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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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동통신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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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등장한 발신전용 이동전화. 시티폰은 대한민국에서의 서비스명이고, 유럽에서 개발했을 때의 기술명은 CT-2. 원리는 집에서 쓰는 무선 전화기의 사용 범위를 공중전화망을 통해 확장하는 개념에 가까웠다. 시티폰이라는 이름이 바로 CT-2의 CT에서 유래되었다. 즉 CT Phone. 물론 발음이 같은 city phone 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참고로 CT-2의 CT란 가정용 무선전화 (Cordless Telephone)라는 이름이며 집전화를 CT-1로 보고 확장판 개념으로 CT-2로 명명했다. 국내에서 처음 개통된 곳은 서울특별시, 광명시, 과천시 (이상 서울 지역번호 02 사용지역). 이후 서비스 지역이 수도권 주요도시와 광역시급 지방 주요 도시로 확대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 수만 있고 받을 수는 없는 발신전용 기기다. 그래서 수신전용이었던 무선호출기(삐삐)와는 찰떡궁합이었다. 삐삐로 전화번호를 수신받아 시티폰으로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심지어는 삐삐 기능을 갖는 시티폰까지 나와서 바로 호출자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 가능한 모델도 나왔다. 다만, 그 얼마 뒤에 PCS가...;

다만 수신율이 매우 좋지 않았기에 교통수단으로 이동시 통화가 되지 않거나 중계기가 있는 공중전화박스 근처가 아니면 통화 품질이 좋지 않았다. 한 마디로 시티폰은 들고 다니는 공중전화나 마찬가지였다. 또, 시티폰은 기존 핸드폰(011, 017)보다는 저렴한 가격을 내세웠지만, 결국 반쪽짜리 이동전화로서 과도기적인 서비스에 불과했다. 게다가 서비스 시기도 너무 늦었다. KT서울이동통신 등 여러 사업자들이 1997년 2월에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그 해 10월에 나온 PCS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수신, 발신, 문자서비스[1]가 가능한 PCS에 비해 전화 발신밖에 안되는 시티폰은 요금 이외에는 메리트가 없었기 때문이다.[2]

시티폰은 그 태생 단계에서부터 공중전화기를 휴대하는 개념이었고, 이후 요금이 더 낮아졌지만(1998년 기준 45원/3분, 공중전화의 50원/3분보다 싸다.), 지나치게 제한된 이용 범위(중계기로부터 약 100m)와 이동 불능(중계기의 범위를 벗어날때 다른 중계기로 이용자를 연결시키지 못했다) 등의 불편함에 요금의 메리트가 묻혀버렸다. 게다가 1998년 들어 PCS 측이 공격적 마케팅을 하면서 요금 인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기존 고객들마저 이탈해 사업자들이 속속 사업을 접기 시작했고, 이를 한국통신(現 KT)이 인수하였다. 시티폰을 가정용 무선 전화기로 편입시키는 서비스[3]도 존재했으나, 결국 1999년 6월 KT마저 1,000억 원 대의 대형 누적적자를 남기며 GG치고 사업을 접으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4] 이동통신 역사의 흑역사.

1997년 당시에 최고의 예능계 황제였던 김국진이 공중전화박스 앞에서 줄 서지 않고 바로 시티폰으로 전화를 거는 CF를 찍으며 그의 유행어인 "여보세요"의 효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5]

현재 MBC가 한국에서 시청 불가능하도록 설정을 바꿔버렸고 TV캐스트가 그리드를 제공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니깐 IP우회해서 보든지 하자

이후 2011년 7월 라디오 스타 백지영, 지상렬, 김연우 출연분에서 지상렬이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상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혼자만 계속 일방적으로 김칫국을 마셔대는 습성을 김구라가 공격하자, 이에 김희철시티폰[6]이라고 드립을 치기 시작했다. 거기에 지상렬이 시티폰 없어진지가 언젠데 라며 맞받아 치는 가운데, 가만히 있던 김국진이 "그거 내가 선전했어"[7]라는 한 마디로 올킬하며 빵 터뜨리기도 했다. 김국진이 다름아닌 위에 있는 시티폰 광고 영상의 모델이었기에 가능했던 개그...

소년탐정 김전일식인 연구소 살인사건에 등장한 일본의 PHS는 시티폰에 이동 중의 통화 기능과 발신기능이 추가된 시티폰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2 한국씨티은행폰뱅킹 서비스

한미은행의 "로얄폰"(...)을 계승한 한국씨티은행폰뱅킹 서비스 이름. 씨티은행의 폰뱅킹 서비스의 전 세계 공통적 브랜드명이나 한미은행 서비스 중심으로 합병하면서 로얄폰 시스템을 이름만 시티폰으로 뒤집어 씌운 것. 접속 번호는 1588-7000 또는 해외에서 +82-2-3704-7000. 국제 서비스를 꼼꼼하게 제공하는 은행답게 영어 전용 서비스 접속번호인 02-3704-7100도 가지고 있다.

보안카드에는 씨티폰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전화를 걸어보면 "한국씨티은행 시티폰입니다 빠른말 서비스는 샵버튼..."이라고 한다.
  1. PCS 발매 당시의 문자메시지는 지금과는 달랐다. 초기 기종은 아예 한글이 지원되지 않아 영문만 가능했고 이후 한글이 가능해지긴 했지만, 타사 가입자에게 보낼 수도 없었고, 버튼을 눌러 자음을 고르고 또 버튼을 눌러 모음을 고르고(...). 그냥 삐삐를 쓰는 편이 빠르다 보니 이 기능은 거의 쓰이지 않았다. 당시 가입했던 사람들도 문자 기능이 없던 것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타사 연동이 가능해 진 것이 99년이고, 버튼에 자음/모음을 새긴 천지인, 나랏말이 등장한 게 2000년이다.
  2. 1997년 기준으로 핸드폰: 25원/10초, PCS: 18원/10초, 시티폰: 8원/10초(업체별 요금제, 이용시간대등 요소에 따른 차이가 있으므로 대략적 평균임)
  3. 집 밖에서는 시티폰이지만 가정 내 중계기 범위에서는 평범한 무선전화로 사용. 당연히 집안에서는 가정용 통화요금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어느새 집에서도 핸드폰을 쓰는...;
  4. 당시 가입자들에게는 집전화 등으로의 전환이 가능했는데 상당수가 PCS 단말기를 받고 KT PCS(KTF와 같이 식별번호 016을 사용하였으나 자회사인 KTF와는 달리 모회사 KT가 직접 관리한 역 MVNO 형태)로 흡수되었다. 하지만 KTF가 훗날 KT로 통합되어 KTF PCS와 KT PCS는 똑같은 KT의 PCS 016이 되어 버렸다.
  5. 공중전화에 줄서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던 시절 이것은 매우 강점이었다. 공중전화가 동네 잉여 기물인 현재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 공중전화를 줄서서 기다리다가 앞 사람이 통화 오래한다며 시비가 붙어 심지어 살인까지 난 뉴스도 종종 나왔다. 농담이 아니다!
  6. 시티폰이 발신전용인 것을 착안하여 날린 드립이다.
  7. 자막은 그거 내가 광고했어 라고 나갔을 정도로 보통 광고라는 말이 더 적합한데, 어르신들이 쓰는 선전이란 말로 더욱 웃음을 주었다. 참고로 광고(Advertisement)와 선전(Propaganda)는 다른 의미이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 국내에서는 두 단어의 의미를 혼동해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