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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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Siro Vai.

1 개요

미국 기타리스트. 본격 기타한테 말을 시키는 남자.[1] 혁신적인 기타 플레이로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구축한 록 기타계 최고의 거장 중 하나.

2 유년 시절

스티브 바이는 1960년 6월 6일 뉴욕 롱아일랜드의 이탤리언 지역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음악을 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던 그는 6살때 오르간을 배워 기초이론을 익혀갔다. 그러다가 9세 때 우드스탁 라이브 영화에 나오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연주를 보고 강한 충격을 받고, 12살 때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공연을 접하고 일렉트릭 기타를 잡기 시작했다. 이 시절 조 새트리아니에게 사사한 것으로 유명하며, 버클리 음대를 다니기도 했다. 초창기에는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브라이언 메이, 앨런 홀즈워스, 제프 벡 등에게 영향 받았다고 한다.

3 음악 활동

그는 유명 기타리스트의 곡들을 카피하며 실력을 연마해 맨하탄 익스프레스(Manhattan Express), 레인지(Range), 서커스(Circus) 등의 밴드를 조직하기도 했다. 또한 이 무렵인 14세 때 스퀘어(Square)의 기타리스트였던 조 새트리아니를 알게 돼 그로부터 얼마 간 기타교습을 받기도 했다. 고교 졸업 후에는 보다 깊게 음악을 배우기 위해 78년 9월 버클리 음대에 입학, 음악 이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다[2]. 그는 이 학교에 다니면서 프랭크 자파의 난곡 중 하나인 <Black Page>를 완전 채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그 실력으로 이후 '기타 플레이어(Guitar Player)'지의 채보를 맡기도 했다.

80년 6월 그는 프랭크 자파 그룹의 기타리스트로 가입하게 되었고 81년에는『Tinsel Town Rebellion』앨범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프랭크 자파 그룹에서『Them Of Us』등 몇 장의 진귀한 앨범 제작을 함께하였다. 84년 잉베이 말름스틴의 후임으로 알카트래즈에 가입해 이들의 3번째 앨범『디스터빙 더 피스(Disturbing The Peace, 1985)』를 공동제작 했다. 스티브 바이는 이 앨범 수록곡 전부를 어레인지하여 음악적 감각의 우수성을 입증 받았고, 태핑과 아밍 기술에 의한 기상천외한 주법으로 잉베이 이후의 알카트래즈 사운드 공백을 메웠다. 일본공연에서 그는 인트로부터 오버네크의 태핑솔로를 연주하여 잉베이의 애드립을 완전 카피한 뒤, 그것을 태핑으로 여유있게 연주하기도 했다. (사실 이 부분은 좀 논란이 있는데, 스티브 바이가 잉베이 말름스틴 수준의 피킹을 구사하지 못 해 자신의 장기인 태핑으로 연주했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 물론 잉베이 역시 바이와 같은 트리키한 태핑 연주는 구사할 수 없기 때문에 전체적인 실력은 엇비슷하지만 스타일 차이로 인해 주법을 바꿨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그 뒤 LA의 한 언더그라운드 바에서 데이빗 리 로스를 만나 서로 뜻이 통하자 스티브는 그의 그룹에 가입하게 된다. 데이빗 리 로스 밴드에서 스티브는『잇 엄 앤 스마일(Eat' Em And Smile, 1986)』,『스카이스크레이퍼(Skyscraper, 1988)』등 2장의 앨범에 참여, 그의 눈부신 트리키 기타 플레이를 과시했다. 하지만 그는 이 밴드에서도 오래있지 못하고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에 가입해 1989년『슬립오브 더 텅(Slip Of The Tongue)』앨범을 통해 뛰어난 테크닉의 기타 실력을 남겼다.

4 솔로 활동

프랭크 자파 그룹에서 탈퇴하고 솔로 기타리스트로 독립 한 후 자신의 독자적인 스튜디오를 만든다. 이렇게 해서 제작된 앨범이 첫 솔로 데뷔작『플렉스-에이블(Flex-Able, 1984)』이다. 여기에는 <The Attitude Song>, <Call It Sleep> 같은 획기적인 연주곡들이 수록되어 80년대 락 기타 연주의 새 장을 여는데 일조했다.
1993년 발표한 두번째 앨범 'Passion and Warfare'는 당시 록 기타계에 잉베이 말름스틴의 'Rising Force' 이후 최대의 충격을 준 기타 솔로 앨범으로, 현재까지도 그의 최고 앨범으로 꼽히고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아티스트와의 협연,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사운드트랙, 컴필레이션 앨범 등 매우 활발한 커리어를 쌓았으며, 특히 1996년 시작된 G3 콘서트 투어의 고정 멤버로 활동하면서 국내에도 그를 동경하는 수많은 팬들이 있다.
또 2011년에는 버클리 음대와 온라인 기타 강좌를 개설했는데, 최대 규모의 온라인 기타 강좌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5 연주 스타일

이론적 기반과 테크닉이 매우 확실한데, 이를 바탕으로 한 각종 실험적이고 변칙적인 플레이가 장기이며 기묘한 멜로디 진행과 화음, 트레몰로 암과 와우 페달의 독창적인 활용으로 특유의 4차원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더블넥이나 7현 기타를 활용한 실험적인 시도 또한 그의 트레이드 마크. 유니크함과 개성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가장 독보적인 기타리스트 중 하나이다. 한편 비상식적인 멜로디와 코드 진행은 동시대의 수퍼 기타리스트인 잉베이 말름스틴의 대척점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 잉베이에게 '이놈 청각장애인 것 같다'라며 까이기도 했다. 뭐 나중에 G3 공연도 같이 하면서 친한 사이가 되긴 했지만.

자기 스타일이 아니면 까고 보는 잉베이 말름스틴[3]과 달리 다른 유형의 음악을 매우 개방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심지어 3코드 펑크 기타리스트인 그린데이의 빌리 조 암스트롱을 극찬하기도 했다.(...) '팝적인 코드 진행 감각이 엄청나다'고...나인 인치 네일스 같은 밴드 또한 '내가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어봐서 아는데, 이렇게 만들기 진짜 어렵다'라면서 높이 평가하기도.

6 그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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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Ibanez JEM은 그를 상징하는 기타이며, 손잡이가 달린 특이한 모양[4]이 인상적이다. 지판의 장미 줄기[5] 마크와 하이플렛 일부에 스캘럽 처리가 되어 있는 것이 특징. 생김새가 예쁘고 가격도 (하이엔드 기타 치고는) 지나치게 비싸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전성기 시절에는 기타 키드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았던 악기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격이 지나치게 올라버려서 거의 비슷한 가격에 아이바네즈 최상위 라인인 제이커스텀 모델들도 구입이 가능해서 빠심이 어지간히 강하지 않으면 사지 않는 기타로 전락해버렸다.

그런데 2013년 8월, 안산 록페스티발에 참여해 한국에서 공연을 가진 뒤 다음 스케줄을 위해 이동하던 도중 자신의 Ibanez 커스텀 'BO'가 항공사의 화물관리 부주의로 넥이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United breaks guitars와 똑같은 취급을 당한 것인데. 그는 자신이 탄 비행기가 대한항공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자신이 올린 글에 첨부된 사진의 GPS 태그는 사진이 중국에서 찍혔다고 되어 있었다. 아이폰5로 찍은 사진이라 빼도박도 못하게 됐다. 바이는 이 사실을 알고 난 후 공식적으로 사과하긴 했으나 한국에서의 이미지는 완전히 실추돼버렸다.

7 영상

그의 곡 중 가장 인기가 많은 For The Love of God. 전주가 길어서 1:45부터 시작한다.


1986년작 영화 'Crossroads'에서 음악 및 악의 기타리스트로 출연해 랄프 마치오[6]와 영혼을 건[7] 기타 배틀을 펼치기도 했다. 4:45 정도부터 기타 배틀 씬이 시작된다[8]. 삑사리 내는 연기를 해야 하는데 내고 싶어도 못 내서나는 제대로 치고 싶어도 삑사리만 내는데촬영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삑사리 내는 연습을 했을 정도라 하니 더 할말이 必要韓紙?

  1. Passion And Warfare 앨범의 'The Audience Is Listening'에서 특히 잘 보여준다.
  2. 팻 메스니에 따르면 자신의 형 마이크 메스니가 당시 버클리에서 강사를 하고 있었는데 스티브 바이를 가르쳤다고 한다. 마이크는 스티브 바이가 이미 버클리 재학 시절 도를 넘어선 재능 (Off-the-scale talented)라고 극찬을 했다! 팻 메스니 본인도 스티브 바이를 대단한 음악적 재능의 소유자라고 극찬했다.
  3. 이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분 꽤나 쇠고집이시다. 덤으로 펜더빠이기도 하고
  4. 몽키그립
  5. 'Tree Of Life'라고 한다.
  6. '가라테 키드'(국내명 베스트 키드)로 당시 유명했던 하이틴 스타
  7.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영혼을 걸었다.(...)
  8. 참고로 영화내의 이 부분은 모두 스티브 바이의 연주. 단 기타 배틀중 랄프 마치오가 보틀넥 연주하는 부분만 슬라이드 기타의 거장 Ry Cooder의 연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