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술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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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터키어 | احمد اول (Aḥmed-i evvel) |
터키어 | I. Ahmet |
생몰 | 1590년 4월 18일 ~ 1617년 11월 22일 |
재위 | 1603년 12월 22일 ~ 1617년 11월 22일 |
1 평범한 치세
오스만 제국의 13대 황제 메흐메트 3세(III. Mehmet)의 아들로, 1603년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15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 1617년까지 14년동안 계속된 치세 동안 큰 사건은 없었지만 외교적인 사건이 두 가지 있었는데, 먼저 1606년에 합스부르크 황가와 지토바토로크 조약(Treaty of Zsitvatorok)을 체결. 헝가리 문제를 조정한 것을 들 수 있다. 헝가리는 쉴레이만 대제 시대부터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황가 사이에 영토 분쟁이 계속되었던 지방으로 쉴레이만 시대에 체결된 조약으로 인해 합스부르크 황가가 오스만 제국에 연공을 바쳐 왔는데, 지토바토로크 조약은 그 연공을 이제 더이상 지불하지 않아도 좋다는. 다시 말해 오스만 제국의 힘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인증한 조약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1612년에 동방의 사파비 왕조와 조약을 체결, 오늘날의 그루지야와 아제르바이잔을 내주었다. 그리고 티푸스로 인해 1617년에 27세로 요절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왜 이 항목이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그냥저냥 평범한 황제. 하지만...
2 평범하지 않은 개혁
아흐메트 1세라는 황제가 오스만 제국 역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가 시행한 황위 계승법 개혁 때문이다. 먼저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황위 계승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한 마디로 '새로 즉위한 술탄은 그의 형제를 모조리 제거하라.' 라는 것.
오스만 제국이 창건되었을 당시부터 형제 살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창건자인 오스만 1세는 창건자니까 넘어가고, 2대 황제[1]인 오르한의 형제(형인지 동생인지는 불명)인 알라앗딘 파샤(Alaaddin Paşa)는 오스만 제국의 초대 재상으로서 신생 오스만 제국의 내정을 정비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4대 황제인 바예지트 1세가 즉위하자마자 동생을 처형하고, 바예지트가 티무르와의 전투에서 패하여 사로잡힌 이후 그 아들 4형제가 장장 10년동안 하나뿐인 옥좌를 두고 내전을 벌이게 되면서 형제란 협력자가 아니라 경쟁자로 여겨지기 시작. 결국 메흐메트 2세가 형제를 모조리 제거하라는 내용을 국법으로 제정하기에 이른다[2].
하지만 아흐메트 1세는 이러한 법을 폐기하고, 앞으로는 형제 살해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왜 계승법 개혁을 단행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근거는, 그가 15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했다는 것. 즉 다른 선대 황제들과는 달리 총독을 지낸 경험이 없기에 스스로의 결함을 없애기 위해 계승법 자체를 바꾸어버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다른 형제들을 모조리 제거했다가 자기 자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황통이 끊어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가운데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흐메트 1세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사실[3].
형제를 살해하는 대신, 아흐메드는 앞으로 형제들은 황궁 내의 밀실[4]에 가두어두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이후의 오스만 제국에서는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동안 감금생활을 해온 터라 세상 물정에 어두운 인물이 황제가 되고, 그 가운데에는 오랜 감금생활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인물도 적지 않았기에 오스만 제국이 국가 막장테크를 타는 원인 가운데 하나를 제공했다[5].
3 기타
검술과 시, 승마에 능하고, 여러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시에 대해 말하자면, 바흐티(Bâhti[6])라는 이름으로 시를 썼을 정도. 하지만 독실한 무슬림이었던 탓에 그림을 싫어해서[7] 궁정 화가들을 내쫓아버렸으며, 역시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라 금주령을 내렸으며 샤리아법과 기독교인의 교회법을 강화했다. 이교도의 요사스러운 물건이라며 선대에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선물받은 오르간을 직접 부숴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흐메트의 종교적 열정은 한 가지 좋은 결과를 가져왔으니, 오스만 고전 건축 최후의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블루 모스크(Blue Mosque)'[8] 가 바로 아흐메트 시대의 건축물인 것.
http://en.wikipedia.org/wiki/Sultan_Ahmed_Mosque#mediaviewer/File:Sultan_Ahmed_Mosque_Istanbul_Turkey_retouched.jpg
참고로 블루 모스크에 대해서는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원래 아흐메트는 건축가인 메흐메트 아아(Sedefkâr Mehmet Ağa)에게 모스크 주위의 첨탑을 황금(터키어로 altın)으로 만들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황금을 그렇게 쳐발랐다간 낭비했다간 국고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건축가는, 첨탑을 황금으로 만드는 대신 첨탑을 여섯 개(터키어로 6은 altı) 만들었다는 것. 다만 이렇게 되면 메카의 모스크와 첨탑의 수가 같아지므로, 아흐메트는 첨탑 하나를 메카의 모스크에 기증할 수밖에 없었다[9]. 여담으로 이건 우연이지만, 아흐메트 1세와 메흐메트 아아는 1617년에 나란히 세상을 떠났다. 다만 1540년생인 메흐메트는 사망 당시 78세로, 요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흐메트 1세가 일찍 죽은것과는 대조적으로 애첩 쾨셈 술탄(Kösem Sultan)은 34년을 더 살았다. 그녀의 아들들과 손자가 황위에 오르자 사실상 오스만 제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어 국정을 쥐락 펴락 했다. 그리스의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오스만 제국의 최고 권력자가 된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10] 터키에서는 쾨셈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 등이 몇번 만들어지기도 했다.
2015년부터 터키의 민영방송 STAR TV에서 제작하고 있는 사극 무흐테솀 유즈이을: 쾨셈에서는 초반의 남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듯 하다. 다만 아흐메트는 14세의 나이에 즉위한 반면 배우는 2015년 기준 24세로, 터키인들이나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의 눈에는 제법 어색하게 보일 듯.
- ↑ 엄격히 말하면 황제라 할 수는 없다. 황제는 그만두고 술탄이라고도 불리지 못했다. 오스만 제국은 룸 술탄국의 신하(정확히 말하면 용병부족)에서 시작한 나라로, 술탄을 칭하기 전에는 지방 총독을 뜻하는 베이(Bey)를 칭했다. 다만 오스만 제국 이외에도 카라만 공국이나 아이든 공국 등 룸 술탄국에서 독립해나온 튀르크계 소국들이 많았고 다른 지역, 다른 시대에도 비슷한 일이 왕왕 있었기에, '베이 = 총독' 이라 하면 곤란하고 때로는 공작 정도로 의역하기도 해야 한다. 더불어 처음으로 술탄을 칭한 것은 3대 황제인 무라트 1세이고, 황제, 즉 파디샤를 칭하기 시작한 것은 7대째인 메흐메트 2세.
- ↑ 이와 같은 맥락으로, 황태자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예외없이 지방 총독으로 내려보내 자질을 알아보는 관습도 있었다.
- ↑ 이때까지의 역대 황제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에 즉위한 인물이 아흐메트 1세였다. 아흐메트 다음으로는 즉위 당시 18세였던 무라트 2세, 20세의 메흐메트 2세가 어린 나이에 즉위한 경우. 다만 메흐메트는 아버지 무라트 2세로부터 양위받아 2년동안 재위하다 무라트에 의해 폐위. 무라트가 사망하자 복위했는데, 양위받았을 당시는 13세로 최연소자 황제가 된다(앞서 20세라 한 것은, 2년간의 재위기에는 사실상 꼭두각시 황제였기 때문).
- ↑ 이를 '카페스(Kafes, 터키어로 '새장'이라는 뜻)' 라 한다.
커피숍과는 다르다. 커피숍과는! - ↑ 당장 동생으로 뒤를 이어 황제가 된 무스타파 1세부터가 막장이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관료들의 터번을 벗기고 수염을 잡아당기는가 하면, 물고기와 새들에게 동전을 뿌리고 돌아다니는 정신병자였던 것.
- ↑ 행복이라는 뜻의 옛 터키어
- ↑ 아흐메트의 생각에 따르면, 그림은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한 알라의 권능을 어설프게 흉내내려는 무엄한 짓거리' 에 불과했다.
- ↑ 정식 명칭은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Sultanahmet Camii, Sultan Ahmed Mosque)' 로, 건물 내부를 장식한 푸른 색의 타일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 ↑ 모스크는 첨탑이 몇 개인가가 그 모스크가 얼마나 격이 높은가를 대변한다.
- ↑ 말년에는 암살 당함.