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나보코프 Владимир Владимирович Набоков, Vladimir Vladimirovich Nabokov 1899~1977 |
1 개요
러시아 태생 미국의 작가, 곤충학자.
조셉 콘래드와 함께 영문학계 비-네이티브 작가 투탑이자 무관의 제왕[1]
2 생애
2.1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름난 자유주의 정치인이자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금광 소유주의 딸이었다고 한다. 부계쪽으로 독일계 러시아인 혈통도 있다는듯.[2]
귀족집 도련님 답게 자라면서 러시아어 뿐만이 아니라 불어, 영어를 사용하면서 자랐고, 이와 같은 성장 배경은 후일 그의 작품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발발 후 아버지가 온건파 케렌스키 내각에 참여했지만 당시 러시아 상황은 그저 온건파의 개혁 정도로 끝날 상황이 아니었고... 결국 나보코프 일가는 유럽으로 탈출한다.
그 와중에 나보코프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성적은 그저 그랬던 모양. 가족이 쫓기고 나라가 박살나는 상황에서 공부가 쉬웠겠냐만 졸업 후 가족이 정착해 있던 베를린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엔 아버지가 암살당한다. 당시 베를린은 독일 내의 각종 정파, 정당뿐만 아니라 러시아 등 유럽 각국의 망명객들이 활동하는 난장판이었다. 명망 있는 정치가였던 나보코프의 아버지도 당연히 러시아 이민자들의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그 일환으로 자신이 속해있던 입헌민주당 당수였던 파벨 밀류코프를 베를린으로 모셔 온 것. 그런데 밀류코프의 강연도중 애국보수극우파 정객이 밀류코프의 암살을 시도했고 그를 지키려고 온몸으로 막아서던 나보코프의 아버지는 끔살.[3][4]
이렇게 가정이 풍비박산 나고 얼떨결에 가장 노릇까지 맡게된 나보코프는 기자, 번역가, 어학 교사, 테니스 강사에 이르기까지 할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하는 지경에 이른다. 물론 이때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이런 경험들은 훗날 나보코프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이때 나보코프가 아내 베라를 만났다는 것이다.
성장과정을 보면 알수 있듯이 나보코프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현실감각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런 나보코프를 옆에서 다독여 주고 보살펴 주며 평생의 반려자 역할을 해 준 것이 바로 베라였다. 단순한 배우자가 아니라 나보코프의 작품들을 읽고 비평하고 편집해 준 사람이 베라였다. 나보코프가 태워 버리려고 했던 롤리타를 구해 낸 것도 베라였고 로리콘의 대모 심지어 평생 운전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나보코프를 위해 운전수 노릇도 모자라 핸드백에 총을 넣어 다니며 보디가드 노릇까지 했다. 이쯤되면 아내 + 엄마 + 수호천사 수준.
이렇게 차츰 작가와 가장으로서 자리를 잡아가던 와중에 나보코프 일생에 나치의 등장과 집권은 다시 한 번 대격동을 불러온다.햄보칼 수 없는 블라디미르 아버지의 영향 덕분에 나보코프 역시 철저한 자유주의자였고 더욱이 베라가 유대인이었다는 점 때문에 나보코프는 더 이상 독일에 머물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결국 1940년 나보코프 일가는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다.[5]
2.2 미국
미국으로 이주한 나보코프는 보스턴 교외에 위치한 웰즐리 여대의 비교 문학 겸 노어노문학 강사로 취직한다. 나보코프의 수업은 학생들 사이에서 평판이 아주 좋았는데, 이는 나보코프 본인의 재능이 대단한 덕분만이 아니라 당시에 소련이 미국의 동맹국이어서 러시아 문화가 큰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49년에는 코넬대학교로 옮겨 교수 생활을 이어간다.
이렇게 안정을 되찾은 나보코프는 집필에 다시 몰두해 왕성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나보코프의 대표작들에는 미국 대학을 배경으로 교수, 작가, 편집장 등 지식인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당연한 얘기지만 나보코프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들이다.
여러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역시 롤리타이다. 미국에선 마땅한 출판사를 찾지 못해서 프랑스에서 먼저 출판된 지 3년 후에나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물론 이때쯤엔 그 악명이 널리 알려진 상태라 미국 정식 출판 3주만에 판매량 10만 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나보코프는 작품활동 외에도 곤충 수집으로도 유명했는데, 그중에서 나비 수집과 분석에 제일 열심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전문가들의 평에 의하면 조금 구식이기는 하지만 수준이 꽤나 높았다고. 나보코프 작품들에는 이런 "나비 모티프"가 여러번 등장하기도 한다. 대학 수업이 없는 여름방학 때마다 나비 채집 여행을 떠났는데 그럴때면 운전은 당연히 베라의 몫이었다고...
2.3 말년
롤리타의 대성공으로 경제적인 여유를 찾게 되자 나보코프 일가는 미국을 떠나 스위스로 이주한다. 스위스에서도 작품 활동과 나비 수집과 아내의 셔틀 노릇을 이어 나가던 중 1977년 폐병으로 사망한다.
3 작품
모더니즘의 종지부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산파
유년기부터 다양한 언어를 배우며 자라온 배경 덕분에 나보코프는 운율과 수사학에 큰 관심을 가졌다. 또한 본인의 설명에 의하면 공감각적인 능력이 있어서 단어나 숫자를 색상과 연계해서 인지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보코프의 작품들에는 각운과 두운들을 사용한 독특한 어감의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고 작가 본인이 여러 단어를 이용해 만들어 낸 신조어들도 자주 등장한다. 이 점과 관련해서 항상 언급되는 예가 바로 대표작 롤리타의 첫 문단이다. 항목에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으니 참조하면 좋다.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my loins. My sin, my soul. Lo-lee-ta: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Lo. Lee. Ta. She was Lo, plain Lo, in the morning, standing four feet ten in one sock. She was Lola in slacks. She was Dolly at school. She was Dolores on the dotted line. But in my arms she was always Lolita.
물론 나보코프가 20세기의 대문호로 꼽히는 데에는 그저 글만 예쁘게 쓰기 때문만이 아니다. 나보코프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문학사조로서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정말로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모더니즘은 인간의 이성, 의식과 실존에 방점을 둔 예술사조이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의 이성, 의식과 실존 같은 거 뻥 아님?"이라는 예술사조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정상이다. 저 항목들 읽고 와 봤자 더 헷갈린다 애초에 저 둘이 어떻게 이어지고 어떻게 변형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고, 어느 예술가를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는 더더욱 논란이 분분하다. 아니, 오히려 나보코프 같이 두 사조에 다 걸쳐 있는 예술가들 덕분에 보는 사람 입장에선 더더욱 헷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코프를 모더니즘의 종지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나보코프의 작품들이 모더니즘의 특징과 전통을 정확히 간파해 내어 재현해 냈다는 점에 있다. 거기서 머물렀다면 나보코프는 그저 그런 모더니즘 작가에 불과했겠지만, 더 나아가 모더니즘을 부숴 버리는 작품들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바로 나보코프를 종지부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산파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이다.
롤리타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스포일러 항목에 나와있듯이 롤리타는 험버트 험버트라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쓰여진 소설이다. 험버트의 관점에서 소설의 이야기는 매혹적이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이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폭력적인 아동성애자의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인간의 의식이나 실존이라는 측면에서 읽는다면 험버트의 이야기는 아주 뛰어난 모더니즘 작품이다. 왜냐고? 애초에 아동성애자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점에서 설명 끝난 거 아닌가? 정말로 공감하고 이해한다면 좀 곤란하다 철컹철컹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이야기가 그저 자기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면서 나보코프는 독자들의 공감을, 그리고 더 나아가 의식과 실존에 대한 믿음을 깨 버리는 것이다. 여기서의 핵심은 나보코프가 단순히 "이것은 사회-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단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면 소설이 아니라 그냥 이솝우화 나보코프 본인 역시 이 작품에 대해 "사회적 통념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이야기했고, 험버트 험버트에 대한 모든 평가 역시 화자 내면에서 이루어진다. 소설의 내용이 정말로 진실된 사랑이라면 하지 않아도 될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독자들은 사실 험버트가 추악한 인물이고 스스로도 그렇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이다.
즉,
모더니즘 = 인간의 의식과 실존
험버트 험버트 = 소아성애자 = 인간
소설 롤리타 = 소아성애자의 의식과 실존 = 인간의 의식과 실존 = 독자들의 공감 = 뛰어난 모더니즘
나보코프의 의도 = 사실 험버트 험버트가 나쁜 놈이야 = 모더니즘 따위 믿지 마
이외에도 롤리타 곳곳에는 모더니즘 문학이 인용되거나 패러디되어서 사용된다. 작중 험버트의 전공은 마르셀 프루스트 등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들인데 이 역시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이 극대화된 또다른 작품이 롤리타와 함께 나보코프의 역작으로 손꼽히는 "창백한 불꽃"(Pale Fire)이다.[6] 표면상으로는 장편 서사시와 그에 대한 주석들로 이루어진 작품이지만 읽으면 읽으수록 주석과 서사시가 무관할 뿐만 아니라 화자가 미치광이라는 점이 명백해진다.[7][8] 의식과 실존의 흐름을 자세하게 설명한 후 비틀어 버리는 나보코프의 작품세계가 명확히 드러난 예.
이렇듯 나보코프는 복잡한 서사 구조와 믿을 수 없는 화자들, 소설 속에 묘사되는 우연의 연속, 다양한 인용과 패러디 등을 통해 모더니즘의 진수를 그려 낸 동시에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뒤에 올 포스트모더니즘의 길을 터 준 것이다.
4 기타
- 2009년에 미완성작인 "로라의 원형"이 아들 드미트리에 의해 출간되었다. 나보코프의 집필 과정 자체가 조그마한 단어장 여러 개에 글을 써서 최종적으로 합치고 편집하는 형식이어서 미완성작 "로라의 원형" 역시 그런 단어장들의 스캔 사진들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 나보코프의 작품에는 우연과 오해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들이 많은데, 평론가들은 다른 사람의 암살 시도로 목숨을 잃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 오랜 망명객답게 강한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를 드러내는 일이 드물었고 소련이 된 조국 러시아와도 복잡 미묘한 관계에 있었다.
- 제임스 조이스에 대해 "그의 작품들을 읽고 배운 것이 전혀 없다"라고 디스한 적이 있지만 코넬 교수 시절 율리시스를 강의한 적도 있는등 복잡 미묘한 관계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듯 하다. 애초에 모더니즘과 꽁기꽁기하면서 끈적끈적한 관계를 가진 입장에서 "배운 것이 전혀 없다"라는 것부터가...
츤데레
- 도스토옙스키를 대놓고 싫어했다. 그의 소설에서 드러나는 기법들과 취향이 진부하다는 게 이유다(...). 그의 소설들이 유럽 감상주의 소설이나 극작, 혹은 추리 소설 기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깐다(...). 유머 작가는 될지언정, 위대한 작가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으로 봐선 진심인 듯. 그래서 그의 강의록에선 "도스토옙스키는 비난 받을 수 밖에 없다.", "언젠가 도스토옙스키의 정체를 폭로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대놓고 말한다.(...) 반면에 톨스토이는 위대한 예술가라고 칭송하는 편이었다.
-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 토마스 핀천이 코넬 재학 시절 나보코프의 강의를 들었다. 문학 사조로 보나 작품들로 보나 나보코프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지만 정작 핀천은 그 양반 러시아 억양이 너무 강해서 뭔 말인지 알 수가 없었어라는 식으로 언급하고 나보코프 역시 누군지 기억을 전혀 못한다고 했다고.
츤데레 사제오히려 나보코프의 사무 보조를 했던 베라가 핀천의 독특한 필체를 기억했다고 한다.
- 미국으로 망명해 웰즐리 대학과 코넬대학에서 러시아 문학과 서양 문학을 강의했는데 그 강의 내용이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로 번역되어 나와있다. 관심있는 사람은 읽어볼 것.
- ↑ 톨스토이,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등과 함께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한 대작가 명단에 항상 손꼽힌다. 전미도서상 후보에도 무려 7번 올랐지만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 ↑ 아닌게 아니라 그 당시 러시아 상류층은 다 그랬다. 자세한건 항목 참조
- ↑ 정작 밀류코프는 그로부터 20년 넘게 잘 살다가 편안히 여생을 마감했다.
- ↑ 암살자 역시 14년형을 언도받았다가 곧 풀려나고 2차대전 직전엔 러시아 이민계 대표자리까지 오른다.
막장애초에 히틀러가 등장해서 권력을 잡는 전후 독일 사회에서 정의 구현을 바란 것 자체가 오류 아닌가?- - ↑ 나보코프의 동생 세르게이는 독일에 남았는데, 히틀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다가 1945년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을 맞는다. 살신성인한 아버지에 이어 진정한 호부호자...
- ↑ 미국의 출판사 모던 라이브러리에서 뽑은 20세기 100대 소설에서 롤리타는 5위, 창백한 불꽃은 53위에 올랐다. 참고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1위.
- ↑ 말 그대로 또라이다. 스토커 + 과대망상 + 정신 분열
- ↑ 당연한 얘기지만 덧붙이자면 에코는 보르헤스와 나보코프같은 후기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