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역대 하계올림픽
(Citius, Altius, Fort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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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럽다는 생각이드면 그건 기분탓일것이다. 아마도... 멕시코의 매력에 빠져보라는 최면인가? 30초정도 쳐다보다가 벽을 보자 왜곡되어 보일 것이다

개최날짜 : 1968년 10월 12일 ~ 10월 27일
개최장소 : 멕시코 멕시코 시티

1968년 멕시코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미국아르헨티나, 프랑스를 꺾고 개최권을 가져간건 좋았으나 개막식 전날에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수백명의 학생이 멕시코 경찰에게 숨진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1]

동독서독이 서로 갈라져서 출전한 최초의 하계 올림픽으로(단, 국기와 국가는 단일 팀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다음 대회부터 각자의 국기와 국가 사용), 이후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분단해서 출전하게 된다. 이유는 오히려 "동서관계가 호전돼서 단일팀이 필요하고 말고도 없고. 그냥 따로 출전하죠"라는 것 때문. 동독은 아예 서독을 외국 취급하기 시작했고. [2]

멕시코 시티 자체가 높은 고도(2240m)에 있다보니 각 종목 선수들마다 다른 불편함이 나오곤 하였었다. 중, 장거리 달리기 선수들은 산소가 희박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욱 큰 인내력을 요구하여 기록이 늦어지는 등 트랙경기에서는 막장끼가 다분해졌으나, 반면에 산소가 없기 때문에 공기저항도 적어져서 단거리 달리기나 높이뛰기나 멀리뛰기같은 필드경기들의 기록은 상당히 좋아졌다. 특히 멀리뛰기는 금메달을 차지한 미국에 밥 비욘이 세계기록을 55cm이나 경신하고, 2위와의 격차는 71cm로 벌려놓은 8.90m의 신기록으로 우승하게 된다. 이 기록은 이 뒤에 23년 뒤(1991년)이 되어서야 겨우 깨지게 될 정도. 100미터 달리기도 10초 벽이 깨졌다. (9초 95. 단, 당시 공식 기록은 소수점 이하 한 자리만 나타냈기에 9초 9).

하지만 높이뛰기에서는 고도의 장점뿐 아니라 새로운 기술도 나왔는데, 딕 포츠베리가 선보인 포스버리 플룹기술(배면뛰기)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뒤돌아서 점프하는 방식. 이 뒤로 이 기술은 높이뛰기에서 주로 사용되는 기술이 되었다.


당시 인종차별 문제등으로 인해서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미국 흑인 육상선수들이 블랙파워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는데, 200m에서 1,3위를 차지한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메달시상식에서 검은 장갑을 끼고 하늘에 주먹질을 한 흑인 인권 세레머니덕분에 선수촌에서 추방을 당하고 그 뒤 아예 미국 육상계에서 제명당하기까지 했다.[3][4] 또한 200m에서 2위를 차지한 호주의 피터 노먼 역시 이 둘과 함께 OPHR[5] 뱃지를 달았다가 역시 예외 없는 처벌을 당하고 말았다. 다만, 이건 이 당시의 이야기고, 시간이 좀 지난 후에는 이들 선수들 모두 인종 차별에 반대한 용기있는 행위를 한 선각자로 평가받고 있다. 여담이지만 이 세 선수는 이 사건 이후로 돈독한 친분을 쌓았고, 피터 노먼이 2006년에 사망하자 토미 스미스와 존 칼로스가 호주로 와서 노먼의 관을 운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피터 노먼의 사후인 2012년, 44년만에 호주 의회는 피터 노먼을 연맹으로부터 퇴출시킨 것에 대해 고인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또한 도핑테스트가 시범적으로 시행된 올림픽으로, 스웨덴의 근대 5종경기 선수인 한스-건너 리젠웰은 알코올 사용이 걸리면서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하였다.

전 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되었던 유도는 이번대회에서 정식종목에서 제외되었으며, 테니스가 다시 시범종목으로 채택이 되었다.

IOC위원장인 자크 로게요트 종목 대표로 처음 대회에 출전한 대회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멕시코 축구팀은 3,4위전에 올라가서 일본과 경기를 벌이게 되었는데 멕시코 관중들의 응원 속에서 멕시코가 이기리라 전망했는데 일본이 2-0으로 이기고 아시아 역사상 첫 축구 메달을 받아버렸다. 당시 멕시코 반응은 월드컵 탈락 수준으로 매우 실망이었다고. 그리고 44년이 지나 2012 런던 올림픽 남자축구 4강전에서 다시 재회한 멕시코는 3:1로 일본에게 역전승을 거두면서 설욕하며 결승에 올라가서 브라질 제치고 사상 첫 축구 금메달까지 받았다.그리고 일본은 동메달 보다 값진 목메달 받았다.

한국은 복싱에서 은메달 1개(지용주), 동메달 1개(장규철)를 획득했다.
  1. 이 사건이 바로 멕시코 현대사의 분수령으로 불리는 틀라텔롤코 광장 학살사건이다.
  2. 사실 단일팀 시절에도 말만 단일팀이지 실제로는 동-서독 선수와 임원들이 완전 따로 놀았다. 눈가리고 아웅할 바에는 그냥 따로 나가자는 주장이 득세한 이유. 근본적인 이유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이때까지 동독올림픽위원회를 승인해 주지 않았다는 것. 서독의 독일올림픽위원회에 껴서 출전을 시켰기 때문이다. 동독은 올림픽 참가를 포기하든지 서독에 붙어서 나가든지 양자택일을 하다가 이제서야 승인을 받아서 단독 참가가 가능해진 것. 단, 각종 종목 협회에서는 동독을 전부터 인정했기 때문에 세계선수권 등에서 동, 서독이 별개로 참가를 한 경우도 있었다. 축구는 지금의 영국처럼 피파는 별개 가입했으며 올림픽만 단일 팀을 구성했다(그러나 실제로는 양독이 대결하여 이기는 팀이 독일 대표가 됨).
  3. 인종갈등을 다룬 다룬 영화 리멤버 타이탄에서도 이 사진이 나온다.
  4. 또한 이 사진은 록밴드 RATM의 싱글 Testify의 표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5. Olympic Project For Human Rights. 해석하면 인권을 위한 올림픽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