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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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 Wilhelm Reinhold Pieck (1876.1.3.~1960.9.7.)
대통령 재임 : 1949년 10월 11일 - 1960년 9월 7일

1 개요

독일민주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서기장.

2 생애

구벤[1]에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목수 생활을 하다가 1894년 목세공인 연맹에 가입하였으며, 이듬해 독일 사회민주당에 입당한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대부분의 사민당 당원들은 전쟁을 지지하였으나, 피크는 전쟁에 반대하여 군사교도소에 투옥되었다. 석방 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하였다.

1918년 베를린으로 복귀하여 독일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22년 국제 공산주의 원조 기구의 창립 단원이 되어 전문 위원회에 근무하였고, 1925년에는 독일 공산주의 원조 기구 의장이 되었다. 그러나 나치당이 집권하자 피크는 일단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1935년 소련으로 간다.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코민테른 서기장, 1943년 '자유 독일을 위한 국민위원회'(NKFD) 창립인 중 하나가 되었고, 소련군이 베를린을 함락시키고 나치 독일을 패망시키자 함께 귀국한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동독 지역 지부와 독일 공산당을 합동시켜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을 출범시키고 오토 그로테볼과 함께 사회주의통일당의 공동 서기장이 된다.

1949년 동부 독일에 독일 민주 공화국이 세워지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50년 발터 울브리히트가 서기장 직위를 이어받았다. 사망하는 1960년 9월 7일까지 대통령직에 있었다. 그는 동독의 유일한 '대통령'이었는데, 그의 후임인 발터 울브리히트는 국가원수의 직위명으로 국가평의회 의장 직위를 썼다.

3 기타

  • 그의 고향인 구벤은 1961년부터 1990년까지 "빌헬름 피크의 도시 구벤(Wilhelm-Pieck-Stadt Guben)"이라는 이름이었다.
  • 한때 함흥시에 이 사람의 이름을 딴 빌헬름 피크 거리(Wilhelm-Pieck-Boulevard)가 있었다. 6.25로 떡실신한 북한의 도시들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함흥이 소련과 동독의 지원을 얻어 재건되었기 때문이었다.
  1. 1945년 이후로는 오데르 강 서쪽은 독일령 구벤, 동쪽은 폴란드령 구빈으로 나누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