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재


謝用梓

생몰년도 미상

명나라의 인물.

1593년에 심유경이 일본과의 평화 협상을 위해 고니시 유키나가와 접촉해서 강화 협상을 진행하는데, 양 측이 서로 조건을 내걸면서도 그 조건을 들어주는 척 해서 위장 강화 사절로 서일관과 함께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나고야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의 요구 조건을 들어준 것으로 착각하면서 서일관과 함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명목상으로 강화 협상이 이루어지자 조선에 사용재와 함께 임해군, 순화군을 데리고 돌아왔다. 강화 협상에서 공문을 위조한 것이 발각되자 서일관과 함께 유배되었다고 하는데, 1597년, 1598년에는 도사로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된 것이 확인된다.

창작물에서

김성한임진왜란에서는 절강성의 소흥부 여요현 출신으로 1593년에 서일관과 함께 동갑인 37세로 어릴 적부터 친구라고 한다. 참장으로 임진왜란으로 명군이 조선에 파견되면서 동행했는데, 조카인 사융이 동행했지만 사융을 자신의 눈 밖에 나게 하면서 사융은 심유경에게 붙었다고 한다. 1593년 3월에 가토 기요마사의 요청으로 심유경이 이신충과 접촉할 때 주홍모와 함께 동행했으며, 송응창이 정사로 임명해 일본에 강화협상을 위한 사신으로 파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