仙桃聖母
1 설명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라 시대의 여신. 고대 한국 문화와 역사에 영향을 끼친 신으로서,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
정견모주(가야건국여신)과 비슷하게 신라시대에 숭배받은 산의 여신으로서, 국가의 형성이나 다양한 설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2 설화
2.1 안흥사 설화
대표적인 설화는 안흥사 중흥설화이다.
신라 진평왕 때 지혜(智惠)라는 비구니가 안흥사(安興寺)의 불전을 중수하려고 계획을 세웠으나 비용이 없어 고민하고 있을 때, 꿈에 한 여선(女仙)이 아름답게 치장하고 나타나 위로하고는 자신은 선도산의 신모(神母)인데, 불전 중수하는 일을 도우러 왔다고 말했다.
자신의 자리 밑에 금 10근이 있으니 가서 불전 중수 비용에 쓰되, 불전에 주존삼상(主尊三像)을 안치하고, 벽에는 53부처와 육류성중(六類聖衆)과, 아울러 여러 천신(天神), 오악신군(五岳神君:신라의 다섯 산신)의 그림을 그려 붙이고, 매년 춘추로 10일에 사람들을 모아 법회를 개최하라고 말했다.
지혜 비구니가 꿈에서 깨어 사람들을 데리고 선도산으로 가서, 신사(神祠)의 좌석 밑을 파니 과연 황금 160냥이 나왔으며, 그걸로 불전을 중수하고 신모가 일러준 대로 모두 설치했다. 일연 시대에 그 불당의 설치물은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점찰법회는 없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칠성, 산신을 모시는 건물들에 대한 기원을 설명해주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2.2 신라본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도 선도산 신모에 대한 기사가 전해진다.
삼국사기의 기사에 의하면 본래 중국 제실(帝室)의 딸로, 이름이 사소(娑蘇)였는데, 신선술을 얻어 해동에 와서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니 부황(父皇)이 솔개의 발에 편지를 매어 보내면서, 이 솔개가 멈추는 곳에 자리잡아 살라고 했다. 사소는 솔개를 날려보내고, 솔개가 멈춘 한 산에 머물러서 지선(地仙)이 되었다. 그 산의 이름은 서연산(西鳶山)이 되었고, 신모는 오랫동안 살면서 나라를 도와 신이한 일을 많이 일으켰다. 이 산은 신라의 세 산신제를 모시는 산의 하나이고 여러 산의 우두머리로 여겨졌다.
신라 54대 경명왕이 산에 사냥을 나왔다가 사냥매를 잃었는데, 신모상에 빌어서 사냥매를 찾아주면 작위를 주겠다고 하자 과연 사냥매가 책상 위에 날아와 앉았으므로, 왕이 신모를 대왕(大王)으로 봉했다고 한다.
2.3 박혁거세와의 연관성
또 삼국사기에는 신모가 박혁거세와 알영을 낳았다는 언급도 있으며, 혁거세 이야기에 계룡, 계림, 백마 등이 관련된 것은 백白과 닭鷄 등이 서방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찍이 여러 천선들을 시켜서 비단을 짜서 염색해 조의를 만들어 그 남편에게 주어서, 나라 사람들이 신이롭게 생각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2.4 송나라 대의 이야기
그 외에 김부식이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우신관(佑神館)에서 한 여선상을 보았는데 안내자 왕보(王黼)가 이 여선은 당신 나라의 신으로, 옛날 중국 제실의 딸인데, /남편 없이 임신해 의심을 받아/[1] 바다를 건너 진한으로 가서 아이를 낳은 것이 해동시조가 되고, 지선(地仙)이 되어서 오랫동안 선도산에 살고 있는데 그 여선상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는 중화주의와 관련있다는 비판도 있다.
또 송나라 사신 왕양(王양)이 고려에서 '동신성모녀(東神聖母女)'에게 제사지내는 제문에, "현성(賢聖, 시조를 뜻함)을 임신해 나라를 세운"이라는 구절이 있었다.
3 평가
가야의 여신이었던 정견모주와 비슷하게 본디 신라지역의 여성형 산신이었으나, 건국설화나 각종 유적에 신성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숭배한 여신으로 생각되고 있다.
특이하게도 중국의 제실의 딸이었으며 이름이 사소라는 언급이 있다. 이것은 당대의 보편국가였던 대륙에서 건너온 정체불명의 혈통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신라라는 국가의 보편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대신라(통일신라)시대에 덧붙여진 포장추가설정으로 해설되는 편이다. 혹은, 원삼국시대에 한반도로 건너온 대륙 세력에 대한 기록으로 보기도 한다.
- ↑ 이 부분은 삼국사기에만 있고 삼국유사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