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

아랍어 : مسجد(마스지드)혹은 جامع(제마)
영어 : Mosque(모스크)
터키어 : Cami(자미) 혹은 Mescit (메스지트)[1]
페르시아어: مسجد (마스제드) 혹은 جامع (저메)
한국어 : 성원(聖院)[2]
중국어 : 清真寺(칭쩐쓰)


터키 이스탄불블루 모스크.

Sheikh-Zayed-Mosque.jpg
아랍 에미리트의 셰이크 자예드 그랜드 모스크.


서울중앙성원(한국이슬람교중앙회). 녹색 글씨는 알라후 아크바르.

1 개요

이슬람의 예배당으로, 무슬림들이 모여서 종교 활동을 하는 곳이다.[3] 보편교회성당, 개신교교회, 불교과 같은 종교적 건축이다. 원래 아랍어로는 마스지드(مسجد, masjid)라고 하는 것을 그리스어로 마스기디온(μασγίδιον)이나 스페인어로 메스키타(Mezquita)라고 썼고, 이것이 다시 이탈리아어프랑스어 등을 거치면서 영어의 모스크(Mosque)가 되었다.

특유의 양파 모양 지붕과 "미나렛"이라 불리는 뾰족한 첨탑이 일반적인 이미지.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이미지이며, 모든 모스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당나라 때인 8세기 경 이슬람이 전파되었을 때 장안에 세워진 모스크는 돔과 미나렛 대신 녹색 기와를 얹은 탑식 건축이었고, 모로코의 모스크들은 삼각형 지붕을 가진 경우가 많다. 또한 돔을 이용하는 건축 양식이라 하더라도, 오스만 제국 부터의 터키는 동로마 제국의 돔 양식을 본받은 반면, 이란인도는 페르시아의 건축양식을 본받아 이완(ایوان)을 세우는 등 지역마다 차이가 크다. 우상숭배를 철저하게 금지하는 이슬람의 교리 때문에 모스크 내부는 성상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이나 동물의 형체는 일절 찾아볼 수 없고, 아라베스크 문양이나 아랍어 서체 도안(주로 코란의 구절)을 활용한 문양으로만 장식되어 있다.

형태의 유사성 때문에 타지마할이 종종 모스크로 오인받기도 하나 이쪽은 순수한 무덤이다.

무슬림이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도 여러 곳이 있다. 우선 가장 먼저 생긴 모스크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4]에 있는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한국이슬람교중앙회)으로 1976년 5월 21일에 개원했다. 60~70년대 중동발 건축붐과 오일쇼크 등을 겪으면서 당시 미수교 상태였던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맺기 위해서였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 나라들의 자금지원도 들어갔다. 그 밖에도 부산[5]이나 광주광역시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도 모스크가 세워졌고 그냥 이슬람권 출신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작은 모스크(일반 건물을 세내서)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2014년 10월 기준 국내에는 서울중앙성원을 포함, 총 15곳의 이슬람 성원 및 지회가 있다. 특이할 만한 곳으로는 국내 네 번째 성원인 전주성원인데[6], 호남권 첫 성원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동네가 동네라 그런지 기와 지붕 위에 아라비아 건축 양식 특유의 돔을 올려놓은 모양새가 인상적이다. 그밖에 안양성원은 교회를 사들여 모스크로 만들었는데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며 한국에서도 교회 건물을 사들여 로 만드는 경우도 여럿 있긴 하다. 한국의 모스크.

2 역사

최초의 모스크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집이었다. 무함마드의 집에 기도 시간마다 신자들이 모여 예배를 하고, 무함마드가 이들을 향해 설교를 하던 것이 시초로 이슬람이 발흥한 초기에는 메카를 향해 기도를 드리기 위해 카페트를 깔거나 성지의 방향을 나타내는 간단한 열주를 세우는 정도에 그쳤을 뿐 지금과 같은 큰 규모의 모스크는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슬람 세력이 폭발적으로 팽창하고 각지를 정복하면서 접하게 된 피정복민의 웅장한 교회나 신전을 보고는 정복자로서 이들을 압도하고 일정 지역의 무슬림들을 한 곳에 모아 세를 과시하기 위해 크고 아름다운 모스크를 짓기 시작했다. 특히 오스만 제국의 정복 이후 지어진 모스크들은 비잔티움 제국의 건축양식을 담습하기 시작했는데, 유명한 성 소피아 성당의 중앙돔보다 더 큰 돔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던 건축가 미마르 시난의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3 모스크의 구조(터키어)

세정대(Şadırvan)
우두라는 세정 의식을 위한 샘이다. 보통은 성원에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 위치해 있는데, 작은 성원의 경우 화장실이 이를 대신하기도 한다. 우두는 예배를 보기 전에 손과 발, 이마를 씻어 몸을 청결하게 하는 공간으로 여기서 세정 의식을 거친 후에 성원안으로 들어가서 예배를 본다.
미나레(Minare)
(왼쪽 그림)미나레 각 구조물의 명칭들(터키어). 성원 본당 주변에 달려 있는 탑 모양의 구조물로 예배 시간이 되면 이곳에 무아진(müezin)이라 부르는 사람이 아잔을 부르는 장소이다. 성원의 중요성에 따라 미나레의 수가 달라지는데, 가령 마을의 조그만 모스크들(보통 사설 사원)은 보통 1개의 미나레를 갖고 있고, 그보다 좀더 큰 규모의 성원(보통 국가가 지시하여 짓는 사원)은 2개, 왕이 중요하게 여겨 왕명으로 지은 모스크는 4개, 그리고 제일 중요한 성원인 메디나의 대모스크는 6개, 메카의 카바 성원은 9개나 가지고 있다. 왕명으로 지은 모스크로 유일하게 6개의 미나렛을 가지고 있는 곳은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보통 블루 모스크로 알려진 곳)로, 이에 대해서는 당시 술탄 아흐멧 2세가 건축가인 아흐멧 아아(Ahmet Ağa)[7]에게 "금(altın)으로 도배한 미나레를 지어라." 라고 명령했는데 건축가가 그걸 잘못 알아들어서 미나레 6개(altı)가 달린 사원을 주문하는 줄 알고 그리 지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일화에 아흐멧은 금으로 도배할 돈이 부족하여 일부러 잘못 알아들은 척 했다는 일화도 있다. 하여튼 아흐메트 2세는 그럭저럭 만족하여 아흐멧을 벌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성예배실(Selamlık)
여성예배실(Haramlık)
이슬람에서는 남녀가 서로 분리해서 예배를 보는데, 이는 예배를 볼 때 무슬림들은 옆사람의 어깨와 어깨가 마주하도록 일렬로 앉아서 절하고 고개숙이는 동작을 반복하는 식으로 예배를 보기 때문에, 앞에 이성 신도가 있을 경우 행여나 예배 중에 분심과 음심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거의 절대다수 성원들이 남성들은 1층에서, 여성들은 2층에서 예배를 보게 된다. 여자들은 남자 머리 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2층에서는 발코니를 통해 1층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1층에서는 절대로 2층을 볼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미흐랍(Mihrap)
(↑ 하기아 소피아 내부에 있는 미흐랍)[8] 성지 메카를 가리키는 방향(키블레)을 향해 세워져 있는 구조물로 무슬림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예배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보통은 키블레 방향으로 움푹 패여있는 경우가 많으며, 다른 곳은 단조로운 이슬람 사원에서 금칠을 하고 타일로 도배하는 등 유독 화려하게 장식된 부분이기도 하다.
민베르(Minber)
예배를 마치고 이맘이 설교를 하는 장소로 여러 계단으로 이루어진 대이다. 단 설교자는 겸손의 뜻으로 설교를 할 때에는 민베르의 맨 꼭대기 바로 앞 계단 위치에 서서 설교를 하는데, 민베르의 맨 꼭대기 자리는 예언자 무함마드를 위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4 유명한 모스크

  1.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은 사원은 메스지트, 규모가 큰 사원은 자미라고 부르지만 딱히 부르는 방법이 정해진건 아니다.
  2. 사원(寺院)이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럴 경우 힌두교 사원이나 다른 종교 건물들과 중복이라서 이슬람 관련지에서 주로 성원으로 많이 쓴다.
  3. 이슬람에서 예배를 위해 모이는 장소로서, 사방을 벽 등으로 둘러싼 성역. 방위는 메카의 방향과 일치한다.
  4. 한남동과 이태원동 사이에 있다.
  5.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중동역에는 없고 두실역 인근에 있다.
  6. 전주시 덕진구 인후2동에 위치.
  7. 오스만 시절에는 사람들이 성씨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함으로 서로를 구분했는데, 여기서 아아(ağa)란 '나으리', '영감님'정도 되는 존칭이다. 원래 뜻은 '대지주'.
  8. 하기아 소피아(성 소피아성당)의 미흐랍은 하기아 소피아가 원래 성당인 관계로 미흐랍을 정중앙에 설치해야 하나 그렇게 하면 미흐랍과 메카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아 미흐랍을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15° 정도 틀어지게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