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빌로 이와타

(2017 참가구단)
니가타가시마오미야세레소 오사카삿포로요코하마 FM
가와사키감바 오사카이와타우라와가시와시미즈
도스히로시마FC 도쿄센다이고후고베
야마하 산하 스포츠단
주빌로 이와타
(축구)
야마하 발동기 주빌로
(럭비)
주빌로 이와타
Júbilo Iwata
정식명칭ジュビロ磐田
Júbilo Iwata
구단형태기업구단
모기업야마하 발동기
소속리그일본 J리그 디비전 2 (J. League Division 2)
창단연도1970년
연고지시즈오카 현 이와타 시 (静岡県 磐田市)
홈구장야마하 스타디움 (Yamaha Stadium), 16,893명 수용
구단주다카히라 요시로
감독나나미 히로시 (名波浩)
공식 홈페이지[1]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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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시즌 푸마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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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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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코트

1970년에 야마하 발동기 회사가 만든 축구팀으로 시즈오카 현 이와타 시를 연고지로 두고 있는 축구팀이다. 같은 연고지 팀인 시미즈 S펄스와의 시즈오카 더비로 유명하다. J리그에서 성공한 팀 중에 하나로 3번의 우승과 3번의 준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해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둬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일본 축구팀 중 가장 좋은 성적이다. 팀명인 주빌로는 포르투갈어로 '환희'라는 뜻이다.

2 초창기

1982년 천황배 우승과 함께 JSL 2부 리그 우승으로 1부로 승격했고, 1987~1988년 시즌에는 JSL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J리그가 만들어 질때는 팀 프로화 문제 때문이 승격을 포기했다.

1993년 JFL 1부 준우승으로 1994년에 J리그로 승격.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경력이 있는 한스 오프트를 감독으로, 브라질 대표팀 출신 둥가를 영입했다. 둥가의 축구 철학은 팀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94년 리그 8위 1995년 6위 1996년 리그 4위로 매년 순위가 올라가기 시작했고 1997년~2003년 영광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3 영광의 시대

1997년 팀창단 최초로 J리그를 우승하고 1998년 리그 준우승 컵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1999년 리그 우승과 더불어 아시안 클럽 챔피언쉽에 참가해 이란 에스테그랄을 2:1로 꺾고 더블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 다음해인 2000년, 2001년에는 주빌로 이와타에게는 약간 슬럼프가 있던 해였는데 2000년에는 리그 4위로 떨어졌고 챔피언스리그에선 준우승했다. 그 다음 2001년 기록 보면 대박인데 리그 준우승, 컵대회 준우승,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J리그 최초 3연준을 달성하게 된다. 훗날 독일에 모팀도 이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2002년 잘 추슬려서 다시 리그 우승을 했고 2003년 리그 준우승 일왕배에서 세레소 오사카와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하며 강팀임을 과시했다.

이기간 동안 주빌로 이와타는 수많은 J리그 기록들을 깨고 다시 세웠다. 1998년 시즌에는 리그 준우승을 했지만 세레소 오사카를 9:1로 뭉개버러 한경기 최다점수차 승리팀이 되었고 108골로 시즌 최다득점 구단 기록을 세웠다.

2001년도 3연준 할 때는 26실점 밖에 안해 한 시즌 최소실점 구단 기록을 세웠다.

2002년에는 J리그 사상 처음으로 전후기 리그 스테이지를 모두 우승했으며, J리그 베스트일레븐에 같은 팀 선수가 7명이나 뽑히는 영광을 얻었다. 이 기록들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때 까지만 하더라도 J리그 우승은 가시마 앤틀러스, 주빌로 이와타일정도로 두팀이 치열한 라이벌전을 형성했다.

4 몰락

2003년 까지는 리그 우승 준우승도 하며 강팀에 면모를 보였으나 2004년 부터 팀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세대교체를 해야 하는데 세대교체를 실패해 기존에 있던 선수들이 그대로 뛰고 있으며 어린선수들을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한채 방황하게 된다.

2004년 리그 5위 일왕배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남겼고 2005년 6위 2006년 5위를 기록해 세대교체 실패에도 그럭저럭한 성적을 낸다. 하지만 2007년도 부터 해가가면 갈수록 가관에 성적을 내게 된다.

2007년 9위를 시작으로 2008년 16위까지 떨어져 승강결정전에서 베갈타 센다이를 이기고 아슬아슬하게 강등을 피했으며 2009년 11위를 2010년도 마찬가지로 작년과 똑같은 11위를 기록했다. 그나마 팬들에 위안이라면 리그컵을 우승하면서 7년만에 우승컵을 들었다는 것이다. 2011년에는 8위에 들어 그나마 나은 성적을 기록했다.

2012년 시즌에는 들쑥날쑥한 경기력으로 중하위권을 맴돌더니 시즌 중간에 한화로 15억원에 이르는 돈을 사기당하고 12위로 시즌을 마쳤다.

2013년 시즌에는 초반부터 16위로 내려가 강등권에 들어가 있다. 팬들은 이러다가 작년의 감바 오사카 꼴이 나는 게 아니냐며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다가, 그것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결국 31라운드에서 사간도스에서 0-1 로 패하면서, 남은 3경기에 상관없이 강등을 확정지었다. 1993년 구JFL 준우승으로 J리그에 합류한지 20년만의 강등이자, 동시에 구 야마하 발동기에서 주빌로 이와타로 개편한 이후 첫 강등이다.

여담으로 2013년엔 2007년부터 이어진 마에다 료이치의 저주(마에다가 첫 골을 넣은 상대팀은 반드시 강등된다는 법칙-고후,도쿄 베르디,지바,교토,야마가타,감바 오사카 중 고후,감바 오사카,야마가타만 재승격)가 끝났는데, 그대신 마에다 본인의 팀이 강등되는 무시무시한 결과가 나왔다.

2013 J1에서 16위로 함께 강등됐던 쇼난 벨마레가 2014 J2에서 왠지 한국의 모 구단을 보는 듯한 깡패 노릇을 하며 일찌감치 우승과 자동승격을 확정짓는 동안 주빌로 이와타는 3년 전 JFL에서 J2으로 승격한 신흥 다크호스 마쓰모토 야마가에게 2위를 빼앗기며 3위 쪽에서 놀다가 3경기를 남겨 둔 시점에선 의 승점 차이가 12점으로 벌어지면서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2장의 자동승격권 중 1장은 마쓰모토 야마가에게 돌아가면서 주빌로 이와타는 재승격을 위해 승격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고되었다.

결국 준플레이오프에서 몬테디오 야마가타에게 1:2로 패배하여 2015년에도 J2리그에서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주빌로 이와타가 정규리그 4위였고 몬테디오 야마가타가 정규리그 6위였기 때문에[1] 주빌로 이와타의 홈에서 단판승부로 치르고 무승부시 주빌로 이와타의 승리로 간주되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1:1 무승부 상황에서 종료 직전 몬테디오 야마가타가 마지막으로 공격할 찬스가 왔는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심정으로 야마기시 골키퍼가 김병지처럼 골문을 비운 채 공격에 가담했고 그것이 신의 한 수가 되어 버저비터 헤딩 결승골을 내 주는 바람에 주빌로 이와타의 승격 꿈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1년 뒤를 기약해야 했다. 관련 기사

그러다가 1년 뒤인 2015년, 기적적으로 준우승에 성공하면서 2016년부터는 다시 J1 소속으로 뛰게 되었다.

5 AFC 챔피언스리그

1997년 리그 우승으로 1998-1999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쉽에 참가 했다. 플레이 오프에서 승승장구해 8강전 동아시아 조별리그에서 포항 스틸러스, 부산 아이파크, 다롄 완다와 속해 포항과 1:1로 비기고 부산을 2:0으로 꺾고 다롄과 비겨 1승1무1패 조2위로 4강에 진출했으며 알아인을 승부차기 끝에 꺾고 결승에 올라갔으며 결승에서 에스테그랄을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99-2000년 우승팀 자격으로 플레이오프를 거치치 않고 8강 동아시아 예선부터 시작해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가시마 앤틀러스, 태국 신타나FC와 같은 조가 되어 경기를 치루었다. 3전 전승으로 깔끔하게 4강에 진출하고 4강에서도 페르세 폴리스를 만나 2:0승리하면서 결승에 진출해 이란팀에 강하다는걸 보여주었다.

결승전 상대는 알 힐랄로 정해졌는데 알 힐랄은 1987, 1988년 모두 결승전에서 일본팀에게 진 뼈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팀이였다. 주빌로 이와타는 그런저런 팀으로 생각해 결승에 임했다. 알 힐랄 홈에서 펼쳐진 결승전에서는 세르지오 히카르도에서 전반3분만에 골을 내줬지만 18분, 19분 연속해서 이와타가 골을넣고 2:1로 앞서 나가게 되고 후반들어서 별다른 일이 없어 손쉽게 승리하나 했으나... 경기 막판 후반 44분 세르지오 히카르도가 또다시 골을 넣어 경기는 연장전 승부에 돌입해야 했다. 연장 12분 또 히카르도에 골로 3:2 역전당한 주빌로 이와타는 필사에 공격을 퍼부었지만 결국 추가골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2연속 우승에 실패하고 말았다.

2000-2001년 다시 참가한 대회에서는 동아시아 1라운드를 면제받고 2라운드 부터 시작해 홍콩 사우스차이나를 6:2로 가볍게 이기고 동아시아 8강에 진출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산둥루넝, PSM 마카사르와 만나게 되었는데 수원을 상대로 3:0 승리를 거둠으로써 수원에게 2연승을 거두게 되었고 산둥을 6:2, 마카사르에게는 3:0승리를 거둠으로써 3전 전승 4강에 진출하게 된다.

4강에서 이르튀시를 연장전 끝에 1:0으로 승리하고 결승에 올라갔다. 결승전 상대는 페르세폴리스를 2:1로 이긴 수원으로 확정되었다. 팬들은 "2년 연속 이긴팀인데 못이기냐?"라는 반응이였다. 다만 결승전 장소가 수원 홈이라는게 문제 였지만 개의치 않고 넘어갔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결승전은 전반 14분 수원 산드로 골로 인해 1:0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이후 추가득점을 올리지 못하지 주빌로 이와타는 다급해 지기 시작했다. 수원은 좀 처럼 동요하지 않고 수비를 굳건하게해 주빌로에게 득점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 결국 1:0으로 경기가 끝나게 되고 주빌로 이와타는 2년 연속 우승을 놓치게 될뿐더 리그 준우승 리그컵 준우승을 기록해 3연준에 오르는 불명예를 얻게된다.

이후 몰락시즌에는 2004년 AFC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해 E조에 속해전북 현대 모터스, 상하이 선화, 태국 BEC와 속해 4승1무1패를 거두었으나 골득실에서 밀려 전북에게 조1위를 내주고 조2위로 탈락하게 된다.

2005년 작년과 똑같이 E조에 속해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선전 젠리바오, 베트남 호앙아인과 속했으나 수원에게 결승전 복수는 커녕 홈에서 1:0, 원정에서 2:1패배를 당하게 되고 선전에게도 패배해 3승3패 조3위로 탈락하게 된다.

6 기타

과거 이 클럽에서 활약했던 한국 선수로는 최용수, 김진규, 이근호, 이강진, 박주호, 백성동 등이 있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가 1997시즌 잠시 지휘봉을 잡기도 했으나, 이내 파우메이라스의 감독으로 선임되며 11경기 끝에 사임한다.

성남 일화 천마팬들이 이팀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유인 즉슨 2012시즌 성남일화를 말아먹고 있는 먹튀이자 역적 3인방 한요운(한상운 요반치치 윤빛가람)중 한상운을 이적료 17억씩이나 주고 데리고 가서다.

가뜩이나 지원도 줄고 돈도 없는 성남이여서 이번 이적건으로 인해 돈도 돈이지만 똥을 비싸게 치워줘서 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역시 이적 후 기록하라는 공격 포인트는 안 기록하고 벤치만 달구며 먹튀짓을 하자 팬들은 성남에게 손해배상 청구하라며 들고 일어났다.

그 전에 성남의 준 레전드급 센터백 조병국이 2010시즌이 끝나고 이 팀으로 이적하면서 이 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2012년 시즌 마지막 경기에선 강등 위기에 놓인 감바 오사카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며 감바를 충격과 공포의 강등 나락으로 밀어넣었다.
  1. 원래대로라면 정규리그 5위인 기라반츠 기타큐슈를 상대해야 했으나, 기타큐슈가 J1 라이선스 미비로 인해 불참하면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