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상

丞相

1 개요

중국관직으로 삼공 보다 높다. 조선의 정승, 현대의 국무총리급으로 비교되며 실질적으로 나라를 꾸려가는 핵심의 위치이자 지도자 역할을 했고, 황제권이 약했을 때는 실권자들이 쥐던 관직이기도 했다.

2 역사

춘추전국시대부터 유래한 역사가 깊은 단어로, 전국시대 진나라 무왕이 BC 309년 좌-우승상을 둔데서 유래한다. 승상은 한 때 이보다 더 높은 지위인 '상국'의 비서직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소하, 조참 이후로 상국이 너무 높은 직책이라서 사실상 영구결번 취급을 받게 되자 승상이 실질적인 최고 지위가 되었다. 다만, 한대에서는 그 승상도 폐지되었고 부활한 시점이 적벽대전을 앞두고 조조가 임명된 때다.

이후 남송과 금나라 때에 좌,우 승상으로 다시 분리되었으며, 원나라도 이를 따랐다. 그러나 명대에 승상인 호유용이 모반을 일으키다가 주살후 왕권집중의 여파로 승상제 자체가 폐지되었다. 이후 명나라에서는 내각대학사가 승상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삼국시대에는 비교적 자주 나오는데, 삼국지를 본 사람들은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관직으로 조조, 제갈량, 육손, 고옹 등이 역임하였다.

3 여담

보통 중국에서 승상이란 말을 할 때는 보통 제갈량을 의미한다고 한다는 설이 있으나, 중화권에서 제갈량은 주로 무후로 불린다. 대한민국의 경우 특별한 수사가 없으면 주로 조건달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도 승상직을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