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회장이 과거 사이비 종교 아가동산의 교주였던 김기순이다. 과거 사이비 종교의 수익사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과거 아가동산의 영향력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나라미디어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노래, 춤, 웃음의 나라 신나라'라는 문장이 뜨며, 그 문장 옆에는 여자 아기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아가동산의 교리에 따르면, 성부, 성자, 성령이 각 '노래, 춤, 웃음'이라고 한다. 이런 글귀가 아직도 나타나는데, 아가동산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2 역사
2.1 아가동산의 시작
신나라레코드 회장 김기순은 1978년 전라북도 이리시(오늘날의 익산시) 주현동 J교회에서 이교부 목사와 함께 '삭발교'라는 신흥종교를 만들었다. 4년 후인 1982년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대대리에 '아가농장'을 세운 후 신도들을 모아 새로운 종교 아가동산을 만들었다.
김기순은 자신이 신이자 어떤 말을 해도 죄가 되지 않은 '아가야'라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현혹된 신도들은 김기순 아래에서 매일 밤낮으로 노동 착취를 당했다. 김기순은 낮에는 농장과 과수원에서, 밤에는 공장에서 신도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신도들에게는 1년에 단 4일의 휴가만이 허용되었고, TV와 신문 등 외부 매체는 일절 접할 수 없었다.
2.2 신나라레코드의 설립
김기순은 이렇게 신도들을 착취하여 얻은 수익을 교단의 재산으로 귀속시키는 등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불과 6년만에 아가동산을 13만 평 규모로 늘렸다. 이렇게 얻은 수익으로 세운 것이 신나라미디어인 것이다.
1982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신나라유통을 설립, 킹레코드, 명반레코드, 신나라레코드 등을 설립하여 운영했다. 회사 운영에 들어가는 자금은 아가동산에서 신도들을 착취하여 얻은 수익금으로 충당했다. 자본금이 넉넉하다보니 음반을 싸게 팔 수 있었고 덕분에 당시 음반 시장을 석권했다.
2.3 아가동산의 종말
김기순은 조세포탈, 횡령, 폭행 등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었으나 살인, 사기 등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기순에게는 징역 4년 및 벌금 56억 원이 선고되었으나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이후 아가동산의 신도 암매장, 살해 의혹에 대해서는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고 묻히게 되었다.
2.4 오늘날
2016년 현재도 멀쩡히 살아남아서 운영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이 회장도 교주 김기순 그대로다. 대표이사는 신옥희라는 사람인데 이는 아가동산 당시 경리 담당이었던 인물이다.
음반 시장이 침체에 빠졌지만 신나라레코드는 여전히 건재하다. 아이돌 음반을 위주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아이돌 가수들의 팬 사인회가 신나라레코드에서 열리는데다가, 신나라에서 음반을 사야 한터차트 및 방송사 차트의 음반점수 반영이 잘 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 가수의 팬층은 아가동산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1-20대 청년들이다. 실제로 이들 팬들은 신나라레코드가 과거 범죄집단이자 사이비 종교의 수익사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 경우도 많다.
신나라레코드 측에서는 과거 아가동산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각종 시도를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리랑 등 한국 전통 국악 음반을 발표하고, 50년대 이전 근대 한국 음반을 복각하는 등 공익 사업에 매진함으로써 기업 이미지를 중화하고 있다. 당장 이 문서의 역링크만 봐도 신나라에서 어떤 종류의 음반을 발매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북한에서 만들어진 클래식이나 윤이상 등 현대 서양고전음악 작품들을 발매하고 있다. '신도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세운 사이비 종교의 수익사업'이 졸지에 '민족문화 보존에 앞장서는 우수한 음반사'로 둔갑한 것이다.
본인들의 주장으로는 '과거 살해 의혹은 이미 법정에서 무죄로 밝혀졌고, 지금의 신나라레코드는 신명나는 근로자들의 공동체다'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