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키 노브고로드

90px-Coat_of_Arms_of_Veliky_Novgorod.svg.png
벨리키 노브고로드
Великий Новгород
지역노브고로드 주
설립9세기
인구221,954 (2015)
면적90㎢
인구밀도2,464㎢/명
시간대UTC+3

1 개요

1854.gif
위 사진은 노브고로드의 크렘린.

러시아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사이에 위치한 도시. 모스크바로부터 531km, 상트페테르부르크로부터는 189km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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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키 노브고로드
Великий Новгород
지역노브고로드 주
설립9세기
인구221,954 (2015)
면적90㎢
인구밀도2,464㎢/명
시간대UTC+3

2 개요

1854.gif
위 사진은 노브고로드의 크렘린.

러시아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사이에 위치한 도시. 모스크바로부터 531km, 상트페테르부르크로부터는 189km 떨어져 있다.

도시 이름의 뜻은 신도시"새로운 도시"이다. 하지만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이라 사실은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1] 한 때는 러시아의 전신 중 하나인 노브고로드 공국의 수도였다. 이전에는 단순히 노브고로드라고 불렸다. 하지만 현대 러시아의 대도시 니즈니 노브고로드[2]와 구별하기 위해서 1990년에 벨리키 노브고로드로 개명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부른다. 다만 속해 있는 주의 이름은 바뀌지 않아, 여전히 노브고로드 주이다.

8세기 또는 9세기 경 류리크의 바랴그인[3] 이주민 무리가 이 곳 인근에 터를 잡은 것이 도시의 시초라고 한다. 그 친척인 올렉이 슬라브계 토착 부족으로부터 키예프를 점령하고 키예프 공국을 세웠다. 그렇게 노브고로드의 바랴그인들은 수 세기 동안 현지 슬라브인 원주민들을 정복하고 강을 따라 흑해로 진출하여 동로마 제국과의 교류를 통해 경제적, 문화적으로 성장하면서 12세기 경 노브고로드 공국을 건설한다. 하지만 13세기 몽골의 침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동맹 공국들이 분쇄되고 연맹의 중추였던 키예프 공국마저 처참하게 무너지자 노브고로드 공국 역시 타격을 입고 몽골에 복속되었다. 이후 14세기 몽골 제국이 분열되자 알렉산드르 네프스키의 활약으로 쇠락한 킵차크 칸국을 격파하고 파죽지세로 동진하던 튜튼 기사단을 저지하면서 멋지게 부흥에 성공하나.. 싶었지만 칸국들의 쇠퇴와 함께 부활한 북부 공국들 중 하나였던 모스크바 공국의 영향력 아래로 흡수되어버렸다.

그래도 이 때까지만 해도 벨리키 노브고로드는 큰 도시였다. 하지만 1570년에 이반 4세가 이 곳에 있던 사람들이 적국인 폴란드-리투아니아로 귀순하려 했다는 의심을 품어 버렸다. 이로 인하여 벨리키 노브고로드 사람들은 대학살을 당했으며, 이 이후로 벨리키 노브고로드는 소도시로 남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시기에 독일군에 의해서 침공을 당해 약 2,500개 정도 있던 석조 건물 중 약 40개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오래된 도시라 열심히 복원 작업을 하여 도시의 많은 부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잇는 고속철도삽산은, 이 두 도시 사이에 있는 그럭저럭 큰 도시인 이 곳과 트볘리를 정차하지 않는다. 그렇게 현대의 개발에도 소외되었다.
  1. 물론 이런 말장난도 어디까지나 현대인의 관점에서다. 중세의 시작점에서 러시아 북부 해안에 첫발을 내딛은 바랴그인들에게는 내륙의 관문과도 같은 이곳이 '새로운 도시'였을 테니까.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위의 설명과 같이, '바랴그인들의 새로운 도시'는 '러시아인들의 가장 오래된 도시'가 되었다.
  2. 원래 여기도 그냥 노브고로드로 불렀으나 이 도시와의 구별을 위해 '저지대의 노브고로드'란 뜻의 니즈니 노브고로드로 개명하였다.
  3. 동부 바이킹들의 명칭이다. 발트해 동부 연안에서부터 강을 따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가로질러 흑해에서까지 활동했으며 동로마 제국과 군사적으로 충돌하거나 교역을 성사하기도 했다. 바랴그인 전사들의 용맹함에 감명받은 동로마 황실이 이들을 용병으로 대거 고용하여 근위대를 편성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바랑기안 근위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