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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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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슛도사들의 만남, 오른쪽이 이충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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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모습.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농구선수, 감독 1944년 9월 2일생. 키 190cm, 90kg이다.

허재 이전의 한국 농구 슈퍼스타

2 선수 시절

처음에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서 야구부에 들어가려 했다. 그러던 중 휘문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농구선수로 활약한 이후 휘문고를 거쳐 연세대에 들어갔다. 1962년 휘문고 3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에 선발되었고 최종 선발을 거쳐 19세의 나이로 최종 합격, 당시 최연소로 국가대표에 들어갔다. 1967년 실업팀인 기업은행팀에 입단했다. 1974년까지 통산 750게임을 뛰어 3만점을 기록했다.

3 국가대표

1964 도쿄 올림픽,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1970년 유니버시아드에서 국가대표로 뽑혀 대활약을 펼쳤고 1970년 유고슬라비아 선수권 대회에서는 8경기에서 평균득점 32.6득점으로 득점왕에 올랐다. 또한 1969년 필리핀에서 있었던 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혼자서 무려 50득점을 넣는 대활약을 펼쳐 오늘날에도 필리핀 농구의 우상이 될 정도였다.

(과거 전성기 시절 필리핀에서 신동파 선수의 인기는 대단해서 "주필리핀 한국대사로 보낼 적임자가 없으면 신동파를 보내면 된다"는 농담이 있었으며 90년대에 필리핀을 방문한 분의 증언에 따르면 " 택시기사가 묻더라, 한국에서 왔느냐? 그렇다. 그럼 미스터신(신동파)을 아느냐? 물론 안다
대학 동창이다.라고 밝히자 택시기사가 택시비를 받지 않더라"라는 증언이 있고 현재도 신동파 감독은 필리핀 공항에서 검색대를 그냥 통과하게 해주더라는 목격담도 있다...)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신동파의 경기 관련 영상은 전무하고, 필리핀에 있지 않을까 추정만 되고있다.

4 감독 시절

1976년부터 태평양화학 농구단이 창단하면서 코치로써 정세훈 감독을 보좌하다 1978년부터 감독으로 승진하여 1987년에 자신을 보좌했던 김동욱 코치에게 감독직을 물려주고 농구부장으로 승진했다가 1989년부터 또다시 감독직을 맡아 1991년에 팀을 떠났다.

이 외에도 1977년부터 2년간 여자농구 대표팀 코치를 맡아 정주현 감독을 보좌하다가 1980~1982, 1987~1988년까지 두 차례 감독을 역임하고 1992년SBS 농구단의 초대 감독을 2년간 역임하다 1994년에 김동광 코치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총감독으로 앉아있다가 1996년을 끝으로 지도자 일선에서 은퇴했다.

이후 SBS 농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