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

邊讓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기의 인물. 자는 문례(文禮).

진류군 준의현 사람으로 재주가 뛰어나면서도 곧이곧대로 말하거나 안색을 바르게 해 아첨하는 법이 없어 이름을 날렸으며, 공융, 도구홍 등과 함께 인재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지은 장화대부는 한때 널리 유행하면서 대장군 하진이 그를 부르고자 해 강제로 끌고 가서 대장군 영사에 임명했으며, 채옹, 공융, 왕랑 등이 그를 높이 평가했다.

구강태수를 지내다가 초평 연간[1]에 황실이 크게 어지러워지자 관직을 버리고 본가로 돌아갔으며, 자신의 재주를 믿고 조조에게 굴하지 않아 조조를 업신여기는 말들을 했다가 그의 향인 중에 조조에게 변양을 무함하는 이가 있었다. 조조는 진류군에 얘기해 곧장 변양을 죽이도록 하자 죽임을 당했으며, 그 목을 조조가 효수하면서 변양의 처자식도 모두 죽임을 당했다.

변양은 평소에 재능과 명성이 있어 변양이 죽은 일로 연주의 사대부들이 모두 두려워했는데, 진궁은 이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고 한다.

세설신어에는 원굉을 만날 때 일화와 공융이 그를 평가한 일화가 있다.

  • 원굉을 방문한 일화

원굉을 방문해 응대의 차례를 잃었는데, 원굉이 "옛날에 요 임금이 허유를 초빙했지만 허유는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없었는데, 어찌하여 옷을 거꾸로 입을 정도로 당황하고 있소?"라고 물었다.

이에 변양은 명부(明府)께서 처음 부임하셔서 요 임금과 같은 덕이 아직 드러나지 않으신지라 이 때문에 이 미천한 사람이 옷을 거꾸로 입을 정도로 당황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 공융의 평가

공융이 일찍이 조조에게 변양을 천거하면서 구주를 덮을 이불을 만들기에는 부족하지만 짧은 홑옷을 만들기에는 남음이 있다고 해 변양이 천하를 다스리기에는 부족하지만 한 지방을 다스리기에는 충분하다고 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본래 등장하지 않다가 모종강본에서만 나오는데, 구강태수를 지내 서주가 위태롭다는 소문을 듣고 사이가 좋은 도겸을 구원하기 위해 5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갔다가 조조가 보낸 하후돈의 군사에게 습격당해 전사한다. 원소와 조조가 싸우기 전에 보낸 진림이 조조를 비난하는 격문에서도 변양의 재능을 칭찬하면서 조조가 변양에게 한 짓을 비난하는 것으로 언급된다.
  1. 190 ~ 193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