 틀은 대한민국의 헌법, 법률, 대통령령, 조례 등의 문서에만 사용할 수 있으며 틀:법률과 함께 사용할 수 없습니다

국내 형법에는 촉탁ㆍ승낙살인죄[21]와 자살교사ㆍ방조죄라는 것이 있어서 자살을 방치하거나 도우면 죄가 된다.

이것은 이미 자살을 결의하고 있는 자를 원조하여 자살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며 그 행위가 자살을 돕는다는 인식을 행위자가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일로 자살 방조 크리 먹을 확률은 매우 낮다. 다만 군사정권 시절에는 이 조항을 적용해서 반정부 인사를 잡아 가둔 적이 있다. 시절이 수상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므로 조심해야 한다.

같이 자살하려다가 혼자만 산 경우에는 저 죄가 성립하여 법에 따라 교도소에 가게 된다. 정말로 같이 죽을 작정이었어도 자살방조죄고, 심한 경우 같이 자살하는 하면서 자기는 빠져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쪽은 위계에 의한 살인죄로 처벌된다. 신고는 했는데 경찰이 도착했는데 위계에 의한 살인죄가 적용되면 심히 억울할 것이다.

왠지 스위스에는 이 죄목이 없어서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약을 파는 정도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자살을 원하는 여행자들이 스위스에 우글우글 모여든다고. 일명 자살 관광이라 불리고 있으며 스위스 국내에서도 문제거리. 시신 부검, 장례. 유가족 통보 등 여러 가지로 스위스 사회에 악영향을 끼쳐 관광 수입보다 더 많은 손실을 입히기 때문이다.

4.8 자살에 대한 세간의 취급

자살 예방을 위해 네이버, 구글 등 여러 검색엔진 에서 '자살', '죽고싶다', '살기싫다' 등 을 검색하면 보통 이런 문구와 상담 전화번호가 뜬다. 가령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라고 뜨기도.

아무래도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은 방법을 찾기 마련이고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인터넷 검색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기 위한 방편인 듯 싶다. 그러나 상담원들의 답변이 워낙 늦고,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답변을 보았을 때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괜히 심리학이 독립된 학문을 이룰 만큼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절대 함부로 나서면 안 된다. 어설프게 말하면, 말을 안 하는 것만도 못하다.

충동적으로 행해지는 자살의 경우라면 저런 사이트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나, 자살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의 자살 시도를 낮추는 데는 정신 상담 등의 수단이 상당한 효과가 있다. 내담자의 자살 '신호'가 포착될 수 있기 때문. 오히려 홧김에 저지르는 자살이나 개인의 사상에 따라 냉정하게 재단하고 시도하는 자살이 비율로 따지자면 더 적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경우도 매우 많은 듯한데, 당장 자살률이 점점 늘어나는데도 대책이 없다는 게 그 증거이다. 사람마다 각기 처한 입장이 각기 다르고 개인별 사정도 다양하여 깊이 이해하기 힘들다. 공동체주의 특성상 남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남들은 다 하는데 넌 왜 못 해"의 논리에 가까운데, 개인차를 인정하지 않는 위험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살림살이가 힘들거나, 끝없는 경쟁에 지치거나, 온/오프라인 자살모임을 접하는 등 이유가 가지가지다.

한강의 일부 다리에는 유명인사들이 자살을 하지 말라는 권유 멘트가 하나씩 적혀있다. 배우, 코미디언, 만화가, 정치인 등 다양한 인사들이 기록했다. 그런데 이거 보고 왠지 더 슬퍼져서 자살하고 싶게 만들거 같다는 의견도 있다(...).

자살 방지 강사나 교육자들이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 라는 말장난도 종종 한다. 이건 '살자'를 거꾸로 하면 '자살'이라는 말과 똑같다. 나름대로 센스있는 말이라고 여기는 모양인데, 진중하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힘든데, 거기다가 부채질이냐?'고 화낸다. 얘기하는 본인은 나름대로 좋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볍게 얘기하므로, 듣는 사람은 더욱 무서운 자극으로 받아들인다. 처음부터 자살하려는 사람이, 자살을 우습게 볼 리가 없다. 또한 그렇게 따지면 슬프기로 유명한 Nell의 '51분전'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자살과 자유는 고작 한 글자 차이'이다. 때문에 저런 개드립이 있는 기사 같은 곳에 "자살의 반대는 타살입니다." 같은 비판조의 댓글도 많은 편.

간혹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무섭지? 그것 봐. 넌 죽고 싶은게 아니라 살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 죽고 싶은 마음으로 죽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라고 위로하는데 이런 소리는 내뱉지도 말라. 이거는 살인무기다. 자살을 떠올릴 정도면, 매우 궁지에 몰렸다는 소리다. 그런 사람을 하나도 안 생각하고 내뱉는 말장난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더욱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이건 결국 '넌 겁쟁이니까 죽지도 못하지?'처럼 약올리는 행동이고 그 사람의 자살에 대한 고민과 고통을 그저 아플까봐란 두려움으로 여기는 것이다. 사실 모든 사람은 죽는 게 두렵다. 자살은 죽는 게 무서운데도, 사는 게 더 무서워서 고르는 마지막 수단이다. 만약 그 사람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면, 혹은 찾았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말들은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최악의 경우 자살하려던 사람이 빡돌아서 묻지마 살인이 벌어질 수도 있다.

또한 자살과 관련된 글이 올라오거나 사건이 터지면 어김없이 의지드립이 튀어나오는데, 사실 자살이라는 건 자살자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마지막 행동이다. 즉 스스로 이것저것 다 해보다가 막혀서 안 되니까 결국 자살을 시도하는 것이며, 이 시점에서 자살자는 어지간한 시도는 다 해봤을 확률이 높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거 할 시간 있으면 노력을 해라"라는 건 상대방이 이제까지 했던 노력을 모조리 짓밟는 짓이다. 물론 자살시도와 관계없이 지나치게 노력만을 강조하는 사회 풍조도 고쳐야만 한다. 사회가 심각한 병폐를 떠안았는데도, 노력만을 내세우는 무식한 일이 많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사회를 고치는 원동력이 아니다. 가령 가정폭력, 집단따돌림 등으로 인해 자살 생각을 하는 아이에게 죽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라, 또는 공부해라 같은 말을 했다간, 무서운 사고가 터진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혼자서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그러니까 오로지 본인 노력만으로 여기면 절대로 안 된다. 물론 충동적으로 자살을 시도할 때도 있지만, 당사자 목숨이 걸린 문제이므로 진중하게 다뤄야 한다. 이거는 본인을 봐달라는 호소다. 충동적인 판단이냐 아니냐는 나중 문제다. 그래서 후자 대부분은 남들이 잘 보는 곳에서, 목을 매달거나 칼로 손목을 그을 때가 많다. 관심을 조금만 보여주면, 하나같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들이다.

그런데 2016년 5월 31일에 자살자가 애꿎은 행인을 죽게 만든 기막힌 사건이 벌어지면서 자살자에 대한 인식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

세 모녀 자살 사건처럼 생활고로 인한 자살 사건인 경우에는 그래도 우리 사회의 잘못으로 인한 희생자로 여기고 안타까워 하는 시선이 많지만, 이 경우처럼 애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경우에는 범죄자로 다를 게 없다는 게 세간의 인식이다.

한마디로, 죽으려면 혼자 곱게 죽지 왜 애꿎은 사람을 물귀신처럼 끌어들어냐는 것. 그런데 물귀신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물에 빠진 사람이 자신을 구조해 주려는 사람을 실수로 죽게 하는 사례도 역사적으로 많았다.

4.9 창작물에서의 자살

창작물의 경우에도 원인은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예로 세상의 부조리함이나 세상이 지루해서, 혹은 머리는 멀쩡한데 자극이 필요해서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위에도 언급되었듯 실제로 자신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일부에서는 실제에서는 거의 가능성이 없는 원인으로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뼈대는 실제와 다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혹은 다른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자살하기도 한다.

대체적인 원인은 동귀어진을 목표로 한 자폭이거나, 종교적인 믿음 떄문, 증인을 남기지 않기 위함, 자존심 때문에 타인의 손에 죽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 정도가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죽어서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거나 죽기 직전 새로운 능력이 생겨 살아남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실에서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자살한 사람들은 이계가 소재로 쓰인 창작물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중에서도 이계가 현실보다 멋진 유토피아로 나오는 창작물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계가 디스토피아나 현실과 비슷한 곳으로 등장하는 창작물이 있는 것처럼 이계가 정말로 존재한다고 쳐도 현실보다 유토피아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애당초 이 상황이 이계가 현실보다 천국, 이계가 현실보다 지옥, 이계나 현실이나 도긴개긴, 이계는 없고 죽으면 그냥 무(無)라는 4가지 경우 중에 하나를 원하는 거라 반의 반밖에 안되는 확률에 목숨을 거는 엄청나게 위험한 도박이다. 현실이 지옥이나 마찬가지라 이계가 현실보다 천국이거나 이계는 없고 죽으면 그냥 무(無)를 원하는 경우에는 반은 되겠지만...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에 대한 위험성은 판타지를 여행하는 현대인을 위한 안내서 문서의 결론부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자살을 매체에서 자주 사용하기 곤란하여 자주 나오지는 못하지만, 기존 캐릭터의 설정을 자신의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2차 창작물이나 동인 쪽에서는 자살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아예 전부 자살해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자칫 잘못하다간 원작 파괴가 된다.

강철의 라인배럴[22]에선 미래의 인류는 더 이상의 상상의 여지가 없어진 탓에 자살함으로써 인류가 멸망했다고 언급된다.

문명 5에서 카르타고의 종족특성으로 자살기능이 지원된다. 카르타고의 종족특성으로 산 타일에 유닛을 배치한채로 턴을 마치면 다음턴에서 그 유닛의 체력 50%가 줄어드는데, AI는 이를 감안하지 않고 유닛을 컨트롤하므로 AI제어하에 있는 유닛이 산에 올라가 자살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 결국 현실에서건 게임에서건 지휘관의 면밀한 관찰만이 휘하장병의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사실 장군이 병사를 막굴려서 죽는거다

엘더스크롤 시리즈의 4부작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의 확장팩 쉬버링 아일즈의 무대가 되는 '쉬버링 아일즈'에서 자살은 불법에 속한다. 자살한 이들은 죽어도 안식을 얻지 못하고 섬 중앙의 '자살자의 전당'에서 영혼의 상태로 무한정 떠돌아다녀야 한다. 다만 광기의 섬 답게 그 기준은 다소 유연한 편인데, 일례로 자살기도자가 자살 의지는 있을지언정 그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시간, 수단등을 통해 죽게 되면 자살로 취급하지 않는다. 뉴 쉐오스크루시블 구역에서 만날 수 있는 자살기도자가 이런 케이스인데 죽고 싶지만 자살이 불법이기 때문에 주인공에게 자기를 죽여달라고 의뢰한다. 이 퀘스트는 실패할수가 없는게 그 대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죽이든 나중에 죽이든, 독을 써서 죽이든 칼침을 놓든 어떤 수단을 쓰던간에 해당 자살희망자는 자기가 그 시각에 그 수단으로 죽을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에 타살로 취급되기 때문. 반면 자살할 의도는 분명히 없었으나, 사실상 자기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스스로의 죽음을 유발한 다윈상스러운 경우는 자살자와 진배없이 취급하는데 비탄이 바로 이렇게 망한 케이스이다. 비탄의 거주민들은 자살 희망자가 아니였지만 쉐오고라스를 광적으로 숭배하는 광신자들의 영역인 디멘시아의 영역에서 쉐오고라스를 폄하하는 가치관을 외쳐댔고 당연히 광신자들의 어그로를 잔뜩 끌어 침공을 당하는데, 이 와중에 성을 수호해야 할 이들은 무기를 아무에게도 내주지 않은 대장장이, 매지카 회복도 안되면서 마법사가 된 마법사, 아끼는 인형에게 정신이 팔려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탈하는 병사, 광신자들이 침공해오는 빌미를 제공해놓고 안싸우고 토낀 영주 등의 죗값 때문에 비탄 전체가 자살자의 전당처럼 영혼들이 성불하지 못하는 지경에 놓였다.

총몽퓨처라마에는 아주 쉽게 자살할 수 있는 자살부스가 나온다.

제7호차에서 소녀는 각막 이식 수술에 성공한 후 소년을 찾으려 하나, 얼굴을 보여주기로 한 그가 보이지 않자, 슬픔에 못 이겨…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 자살 징후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살 전에 특정한 신호(signal)를 보낸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그들의 자살을 막을 수 있다. 만일 이런 사람들에 대해 무심한 태도를 취하거나 고압적으로 묵살하거나 냉정하게 면박을 준다면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뻔하다. 다만 현대에는 개인주의가 강해져서 타인의 일에 무턱대고 참견하기가 어려운 것도 문제.

여기서는 읽기 쉽도록 몇 가지 기준으로 분류하였으며 공식적이거나 학술적인 분류는 아니다. 혹시나 주위 사람들이 이와 같은 징후를 보인다면 반드시 자살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특히 언어적 징후에 대해 의지드립은 절대 금물.

대부분은 세상은 물론 자기 자신의 존재까지도 무관심해 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말은 곧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잖아?라는 말이나 다름없으니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 건강의 징후
* 수면장애
* 식욕의 갑작스런 감퇴 또는 증가
* 외모에 대한 관심 저하
* 우울증과 같은 기타 정신 건강의 문제[23][24]
* 심각한 수준의 감정 기복 [25]
* 과 같은 기타 신체 건강의 문제[26]

* 언어적인 징후
* "돌아가신 XXX와 다시 만나고 싶어."
* "농담이긴 하지만 죽으면 어떤 기분일까?"[27]
* "내가 없어지는 편이 훨씬 나을 거야,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 "나는 어디에도 쓸모없는 놈일 뿐이야."
* "내가 죽으면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 "사후세계는 어떤 모습일까?"[28]
*"더 이상 버텨낼 수가 없어."
* "더 이상 살아갈 의미가 없어."
* "이제 다 끝내버리고 싶어."
* "정리하고 가야지"
* "잠들고 나면 다시 깨지 않았으면 좋겠어."
* "요즘 한강 물 따뜻하냐?"
* 자신의 불행, 실패, 좌절에 대한 지속적인 토로
* 기타 죽음을 암시하는 일기, 그림

* 행동의 징후
* 남몰래 약을 사 모으거나 위험한 물건을 감추어 두는 행동
* 주위 사람들에게 자해 위협을 하거나 실제 자해행위를 하는 것
* 자살사이트 가입
* 개인적으로 중요한 물품들을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행동
* 갑작스런 주변 정리정돈
* 갑작스런 폭력적 행위 또는 갑작스런 과도한 즐거움의 표출
* 자살 계획을 세우는 행동
* 본 항목을 나무위키 혹은 다른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는 것
* 매듭짓기에 관심을 보이는 것[29]
* 자살을 로맨틱하게 묘사하는 것
* 한동안 만나지 않던 사람을 갑자기 찾아가는 행동
* 갑작스럽게 성직자를 찾아가는 행동
* 공부나 자신의 본업에 초연한 태도
* 유언장을 쓰는 행동

다음은 동반자살의 징후들이다.


* 동행이면서도 연령층이 다양하다.
* 가족 또는 동료, 친구 사이 같지 않고 어색함이 느껴진다.
* 놀러 온 사람들임에도 표정이 밝지 않다.
* 서로 대화가 없고 말수가 적다.
* 대부분 렌터카를 이용한다.
* 일반 관광객과는 다르게 짐이 많지 않다.
* 짐을 옮겨 주겠다는 호의를 필요 이상으로 거절한다.[30]
* 일행 이외 다른 사람 앞에서 특히 트렁크를 열려고 하지 않는다.

이외에 육군, 공군에서도 자살징후 체크리스트를 두어 관심병사들을 관리하고 있는데, 보통 간부가 관리하는 비밀사항이지만 방송, 재판에 나온 허용된 부분만 말하자면 '군 간편 인성검사'라는 체크리스트로 관리한다.

6 자살성 사고와의 관계

자살성 사고(자살 관념, suicidal ideation)는 자살에 대한 생각이나 사고유형을 말한다. 사고(思考)자는 자살행위 자체를 시도하진 않지만, 자세한 계획을 세우거나 세부묘사가 가능할 만큼 구체적으로 자살계획을 세우게 된다.

앞서 말했듯 사고자의 대부분은 생각만으로 끝나지만, 일부는 자살을 실행에 옮기는 경우도 있다.

자살성 사고의 종류로는 잠깐 생각하고 마는 경우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계획화하거나 비성공적인 시도를 행하는 것까지 범위가 다양하다[31].

자살성 사고를 하게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우울증을 꼽으며, 과거나 현재에 타인을 기피해왔거나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 특히 가능성이 크다. 참고

7 고통

일단 세간에 알려진 독자가 자살하면 떠올릴 수 있는 기본적인 자살 방법들은 하나 같이 엄청나게 괴롭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방법을 쓰든 자살을 하는 도중엔 정신이 심각하게 혼란한 상황에 도달하며,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려는 자기보호본능까지 자살을 방해하기까지 하는데, 그 와중에 빠르고 확실하게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것은 평범한 인간의 정신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일부 그렇지 않은 방법도 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일반인이 접근하기는 불가능에 가깝고, 또한 해당 내용을 기술하는 것 자체가 자살방조죄에 걸릴 수 있으므로 언급하지 못한다. 애당초 고통경감을 위해 뇌에서 분비되는 엔돌핀이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 가장 많이 발생하고 무통증 환자조차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는 고통을 느끼는 사실만 가지고도 죽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살아남았을 경우 남은 삶을 고통스럽게 보내야 할 위험도 높다. 반신불수.. 소화기 계통의 큰 이상.. 등등.

느긋한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대개 죽는 과정이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운지라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걸로 사망하는 사람 대부분은 생활습관병에 따른 병사. 그리고 자살을 결정하고 한 게 아니라 즐기다가 건강을 챙기지 못한 것이라 자살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죽기 전부터 오랫동안 본인도 가족들도 고통 받는 경우가 많음으로 평소에 잘 하는 것이 좋다.

자살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지를 절절히 가르쳐 주는 작품이 바로 자살토끼이다.

8 자살 통계

자살/통계 문서 참조.

8.1 한국의 자살률

특수한 항목으로 분리하여 서술. 자살에 관한 통계는 자살/통계 항목을 참고할 것.

2011년 자살률 31.7명 (세계 1위, 이하 10만 명 당)#
2010년 자살률 33.5명 세계1위 OECD 평균의 2.6배
2009년 자살률 31명
2008년 자살률 26명

근래의 자살률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는 아래 다른 나라와의 비교치로 실감할 수 있다. 2000년대부터 급격하게 늘기 시작하여 2005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24.7명으로 OECD 자살률 1위를 차지했고 2009년에는 31명으로 우리는 자살 성장률에서 다른 모든 OECD 국가들을 초월했으며 그 이외의 국가까지 합산하면 벨라루스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자살률이 높다. 벨라루스의 경우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당시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방사능 낙진의 거의 전부가 벨라루스에 떨어졌다. 지금도 벨라루스 전 국토의 30% 정도는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다. 이때문에 벨라루스는 기형아가 많이 태어나며 이러한 요인이 자살률에 영향을 주고 있다. 다만 2013년 현재는 통계가 업데이트돼서 벨라루스 16위 혹은 18위, 리투아니아 2위, 그린란드가 1위로 올라섰다.다른 통계에 의하면 기아나가 1위. 하여간 주권국가 기준으로는 여전히 대한민국이 2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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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자살률이 일본보다 약 50퍼센트 높고 중국, 홍콩과 폴란드보다 2배 높고 미국 보다는 3배, 바레인이나 그리스보다는 10배, 바하마나 페루보다 30배, 자메이카보다 약 300배 높다. 그리고 OECD 회원국 평균치 11.2명의 2배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의 자살률은 전쟁으로 인한 외상후증후군 PTSD에 시달리는 미군 자살률보다 높다고 한다. 미국 국방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의 공포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라크 주둔 미군의 2005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9.9명이었다. 한국은 2010년 33.5명.

10대와 30대의 사망원인 1위라고 한다. 10대의 경우엔 2008년 자살률이 42퍼센트나 증가하면서 2009년에는 '자살' 이 사망의 제1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30대 역시 자살이 사망의 제1 원인이 되었다.

단, 통계해석에 유의해야 한다. 자살을 제외하고 현대 사회에서의 다른 사망 원인을 꼽아보자면 사고사, 병사, 아사, 살해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인간의 건강이 최고조를 찍는 10대~30대의 사람들의 제 1 사망원인이 병사라면 의료시설이 미흡한 것이고, 아사라면 식량 안보가 위험한 것이며, 살해라면 치안이 막장이고, 사고사라면 사회 안전망이 미흡한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 10대~30대 인간의 제 1 사망원인은 자살일 수밖에 없다. 청년기 자살 문제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고 또한 대한민국의 자살률이 높은 것도 개선해야만 하는 문제점이지만, 사실 곡해는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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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별로 비교해보면 한국의 15-34세 그룹의 자살률은 OECD 평균과 같으며, 35-64세 그룹은 다소 높은 수준이나, 65세 이상 자살률은 OECD 평균의 3배 이상이다. 한국의 자살 사망률은 11년째 OECD 1위를 지켜오고 있지만, 이것은 노인층의 자살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9 최초의 자살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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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자살백과(마르탱 모네스티에 저) 中 50 페이지부터.

● 최초의 마취제 자살
마취제에 의한 최초의 자살은 1851년 오스트리아의 빈 왕립 병원 원장이었던 레이에에 의해 행해졌다. 자살하기 1주일 전 그는 가장 손쉽게 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동료와 의논을 했다. 침실에서 사체로 발견되었을 때 그는 코와 입에 클로로포름을 가득 담은 봉지를 붙이고 있었다. 마취가 의학에 도입된 이후 마취제를 사용해서 자살한 사람은 수없이 많다.

●최초의 코호균 자살
최초로 세균을 이용해서 자살한 사람은 의사였다. 앞의 의사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한 청년 의사는 살아있는 코효균 유탁액을 정맥에 2센티리터 주입했다. 그 다음 날에는 그의 동료 한 사람이 자기 몸에 니코틴 농축액을 주사했다.

● 최초의 드릴 자살
1974년 2월 28일 소쇼의 한 연금 생활자는 전기 드릴로 자신의 머리에 구멍을 뚫었다. 그는 드릴을 배수구에 고정시키고 테이블 위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드릴이 머리 꼭대기에 정확히 놓여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 드릴을 작동시켰다. 그 일이 있기 2년 전에도 벨포르의 한 상인의 딸이 같은 방법으로 자살하려 했지만 그때는 그다지 잘 되지 않아서 머리에 구멍을 아홉 개나 뚫어야 했다.

● 최초의 생방송 자살
자신의 자살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만 하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다. 1974년에 서른 살의 젊은 미국 여성 아나운서 크리스틴 처벅(Christine Chubbuck)이 바로 그랬다. 그녀는 생방송으로 그 날의 뉴스를 해설하고 있다가 갑자기 기술상의 문제가 생겼다며 방송을 중단했다. 몇 분 후 화면이 나온 다음 그녀는 방송을 재개하지 않고 다음의 마지막 말을 남겼다.

"피 흘리는 화면을 언제나 제일 먼저 컬러로 내보냈던 채널 40의 전통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시청자 여러분들께 자살하는 모습을 눈앞에 펼쳐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 아나운서는 수만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권총을 꺼내어 자기 머리에 쏘았다.

● 최초의 자살
19세기 빈에서 70세 노인이 무거운 쇠망치로 8센티미터 가량의 못 일곱 개를 머리에 박았다.

● 최초의 전기톱 자살
묘비판매회사의 독일인 경리 로베르트 코트는 1985년 공업용 전기톱으로 몸을 2등분하는 정말로 끔찍한 방법을 시행했다.

● 최초의 우주 자살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우주 정복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인다. 1969년 3월 21일 애리조나 주 데이비스 몬탄 고도비행센터에서 최초의 우주 자살이 일어났다. 프랑스 <수와르>지의 엘리자베스 브르퀸 특파원이 본사에 전한 바에 따르면 19세의 월터 무어가 실험실의 고도를 2만 5천 미터로 올리고 산소 마스크를 벗어 버렸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무어는 미국 공군이 미래의 우주 비행에 대비해 고기압과 저기압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실험대상으로 선정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얼마 뒤에 한 로케트 조종사는 보호의를 벗어 던져버리고 고도 2만 5천미터 지점에서 로켓을 떠났다.

● 최초의 방사선 물질 자살
1994년 3월 샤랑트 해안지방의 올레론 섬에서 40세의 남자가 백포도주에 방사성 물질을 타서 마셨다. 2011년 11월 일본에서 자살한 한쌍의 남녀도 처음에는 방사능 물질을 이용해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도 일어났다.

● 최초의 다트 자살
1991년, 프랑스 릴에서 37세 주부가 관자놀이에 다트의 화살을 꽂았다.

● 최초의 냉동고 자살
1983년 9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한 주민이 자기 집 냉동고 안에 들어가서 자살했다.

● 최초의 재판소 자살
1982년 6월 알렉산더 코트라는 사람은 위조지폐 은닉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던 중 치사량의 시안화물을 먹었다.

● 최초의 이원(二元) 자살
1980년 6월 신문은 이원 자살을 보도했다. 그 자살은 그러한 종류의 것으로는 처음 일어난 것이었다. 같은 날 로잔느라는 스위스 여성과 칸느라는 스위스 남성이 각각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자살했는데, 우연히도 이 두 사람은 같은 시간에 똑같은 방법(두 사람 모두 시안화물을 마셨다)으로 자살했던 것이다. 프랑스, 스위스 양국의 조사관은 두 사람이 서로 텔레파시가 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9.1 비유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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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비유적으로 게임(주로 액션게임)에서 보스전에서 보스를 상대하기에는 에너지가 너무 부족해서 보스전 바로 앞의 체크포인트에서 풀에너지로 시작하고 싶을 때 일부러 죽는 행위나 혹은 게임 진행중에 길이 막히는 바람에 일부러 트랩 등에 맞아 죽는 행위를 말한다. 물론 1목숨밖에 없는 게임에서는 이 행동을 하면 게임 오버가 된다.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는 일명 '빠른 전멸' 로 불리며 보스 한 번 잡는데 수십 번 자살하기도 한다(...). 1의 의미가 너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급이어서 고의미스 항목으로 따로 분류되었다.

GTA시리즈 경우 본격적으로 3D화 된 이후부터 자살도 하나의 컨텐츠가 되었다.(...) 재미삼아 자살하는 것. 비행기 운항이나 높은 고층 빌딩에서 낙하산 없이 뛰어 내릴 경우 참으로 괴악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땅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폭발물에 날아가는 모습 역시 괴랄한 경우가 많다. 또 GTA4의 경우 차량으로 과속도중 어딘가 부딪히면 차에서 유리창을 부수고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데, 이때 얼마나 멀리 튕겨져 나가는지 내기하는(...) 경우도 있다.

자살은 대부분 무언가 잃는 시스템이 많기에 시도를 하지 않지만 자살 패널티가 그다지 크지 않은 경우 자살을 통해 얻는 이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가령 스폰 장소가 너무 멀리 떨어진 세이프 존인 경우 차라리 약간의 패널티를 받고 자살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게임오버가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없지만 게임 플레이 과정에서 스코어를 내는 경우라면 일부러 자살하기도 하고.

역시 비유적으로 아무리 게임에서 자살을 표현한다 하여도 현실에서의 자살이란 의미와는 상당히 상반되어 있다.

9.2 알까기의 용어

자신의 알이 상대방의 알을 까지 못하고 바둑판을 벗어나는 것을 뜻하는 용어. 상대방의 알과 함께 바둑판에서 벗어났을 때는 동반자살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가 1과 엮이는 일이 있었는지 2010년에는 자살은 꽥으로, 동반자살은 논개타법으로 순화되었다. '논개타법'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째 '꽥'이란 용어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10 기타

  • 서울 지하철 등 지하철 선로에 뛰어내려서 지하철에 치어버리는 자살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면 지하철을 멈춰야 하고 사람을 친 지하철 기관사나 시체를 수습하는 역무원공익근무요원, 그리고 기차를 기다리고 있거나 탑승하고 있던 승객들의 정신 건강에 큰 피해를 입힌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지하철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게 되었으나, 그 뒤로는 스크린도어를 설치하지 않은 역으로 가서 뛰어내리는 일이 발생하고 있으며,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회기역에서도 스크린도어를 우회해서 선로로 들어가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 철도가 대중교통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일본에서는 자살자의 유족에게 벌금을 매긴다. 일본 정부는 사실상 자살자를 사회와 가정에 폐를 끼치는 패배자로 규정하고 방치하고 있는 상태이며, 상담원 1명 키울 예산이 아깝다며 자살 방지 푯말을 박는 게 일본 정부 및 지자체가 하는 일. 이 때문에 일본의 자살 방지 단체는 대부분 정부 지원을 못 받는 민간단체다.
  • 한강 다리 교각에 올라가 뛰어내려 자살할 거라며 시위하는 사람도 있는데, 119 구조대원들과 경찰을 피곤하게 만드는 행위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엄한 구조대원이나 경찰까지 끌어들여서 같이 자살하거나 자기만 살아남는 일도 벌어져서 더 안타깝게 한다. 한강 정모 항목 참조.
  • 불교에서의 일부 해석에 따르면 자살은 자신을 죽이는 살인 행위로서 불교의 10계명 중 하나인 '살인을 하지 마라'라는 것을 어기는 행동이라고 한다. 즉 자살을 하면 불교의 윤회사상에 따라 내생에 환생해도 전생의 업에 따른 힘든 생을 겪게 된다는 것으로, 내생에는 축생계로 환생하며 그 중에서도 최악인 곤충으로 환생하게 된다. 기독교의 십계명에서도 같은 해석이 있으며 거의 모든 종교가 자살을 금기시하고 있다. 심지어 자살에 대한 금기는 기존 종교가 가지는 금기보다 상위에 있다. 예를 들어 라마단을 지키는 것이나 할랄 푸드 이외의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중요시하는 이슬람교에서도 이것을 지키다가 사망하는 게 명확한 경우엔 자살이 될 수 있으므로 나중에 참회할 때 하더라도 이때만은 기존의 금기를 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총몽에 등장하는 천공도시 자렘에서는 인간이 자살할 권리가 인정되어 공공 화장실마냥 깔끔하게 해체해서 죽여주는 자살 센터가 설치되어 있다. 퓨처라마에도 자살 부스가 등장하는데 공중전화 부스랑 똑같이 생겼으며 사용료는 단돈 5센트.[32] 영화 칠드런 오브 멘에서도 영국 정부가 고통없이 자살할 수 있는 약을 나눠준다.
  • 자의적으로 자살을 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고래 중 일부 종등의 동물들은 실제로 자살을 한다. 그 밖에 동물의 자살 대한 사족을 달자면 레밍이라는 동물은 집단으로 이동하다가 앞의 절벽을 보고 앞의 선두들이 멈춰설 때 미처 멈추지 못한 뒤의 레밍들 때문에 앞의 선두들이 떨어져 죽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고 한다.[33] 그런데 이는 사실 자살이라고 할 수 없는 사고 혹은 병크(…).
  • 모든 민간 종교나 무속인들조차도 '자살한 영은 살아있을 때보다 더 큰 고통을 받게 된다'고 한다. 죽는다고 힘든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죽어서도 문제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다만 사후세계나 영이 실재하지 않을 경우 이 주장은 거짓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불똥은 불교, 기독교, 천주교 기타 민간 종교 등 수많은 종교인들에게 튄다. 대부분의 종교가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기 때문. 어쨌든 대부분의 종교에서도 자살을 하지 않도록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종교는 의심해봐야 한다.
  • 한 법의학 책에는 완벽하게 자살을 시도하다가 그 시도가 엉망이 된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어떠한 사람이 자살을 하려고 치사량 이상의 헤로인을 먹고 바닷가 근처의 나무에 목을 매달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나뭇가지가 부러져서 바다에 빠지게 되고 바닷물을 먹은 그 남자는 자신이 먹었던 헤로인을 모두 다 토해내게 된다. 본능적으로 물 밖으로 헤엄친 그 남자는 그 뒤로 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판본에서는 이 사람이 결국에는 사망하게 되며, 일부 추리퀴즈에서 이 사람의 사인(死因)을 묻는 문제로 출제되곤 한다. 보통 이 경우에는 바닷물에 오래 들어가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경우로 많이 나타낸다.
  • 심지어 분명 행복하게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지루하다고 느껴서 혹은 시시하다고 느껴서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현대 생활이 반복되는 일상이 많아 자신이 이 반복되는 세상에 흡수되어 간다고 느낀다. 한편 실제로 뇌내 엔돌핀 수용체의 수가 일반인의 3-4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일반인과 같은 양의 엔돌핀이 분비되어도 수용체 모두에 닿지 않아서, 즉 배급량은 똑같은데 타고난 밥통이 지나치게 큰 바람에 일반인들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상황에서도 절대 만족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세상에 자극이 필요하다고 자살하는 사람도 이쪽에 속한다. 이 경우는 대부분 정신적 질환이 원인으로, 청소년기에는 정신적으로 성장 중이기 때문에 가치관에 혼란을 느끼는 등 정신이 멀쩡해도 위와 같은 이유로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이 시기에는 청소년들은 자신을 주인공처럼 보는 경향이 있어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할 때 이러한 현상이 나기도 한다. 꼭 자살 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불량아들이 나오기도 한다.
  •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도 망상이 지나치면 망상장애가 생겨 심하면 자살에 이른다. 여기서 자살하면 다른 곳으로 간다든지, 떨어질 때 극한의 상황에 자기 힘이 발동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망상이 해당된다.[34] 또한 뇌내 장애로 망상장애가 생겨 심한 혼란으로 심하면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스펀지에도 방영되었는데, 어떤 사람은 뭐든지 기억하고 어떤 것도 잊을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기억에 혼란이 와 망상만으로 자기 자신을 만들어 버린다든지, 남들은 하지도 못할 놀라운 망상과 창작 능력을 보여주었으나 나중에 기억이 뒤죽박죽 뒤섞여서 결국 미쳐버렸다. 어느 정도였냐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5년 전 일과 5분 전 일로 착각하는 등 5년 전 일과 5분 전 일조차 구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정도. 결국 이 사람은 정신병원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 기타 안면인식장애로 사람을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자살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믿고 그래서 괜찮다며 몸을 함부로 굴리다가 진짜로 죽는 심각한 경우도 있다. 심지어 생물체라는 것 혹은 생명체와 무생물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구별할 수 없는 경우에도 자살할 원인이 되기도 하다. 요약하면 심각한 정신질환은 고치기 힘든 자살 원인인 셈.
  • 동양권, 특히 일본에서는 물에 빠져 죽는 투신자살을 선호한다는 카더라가 있었다. 일본은 목을 매달아 자살할 때에도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을 찾는 경향이 있다.
  • 한국의 대부분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자살이 가지고 오는 자체적인 위험한 뉘앙스 때문에 대부분 자살은 금지어로 필터링된다. 그래서 자살을 생각하지만 맨 위에 적었던 상담전화 같은 걸 꺼리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의존했다가 차단을 당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이들은 상담카페 같은 곳으로 몰려 정말로 자살하거나 전문가에게 의존하기도 한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국 혐오와 비슷하게 단순한 드립 수준으로 희화화되거나, 심지어는 자살을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여기는 사례도 늘어가는 편. 대표적으로 디씨위키에서는 자살을 스탯 굴리기라고 표현하거나, 인터넷상에서 자살을 예고하는 사람이 다수 존재하는 것. 물론 생명과 관련된 소재이므로 굉장히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많으니 가급적이면 자제하도록 하자.
  • 자살자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향을 피워주지는 못할 망정 이를 비웃거나,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는 의견이 있다는 것은 씁쓸한 현상이다. 김지하 시인은 최진실의 사망과 관련하여 좀 지나친 쓴소리를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그는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 시기 분신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자 자제하라는 시를 쓴 적도 있었다. 대다수 상황이 여러 관점에서 봐야 객관적인 시선이 되듯이 극한 상황에 다다른 경우도 고려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지만 극한 상황도 아니고 관심이 받고 싶어서, 호기심에 등등 이상한 이유로 하려는 거라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면 최대한 남에게 피해 안주고 고통이 없는 방식을 고려해보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라는 점을 부정할 수도 없으며 자살을 생각하는 것 자체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 살아갈 것을 강요할 수 없으며 삶의 선택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떠한 식으로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국가에서부터 자살을 사회 문제로 판단하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9월 10일세계 자살방지의 날로 지정하고 있다.
  • 자살 자체는 시비가 갈리는 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뚜렷한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히고 자살한다는 것은 도덕적, 사회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다.. 법리적 해석은 추가 바람

11 관련 문서

11.1 자살과 관련된 사람들

11.1.1 실제로 자살한 사람들

11.1.2 자살 시도를 했던 사람들

11.1.3 창작물에서 자살한 캐릭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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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공/자폭한 캐릭터는 제외.

그에게 장기를 제공해 준 복제인간 존 앨런을 위해 스스로 인공 심장의 전원을 내린다. 심장이 제공될 차례였기 때문에 존 앨런 대신 자기가 죽기를 택한 것. 결과적으로는 이용가치가 없어진 존 앨런도 처분당했기 때문에 의미가 없지만.
미소라 나오미와 타카다 키요미는 데스노트에 적혀서 자살을 택했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타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엔딩에 따라 다르다. 주인공이 자살하는 엔딩이 있고 임신당한 히로인이 자살하는 엔딩이 있다.
자살하는 범인이 거의 없지만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기도 전에 자살한 범인도 아주 적게는 있다.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아 자살했지만 정작 자살 후 그는 잠자리 형태로 변형된 괴물로 부활한다.(참고영상)
판본에 따라 다르다. 이몽룡과 결혼하나 신분 차이 때문에 자살해버리는 판본이 있다. 사실 남원 지역의 전설에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춘향전과는 달리 이몽룡을 기다리다 못해 자살하거나 추녀여서 이몽룡의 외면을 받아 자살해버리는 엔딩도 있다. 전설에서는 어째 더 비극적인 엔딩이 많다
판본에 따라 다르다. 가장 흔한 판본에서는 자살하기 직전에 화타에게 약을 받지만 토끼를 놓친 후 화타가 나오지 않고 그대로 별주부가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자살하는 판본도 존재한다.
커터로 자신의 목을 베어 죽는다. 아파시판에 수록된 지하격투클럽의 루트에서도 이러한 식으로 자살하는 루트가 있다.

11.1.4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캐릭터들

여러 번 자살하지만 되살아나는 경우도 여기에 분류.

애니에서 이 편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저 자살 소동이 하필이면 야마모토가 처음 나온 화인 데다가 팔 부상으로 인해(...) 이 탓에 2ch 등지에선 조울증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 별주부전 : 자라 - 두가지 이야기로 나뉘는데 하나는 자살을 시도하다가 명의 화타에게 명약을 받고 돌아간다. 다른 하나는 정말로 자살했고 거북을 보내 확인하니 용왕이 그사실을 듣고 장사지내주고 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죽는다.[50]
머리를 한데 모아서 '목에' 묶은 모습이 목 매단 모습을 연상시키며 왼쪽 손목에 리본을 감고 있기에 동인 쪽에서 손목을 그은 표시가 아니냐는 의문을 사고 있다.

11.1.5 자살한 것이 아닌데 잘못 알려진 사람들

  • 이준 : 할복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 장덕 : 수면제를 과용한 것이 사인이었기 때문에 자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 역시 자살은 아니다.
  • 히스 레저: 약물 오용으로 사망하였는데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 양미경, 채연 : 자살 오보가 났다.

11.2 관련 링크

  1. 자살에 특수한 목적성이 들어갈 경우, 자결(自決)이라는 표현을 쓴다.
  2. 몽테스키외(Daum 백과사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기후가 정치에 영향을 끼친다"는 일종의 환경결정론자였다.
  3. 파울 루트비히 란즈베르크
  4. 이는 비단 자살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죽음에 해당된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의 PTSD라든가,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든가.
  5. 문단명을 보면 알겠지만, 원문 그대로 실었음을 밝힌다.
  6.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경우 자살하는 비율은 일반 청소년들에 비해 3배나 높고, 10대 청소년 자살자 중 거의 30% 정도가 성적 지향의 문제로 인한 고민과 관계가 깊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청소년 동성애자들의 자살 문제를 연구한 보고서도 비슷한 결과를 도출해냈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이는 실제로 보이지 않는 면에 성 소수자들이 많다는 것인데, 실제로 졸업하면서 교사에게 커밍아웃하는 경우도 있다. 전체 원인 중 30%(약 1/3)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니, 성별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손가락질하거나 억압하지 말아야 한다.
  7. 성별 정체성에 의한 자살과 성 지향성에 의한 자살은, 두 개념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만큼 엄연히 다르다.
  8. 사진만 찍고 일절 손대지 않는다.
  9. 이를테면 행방불명된 사람이 산 속에서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다른 소지품은 훼손되었으나 신분증만 깨끗한 상태.
  10. 그러나 이를 역이용하여 열녀문을 받기 위해 자살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살해하고서 자살로 위장하는 일도 흔했다. 언제 자결을 하느냐에 따라 세금을 면제받는 기간이 달랐다. 예를 들면 남편을 잃자마자 자결하면 평생 면제를 해주고 남편 3년상 치르고 자결하면 그보다 적게, 애들을 다 출가시킨 다음에 자결하면 또 그보다 적게 받는 식이다.
  11. 항목 내에도 명시되어 있지만 카미카제도 강요에 의한 경우가 많았다. 일본군의 막장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부분.
  12. 뒤르켐은 이 항목을 각주에서 간략하게만 언급했다. 그만큼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던 항목으로 어떤 사회학자들은 뒤르켐의 분류에서 이 부분은 생략하기도 한다. 다만 뒤르켐은 근대의 인물이라 현대와는 시대상이 달라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13. 예를 들면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하늘나라에 계실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투신자살을 하는 것 등
  14. 신라경애왕견훤 때문에 자결했다 그러지, 자살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15. 스토아 학파는 인간의 이성에 충실하고 인간다움을 중시했기 때문에 정치적 목적으로 인한 자살이나 명예에 의한 자살을 권장했으며, 심지어 매우 가난하거나 불치병에 걸렸을 경우에도 자살을 권장했다!
  16. hemlock. 일명 독당근으로 불리는 미나릿과 식물. 소크라테스가 독살 당했을 때 들었던 독약이 바로 햄록이다.
  17. 뉴스 참고. 물론 가미카제를 미화하는 건 개소리다.
  18. 폭력의 층은 남에게 해를 끼친 자, 자신에게 해를 끼친 자, 신과 자연 순리에게 해를 끼친 자로 나뉘어 있다.
  19. 검찰, 경찰 계통에서는 자살도 일종의 사고사 취급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문자 그대로 교통사고 등과 같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경우다.
  20. 그래서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자신이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허무감을 자살로 극복(?)했다고 한다.
  21. 자살인데 살인죄다. A가 B에게 '나를 죽여줘' 라고 부탁(촉탁)하고 B가 그 부탁을 받아들여서 A를 죽인 경우, 혹은 A가 B에게 '너 죽인다'라고 한 뒤 B의 '승낙'을 받아 죽인 경우를 말한다. 이 중 전자의 경우 뭐가 어쨌든 간에 A의 목숨을 B가 인위적으로 끊은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살인죄이지만 그 형량이 일반 살인죄보다는 낮다.
  22. 원작 만화 한정.
  23. 우울증이 아직도 가벼운 정신질환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살을 하거나 안락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 심각한 질환이다.
  24. 역으로 너무 밝아 보이는 사람도 (100%는 아니겠지만) 주의할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생각에 반항하기 위해 긍정적인 생각을 억지로 갖고 있을 수도 있으므로. 종종 연예계나 코미디 관련 사람들이 돌연 자살하는 경우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25.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즐겁다는 듯이 웃다가 갑자기 우울함에 빠진다던지
  26. 암을 비롯한 중대질환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며 고통에 신음하는 환자들 중에서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래서 안락사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죽음이 거의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막연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기다리기엔 그동안 환자가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잔인하다.
  27. 농담이라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저걸 말한 사람이 슬퍼서든 망상에 빠져서든 정말로 실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사람들은 나중에 종교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너무 심취해서 미쳐버리는 사람들이 아주 가끔 있다.(...)
  28. 단, 평소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몰두하는 경우에 한정한다.
  29. 목을 매다는 상상, 혹은 어떻게든 끝을 보고 싶다는 심리의 투영이라고 볼 수 있다.
  30. 이 경우와 아래의 경우는 그 짐 안에 동반자살의 도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생활을 침해받고 싶지 않아서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31. 고의적으로 실패하는 구성을 세우거나, 완벽하게 성공하려는 의도를 가지는 경우도 있다.
  32. 고통없이 고통스럽게 죽는 게 나눠져 있는데 고통없이 죽기는 그냥 레이저 한방이 온몸이 증발하며, 고통스럽게 죽기는 온몸이 난도질 당하다가 가슴이 찔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여기서 주인공인 프라이와 벤더는 후자를 선택해서 살았다.
  33. 그리하여 나온 게임이 바로 레밍즈다. 다행스럽게도(?) 이 게임의 목표는 레밍들을 떠밀어서 죽이는 게 아니라 가급적 죽지 않게 끝까지 이끄는 것이다.
  34. 소설 "아홉살 인생"에 나오는 골방철학자가 좋은 사례이리라. 혹은 "죽으면 좋은 곳으로 갑니다. 그러니 제 손에 죽어주시죠"라고 말하는 악당이라거나.
  35. 《자기 앞의 생》은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냈는데, 그 당시에는 그가 에밀 아자르란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그는 유서에 자신이 '에밀 아자르'였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프랑스 문단과 평론가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로맹 가리는 1956년에 《하늘의 뿌리》란 소설로 공쿠르 상을 수상하고 1975년에 '에밀 아자르' 란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을 내고 또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문제는 공쿠르 상은 한 명이 한 번밖에 받지 못한다는 것과 당시 평론가들의 로맹 가리의 공쿠르 상 수상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고 로맹 가리를 한물 간 작가로 여겼던 반면 후에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낸 《자기 앞의 생》에는 굉장한 찬사를 보냈다는 것이다. 즉,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글을 쓰고 그들이 부정적으로 평가하던 '로맹 가리' 와 동시에 그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냈던 '에밀 아자르' 는 사실은 같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프랑스 문단과 평론가들에게 빅엿을 먹인 것이다. 이리하여 로맹 가리는 프랑스 문단과 평론가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유일무이하게 공쿠르 상을 두 번이나 받은 작가로 남게 되었다.
  36. 해당 항목에도 나와있듯 자살했다는 설이 있다.
  37.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에서 주인공 제제의 몇 안 되는 조력자인 글로리아(고도이아) 누나와 제제가 정성스레 돌보던 동생 루이스는 실제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작중에서는 이들의 죽음이 묘사되고 있지 않다.
  38. 이 외에도 아주 많지만 비중 있는 캐릭터 중심으로 기재한다.
  39. 학교 옥상에서 일진들을 응징하고 지친 틈에 김종빈에게 얻어맞고 칼로 저항하다가 한 교사에게 발각되어 퇴학당하게 된다. 그 후 학교 옥상에서 투신자살하게 되는데 학교 측은 자살로 밝혀지지만 황경민 혼자 정종석이 밀친걸로 생각한다.
  40. 큰딸도 나중에 자폭해서 죽었다. 다만 쿄코와 쿄코의 아버지는 주위 인물과 같이 죽으려는 것은 같으나 속을 보면 전혀 다르다. 일단 쿄코의 경우에는 자기희생 쪽에 가까우며 끝까지 사야카를 살리려고 했는데 더 이상 시간이 없다 싶으니깐 사야카를 죽인 것이며 사야카 혼자 죽는게 싫으니깐 같이 죽어준 것이다. 쿄코의 아버지의 경우 어떻게 보든 동반 자살이다.
  41. 마법소녀가 된다=인간의 모습으로 죽든 마녀가 되어 죽든 어쨌든 죽는다. 물론 다들 모르고 계약했겠지만 마도카처럼 모든 진실을 알고 계약한 경우라면...
  42. 2호기를 완성하기위해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43. 다만 죠스케도 이걸 어느 삥뜯던 노인에게 들었기에 진실인지는 확실하지않다.
  44. 3세 이용가 답지 않게 자살한다.
  45. 아지랑이 데이즈 루프 속에서 자살한다. 덕분에 루프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왔으나, 루프 속에서 자살에 성공했기 때문에 빠져나왔으므로 이 문단에 기술.
  46. 방사능 낙진이 다가오기전 고통을 덜기위해 정부가 자살약을 배포한다.
  47. 죽음으로서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살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48. [1]
  49. 정확히 말하면 본체지만..
  50. 이 때 용왕이 남긴말은 과인이 하늘의 뜻도 모르고 무고한 토끼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였으니 무슨 할말이 있는다? 경들은 아무말도 하지마라
  51. 자살기도로 절벽에서 뛰어내렸단 부분은 가설일 뿐이지만 후에 인형으로 자기 목을 조르는 확실한 장면이 있다. 물론 이런 방법으론 죽을 수 있을리 만무하단 점에서 그냥 자해쇼로 볼 수도 있지만...
  52. 기술하는 캐릭터 외에도 원작의 BAD 엔딩에서 자살하는 캐릭터도 있다.
  53. 둘 다 흡혈귀여서 다시 살아났다.
  54. 장확히 말하자면 자살하고 실제로 죽는다. 다만 등교시간이 되면 살아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