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雪原
설원(雪原, snowfield)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2 薛原
설원랑(薛原郞)이라고 한다.
삼국유사에 진흥왕이 남모와 준정의 원화 자리에 타툰 사건으로 원화(源花)를 폐지하고, 화랑 제도를 만들었는데, 진흥왕이 설원랑을 초대 화랑으로 임명했다. 이와 같은 짤막한 기록을 남긴 인물이었다. 그런데 위서로 의심되는 화랑세기에는 초대가 아닌 7대로 나온다.
2.1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인물
설원(薛原). 7대 풍월주. 풍월주가 된 뒤 설화랑으로 이름을 바꿨다.
5세 풍월주 사다함의 어머니 금진이 남편이자 사다함의 아버지인 구리지가 전사한 뒤 구리지의 용양신(이름 자체는 동성애 파트너를 의미. 총신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모습이 아름답고 교태를 잘 부렸다'는 묘사를 봐서는...) 설성과 사통하여 낳은 아들. 구리지가 어느 날 밖에 나갔다가 설성을 발견하고 그의 집에 갔는데, 그의 어머니는 옛날 출진하는 낭도와 사랑을 나눠 설성을 낳았고, 14년 동안 그를 위해 정절을 지켰다고 한다. 구리지는 그 여인을 첩으로 삼아 아들 셋을 보았고, 설성은 구리지의 신하가 되었다. 설성의 어머니 이야기를 설씨녀 설화의 원형으로 보기도 한다.
사다함의 의붓동생으로, 그의 부제가 되었다. 원래 풍월주는 부제가 잇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다함이 죽었을 때 아직 어렸기 때문에 풍월주가 되지 못 하고 세종이 풍월주가 되었지만 부제의 자리는 유지했다.
아버지 설성의 신분이 미천했기 때문에 무시당했으나, 미실의 사랑을 받아 전격적인 지원을 받는다. 미실의 권유로 3세 풍월주의 아내였던 준화를 아내로 삼자, 그제서야 여러 낭도들이 따랐다. 참고로 준화는 과부가 된 지 18년이 지났고 당시 나이는 38살이었다. 거기다 설원의 어머니 금진의 언니로 설원의 이모이기도 하다(어머니가 다른 자매일 가능성이 높다). 준화는 설원과의 사이에서 2남 1녀를 낳았는데, 이중 차남인 잉피가 원효대사의 할아버지라고 한다.
미실이 괴질에 걸리자 밤낮으로 간호하며 자신이 병을 대신하겠다고 빌어 마침내 그 병으로 죽었다. 향년 58세. 그가 죽자 미실은 크게 슬퍼하며 자신의 속옷을 관에 넣어 "곧 그대를 따라갈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미실과의 사이에서 16세 풍월주 보종이 태어났다.
2.1.1 선덕여왕(드라마)의 등장인물
설원(선덕여왕) 문서로.
3 說苑
중국 전한(前漢) 말기에 유향(劉向)이 전래된 중국의 설화를 편집하여 만든 책이다.
이 후에는 송나라 시대에는 잔본만이 남아있고, 완질본이 이미 없어진 상황이었으나, 고려에서 소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사본을 부탁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高麗史)》에 보인다.
고려사 선종 8년(1091) 신미년 6월 병오일 이자의(李資義) 등이 송나라에서 귀국해, “송나라 황제가 우리나라 서적 가운데 선본(善本)이 많다는 말을 듣더니 관반(舘伴)[1]을 시켜 필요로 하는 서적 목록을 주면서 비록 완질이 아니더라도 필히 베껴서 부쳐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 이 말은 그 서적들이 고려에 있다는 뜻이 아니라 혹시라도 있으면 보내달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송나라가 요청한 희귀 서적 목록 중에 설원만 남아 있었고, 고려가 소장한 설원 고려본을 송나라로 보냈다. 이 기록은 육유(陸游)의 위남집(渭南集)에 기록된 이덕추(李德芻)의 말을 인용한 글에 나온다.
- ↑ 외국 사신들을 접대하는 하는 외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