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살바토레 스킬라치 (Salvatore Schillaci) |
생년월일 | 1964년 12월 1일 |
국적 | 이탈리아 |
출신지 | 팔레르모 |
신체 조건 | 175cm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소속팀 | FC 메시나(1982 - 1989) 유벤투스 FC(1989 - 1992)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1992 - 1994) 주빌로 이와타(1994 - 1997) |
국가대표 | 16경기 7골 |
1990 Ballond'or | ||
수상 로타어 마테우스 | 2위 살바토레 스킬라치 | 3위 안드레아스 브레메 |
1990 FIFA 월드컵 | ||
골든 볼 살바토레 스킬라치 | 실버 볼 로타어 마테우스 | 브론즈 볼 디에고 마라도나 |
1990 FIFA 월드컵 득점왕 | ||
살바토레 스킬라치 |
1 소개
Totò[1]
1990년 월드컵을 위해 태어난 사나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이 낳은 최고의 신데렐라. 커리어 전체를 놓고보면 별볼일 없는 선수이나 1990년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이름을 남긴 선수이다.
국가대표팀에서 통산 7골을 넣었는데, 그 중 6골이 1990년 월드컵에서 기록한 것이다.
2 클럽
1982년 이탈리아 4부리그 격인 세리에 C2 소속의 메시나에서 데뷔했다. 메시나에서 꾸준히 출장을 했으나 그렇게 많은 골을 득점한 것도 아니었고 세리에 B로 승격하기 전 시즌 11골, 세리에 B로 승격한 첫 시즌에는 3골을 넣었다. 1988-89 시즌에는 23골을 넣으며 세리에 B 득점왕을 차지, 유벤투스 FC에 입단한다.
유벤투스에서 첫 시즌 리그에서만 15골을 뽑아내며 코파 이탈리아와 UEFA 컵 우승에 공헌했다. 그러나 이후 별볼일 없는 공격수로 전락했고 인터 밀란을 거쳐 1994년 일본의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의 활약을 보이며 1997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3.1 1990년 월드컵
유벤투스에서의 좋은 활약으로 스킬라치는 비치니 감독의 선택을 받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했다. 그의 주요 경쟁자로는 로베르토 바조를 비롯해 로베르토 만치니, 잔루카 비알리, 안드레아 카르네발레 등 리그에서 한가닥씩 하는 공격수들이었다. 대회 초반 무명의 스킬라치는 벤치를 달구는 선수였을 뿐이었다.
조별리그 1차전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0-0 비기고 있던 경기에서 스킬라치는 카르네발레를 대신해 투입되었는데, 투입된지 2분만에 골을 뽑아내며 승점을 얻어다주었다. 미국전에서도 교체투입되었고 기존의 비알리-카르네발레 투톱이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자 비치니 감독은 조별리그 최종전 체코슬로바키아전에서 바조-스킬라치 투톱을 선발로 내세웠다. 이 경기에서 스킬라치는 선취골을 기록했고 바조는 쐐기골을 넣었다.
16강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둘의 조합은 유지되었고 스킬라치는 선취골을 뽑아냐며 이탈리아의 2-0 승리에 일조했다. 8강 아일랜드전에서도 스킬라치는 결승골을 뽑아냈고 4강전 아르헨티나전에서도 선취골을 넣었다. 다만 이탈리아는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다. 3,4위전 잉글랜드전에서도 PK 결승골을 뽑아내며 대회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한 스킬라치는 이 대회 득점왕, 올스타팀, MVP를 모두 석권했다. 거기에 1990년 발롱도르 2위를 기록했다.
4 기타
오락실에서 인기 축구게임이었던 세이부 컵 축구 이탈리아 팀 모델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입을 벌리고 있어서 많은 이들이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 ↑ 살바토레 스킬라치의 세계적인 애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