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마 히데오

吾妻ひでお 1950.02.06~ 일본만화가. 홈피, 일본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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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생활은 꽤 재밌습니다.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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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랬다간 죽는 몸이 되어버렸다 오너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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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현재. 광기어린 변태의 아우라가 넘쳐흐른다.

로리물의 원조격이 되는 작가로, 현대 모에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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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은 애니화까지 된 적이 있는 나나코SOS

1969년데뷔. 홋카이도 토카치 출신[1]으로 만화잡지 COM(데즈카 오사무가 창간한 잡지로 가로보다는 메이저했다. 먼저 폐간되었지만)의 홋카이도 지부에 참가. 그러면서 196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쇄소에서 한달간 일한뒤에,만화가로 데뷔한다.

일본의 만화업계에서는 가히 전설적인 인물로 원래는 SF성향의 만화를 그리고 싶어했으나 나가이 고파렴치 학원이 대히트하자 아즈마 히데오도 비슷한 만화를 그릴 것을 강요받게 된다. 결국 잡지사를 옮겨서 자신이 좋아하는 로리, SF, 넌센스 개그등의 요소가 들어간 만화를 그렸다. 1978년에는 부조리일기라는 작품으로 성운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부조리 개그가 유행하게 되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작가는 아사리 요시토, 아이하라 코지, 요시다 선생[2], 쿠메타 코지등이 있다. 귀여우면서도 독특한 그림체는 상술한 아사리 요시토, 그리고 타카하시 루미코 [3], 그 외 많은 만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특유의 작고 귀여운 그림체로 1970년대부터 '로리콘'을 자칭해오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 대대적으로 유행한 '로리콘 붐'의 시초격으로 각종 잡지에 그림, 칼럼, 인터뷰등이 가릴 것 없이 실리며 커다란 인기를 얻는다. 당시에 아즈마 히데오는 데즈카 오사무이후로 중요한 만화가라는 명성을 얻던 오토모 카츠히로에 비견될 만한 명성을 얻고 있었으며 SF요소가 강하다는 점에 따라 만화업계의 뉴웨이브라고 평가될 정도였다. 그러한 저명한 만화가가 로리물에 손을 댔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고 센세이셔널해서 전 일본에 로리콘 붐이 불게 된다. 1979년 코믹마켓에 일본 최초의 로리콘 동인지인 'シベール'를 발매. 이것을 시작으로 코미케에서 로리콘 동인지가 큰 인기를 얻게 된다. 한마디로 80년대의 유행을 이끄는 메이저 작가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최초로 '로리콘'이란 단어를 퍼뜨렸다는 소문이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그 '미야자키 햐아오'가 맞다.)가 로리콘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사람은 싫어한다고 인터뷰하도 했다.

1973년 결혼, 1980년에 장녀,1983년에 장남을 얻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는 만화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서 그의 명성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고 우울증이 심해져 1989년 결국에는 산에서 목을 매달다 실패하고는 그 뒤로 집에서 돌아가지 않고 홈리스 생활을 시작했다가 경관에게 발견되어 귀가하게 된다. 그러나 아즈마는 2년 뒤인 1992년 택배를 보내러 가다가 다시 가출하여 행방불명된다. 그 후 배관공으로 일하다 아는 사람이 타고있던 자전거가 도난자전거(일본은 자전거 등록제가 있다)여서, 경찰 조사(경찰이 그의 팬이었다)를 받다가 다시 귀가하게 된다. 귀가 뒤에도 반년간 배관공 일을 했다고.

귀가 후에도 만화가로 복귀하게 되지만 변화한 만화업계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알콜의존증에 빠지고 그러다가 자신의 실종과 알콜의존증 치료를 유쾌하고 담담하게 풀어낸 논픽션 만화 실종일기를 발표한다. 한 때 저명한 만화가였던 그를 기억하는 중장년층에 의하여 실종일기는 곧 커다란 화제작이 되어 제 34회 만화가 협회상 대상,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만화 부분 대상, 제 10회 데즈카 오사무문화상 만화 대상, 37회 일본 SF대회 성운상 논픽션부분을 수상하며 왕년의 영광을 다시 한번 재현했다. 그 덕인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그리고 싶은 만화를 그리고 있다. '실종일기'는 우리나라에도 정발이 되어있다.

현재

'실종일기'가 발매됐을 무렵인 2005년경 "개그 만화가 은퇴" 선언을 했다. "일은 없고 한계이고 자신을 괴롭게만 할 뿐이라 개그만화를 그만둔다"고 공언, 이제부터는 어두운 작품만 그릴거라고 썼으나 계속해서 개그가 넘쳐나는 만화를 그리고 있다(...).

근래 케이온!을 비판해서 화제를 몰았다. 정확히는 애니메이션판에 대한 불만 토로로서. 애니화되면서 여성 스태프들의 입김이 많이 작용하여 원작만화에 있던 에로함(그런게 있었나?)과 유머감이 죽어버렸다고 불평을 쏟아냈는데, 요즘 시청자들은 대체로 "?"라는 반응만을 보였다. (...) 게다가 실종일기 정발 전에 일어난 일이라 작가 인지도가 떨어지는 국내에서는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4]

2012년 1월부터 석달 간격으로 "아즈마 히데오 베스트 셀렉션"을 발매하고 있다. 아즈마 히데오 선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들 표지에는 우시지마 이이니쿠가 표지모델로 나와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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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와같이... 오오오오오오오오오!!!!!!!

2013년 9월에 발표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 선언에 대한 팬의 질문에 "아마 거짓말일거라 생각해"라고 답변. "미야자키씨도 실종되고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지 않을까요?"라는 말엔 "미야자키씨는 사회성이 있으니 그런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은 가끔 곤란한 걸 만들지만."이라 답변하였다.
  1. 토카치 출신 유명 만화가로는 아라카와 히로무가 있다. 단 아라카와는 마쿠베츠 출신이고 아즈마는 우라호로 출신이다.
  2. 자체 항목은 없지만 루이지 항목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아라키 히로히코의 죠죠의 기묘한 모험 6부에서 자신의 작품인 '전염됩니다'의 4컷 개그만화가 패러디 되기도 했다.
  3. 초창기 화풍 한정.
  4. 사실 우리나라에도 80년대 초부터 활동(?)해온 오덕들 중에 이사람의 팬이 제법 있으며, 이들은 이 발언에 공감하지는 않더라도 그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