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의 요정

1 장정일의 시.

8-90년대 현대 도시를 무대로한 시로 유명한 장정일의 대표시중 하나. TV에 나온 샴푸 모델에게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의 인간을 그린 작품이다.

물론 설명하자면 이렇게 되지만 이 시를 보게되면 찔리거나 공감할 덕후들도 많을 듯(...)

1.1 전문

샴푸의 요정

사내는 추리극장이 싫다. 국내 소식이
싫고 운동경기가 싫고 문제의 외화가
싫다. 안 본다. 그리고 방송출연하는
많은 다른 여인들이 역겹다. 나는 그녀만을 본다.
여덟 시 반의 그녀를 기다린다. 보시겠읍니까
15초 동안 그녀는 샴푸회사를 위해
광고하지요. 보시겠읍니까

그녀는 인사를 잘한다. 안녕하셔요
그녀는 미소띠며 속삭인다
파란 물방울 무늬 잠옷을 입고
그녀는 머리를 감아 보인다. 무지개를 실은
동글동글한 거품이 티브이 화면을 완전히
메운다. 그러면 샴푸의 요정이 속삭이는 거지
새로 나온 샴푸, 당신이 결정한 샴푸라고
향기가 좋은 샴푸, 세계인이 함께 쓰는 샴푸
아마 당신은 사랑에 빠질 거예요
라고 속삭이는 것이지

미용주식회사가 있다. 아시아 굴지의
미용주식회사가 있다. 그리고
우리들에겐 요정이 있다. 현존하는 유일한 요정
매일 저녁 여덟 시 반, 티브이 화면을 찢으며
우리 곁에 날아오는 샴푸의 요정. 그녀는 15
초 동안 지껄이고
캄캄한 화면 뒤로 사라진다. 여덟 시 반.
매일 저녁 여덟 시 반에는 그녀가
출연하는 광고가 있다. 기다려 주세요

광고가 끝나면 사내는 무기력하게
티브이를 꺼 버린다. 매일 저녁 15초가 필요할 뿐
사내는 사진을 들여다본다. 짝사랑하는
그녀 사진을 사내는 모은다. 방에 붙이기도 한다
흰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 수영복을 입은 모습
승마복을 멋지게 입은 사진을 그는 모은다.
그리고 칼에 대어 잘라낸다. 샴푸의 요정이
어느 영화에 출연해서 보여주는
곧 입술이 닿으려는 찰나의 남자 배우 입술을
면도날로 잘라낸다.

선전문안이 들끓는 밤 열 한 시
나지막이 샴푸의 요정이 속삭이지 않는가
그녀의 노래가 귓전에 맴돌지 않는가.
쓰세요, 쓰세요, 사랑의 향기를
느껴 보세요. 그리고 그녀의 약속이
가슴속에 고동치지 않는가. 오늘 밤
당신을 찾아가겠어요, 광고 속에서
그녀는 약속했었지. 욕망이 들끓는 사내의 머리통

옷을 벗는 요정. 담배불 자국이 송송한 소파에
비스듬이 눕는 요정. 신비스레 신비스레
가라앉는 요정. 뜨거운 입술로
이리 오세요 예쁜 아기, 속살거리는 요정
환영이 들끓는 밤 열 두 시, 이윽고 샴푸의 요정은
그의 머리를 끌어당겨
냄새를 맡아 본다. 제가 권한 것을 쓰셨겠지요
물론 그러하셨겠지요?

0시 삼십 분. 사내는 샴푸가 아닌
다른 이야기가 하고 싶다. 무언가
시도하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실내화를 끌며
얼마나 잽싸게 달아나는가. 참 잘하셨어요
샴푸는 역시 우리 것이 최고랍니다. 계속
애용해 주세요. 분홍빛 잠옷을 끌며
샴푸의 요정은 사라진다. 아아
좀더 있어 주세요! 좀더!

꿈에서 깨어나
사내는 타자기를 두드려댄다.
딱딱딱딱딱
굴지의 미용주식회사가 있다.
그리고 현존하는 유일한 요정은
샴푸요정이다.

언젠가 수능에 나올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2 MBC의 드라마

장정일의 위 시를 바탕으로[1] MBC 베스트 극장에서 드라마화 한 작품. 후에 여러 히트작을 내놓아 인기 PD에 반열에 오른 황인뢰 PD가 연출을 맡고 홍학표채시라가 주연을 맡아 1988년 11월 6일에 방송되었다.

미대생 이현재(홍학표)는 유명 샴푸모델 신애리(채시라)를 보고 한눈에 반해 광고회사에 들어간다. 그러나 현재는 애리의 앞에서 고백을 하지 못했고, 직장상사인 문희(윤석화)로부터 짝사랑을 하는 것으로 오해받게 된다.[2]

그러던 중 애리의 이성친구인 록커 철민(윤철형)이 공연장에서 감전사고를 당했고, 애리의 뒤를 쫓아다니던 현재는 감전사고의 용의자로 몰려 경찰 수사를 받게 된다. 이로 인해 현재는 자신에게 쏠리는 의심을 풀기 위해 범인을 추적해 결국 스토커인 범인(이효정)을 잡는데 성공[3]하고 애리의 사랑도 얻게 된다는 줄거리다. 이렇게 보면 평범한 미대생의 사랑 이야기같으나, 사실 현재의 정체는 재벌의 둘째 아들이라는 반전(...).

다만 집에서 큰 아들에게 신경을 쓰면서 둘째인 현재를 아예 포기했기에 따로 나가 스스로 돈벌고 살아가면서 서민층의 심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큰 형이 그만 갑자기 병으로 죽으면서 다른 재벌집과의 사돈 관계가 물거품에 처하게 되자, 버려둔 자식인 현재를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강압적으로 굴고 있었다. 물론 현재는 그런 재벌집 여자와 결혼이라니 웃기지말라면서 아버지가 고용한 조폭 고용인들을 따돌리면서 지내고 있었다. 마지막에 애리와의 데이트를 기대하는데 어김없이 나타난 고용인들을 꼼수부려 패고[4] 그녀 손을 잡으면서 신나게 달아나며 끝난다.

장정일의 시와는 달리 너무 이야기가 통속적으로 흘러간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단막극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회자되었고 재방영도 여러번 했으며 2000년대 와서도 케이블 방송에 종종 방영한다. 2009년 6월에 MBC 해피타임!에서 20분대 분량으로 요약되어 소개되기도 했고,[5] 2011년 9월에도 K-TV같은 케이블에서 방영한 바 있다.

3 빛과 소금의 노래

빛과 소금의 대표곡. 본래는 2의 드라마를 위해 사랑과 평화에서 활동하던 장기호가 작사/작곡한 곡으로 드라마의 인기를 타고 히트를 쳐서 사랑과 평화 4집에 먼저 수록된뒤 1990년 빛과 소금이 결성되면서 빛과 소금 데뷔 앨범에 재수록 되었다.

빛과 소금은 비록 당시 라이벌 밴드이자 퓨전 재즈 붐을 일으킨 봄여름가을겨울에 밀려서 빛을 보진 못하긴 했지만[6], '샴푸의 요정'만큼은 오늘날 들어도 손색없는 세련된 사운드가 매력적인 노래다. 이 덕에 이승철, 김진표, 페퍼톤스 등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 했고, 빛과 소금의 리더인 장기호도 본인의 스타일로 2004년에 리메이크를 했다.

3.1 가사

네모난 화면 헤치며 살며시 다가와
은빛의 환상 심어준 그녀는 나만의 작은 요정
이른 아침 안개처럼 내게로 다가와
너울거리는 긴 머리 부드런 미소로 속삭이네

그녀만 보면 외롭지 않아 슬픈 마음도 멀리 사라져
그녀는 나의 샴푸의 요정 이제는 너를 사랑할거야

이른 아침 안개처럼 내게로 다가와
너울거리는 긴 머리 부드런 미소로 속삭이네

그녀만 보면 외롭지 않아 슬픈 마음도 멀리 사라져
그녀는 나의 샴푸의 요정 이제는 너를 사랑할거야

멀리서 나홀로 바라보던 그녀는 언제나 나의 꿈
  1. 주인공 이현재가 고백에 실패한 뒤 위의 시 내용을 화장실에서 되뇌이다가 회사 동료들로부터 ㅄ 취급을 받는다.
  2. 이는 현재의 뻘짓과 문희의 착각이 컸다. 현재가 문희와 광고 컨셉을 의논하는 애리를 쳐다보는 것을 문희는 "아, 쟤가 나를 좋아하나 보네"라고 착각했고, 설상가상으로 현재가 애리의 가방에 러브레터를 놓는다는 것이 실수로 문희의 가방에 러브레터를 넣게된 것.
  3. 마지막에 정체를 드러내 그녀를 죽이려 할 때 현재가 정의의 사자처럼 등장했으나 실컷 얻어맞다가 겨우 스토커를 넘어뜨리면서 스프레이를 쥐고 칼을 쥔 스토커 눈에 뿌려 제압했다.
  4. 고용인 우두머리? 조폭 중간보스를 만나면 앗! 저거 뭐죠? 손가락을 하늘 가리킬때 다들 뭔가하여 쳐다볼때 얼른 내빼곤 했는데 막판에 또 이러자 "안 속습니다!"이러던 보스에게 배빵을 날린다.
  5. 위의 유튜브 동영상이 바로 해피타임 명작극장 방송분이다. 다만 현재의 숨겨진 정체에 대한 내용은 담지 않았다.
  6. 사실 이 두 팀은 모두 김현식의 백밴드 멤버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멤버들이 두 파로 갈라져 만들어진 게 하나는 원래의 밴드명이었던 봄여름가을겨울, 다른 하나가 바로 빛과 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