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공 필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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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루아 왕조의 분가인 부르고뉴 발루아 공가의 공작으로 부르고뉴 공작이다. 생몰년 1396 ~ 1467년. 백년전쟁에 영국과 프랑스 양쪽을 오가며 이득을 챙겨, 아라스 조약을 통해 프랑스 왕국의 봉신인 부르고뉴 공국을 사실상의 독립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부유한 플랑드르 지역을 외교와 군사로 정복해 부르고뉴 공국을 주국 프랑스에 크게 꿇리지 않을 강국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생전에 백년전쟁 기간 잔 다르크를 영국에 팔아넘기는 등 프랑스와 영국을 괴롭힌 행적이 프랑스에 대한 매국으로 여겨진다. 매국노 항목에도 수록되어 있고. 물론 중세시대 봉건주의 군주라 자신의 이익에 따라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서 실리를 취하고 잔 다르크를 팔아넘긴 거라 중세 시대 이후의 시각으로 매국노라고 지탄하는 것은 부당하긴 하지만 선량공이라는 칭호가 무색한 건 사실이긴 하다. 게다가 잔 다르크가 먼저 선량공에게 협력을 부탁했으나 무응답으로 거절하고 결국 그녀와 전투를 벌여 대결한 걸 보면 선량하기보다는 현실적이고 계산적이었다.

선량공이라는 별명이 붙은 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병원을 지어주는 등의 자선행위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설과,(실제로 이 병원에서 운영하는 포도밭에 나는 수익으로 20세기 중반 무렵까지 운영해왔다.) 샤를 7세에게 아버지를 암살당했는데도 그를 용서하고 복수를 포기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몽트뢰에서 회담을 구실로 다리 위로 불러냈다가 암살자들이 난도질하여 죽었다. 그런데 이 암살자들 중에 샤를 7세의 최측근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왕태자가 배후자로 의심받았고, 선량공 필립은 여러 차례 해명을 요구했으나 샤를 7세는 끝까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이러니 화평이 안되지 결국 잔 다르크의 죽음 이후 몇년 뒤 샤를 7세와 화평 조약을 맺을 때 암살을 주도한 사람을 처벌한다는 조건으로 화평하긴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르고뉴가 잔 다르크의 등장 이후 전세가 역전되어 패전을 거듭하고 재정 악화에 귀족들의 내분에 싸여 약해지는 잉글랜드와 손을 떼고 서서히 힘을 회복해가는 프랑스와 동맹하는 대신, 프랑스왕인 샤를 7세도 부르고뉴의 특권을 인정한다는 정치적이고 실리적인 성격이 더 강했다.) 그리고 측근들과 신하들이 아첨으로 붙인 칭호라는 설도 있다. 또한 십자군에 참여하겠다고 해서 붙인 설도 있다.[1]

예술을 사랑해서 미술가들을 후원하기도 했는데, 그로부터 후원을 받은 유명한 화가 얀 반 에이크는 잔 다르크가 죽은 뒤인 1437년, 선량공의 부하이자 부르고뉴 공국 재상인 롤랭이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에게 기도를 올리는 그림을 그렸다. 롤랭은 선량공의 병원 건립 등 자선사업과 선행에 큰 영향을 끼친 한편 잔 다르크를 팔아넘기도록 조장하고 그 몸값의 일부를 챙겼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X선으로 반 에이크의 그림을 촬영한 결과 기도하는 손이 처음에는 돈주머니를 쥐고 있는 모습으로 그린 것으로 밝혀졌다.(…) 참고 기사 즉 잔 다르크를 팔아서 돈을 차지한 롤랭이 가식적이며, 그런 롤랭을 측근으로 둔 선량공을 간접적으로 깠다고 보는 시선도 있는데, 사실 얀 반 에이크가 선량공과 매우 친밀한 사이이며(선량공 필립이 반 에이크 아이들의 대부가 되어 주기도 했다.) 필립이 반 에이크를 신임하여 궁정을 옮길 때마다 동행하고 화가 일 외에 중책을 맡겼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 신빙성이 떨어지는 가설이다. 게다가 반 에이크가 잔 다르크를 알고 있었다거나 우호적이었다는 기록이 없다. 돈주머니는 다른 종교화에도 자주 나타나는 모티브이며(하기아 소피아 항목 참조 바람) 그 뜻은 탐욕이 아니라 신께 바치는 헌금을 의미하는 도상이다.[2]

그가 죽은 후 부르고뉴 공국은 결국 완전독립에 실패하고 소멸하여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으로 나뉘어졌다.
  1. 잔 다르크가 그에게 협력을 부탁하며 보낸 편지에 프랑스 왕과 싸우지 말고 사라센과 싸우라는 내용이 있는데 잔의 이런 부탁이 십자군에 참여하겠다고만 하고 실천은 안하는 자신의 비위를 건드렸다는 설이 있다. 참고 자료
  2. 그러나 이와 별개로 연대기의 작가 샤틀랭이 롤랭에 대해 "그는 마치 지상의 삶이 영원 할 것처럼 재산을 거두어들였다. 그리하여 그의 정신은 길을 잃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생애의 마지막이 눈앞에 닥쳐왔는데도 인생의 장벽이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라고 쓴 걸 보면 선량공이라면 몰라도 그의 측근인 롤랭의 평판은 분명히 당대에도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선량공이 잔 다르크를 영국에다가 거액에 팔아넘기는데 롤랭이 일조한 사례와 그 수익의 일부를 챙겼다는 소문도 그런 평판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