輸出主導産業化
ELI/export-led industrialization
수출주도공업화, 수출주도 전략이라고도 한다.
1 개요
수출주도란 해외시장에 재화를 판매할 목적으로 생산하도록 이끄는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무역장벽같은 보호무역주의로써 국내 산업을 보호하게 된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산업화를 달성하는 것을 수출주도산업화라고 한다.
2 비판
외화를 다량으로 벌어들이기 용이하고, 이론상, 국내시장과 함께 해외시장을 대상으로 생산을 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쉽다. 또한 경영성과를 파악하기 용이하여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에도 적합하다. 그러나, 후발국가가 이를 실시하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뒤따른다. 우선, 후방산업이 성숙하지 못할 경우 수입의 증가를 초래함으로써 국제 수지상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 2차 생산물을 중점적으로 수출할 경우 기본적으로 국내에 규율이 있는 노동시장이 존재해야 하며, 임금 상승 등으로 인한 비교우위 상실을 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산업의 고도화가 이루어져야한다. 또한, 세계적 규모의 무역 확대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시장보다 불안한 세계무역시장의 동향에 제약 받기 쉬우므로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받춰줘야 하며, 많은 국가들이 이를 실시할 경우 공급과잉에 빠질 우려가 있고, 후발국가일수록 그 타격이 크므로 주의가 필요하다.[1] 실제로 한국은 저출산으로 인해 국내 성장 동력이 고갈된 상황에서 국민여론 때문에 이민을 받기 어렵자 2000~2010년대 중반까지 수출중심정책을 더욱 강화했는데 중국발 경제위기로 큰 타격을 받고 2015년 성장률이 급전직하. 1인당 GDP도 역조 현상을 보였다.
3 실제사례
3.1 대한민국
수출주도를 실시한 대통령으로 박정희가 유명하다. 그는 이승만 정권의 경공업을 물려받아 공격적인 수출을 펼쳤고, 중공업화를 통한 산업 고도화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자세한 것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참고.
군정기간 동안 단기 차관을 끌어다 쓰게 되면서 6년 이상 증가추세에 있던 대한민국의 외환 보유고는 1962년 3월을 정점으로 군정 내내 수십 할 감소하였고,[2] 수출조합법(1961. 9. 9), 수출진흥법 등 16개 법령(1962. 3. 17) 등을 공포하고 1차산품의 수출을 극대화함으로써 외화를 충당하려 했던 박정희 정부의 노력은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공산품의 수출은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고 이에 주목한 정부는 62년 하반기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정하면서 무역계획도 변경하여 1963년 1월 1일부터 수출입 수출 링크제를 실시함으로써, 수출업자에게 수출대금 전액을 수입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권리를 부여하고 이의 양도를 허가하여 프리미엄시장을 만들었다. 즉, 가득액을 불문함으로써 단적인 고용창출, 수출산업유도, 경쟁력 강화를 노린 것이다. 그 결과 이는 수출장려보조금지급제도와 함께 수출기업으로 변모하려는 기존 기업들의 요구가 어려움없이 받아들여지는 데 일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직접적 수출진흥정책은 GATT 15조 4항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에 따라 단일변동제로 이행한 뒤에는 점차 이를 폐기, 우회하고, 수출용 원자재 수입에 대한 마진 철폐, 수출금융금리 인하, 수출금융융자비율 인상, 수출용 원자재 수입에 대한 관세 환급 등 간접적 수출진흥정책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선회하여 수출기업을 육성하였다. 그 결과 유럽에서 대한무역의 후진국 혜택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