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應昌 (Song Yingchang, 쑹잉창)
1536-1606
중국 명 말기의 관리. 자는 사문(思文). 호는 동강(桐崗).
인화(항주, 항저우) 출신으로 1565년 진사에 등용되었으며 여러 고위직을 두루 거치며 관리로써의 수완을 인정받았다. 1592년에 경략 직급으로 사실상 명군의 2인자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병부우시랑경략비왜군무(兵部右侍郎經略備倭軍務)로 임명되어 조선을 도우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는 1592년 12월 내내 조선에 파견될 명군과 보급 및 물자를 점검하였으며, 이여송이 이끄는 요동군을 주축으로 한 4만 2천명의 명군을 조직하여 조선에 파견한다. 임진왜란 직전 터진 영하 반란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단기간에 대병력을 편성하여 신속하게 전개한 데엔 송응창의 관리 수완이 한 몫 했으며, 결과적으로 조명 연합군이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명의 심유경과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가 평화 협상을 시작하자 이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다 그의 정적이었던 병부상서 석성에게 탄핵되어 사임된다. 이후 죽을 때까지 인화에서 지냈다.
저서로 경략복국요편(經略復國要編)을 편찬하였으며, 이는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군의 1차사료로써 임진왜란을 명군의 입장으로 관찰할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조명 연합군이 펼쳤던 여러 작전 및 조선 장수들에게 내리는 지령 등. 읽어보면 당시 송응창이 조선에 파견된 명군의 보급 문제로 얼마나 고민했는지 알수있다. 징비록 드라마에서 보면 왜곡된 인물이다. 남병의 수장답게 북병의 수장 이여송과 같다고 하겠지만 실록과 징비록에서 다르다 개념적이였고 일본의 음모와 조선분할에 대한 명의 논쟁을 조선에 알리고 왜군의 터무니 없는 요구 조건을 일축하였다 그리고 이여송이나 북병장수들 처럼 거만하지 않았다
징비록에서는 최일화씨가 맡았다. 굳이 특이점이 있다면, 심유경과의 국제사기극이 탄로나자 울화통이 터진 나머지 심유경에게 니킥을 먹인다(…). 조인트 까인 심유경의 반응은 덤.
임진록 2에서는 확장팩 조선의 반격에서 명군 영웅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