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토스 상공 공중 충돌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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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뉴스 영상

1 개요

1986년 8월 31일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의 세리토스 상공에서 아에로 멕시코 498편과 파이퍼 체로키 경비행기가 충돌해 지상 15명을 포함한 8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

2 사고 과정

당시 노동절 주말이라 어느 정도 한가한 때였고, 이 때를 노려서 수습기간을 채우려던 수습 관제사 월터 화이트는 그날 일하는 날이 아니었으나 다른 관제사와 교대해 일을 하기 시작했다.

로스엔젤레스 남동쪽 20km 지점의 경비행기 이착륙장이던 토런스 공항에서 윌리엄 크래머가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를 떠나러 파이퍼 체로키 경비행기를 타고 빅베어 호수로 가기 위해 이륙했다. 예정 경로는 토런스에서 이륙해 롱비치와 온타리오를 거쳐서 빅 베어 호수로 가는 것이었다. 한편 안토니오 발데스 기장과 호세 발렌시아 부기장이 조종하는 에어로 멕시코 DC-9 498편도 이륙했다. 기장 대신 부기장이 조종했다.

오전 11시 47분, 관제사 월터 화이트와 아에로 멕시코 498편이 교신했고, 터미널 관제지역(TCA)에 진입했다. 에어로 멕시코 498편은 고도를 낮추고 파이퍼 체로키는 고도를 높였다. 그런데 레이더에 그루만 타이거 경비행기가 나타났고, 유도를 요청했다. 화이트는 에어로 멕시코 498편과 교신한뒤 탑승구와 가장 가까운 항로를 지정해준뒤 그루만 타이거 경비행기를 처리하려했고, 특정 교신 채널을 사용하라고 했지만 조종사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 순간 에어로 멕시코와 파이퍼 체로키는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고속도로를 이정표 삼으며 가려다가 복잡한 고속도로 때문에 길을 잃은 파이퍼 체로키는 고속도로에 신경쓰느라 에어로 멕시코 498편을 보지 못했고,[1] 에어로 멕시코 498편에서는 DC-9에 비해 너무 작은 경비행기를 보지못해 경비행기가 에어로 멕시코 498편의 꼬리날개와 충돌[2]하고 두 비행기는 곤두박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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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시 지상에 있던 한 주민이 촬영한 사진.

파일:Attachment/세리토스 상공 공중 충돌 사고/crash.jpg
운동장에 추락한 파이퍼 체로키.

아에로 멕시코 498편은 그대로 주택가로 추락했고, 주변 일대의 땅이 흔들릴정도로 큰 충격이 일어났다. 파이퍼 체로키는 조종실 덮개가 떨어져 나간채 학교 운동장에 추락했다. 주택 16채가 붕괴되었고, 결국 지상에 있던 15명[3]과 에어로 멕시코 498편의 탑승객 64명, 파이퍼 체로키 경비행기의 탑승객 3명은 전원 사망했다. 레이더에서 갑자기 에어로 멕시코 498편이 사라지자 화이트는 계속해서 교신을 시도하고, 마지막 위치를 기억한채 근처를 지나던 여객기에게 보이는지 물었지만 여객기는 검은 연기만 보인다고 대답했다. 화이트는 이후 충격에 휩싸여 다른 관제사와 교대하고는 관제탑을 나가서 울부짖었다고 한다.[4]

근처에서 소방훈련 중이었던 소방대가 정체불명의 검은 연기를 보고 출동했고, 이 검은 연기가 비행기 추락으로 인한 것을 알게 된 후 경보단계를 3단계 올리고 항공 소방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꼬리 날개는 추락지점에서 한 블록 이상 떨어진곳의 주택 지붕에 떨어졌고, 충격과 화재로 인해 온전한 시신이 없어 구조용 담요에 사고로 절단된 신체를 담아야 했다.

3 사고 원인

파이퍼 체로키는 예정 경로에 따르면 TCA를 통과할 일은 없었다. 문제는 이정표를 고속도로로 삼은 상태였는데 로스엔젤레스의 고속도로가 하도 복잡해서 고속도로를 따라 가던 도중 길을 잃고 승인없이 들어가게 된 것으로 추정됐다. 캘리포니아에 온지 얼마 안된 상태였기에 고속도로를 헷갈렸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서 사실로 확정되었다.

한편 관제사 월터 화이트는 심문 전 자신의 교신내역을 검토했고, 레이더에 파이퍼 체로키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레이더에 잡혔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레이더가 오래되어 비행기를 못 찾은 적이 많았다는 것도 밝혀졌다. 컴퓨터 과부하시 레이더 화면이 깜빡이며 못볼 가능성도 있었으나 그날은 과부하가 없었고, 공항 동쪽에 나타났던 그루만 타이거와 너무 오래 대화한 것 또한 사고를 부른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또한 당시 파이퍼 체로키는 트랜스폰더가 기본 모델이어서 레이더에 잡힐 경우 경로만 보여주고 고도는 보여주지 않은채 작은 삼각형으로만 표시되는 것도 문제로 드러났다.

4 사고 이후

이러한 공중충돌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신 기술이 도입되었다. 우선 소형 항공기에도 신형 트랜스폰더를 장착해 비행고도를 알려주도록 했고, 모드 C 인트루더를 주요 레이더 시설에 설치해 항공기가 우연히 관제영역에 침범했을경우 시각과 음성으로 관제사에게 경고가 가도록 했다. 또한 미국에서 운항하는 모든 항공기에 공중충돌 방지장치(TCAS)[5]을 설치하라는 의회 법안이 나와 충돌 가능성이 있으면 40초전 알려주고, 20초전 고도를 올리거나 내리는 대책을 알려주도록 했다. 이후 전세계의 민간 항공기에 설치되었다.

그루만 타이거 조종사는 관제영역을 무분별하게 비행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월터 화이트는 한달뒤 복귀했으나 사고당시 충격과 트라우마로 인해 제대로 관제사일을 하지 못했고 얼마안가 그만두었다.

사고 1년후 로스엔젤레스 관제소의 레이더는 교체되었고, 2006년 5월 11일 세리토스에 추모공원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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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공원의 추모비. 검은색은 지상에 있던 사망자 15명, 하얀색은 비행기에 탑승했던 사망자 67명을 상징한다.

5 영상화

항공 사고 수사대에서 2007년 4월 24일 다루었다. 국내 방영명은 LA 상공의 비행기 추락.

브레이킹 배드에서도 ABQ 에피소드에서 다루었다.
  1. 윌리엄 크래머가 심장병 이력을 가지고 있어서 당시 심장마비로 인해 조종을 못한게 아니냐는 가설도 제기되었으나 부검결과 그당시 심장에 약간 이상은 있었으나 심장마비까지 오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 당시 속도는 시속 450km나 되었다.
  3. 한 시체는 파편에 맞아 잘려나갔다고 한다.
  4. 선배 관제사가 위로해주려 했다고 한다.
  5. Traffic Collision Avoidance Syst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