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레이마니예 모스크


실외 전경


실내 전경

건축 최고 높이: 53 m
돔 안 면적: 26 m
첨탑(Minaret) 수: 4개
첨탑 높이: 72 m

유스티니아누스여, 우리는 그대를 따라가리라! 1558년에 술레이만 대제는 이렇게 생각했지 않을까....

목차

개요

Süleymaniye Mosque.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모스크. 6세기에 지어진 로마 최고의 건축물인 하기아 소피아를 모방한 오스만 제국의 건축물이다. 건축가는 미마르 시난.(사실 '미마르'가 건축가란 뜻이다) 쉴레이만 대제의 명으로 세워졌다. 하기아 소피아와 구조적으로나 외형적으로나 유사한 것이 특징이지만, 크기는 좀 작은 편이다. 하기아 소피아의 특징인 거대한 돔 면적에 도달하기에는 당시 오스만 제국의 건축 기술이 여의치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 시난은 셀리미예 모스크를 통해 하기아 소피아와 동일한 크기의 돔 직경을 달성하게 되고,(다만 아주 미세하게 작다.) 후대의 건축가인 메흐메드 아아는 하기아 소피아의 맞은 편에 더 넓은 면적의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를 짓게 된다.

시난 역시 죽기 직전에 셀리미예를 자신의 걸작으로 부르고, 술레이마니예는 자신의 첫 작품이라고 일컬었다. 다만 이전 버전까지에는 술레이마니예 모스크와 셀리미예 모스크를 '사막에서 천막이나 치고 살았던 민족과 그들의 건축가가 로마의 건축기술을 자신들의 것으로 흡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한 예' 라고 소개했지만, 그저 로마가 유럽의 중심이고 조금만 비슷하면 로마 거 베꼈다는 로마빠적인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 '사막에서 천막이나 치고 살았던 민족[1]' 이라고, 건축에 무지하리라는 것은 잘못이다. 사막이 아닌 초원이기는 하지만, 몽골도 원 제국 성립 이전의 수도인 카라코룸이 굉장히 화려했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또한 한발 물러서서 무지했다고 하더라도, 1399년에 바예지드 1세의 명으로 지어진 부르사(Bursa)의 대(大) 모스크(Ulu Cami)[2]가 이미 비잔틴의 돔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 1453년 콘스탄티노플 정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파티흐 모스크 등, 작품성에서는 다소 뒤떨어질지 몰라도 돔 양식을 이어받은 다른 모스크들도 많이 있다. 즉 술레이마니예 모스크나 셀리미예 모스크를 두고 '사막에서 천막이나 치고 살았던 민족과 그들의 건축가가 로마의 건축기술을 자신들의 것으로 흡수하는 과정' 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르네상스 전성기 시대의 예술가인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두고 '어라? 얘네들, 이제 슬슬 중세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네?' 라고 평가하는 것과 똑같은 잘못. 마침 미마르 시난은 미켈란젤로에 비견되는 건축가라고 평가받고 있다.

쉴레이만 대제와 황후 휴렘 술탄의 묘가 주변에 있다.
  1. 더불어, 오스만 제국이 일어선 아나톨리아 반도는 결코 '사막' 이 아니다. 오히려 비잔틴 제국으로서는 인적, 물적인 심장부였으며, 아나톨리아 반도를 빼앗긴 비잔틴 제국은 이후 만성적인 경제 부족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로 멸망했다. 지금도 그 아나톨리아 반도에 자리잡은 터키는 세계적으로 식량걱정이 없는 드문 나라로 먹을 것이 엄청나게 나오는 풍부한 곳이다.
  2. 1396년의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프랑스와 헝가리의 십자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로, 1396년에 착공하여 1399년에 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