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소소경(蘇紹卿 / So-gyeong So) |
생년월일 | 1979년 7월 19일 |
국적 | 대만 |
출신고 | 대구옥산초 - 성광중 - 대구고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8년 해태 타이거즈 2차 1순위 지명 |
소속 팀 | 해태 타이거즈(1998~2001) KIA 타이거즈(2001~2004) LG 트윈스(2005~2006) |
보기 드문 화교 선수였으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하지만 연고 팀인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받지 못하고 해태 타이거즈의 지명을 받았다.[1]
지명 당시 187cm, 85kg의 훌륭한 신체 조건을 갖추고 최고 구속 145km/h의 공을 던지는 우완 정통파 유망주로 유명했으나, 프로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상진이 세상을 떠난 1999년 6월 10일 수원구장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 7이닝 4피안타 2실점을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되었지만, 통산 58경기 5승 9패 1홀드 ERA 6.01의 초라한 기록을 남겼으며, 2002년과 2003년에는 1군에 오르지 못했고 LG에서도 2경기에 등판해 8점대의 ERA를 찍고 방출당하며 은퇴했다.
그럼에도 이 선수가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유는, 2004 시즌 후 어느 좌타 외야수와의 트레이드 때문이다.[2]
은퇴 후에는 대전 유천초등학교의 야구부 코치를 하다가, 2014년경 감독으로 승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초등부 유일의 퍼펙트 게임을 기록하기도 했다.
추가바람- ↑ KBO에서는 일본프로야구의 규정과 동일하게(참고로 이 규정이 만들어 진건 장훈 때문이었다.) 외국인이라도 중학교 이상 학교에 다니면서 대한야구협회 등록선수로 활동하였다면 국내선수에 준하여 신분을 인정받는다.
- ↑ 사실 LG 트윈스에서 이원식과 소소경을 받는 조건으로 트레이드한 목적은 희대의 FA 먹튀였던 홍현우를 처분하려고 했던 것이었다.(홍현우 본인도 LG 구단에다가 연고지 팀에서 은퇴하고 싶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홍현우는 친정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 2005 시즌 후 KIA 타이거즈에서 끝내 방출당했으며, 홍현우와 함께 KIA로 이적한 트레이드 상대가 대박을 터뜨렸다는 것. 어쨌든 KIA의 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