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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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僑, 海外華人

중국어 : 华侨/華僑(huáqiáo), 华裔/華裔(huáyì)[1]
영어 : Overseas Chinese
독일어 : Auslandschinesen
러시아어 : Хуацяо

1 개요

화교는 중화민국 혹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적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 정착하여 활동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華라는 한자는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화인(華人)이라고 지칭하는 것에서 따 온 것이며 僑는 가주거(假住居)를 의미한다. 이 명칭은 중국인 스스로를 높이는 것으로 중립적인 명칭으론 국외 거주 중국인이지만, 워낙 화교란 말이 널리 쓰여 한국과 일본에서는 편의상 화교라고 부른다.그렇지만 그냥민족적이나 문화적으로 화인(華人) 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국적,언어 발음, 심지어 음식을 중화민국 혹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전혀 상관 없고 현거주국은 모국이라고 생각하는 화이(華裔) 라는 경우도 있다(애를틀며 말레이시아 화족,싱가포르 화족). 다른 특이하게도 러시아어 표현에서는 화교의 중국어 발음을 그대로 음차한 단어가 정착되어 있다.

화교 출신이 하는 가게는 화상(華商)이라 부른다. 화상이 운영하는 요리점은 중국 요리 퀄리티가 일반적인 중국집보다 훨씬 높을 가능성이 높다.


간판에 화상(華商)이라는 표현이 있는 일례. 네이버 거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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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화교임에도 간판에 화상이라 쓰지는 않고 가게 안팎에 아래위가 뒤집힌 복(福)자만 거는 곳도 있다. 그리고 화교가 하는 음식적이면 은근히 빨간색 치장이 많다. 한국에선 인천시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연남동 쪽에 화교들이 하는 중식당이 꽤 있다.

2 화인, 화예

중국 외 체류 중국계
명칭국적중국계 공동체 참여 여부
화교중화인민공화국 혹은 중화민국무관
화인현지참여
화예현지불참

한국에서 몇세대에 걸쳐 한족(韓族)에 동화되어 버린 한족(漢族)계 후손들은 굳이 따지자면 화예의 후손이라 볼 수 있겠다.

3 국적

관공서의 서류에는 중국 국적(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 모두)[2]이라고 표기하니 중국인이다. 단, 특정 나라의 시민권등을 취득하여 중국 국적을 포기한 경우에는 화교에 포함되지 않으며 현존하는 한국의 성씨에 속하는 한족계 성씨 후손들도 6세대 이상 넘어오면서 한국에 동화할 대로 동화했으니 화교라고 부르지 않는다.

4 주요 구성원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륙 점거 후 건국 이전, 만청이나 중화민국 대륙 시대에 이주한 구화교의 경우 주로 광동성복건성 출신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 중화민국 국적을 지니고 있다. 신화교의 경우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즉 신중국 출범 및 문화대혁명 이후 여행금지가 풀리면서 해외에 나가 체류하는 중국인들로 상해북경계가 많다. 홍콩 반환을 전후로 이주한 홍콩계 화교도 늘었으며, 중화민국 국적을 가진 중화민국 대만계 화교도 늘었다. 특이하게도 일본의 경우 구화교들은 대부분 타이완 출신이다.

5 특징

흔히 중원문화, 중화문화 등으로 표기되는 중국식 문화에 대한 집착이 강하여 거주지에서 자국어(중국어)를 사용하는 구역(차이나타운)을 만들어 생활 한다. 쉽게 말해 화교가 활동하는 시가지=차이나타운이란 소리다.

6 금의환향

중국을 떠난 화교들은 해외에서 돈을 벌어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금의환향 개념이 강했다. 이는 중국 내에서 하층민이었던 그들의 처지와 중화사상이 섞여 빚어낸 마음가짐이라 볼 수 있는데 이 때문에 현지에서 동화되지 않고 자기들끼리 커뮤니티를 이뤄 몇 대씩 자기들끼리만 교류하고 현지언어를 아예 배우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화교들의 태도로 인해 동북아, 동남아 등에서는 화교들을 향한 폭동이 몇 번 일어났다. 특히 일본이나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서는 반화교 폭동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일본청일전쟁, 중일전쟁 등 중국과 전쟁을 벌인 세계대전 시절에는 화교를 거의 부라쿠민 취급하여 이들을 매우 학대하고 마구 학살까지 했으며 1960년대 이후 중일수교를 한 지금까지도 극우인 일본인들은 화교에 대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며, 말레이시아는 아예 화교가 많은 싱가포르를 강제 독립시키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중국인들은 화교 커뮤니티를 유지하되 현지인들과 섞여 사는 쪽을 택했고 되도록 경제권은 장악하되 정치권에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오늘날에는 동북아, 동남아의 화교들은 대부분 현지 국적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지인 이름으로 개명을 하기도 한다. 특히 태국에서 이런 기질이 두드러진다. 태국에서는 정치 참여도 많은 편이라 총리 중 상당수가 화교 계통이다. 오늘날엔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다시 중국식 이름을 비즈니스 차원에서 내거는 화교들도 많다.

한국에 온 한국 화교들도 금의환향 개념이 강했는데 국공내전으로 중화민국이 타이완으로 쫓긴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어 귀국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한국에 발이 묶이면서 60년 이상 한국에 거주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은 외국인들을 자국에 거주하는 것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일부 화교들은 탄압을 피해 중화민국이 도피한 타이완으로 가거나 북아메리카로 가게 된다. 한국 화교들은 이름으로 한국식 독음을 쓰는데 중국어의 한자 발음이 지역마다 달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정작 한국인들은 현지 발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중국식 발음으로 적지만 중국인들은 한국에 오면 한국식 발음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7 분포

전세계 현존 화교 인구는 14년 기준 약 4천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이 중 동남아에만 3천만 이상이 거주 중이며 동남아 경제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출신 지역에 따라서, 유입 시기에 따라서 미묘한 파벌을 이루고 있다. 동남아 화교는 주로 민남어를 사용하는 복건성 출신이다. 반면 광동성 출신들은 미주나 유럽쪽으로 '많이' 진출했기 때문에 흔히 서양사람들은 화교들을 대부분 광동성 출신으로 안다. 그렇다고 광동성 출신들이 동남아에 적은 건 아니다. 베트남 화교 집단인 호아 족(Hoa 華族)은 대다수가 광동성 출신이고 싱가포르에서도 중국계 중에서 복건계 다음으로 두번째로 많다. 한편 이들은 거의 대부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에 이주한 구화교들이다. 예외적으로 대한민국의 화교는 대부분 산둥성 출신이다. 아래 항목 참조.

내셔널지오그래픽 인터뷰에 의하면 파벌끼리 싸움 나면 사람 서넛 죽는 게 거의 매일 일어날 정도로 막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해외 진출과 화교 사회의 유지까지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이주민 중에서도 굉장히 잘 단합하는 편이다.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가족, 친척, 동향 중심으로 잘 뭉치는 데다가 19세기 최초 이주 당시 어디까지나 외지인이었던 불리함을 극복해야 했기 때문. 또한 자기들만의 사회를 조성해 지내는 걸로도 유명하다. 이민 몇 세대까지 현지 말을 모르는 경우도 있을 정도.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적 갈등 때문에 구화교와 신화교의 경우 교류를 아예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그런 거 상관 없이 그냥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있다. 다만 1949년 이후 대만에서 외국으로 이주한 대만인 화교의 경우에는 대만인들끼리 뭉치며 구화교나 신화교의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예로 미국에서는 같은 중화민국 국적자라도 구화교 커뮤니티와 대만인 커뮤니티로 나뉘어있다.

7.1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주로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 자리 잡고 있다. 중국계 미국인들은 미국 개척시기에 철도노동과 광산산업으로 노동자 계급으로 이주한 뒤 점차적으로 성장해 나갔다. 주로 여성적인 일이라고 꺼려하던 세탁소를 하거나 이민자를 상대로 한 소상업을 주로 하였고, 화교특유의 교육열로 차별이 없어지는 1960년대 이후에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시애틀이 있는 진보적이긴 하나 2012년 기준으로 백인이81.6%나 되는 미국 워싱턴 주에선 중국인 3세 게리 로크가 주지사로 두번이나 당선된 적도 있을정도. 미국 화교들 가운데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다만 본토 중국인들에게는 전형적인 서구식 마인드의 중국인이라 좋게보지만은 않는다. 그의 할아버지가 워싱턴 주청사와 1마일 떨어진 곳에서 청소부로 일했던 것을 주지사 취임 당시 이야기하며 아시아계의 위상 변화를 얘기한 적이 있다. 워싱턴주는 아시아계가 7% 수준으로 미국 평균인 5%보다 조금 높긴 하다.

아시아계 중에 이 사람에 비견될 만한 사람은 일본계인 에릭 신세키 보훈장관이나 대니얼 이노우에 상원의원 정도. 이 사람은 2차 대전 참전용사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싸우다 팔을 잃었다. 53년동안 상원의원을 지낸 미국 민주당의 거물이었다. 다만 친일적인 성향이 있어 한국에선 평가가 좋지 않았고 위안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마이클 혼다 하원의원을 높게 치는 한국인이 많다. 둘 다 미국 민주당. 한국계는 아직 대규모 이주의 역사가 짧아 정계에선 차관보급을 배출한 정도이다.

태평양 연안에 많고 캐나다에서도 빅토리아, 밴쿠버에 많다. 밴쿠버에 홍콩 출신이 많다고 '홍쿠버'라 비하하기도 한다. 샌프란시스코, 뉴욕, 토론토 등에 큰 차이나타운이 있다.

7.2 동남아시아

기타 지역과 차원이 다르다. 수백 년 전부터 이민 오고, 교육 수준이 현지인들보다 많이 높고, 인구의 5~20%까지 차지하기 때문에 그 나라의 경제 주도권을 잡는 경우도 많다. 극단적인 경우가 말레이시아로, 말레이시아는 인구의 25%가량이 화교이다. 쿠알라룸푸르같은 도시지역에서는 인도계와 화교계가 주류 인종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대부분 화교 전용 학교를 다니면서, 화교들끼리 결혼하고 중국어를 사용하는 등 거의 다른 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화교계 사람과 다른 두민족 사람은 결혼을 하는 사례도 사화의 개방성이 늘어날수록 증가하고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말레이시아 정부는 '말레이인의 말레이시아' 정책을 견지하며 과도하게 화교차별정책을 쓰기 때문에 화교들이 힘들어 하기도. 또한 화교에 반감이 있었기 때문에 말레이시아는 인구의 75%가 화교고 말레이시아에서 제일 잘 나갔던 싱가포르주를 1965년에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쫓아냈다. 태평양 전쟁시 일본의 학살에 맞서 공산 게릴라로 전향한 세력도 상당해서 이후 각국에서 반란을 일으켜대며 큰 골치거리이기도 했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제 말레이시아에서 정부를 하는 정책을 빼고 말레이시아 말레이족 든지, 화교계(족)든지, 인도계(족) 든지, 모두 말레이시아 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말레이시아 족" 이라는 단어까지 도 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말레이시아 사람이 봤을때 어떤 민족이라도 말레이시아 사람이라는 신분을 준경 하는 것이좋다.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동화된 모습이 보인다.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와는 대조적으로 독립 이래로 중국어 사용을 제한하는 정책을 펴면서 현재 중국계들은 대부분 중국어를 못 하고 인니어가 모국어이다. 그래도 소수의 화교에게 경제적 이권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 부유한 화교와 경제적으로 낙후된 현지인 사이의 갈등으로 유혈사태도 발생한다.

필리핀의 경제권 역시 대부분 화교쪽이 쥐고 있다. 필리핀의 화교역사는 의외로 역사가 깊어서 거의 중세 시절로까지 올라가며 이슬람 왕조가 한창 세를 떨쳤을 때에도 세력권을 갖추고 있을 정도였다. 근세에 경제권 문제로 인해 여러번 스페인 당국과 현지 주민들 간의 갈등으로 인한 학살이 여러 번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문화적으로 동화된 화교들이 명맥을 이어 나가면서 경제권 유지에 성공했다. 필리핀 내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SM 그룹[3], 졸리비 같은 기업들이나 가문들은 십중팔구 화교 내지 화교와의 혼혈 집안의 차지이다. 그러나 필리핀이라는 나라 전체가 혼혈화가 오랫동안 지속된 만큼, 화교 및 화교 혼혈 집안들은 스스로 중국인이라는 자각이 별로 없다. 화교의 영향력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차이나타운이 거의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

태국은 인구의 9% 이상이 화교로 역시 경제권을 쥐고 있다. 대개 태국에 거의 완전히 동화되어 중국어를 못하고 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 그 때문인지 타국에 비해 화교가 두드러져 보이진 않는다. 한편으로는 구 일본 제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과거 군사 정권들이 다민족 국가인 태국을 강제로 동화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중국인들이 중국식 이름을 비롯해창씨개명 많은 것들을 버려야 했다. 오히려 태국 사회에 동화된 중국계 태국인들은 비교적 근래에 이주한 화교들을 앞장서서 배척했는데 결과적으로 현재까지도 태국의 화교들은 경제적으로 극과 극의 위치에 있다. 어차피 태국인들도 원래는 중국 남서성(윈난 성, 구이저우 성, 광시좡족자치구 등)에 살던 사람들이라 남중국인들과 인종적/문화적으로 별로 차이가 없는 편. 참고로 2PM의 닉쿤 어머니도 중국계다.

7.3 일본

요코하마, 고베 등지에서 집단 거주하며 제법 영향력이 크다. 반중 감정이 강한 일본이라서 재일교포처럼 차별이 많고 귀화하지 않는 이상 정치권 및 공무원 사회에서도 차별받는다.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재일 화교 대부분이 대만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역설적인 일. 일본과 대만은 친구라더니...

근래에 일본에서도 화교는 신화교와 기존의 구화교로 나뉜다. 신화교는 1972년 중일수교 이후 들어온 중화인민공화국 사람들이고 구화교는 중화민국 사람들이다. 신화교 중엔 일본계도 꽤 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중국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일본 제국 시절에 식민지에 체류, 중국인으로 살다가 중일수교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사람들로서 이들을 히키아게샤라고 부른다. 약 27년 동안 중국에 남은 4천명의 일본계 중국인들은 중국인들과 통혼하는 등 많은 중국인 친족을 만들었고 중일수교 이후 일본 국적을 회복하는데 이들은 비자를 이용해 수십명씩 일본에 건너가게 된다. 일본 사회는 이런 일본계들을 가이진에 걸맞게 당연히 중국인 취급. 가이진은 외인(外人)의 일본식 독음으로 외국인과 달리 좀 배타적인 뉘앙스가 있는 단어다.

한국에 남은 일본인들도 소수 있다. 이들은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인이거나,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일본에 거처가 없어 그냥 남은 경우 등이다. 해방 시기에 분노한 한국인들에게 증오 범죄를 당하기도 했지만(...) 특히 북한에서 이런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은 그냥 숨어 지냈다. 친일파들이 숨겨준 경우도 있고. 1965년 한일협정 이후로 일본 국적을 회복할 수 있게 되어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도 있지만, 20년 동안 한국인으로 동화되어 버린 사람들도 있다. <조선을 떠나며>를 읽어보면 문화통치이후 본토에서 건너와 한국에서 터전을 잡고 살았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일본인들 중 더러 한국에 남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화교들이 중화민국 사람인 것을 생각하면, 신화교와 구화교로 나뉘는 것은 한국과 일본이 비슷하다. 다른 점은 한국의 구화교들이 대부분 산동 출신인데 비해, 일본의 구화교는 진짜로 대만 출신들이 많다. 대부분 본성인 출신들이다. 이는 1895년부터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탓에 대만인들이 일본으로 많이 왔기 때문. 구화교와 신화교는 민단조총련이 대립하듯이 일본 내에서 2개의 중국계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또 일본에도 일본과 거리가 가까운 산둥 출신들도 꽤 된다.

유명한 일본 화교로는 왕전즈(일본명 오 사다하루)가 있다. 아울러 인스탄트 라면을 발명한 안도 모모후쿠 역시 화교출신이다.

재일 중국인1980년대까지 5만명 수준으로 그리 많지 않았지만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과 일본이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면서 현재는 일본 내 최대 인구 집단이다. 이 재일 화교와 중국 본토에서 최근에 건너 온 재일 중국인들은 따로 노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 내에서 한국 화교와 대륙 중국인들이 교류가 드문 것과 마찬가지다.

7.4 대한민국

화교/대한민국 문서로.

7.5 북한

북한의 경우 김일성 집권 당시 갑산파를 제외한 모든 파벌을 제거하였으며, 그 와중에 화교를 도울 수 있는 중국계 세력인 연안파도 쓸려나갔다. 대장정 참가자이며 중공군 장성 출신이던 무정마저 6.25 전쟁의 책임을 구실 삼아 실각하였다. 대장정 생존자들은 중국에서도 영웅 대우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그래서 김일성이 무정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고도 한다.) 김일성의 의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후에는 주체사상의 확립 등으로 인하여 실제 중국인이나 중국 세력이 힘을 뻗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일성 사후 북한 경제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북한군화교와 재북 일본인도 입대시킨다. 다만 근무하는 부대에 제한이 있다.

7.5.1 김일성 사후

고위 간부와 친분을 맺은 일부 화교는 김일성 사망 직후 압록강을 넘어 중국과 북한의 무역에 끼어들면서 중국 내 조선족 자본을 몰락시키고, 만주 일대에 머물면서 북한에 남은 친척을 통해 대북 거래를 하는 등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신의주와 나진 선봉 경제특구에도 화교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있었고, 지금도 만주 일대에서 대북 무역을 주도한다고 한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 북한 화교는 한국보다 많은 5만명 수준이었으나 전쟁통에 자본주의자들은 월남하고 일부는 중국이나 대만으로 갔다. 전쟁 직후엔 1만까지 줄었으나 중국에서 대약진 운동이 실패하는 등 사고가 터지자 중국에 있던 화교의 친족 등이 입국하면서 2만 5천명까지 늘어났다. 지금이야 거지인 북한이지만 소련의 지원 등으로 당시엔 생활 수준이 괜찮았고 중국은 대약진 운동에다가 문화대혁명 등 악재가 겹친 터였다. 70년대 후에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몰락하고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하면서 많은 화교들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고 현재는 약 6000명 정도가 남아 있다. 1999년 기준이라 더 줄었는지 아니면 보따리 장수 등으로 더 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요식업에 종사한 한국 화교와 달리 북한화교들은 70% 이상이 농가다. 이는 주로 화농들이 북한의 토지개혁 당시에 농토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중국은 서로 혈맹 관계이다.

다만 이런 재북 화교들은 당연히 북한 내에서 몇가지 차별을 받고 있다. 일례로 북한의 공민증에는 '민족' 란이 있는데 이는 주로 화교를 가려내기 위한 것. 또한 북한은 순혈주의를 강조하면서 화교는 물론이고 엄연한 조선민족인 조선족 연고자들조차 민족간부(김일성고급당학교를 졸업한 리당비서 이상의 간부들)가 될 수 없게 못박아놓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조선족 연고자와 결혼한 북한지역 토박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안그래도 정치 중심 사회인 북한에서 당간부로 진출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생활에서 많은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데....

이 때문에 몇몇 화교는 순 북한 주민처럼 탈북을 시도했다가 남한 정부에 걸려 중국 국적을 가진 이들을 강제출국시키기도 하는 복잡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당사자인 유우성도 이런 케이스다. 몇몇 화교들은 북한에서 보내는 편지를 외지로 몰래 전해주다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죽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중국이고 뭐고 생까는 북한의 담대함=만용 한편, 최근에는 탈북 여성이 데리고 오는 중국 국적의 자녀가 여러모로 문제가 되고 있다. 많은 탈북 여성들이 중국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조선족 혹은 한족 남성 사이에 낳은 자녀를 어떻게든 학교에 보내고자 중국 호구를 돈으로 구입하는데, 법적으로 중국은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중국 호구룰 취득한 탈북민과 중국인 사이의 한중혼혈 들을 한국국적을 갖고 있다가 중국 국적을 취득해 한국국적이 일단 상실된 사람으로 규정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국적회복을 허가하고 있다. 중국호구를 취득하지 않은 혼혈아는 국내에 귀국하면 원래부터 한국국적을 가진 것으로 보지만, 북한에서 산 적이 없으므로 북한이탈주민의 혜택은 받지 못한다.

다만 북한에서도 잘나가는 화교들은 잘먹고 잘 산다. 특히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경제가 사실상 와해되고 소비생활을 거의 전적으로 중국산 수입품에 의존하게 되면서 이런 경향이 심각해졌다. 당장 북한 시장화의 서막을 연 자금 조달처는 여지없이 중국이다. 주로 화교자금과 조선족자금으로 나눌 수 있다. 사실 건수로 따지면 후자가 우세하긴 하다. 또 중국과의 보따리 무역의 상당수는 북한화교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일례로 국경 연선에 있는 모 군의 경우 단 한 가정의 화교가 있는데 이 화교 부부가 군 전체에 들여오는 농자재의 절반 정도를 충당한다고 한다. 물론 지역 관청과 결탁해 합법적으로 강을 넘는 조선족 연고자나 돈 많은 장사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부부의 경우 두 사람 모두 화교다 보니 번갈아가며 강을 넘어다닐 수 있는 것이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밀수품도 많이 들여오는 듯하다. 청진 등지에 아직 화교학교도 남아있다고 한다. 청진화교학교는 저우언라이가 설립했다. 대만 교재를 쓰는 한국의 화교학교들과는 달리 북한 교재를 쓴다고 한다. 주로 신의주 등지에 화교 보따리 장수가 많다고 한다.

7.6 아프리카

인도계가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는 것과 비슷하게 화교 또한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점차 진출중이다. 중국-아프리카 관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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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봉의 정치인으로 아프리카 연합 위원장을 지낸 장 핑화교 아버지와 아프리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위키백과 영어판을 보면 아프리카계 아시아인에 대한 설명이 꽤 나와 있다.

8 5대 화교

5대 화교는 복건, 광동, 해남, 조주, 객가를 의미한다. 한국은 특이하게도 산동 화교가 많기 때문에 5대 화교 + 샨동으로 설명되는 경우도 많다.

9 가상 인물

성명작품명비고
김태극쾌타지존복장과 중국식 검과 산동반도 출신하면 출신지가 중국이지만 국적을 한국으로 공개했다.
니시자와 오오카개구리 중사 케로로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춘리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마샬 로우, 포레스트 로우, 줄리아 창철권
리 샹페이아랑전설, KOF 시리즈
리 젠랴디지몬 테이머즈정확히는 홍콩인이다.
리 파이론용호의 권, 네오지오 배틀 컬리시엄
이자성, 정청, 석무신세계(영화)
잠파노도둑들
헤이 린W.I.T.C.H.
D 백작펫숍 오브 호러즈
화교삼국지

10 오덕물에서의 화교

일본 오덕계(특히 만화)를 보면, 외국 화교들은 약방을 운영하지만 실제로는 지하세계의 정보통이나 혹은 엄청난 배후로 나오는데 이건 하세 세이슈(주성치를 좋아해서 그의 이름을 거꾸로 한 뒤 일본어로 발음)의 불야성의 영향이 크다. 이 소설에서는 대만이나 중국 출신의 화교는 뒷세계의 악마들로 묘사했다. 그덕인지 건 스미스 캣츠 시리즈에서도 그런 영향이 짙게 배어나온다.

한국에서 화교를 다룬 영화.

  • 천하장사 마돈나 - 동구의 친구인 종만이 화교로 나온다. 나중에 수술하면 클리토리스 보여 달라고 하는 애...
  • 신세계(영화) - 신세계는 주요 인물인 이자성정청이 여수화교로 나온다. 전남의 화교인구는 끽해야 200명 남짓이지만... 각본과 연출을 맡은 박훈정은 화교와 전라도라는 마이너리티 속성을 갖고도 조폭계에서 주요 요직을 차지하는 강한 캐릭터를 보이고 싶어서 이렇게 했다고 한다.
  • 도둑들 - 김수현이 맡았던 잠파노 정도.
  1. 화교가 거주국에서 낳은 자녀와 그 후손을 말한다.
  2. 단, 경우에 따라 중화민국 국적자는 '대만' 국적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3. 한국의 SM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필리핀 현지 그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